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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김비 장편소설 연재]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9. 에필로그 - 행위, 문학의

by 행성인 2015. 7. 20.

長篇小說

金 飛


29. 에필로그 - 행위, 문학의



“어, 뭐야? 너도 왔어?”
“누가 연락했니, 성준이 네가 연락 했냐?”
“너 엄마한테 또 혼나려고 그래? 집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냐?”
“내가 우리 집에서 살게 해 준다니까? 용호 정도면 난 동거 가능. 우경이도 이해해줄 걸?”
“뒤는 잘 살폈니? 또 어디 엄마가 너 따라오신 거 아니니? 너희 엄마, 정말 대단하시더라!”
“야야… 어머님도 오죽 답답하시면 그랬겠어?”
“우리 데리다 형은 또 멀리까지 간다. 이해력도 정말 넓고 넓으시지. 형 인프제라고 했지, 참?”
“이거 또 사람 분류하는 버릇 아직도 못 고쳤네? 그게 다 어떻게든 정답을 내고 싶어 하는 입시교육의 잔재인 거라고 그게. 인간을 그거 하나면 이미 알겠다고 퉁쳐버리는 그 태도가 그게, 그게 정말 인간다운 거 맞냐? 친구고 애인이고 그거 먼저 따지는 인간들 보면 난 정나미가 뚝 떨어지더라.”
“그래도 난 형 같은 타입은 절대 싫어요.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해.”
“너 내가 동성 결혼이라도 하고 나면 혹시 나 또 확 좋아지고 그러는 거 아니냐?”
“형, 형이 정나미 뚝 떨어진다는 그 분류에 목 맨 사람들이나, 내 사랑을 오직 ‘결혼’을 기점으로 파악하는 형이나… 그거 다 마찬가지 아냐?”
“맞네, 그러네. 우리 성준이 차암 똑똑해? 허허허.”
“어? 쟤는 또 뭐야?”
“저 형은 또 어떻게 왔어?”
“어… 내가 연락을 하긴 했는데… 올 줄은 몰랐네. 어서와, 유진아.”
“야, 너도 국어 선생님 아니냐? 애들이야말로 이런 영상 다 찾아보고 그럴 텐데, 알려지면 어쩌려고 그래?”
“아냐, 오빠. 얘 예전에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춤추다가, 자기가 가르쳤던 애들도 만나고 그랬대.”
“엉? 그래서 같이 잤어?”
“푸하하학!”
“야야야… 저건 또 정말… 하여간 못 말린다, 못 말려!”
“놔둬, 저 형은 춤만 같이 춰도 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다들 정말 하나도 안 변했네. 근데 왜 안심이 되지? 막 위안이 되고 그러네?”
“그치 형! 그러니까 이젠 빠지지 말고 나와.”
“근데 정말 어쩌려고 그래, 너? 정말 괜찮겠어? 아무리 그냥 모임하는 거 스케치만 나간다고 해도… 그래도 좀 그럴 수도 있을 텐데…”
“뭐 별 일 있겠수? 별 일 있으라고 그러지 뭐. 그 간판 머리에 붙이고 학원이나 뛰지 뭐.”
“히야… 유진이 형은 정말 다 계획이 있어. 저게 매력이기도 하지만… 또 그게 또 질리게 하기도 하거든?”
“질릴 놈이야 질리든 말든 뭐… 어쨌거나 다들 오랜만에 같이 보니 앞으로 잘 부탁하겠소!”
“오케이!”
“잘 왔다!”
“환영해!”
“웰컴, 웰컴!”
“근데, 뭔 책을 이렇게 어려운 걸 골랐어? <문학의 행위>라니… 머리 빠개지는 줄 알았네. 다들 정말 이걸 읽은 거야?”
“우와… 국어 교사인 형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반갑다. 나 반도 못 읽었잖아?”
“그렇지, 맞지? 이거 수능 언어 영역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인 거지?”
“하… 어쩐지… 나 수능 때 언어가 제일 최악이었는데…”
“그래 형, 이건 정말 어렵더라.”
“어, 쟤 뭐야? 쟤도 왔어?”
“어, 민수야!”
“야야, 이리 와! 들어와, 안 들어오고 뭐해!”
“쟤한텐 누가 연락했어?”
“어… 왔냐? 여기… 여기 앉아라.”
“뭐야, 데리다 형이 한 거야?”
“뭐… 그냥… 모임 촬영 있다는 것만… 뭐 마실래, 뭐 줄까?”
“야, 이 가게 지분 달라고 그래. 너… 자격 있어. 이 가게, 재산 분할 해 달라고 해.”
“어… 민수 웃는다. 그래, 그렇게 웃어야지.”
“우와… 민수 웃는 모습 보니까 정말 행복하다. 내가 다 행복해지네. 허허허.”
“자자… 우리 책을 다 못 읽은 것 같으니까, 촬영하기 전에 입이라도 좀 맞춰 놓자. 안 그러면 민망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싫어, 난 형이랑 입 안 맞춰.”
“어우, 유치해. 어우… 어우어우!”
“난 이 책은 모르겠고, 모자이크를 좀 예쁘게 해줘.”
“어, 너 모자이크 하게?”
“응, 왜?”
“그래, 해. 하고 싶은 사람은 요청하면 해줄 거야.”
“그럼 난 모자이크 말고, 만화 인물 얼굴로 해줘. 그 에반게리온에 신지 얼굴?”
“야, 그건 저작권 때문에 사용 못 할 걸?”
“난 내 얼굴 뒤통수로 해 줘. 내가 내 뒤통수 이미지 줄게.”
“난 얼굴 나와도 괜찮은데… 그거 그 얼굴만 크게 한 거 있잖아? 광고에도 나오고… 다른 영상 보면 놀랄 때나 집중할 때 얼굴만 크게 하는 거… 그걸로 머리만 크게 해서 둥둥 띄워 줘.”
“어… 저 분은 또 왜…”
“어… 잎새야, 저 분 또 오셨다.”
“아, 내가 오늘 행사가 있다고 하긴 했는데… 들어와요, 앉아요.”
“아, 안녕하세요. 괜히 저 때문에…”
“아, 아닙니다. 오늘 무슨 촬영이 있어서… 근데 괜찮으세요?”
“네… 뭐.”
“모자이크라도…”
“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뭐… 그렇겠죠?”
“네, 괜찮아요.”
“그래도… 혹시 가족들이 보면…”
“아니, 직장에서라도…”
“아는 사람이라도…”
“아뇨, 저는 상관없습니다.”
“……”
“여기에서라면, 뭐든 다 괜찮습니다.”




김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돼 등단했다. 장편소설<빠쓰 정류장>·<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산문집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을 냈다. 한겨레신문에 ‘달려라 오십호(好)’를 연재 중이다.

*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은 2014년 김비 작가가 웹진에 연재한 '나의 우울에 입맞춤'을 2022년 수정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