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篇小說


 

金 飛






에필로그 - 해체, 즐거운

 

 

 

 

  어쩐지 돌아서는 그는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똑바로 걸음을 옮겨놓는다. 여전히 보폭이 좁고 느린 발걸음이었지만, 나는 그가 똑바로 앞으로 걷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에게 흔들림은 더 이상 흔들림이 아닐 것이며, 그의 우울은 그 때의 그 우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준비가 되었다. 그가 사랑을 해체하여 이렇게 다시 나를 마주하고 나를 기록하고자했던 그러한 용기만으로도.

  카페에 다시 돌아오니 모두들 내게 좋은 소식이라도 기다리는 듯했다. 이제 다시 만나게 되는 거냐고 묻는 이야기에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내 '뭐야, 그게?' 소리쳤다. 다시 사귀게 되는 거냐고 누군가 또 물었지만,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 당신들을 더욱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또 다시 투덜거림이 이어졌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함께하고 싶은 것은 당신들이라고 거듭 말해주었다. 어이없는 실소가 터졌고 누군가 미쳤다고 말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번 그들을 향해 큰 소리로 고백했다. 나는 당신들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으니, 우리 이제 결혼하자고.

  물론 내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몇몇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렸으며, 몇몇은 앞에 놓인 물 잔만 연신 들이켜며 푸슬푸슬 웃었다. 언제나처럼 나의 진심은 어디에도 가 닿지 않았지만 나는 슬프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대신 모호하고 흐릿한 어딘가 지워지며 반갑게 나는 또 다시 어떤 혼란 앞에 섰다. 앞으로도 그렇게 마음껏 흔들리고 흐릿해지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냥 조용히 부조금만 내고 나오자니까?"

  "그게 무슨 소리에요, 밥은 먹어야죠."

  "아냐, 난 얼굴도 봐야겠어. 예식장 맨 뒤에서 그냥 슬쩍 얼굴만 보고 오지, ."

  "그런가? 얼굴이 보고 싶기는 하네. 신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들이 모여드는 예식장 앞에 서서, 모두는 서로 다른 말들을 쏟아놓고 있었다. 부조금만 내고 오자고 했던 것은 데리다 오빠였고, 신부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말했던 것은 현아 언니였다. 밥도 굶고 왔다고 투덜거렸던 것은 민수와 용호였고,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주고받느라 분주한 가운데 분명히 도드라져야할 성준의 목소리를 찾았던 것은 한참이나 그곳에서 그렇게 서성거리고 난 후였다. 유리문 너머를 들여다보니 그는 이미 예식장 건물로 들어가 신부 대기실 쪽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쟤 잡아!"

  황급히 모두는 그를 뒤따랐지만, 이미 그는 대기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열린 문 안쪽으로 짙은 청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돌아봤다. 그였다. 자신은 단 한 순간도 이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 없다고 고백했던 남자. 언제나 나이 어린놈들만 건드리고 다닌다고 성준이 그토록 비난했던 바로 그 남자. 머쓱하게 웃고 있는 그의 등 뒤로 신부 대기실 의자에 앉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단아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진짜 여자였다.

  "그래, 왔어 다들?"

  모두는 신부의 눈치를 살피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뒤따라 들어왔던 데리다 오빠가 황급히 대기실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신부에게 더듬거리며 인사를 했다.

  "상우친구들입니다. 아는 동생들도 있고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축하한다, 한 번 들르지 그랬어."

  그의 목소리에는 굵고 단단한 것이 걸려 있었고 신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는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상우 오빠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저기요, 윤 수인 씨."

  "성준아!"

  누군가 황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들 그만 가자, 얼굴 봤으면 됐지 뭐."

  "나가, 나가. 다들 나가자!"

  성준의 어깨를 끌어내려고 모두들 안간힘이었지만,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온 몸을 뒤틀며 사람들을 밀치며 그는 신부 앞에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부의 이름까지 똑똑히 외워온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여러 번 그녀에게 해야 할 말들을 떠올렸을지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성준아."

  기어이는 그가 성준의 앞을 막아섰다.

  ", 겁나? 내가 저 여자한테 무슨 말을 할지 겁나서 그러는 거야?"

  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하지 못한 말들이 가득했다.

  "그래, 치사하게 우리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뭐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청첩장까지 보낸 뻔뻔스러움을 보면 어차피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아냐? 그래, 따지고 보면 우린 상관없지. 제일 큰 피해자는 저 여자지. 이건 저 여자에게 못할 짓이지. 평생 저 여자한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거지, 안 그래?"

  그는 꾸지람이라도 듣는 아이처럼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내가 말할까, 형이 말할까? 내가 말해줄까, 아니면 형이 직접 말할까, ?"

  그러나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해야 할 말들이 너무 많아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야마는 역설적 현실을 그들은 지금 견디고 있는 중일 것이다.

  "잠시만."

  흰 드레스를 멀리까지 늘어뜨린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두 사람에게 다가서는 그녀를 보며 우리는 모두 오금이 저렸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어떤 풍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 나는 풍경, 파편이 튕겨 올라 모두의 생각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새겨놓는 잔혹한 풍경.

  "이 분들이오빠가 말했던 그 분들이에요?"

  건조한 말투로 그녀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 인사해. 진즉에 한 번 데리고 간다고 했었는데 네가 매번 바쁘다고 그랬잖아? 기억이나 하냐? 그래서 이놈들이 섭섭해서 그래, 이것들이."

  이상하고 낯선 시간 때문에 모두들 말을 잃었는데, 그녀가 우리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반갑습니다, 윤 수인이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된……."

  그렇게 말해놓고 결혼을 하게 될 두 사람은 머쓱하게 서로를 봤다. 그러고는 약속이나 한 듯 퍽 웃어버렸다.

  "그럼알아요?"

  "계약 결혼이에요, 이거 그럼? 그 쪽은 그럼 레즈비언?"

  성급한 질문들이 우리들 속에서 쏟아졌지만 그녀는 흔들림 없는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오빠랑 오래 알아요. 아주 오래전부터요."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우 오빠를 봤는데, 그 눈빛이 너무도 고즈넉하고 포근해서 이상하게도 소름이 돋았다.

  "오빠가 그런 거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던 것도 알고, 방황하는 모습도 지켜봤고그럴 때마다 오빠가 나한테 많이 털어놓고 그랬거든요. 아시잖아요? 이 남자 언제나 그냥 대충대충 괜히 센 척하고 그러면서도 실은 괜히 자기를 감추려고 그러는 거오빠한테는 그런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저였으니까요."

  "그럼 결혼은요, 이 결혼은 도대체 뭐에요."

  그렇게 묻고 있는 성준은 어쩐지 다급해보였다.

  "제가하자고 했어요. 괜찮으면나는 괜찮으니까저도 좀 상처가 있어서 보통 남자들하고는 어울리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오빠 곁에서 오빠 이야기 들어주고 나도 오빠에게 그렇게 의지하고 지내도 괜찮으니까그런 때가 오게 되면 결혼이라는 걸 해보자고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했었어요. 당연히 오빠는 말도 안 된다, 말했었고요."

  "헤헤, 이 자식이 자꾸 사람 귀찮게 하잖아? 그래서 그냥 해버리는 거야. 이 자식이랑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고, 같이 잘생긴 사내놈들 이야기 떠벌리며 낄낄거릴 수도 있고히히히, 그렇게 사는 것도 재밌을 거 같지 않냐?"

  "백 퍼센트라면서요? 아니에요, 그럼?"

  민수는 따지듯 묻고 있었다.

  "글쎄그건 백 퍼센트였다가 팔십 퍼센트였다가다시 백 퍼센트였다가 구십 퍼센트였다가 그랬는데, 신기하게도 여기 이 자식한테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백 퍼센트라는 걸 깨닫게 됐지. 힘들 땐 생각나고 오래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고인생이라는 게 말이야, 그게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거라면 이 자식이라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거고."

  "오빠는 제발 이제 그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소리 좀 그만해요.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이 자식, 저 자식 할 거에요? 여자한테 자식이 뭐에요, 자식이?"

  "? 자식이 뭐 어때서? 이 새끼라고 부르는 걸 그나마 순화한 거라고, 이거 왜 이래?"

  툭탁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멍청하게 바라만 봤다. 분명히 무언가에 속은 것만 같은 허탈한 기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어딘 가였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해버린. 분명 낯설고 두려운 곳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편안하고 포근한.

  "그래, 인정한다."

  데리다 오빠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의 선택, 너의 생각, 우리가 지지할게. 우리는 비록 사람들한테 지지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너의 선택을 지지할게. 축하한다, 진심으로."

  "고맙소, ."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움켜쥐는데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했다. 헤어지거나 이제 다시는 서로를 보지 못하거나 영원히 안녕을 고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생전 처음 느끼는 신기한 모양의 감정이 튕겨 올랐.

  "아냐! 난 인정 못 해! 난 인정 안 해!"

  성준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벽에 머리를 찧으며 그는 컥컥거리며 울고 있었다. 하지 못한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언제나 꼭꼭 숨겨놓기만 했던 말, 마음과 어긋나며 언제나 전혀 다른 언어로 토해지던 어리석은 말.

  상우 오빠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그의 손짓을 따라 성준의 울음소리는 더욱 크게 오르내렸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해 돌다가 어긋나버린, 어떤 마음의 공전이었다.

 

 

  다시, 선 앞에 섰다.

 

  하얀 색은 아니었다. 가루 같은 것도 없었다. 기억하고 추억할만한 것이 없다고 믿었던 그 곳은 언제나 등지며 걷던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스름 저녁 빛을 어깨에 메고 학교 정문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었고, 어두운 건물 모퉁이에서 매캐한 담배 냄새가 피어올랐다. 공을 차던 사람들이 진 자와 이긴 자 상관없이 모두 같이 모여 웃고 떠들었다. 밥을 먹자는 이야기이거나 술을 한 잔 하자는 약속이겠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학교 안을 빙빙 돌며 재잘거리듯 들려왔다.

  나는 의미가 지워져버린 재잘거림을 지나, 백 미터 트랙이 시작되는 곳에 섰다. 트랙을 따라 길게 드리운 계단 모양의 관람석에는 쓰레기 몇 개가 마음대로 굴렀다. 선이 없는 선 위에 서서, 내 곁을 봤다. 어스름 드리우는 어둠 밖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갑자기 차원을 건너온 것처럼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출발 신호 같은 것은 없었는데 나는 규칙을 깨트리며 그들보다 먼저 발을 내밀었다. 실은 그들에게는 이십 년 전에 끝낸 질주였겠지만, 나는 내가 제일 먼저 앞 서 있다고 생각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온 몸에 힘을 주지 않아도 결코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는 질주. 언제나 내가 맨 앞이고 또한 맨 뒤가 되는 뜀박질.

  걷다가 멈췄다. 다시 또 걷다가, 다시 멈췄다. 멈춰선 상태에서 마구 뛰다가, 다시 뒷걸음으로 마구 뛰기도 했다.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선 위에 서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웃는 얼굴로 나는 다시 발을 내디뎠다. 이번에는 천천히 발걸음을 세며 걸었다. 느리면 느려질수록 몸은 더욱 흔들렸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러다가 문득 멈춰서니, 또 다시 그곳이었다. 이십 여 년 전에 멈추어 섰던 바로 그 자리.

  나를 향해 달려오는 담임교사를 기다렸다. 소리치고 비웃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내 뒤통수를 때리는 우악스런 손길을 기다렸고, 내 목덜미를 끌어가던 호루라기를 문 심판의 손아귀를 기다렸다. 그러나 등 뒤에 다가온 것은 조용한 어둠 뿐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재잘거리며 교문을 나서는 것은 공을 차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고개를 돌려 그곳에 있는 사람을 향해 웃어주었다. 어둠 속에 주저앉아있던 그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살짝 허리를 구부렸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괜찮으니, 이제 나와 같이 그 이해할 수 없었던 시간의 거리를 다시 천천히 걸어보자고.

  그가 나의 손을 잡는다. 나도 그의 손을 잡는다. 춤을 추듯 어떤 시간의 울림을 따라 우리는 흔들리고 휘청거린다. 그러나 쓰러지는 일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 언제나 그곳엔 그렇게 나를 일으켜줄 그가 있을 것이기에, 우리들의 밤은 끊임없이 그렇게 계속될 것이기에.

  이십 년 전에 멈추었던 느린 질주를 나는 이제 다시 시작한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시간을 모두 소비하며 아주 느리고 천천히. 각자의 몸짓으로 뛰고 있을 그들과는 별개로, 오직 나의 질주만을 생각하며 오롯이.

또 다시 내 등 뒤에서 별 하나가 쏟아져 내린. 까무룩 해지던 하늘이 붉어진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하늘이나 별을 보고 걷지 않는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 느린 밤을, 그저 시간 속에 낱낱이 새겨놓는다. 눈 감아도 괜찮은, 그런 시간의 밤이다.

 

  결혼식 행사는 이른 아침부터 진행되었다. 데리다 오빠는 샌드위치 여러 개를 만들어 카페 앞을 지나는 동네 사람들의 품에 안겼다. 소문을 퍼뜨렸던 주민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연신 사양하거나 알은 채도 않고 지나갔지만, 그래도 그 중에 꽤 많은 수가 이른 아침의 신선한 샌드위치를 기쁘게 받아갔다. 무람한 사람 하나가 '무슨 좋은 날인가 봐요?'라고 물었고, 데리다 오빠는 ', 우리 결혼합니다.' 말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의 표정은 여러 가지 혼란스런 감정으로 우스꽝스럽게 구겨졌고.

  연미복과 웨딩드레스 중에 입고 싶은 옷은 자유롭게 고르기로 했다. 처음에는 무료로 드레스를 대여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봤지만, 대부분 홍보나 상업성의 이벤트들이었고 취지에 맞는 적절한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현아 언니의 동료 교수님들의 인맥을 통해 방송국의 소품 의상실로부터 학교 연극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거짓말로 가까스로 의상들을 한꺼번에 대여할 수 있었는데, 대여한 옷들을 앞에 놓고도 모두들 누가 어떤 옷을 입을까 한참 동안 망설여야했다. 민수나 용호는 아무렇지 않게 연미복과 드레스를 골라 입었는데, 현아 언니가 오히려 더 얼굴이 발그레해져 한참이나 옷들 앞에서 서성거렸다.

  결국 드레스를 입은 것은 나와 현아 언니와 용호였고, 연미복은 데리다 오빠와 민수와 성준의 차지였다. 많지 않더라도 서로가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을 초대해보자 말했었는데, 카페에서 치러지는 결혼식 당일 이른 아침부터 하객들은 속속 도착했다. 좁은 카페였지만 의자를 놓고 그 의자를 하나씩 채워가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들의 마음도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현아 언니의 불감증 애인은 연미복을 내미는 그녀의 손길을 물리치고 맨 앞자리에 와 앉았고, 용호는 엄마나 아버지 대신 그의 사촌들이 함께했다. 데리다 오빠의 친구들과 민수의 언니였던 누나도 함께 와 앉았고, 성준의 유부남 애인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도 여동생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녀 역시 오지 않았다. 나도 그녀의 상견례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엇갈렸고, 이다음 언젠가 우리는 또 다시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만나야할 것이다. 반드시 어긋나고 만나게 되는 것이 생의 공전임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어느새 카페가 사람들로 꽉 들어차는 모습을 보더니, 민수가 갑자기 훌쩍거렸고 데리다 오빠가 살며시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기는 했지만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평생 한 번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이 시간을 이 약속을 경건하고 진지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사회는 성준의 게이 친구가 봤고, 주례 자리에는 사람 대신 자크 데리다의 사진이 놓여졌다. 용호와 성준은 저 할아버지가 누구시냐고 손가락질을 했다가 데리다 오빠의 꿀밤 세례를 맞았다. 누구도 외롭지 않고 누구도 혼자가 아닌, 경쾌하고 즐거운 축제였다.

 

  ", 내가 너무 늦었나?"

  그는 예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를 하는 와중에 허겁지겁 들어섰다. 그의 곁에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가진 그녀가 함께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이리 와! 같이 사진 찍자!"

  "이거 뭐야, 다들? 용호 저거 너 드레스 입었냐? 너희 엄마가 또 그 꼴을 보면 거품 물고 쓰러지실 텐데, 괜찮겄냐?"

  "우리 엄마 걱정 마시고 형 걱정이나 하세요, 유부남 아저씨!"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로 용호는 그의 앞에 어깨를 활짝 폈고, 그는 성준의 어깨를 치며 '멋진데?' 말해주었다. 데리다 오빠는 그와 그의 아내를 단상 위로 끌어 올렸고, 상우 오빠는 자기도 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말하며 그의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서로가 서로의 곁에 서서, 곁에 선 신부 혹은 신랑에게 의지하며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았다. 나도 데리다 오빠의 곁에 서서 그의 곁에 팔짱을 꼈다.

  "이거 뭐야, 나는 왜 빼?"

  드레스를 입은 채로 문 밖에서 들어선 것은 유진이었다.

  ", 너 뭐야? 드레스를 고른 거야?"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유진은 사람들의 손가락을 물리치고 다소곳하게 치마를 끌어 모으며 현아 언니 곁에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를 향해 다섯 명의 신부와 네 명의 신랑이 환하게 미소 짓는데, 사진 기사 뒤에서 또 다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한 사람이 천천히 들어서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하고 낯설다. 자신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들로 인해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생의 고독을 견디며 그는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그 곳에 있던 우리들 모두는 누구랄 것도 없이 손을 뻗는다. 어서 오라고 그에게 손짓한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독을, 그 자학을, 그리고 그 우울을.

 

  서로를 환대하며 그는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간다.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서로에게,

  반가운 이방인이다. []

 

 

 

 

 

 

 

 

長篇小說

 


 

 

2013년 작품

 

 

 

金 飛


 

 

 

 

 

 

김비

 

1971년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 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장편소설 [빠쓰정류장]을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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