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 사람: 오소리, 바람(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 받은 사람: 케이(승냥이 카페 매니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속기: 조나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케이님의 지인이 그린 케이님 캐릭터

 

 
오소리: 먼저 간단하게 자기 소개해주세요. 
 

케이: 저는 케이라고 하고 행성인에는 작년 12월에 가입했습니다. 가입할 때부터 웹진기획팀에 관심 있다고 해서 오소리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학기가 곧 시작할 때라 3월부터 정식 모임에 함께 할 수 있었고, 총회에 참석했어요. 웹진기획팀에 관심 있었던 이유는 밖에 나가서 캠페인을 벌이고 하는 것은 스스로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 글을 쓰거나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을 하고 싶어서 웹진기획팀에 관심 있다고 했어요.

 

 

나는 존재 하지만, 너희의 사고방식인 10진법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어!

 

케이님의 지인이 만들어준 심볼 '케이(K)'

오소리: 닉네임은 왜 케이님이에요?
  
케이: 원래 취지는 그리스 문자의 파이(π)였어요. 그런데 범용성을 위해서 시계반대방향으로 90도 회전해서 케이를 만든 거예요.
 
오소리: 파이는 무슨 뜻이에요?
 
케이: 제가 완전 이과적 성향이라, 이과적 마인드에서 나온 의미에요. 파이는 무리수잖아요. 그런데 수학에서 파이는 정확한 값을 알 수 있는 수에요. 왜냐하면 작도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대신에 그것을 10진법으로 나타내려고 하면 불가능한 값이죠. "나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 하지만, 너희의 사고방식인 10진법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어,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오소리: 저는 그냥 오소리 닮았다고 오소리였는데, 심오한 뜻이 있는 이름이었네요. (웃음) 성소수자 단체가 여러개가 있는데 그중에 행성인을 찾아 오게 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케이: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작년 초 동인련에서 행성인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었어요. 1년정도 활동을 지켜봤는데 활동 자체를 점점 다양하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는 무성애자라고 정체화 하고 있는데, 그 다양성 중 하나로서 직접 들어가 활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소리: 들어와 보니 어떠세요?
 
케이: 행성인에 참여하기 전에 언프리티토크(행성인 청소년인권팀이 주최한 행사)에 먼저 참여했는데, 여러 정체성을 다양하게 다루려고 하는 모습이 보여서 인상이 좋았어요. 여러 정체성을 다양하게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앞으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누군가가 해주기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제가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여력에서 무언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섹스 판타지에는 섹스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됐어요

 

 

 

무성애를 상징하는 깃발

 

오소리: 무성애자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체화하고 있나요?
 
케이: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소개 방식이 달라지는데요. 정확하게 표현하면, 지정성별 남성(Male assigned at birth), 에이젠더(Agender), 범성로맨틱(Panromantic), 반성애자(Demisexual)인데, 보통은 이 네 가지 전부를 다 몰라요. 그러다 보니 제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상대방이 그나마 알 것 같은 단어로 이야기하죠.  

오소리: 이 글을 보는 분들을 위해서 단어들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케이: 첫 번째, 지정성별 남성(Male assigned at birth)은 ‘지정’성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쓰는 표현이에요. 내가 태어났을 때 남성이라는 성을 지정 받았다는 건데요. 지정성별이라는 개념을 와 닿아 하는 사람들은 공감을 하는데, 그게 아닌 분들은 "왜 굳이 이런 거까지 정의해야 돼?"라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젠더퀴어로 정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해진 것 같고, 그래서 젠더퀴어를 알고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지정성별 남성'이라고 추가적으로 덧붙입니다. 그러나 젠더퀴어를 잘 모르는 분들에겐 생략을 하죠. 제가 성별위화감(Gender dysphoria)을 심하게 느끼진 않아서, 상대방이 잘 모르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전달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경우는 '난 남자다.' 라고 이야기해요. 굳이 지정성별로 이야기하지는 않고요.
 
에이젠더(Agender)에 대한 정의는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겠어요. 다양한 곳에서 정의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고, 저는 아직 젠더리스(Genderless)와 에이젠더(Agender)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가 없거든요. 또 각각을 설명하는 것도 이 사람 저 사람이 다르고 어디에서는 같은 말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일단 에이젠더라고 정체화 한다고 말한 뒤, 설명을 덧붙여요. 저는 제 스스로를 볼 때든, 남을 볼 때든 젠더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느껴요. 젠더에 무감각한 거죠.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를 전혀 공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남자 혹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남자 여자는 이래야 해'하면서 규격화된 틀을 부여 한다는 것을 뒤늦게 느꼈어요. 그 뒤로 공부를 하다 보니까 나를 잘 표현하는 단어 같아서 에이젠더라는 단어로 정체화 하고 있는 거고요. 에이젠더로 정체화하고, 스스로는 젠더블라인드(Genderblind)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거예요. 젠더블라인드는 젠더(gender)에 대한 개념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거예요.

오소리: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 남성,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로만 정체화를 하고 살아가잖아요. 더 이상은 모르니까. 공부를 안하면 모르는 건데, 이런 여러 가지 성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케이: 저는 정체화 하게 된 스토리는 되게 긴데, 하루 아침에 이 네 가지 표현을 다 찾은 것은 아니에요.
 
제가 가장 먼저 고민한 건 무성애자에 대해서였어요. 그 시기는 고3 때였어요. 배경설명이 필요한데, 고 1때 신종 플루가 돌던 시기에 어떤 남자애랑 엄청 크게 싸웠어요. 그런 뒤 그 친구가 저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저는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전학을 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전학을 보내주지 않으려 했어요. 그렇다고 반을 바꿔주지는 못하니, 야간자율학습실을 남자 반이 아닌 여자 반으로 넣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남자애들하고 얘기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당시 공부만 했기 때문에 제가 관심 없는지도 몰랐던 거죠. 그러다가 고3 여름 즈음 야간자율학습실을 쓰던 여성 친구 한 명이 양성애자라고 제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랑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 그 친구한테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성적인 것을 어떻게 해줘야지 남자애들이 좋아하냐고 저한테 물었는데, 저는 그때까지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답도 해주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어요.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 하면서……. 그때 그 친구한테는 "나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으니까 물어봐다 줄게." 하면서 남자 야간자율학습실에 놀러 갔죠. 갔더니 마침 섹스 판타지를 돌아가면서 말하는 중이었고, 어느 순간 제가 말할 차례가 왔어요. 제게도 섹스 판타지를 물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제 섹스 판타지에는 섹스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됐어요. 그러니까, 저는 하염없이 멋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맨 살을 맞대고 딱 안고만 있는 게 가장 큰 로망이거든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성적인 코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맨 살로 안고 있으면 성적인 것 아니냐며 반문을 하는데, 저는 그게 성적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 이상의 행위는 '이건 웬 운동?', 불필요한 행위라고 느껴져요. 내가 좋아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더 나아가서 귀찮게, 불편한 방법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상대방에 의해서 의미 부여되는 건 있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행위를 원한다면, 그것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제가 그 행위에 동참하면서 특별함을 공유할 수 있는 거예요. 섹스는 제게 그런 의미로써 다가오지만, 제가 먼저 섹스를 원한다는 느낌은 아직 느껴보지 못했어요.

 

 

무성애자 깃발을 케이크에 꽂은 이미지, 케이크는 '섹스보다 달콤한 케이크 한쪽이 낫다'라는 의미로 무성애자의 심볼로 사용된다.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딱 그런 걸 느끼니까, 개인적으로 멘붕이 왔었어요. 그리고 남자애들이 얘기하는 게 휘황찬란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때가 처음으로 야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었거든요. 그리고 이 충격에 대해서 그 양성애자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너는 그것도 모르냐'며, '남자는 이런 것도 알아야 한다'며, 저에게 야동을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고3 때 야동을 처음 보고 그때부터 찾기 시작한 거죠. 아주 옛날에 무성애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검색을 하게 됐고, 그때 찾은 게 <승냥이 카페>에요. 그때 카페에서 회원들과 채팅을 엄청 했어요. 그 때가 수능 한달 전이었는데, 일주일정도 채팅을 하면서 심적인 안정감을 찾게 됐어요. 그래서 나름 수능을 잘 봤고,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카페 활동을 하게 됐어요. 저한테는 매우 고마운 공간이고, 안정감을 찾아준 공간이다 보니까 애정이 많이 가요. 지금까지도 카페 활동을 하고 있고 매니저까지 맡고 있어요.
  
오소리: 무성애자로 정체화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다른 정체성은요?
 
케이: 연장선 상인데요. 1년 정도 <승냥이 카페>에서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나라에 무성애자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정보를 찾으려면 에이븐(AVEN, 무성애자 관련하여 전세계 가장 큰 사이트, 단체)에 들어가야 했죠. 그 단체에 자세하게 설명이 나와있기는 한데, 영어이다 보니깐 사람들은 그 설명들을 잘 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인터넷 기사나 그런 것을 더 많이 보더라고요. 그런데 인터넷 기사는 무성애혐오적인(A-phobic) 정보들을 깔고 들어간단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무성애자를 성을 혐오하는 사람이라고 하든지, 금욕주의자나 독신주의자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묘사하죠. 그런데 그게 다시 재생산되더라고요. 이것을 끊기 위해서는 나부터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에이븐 번역을 하기 시작했어요. 에이븐에 정보가 엄청 많아서, 2013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작년에 마쳤어요. 그 번역을 하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젠더퀴어를 알게 됐고, 관련된 공부도 많이 하게 됐어요. 에이븐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무성애자들은 성이 양분되어 있는 사고관에 영향을 덜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퀴어를 알게 됐을 때 수용하는 게 더 쉽고, 젠더퀴어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더 높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거든요. 연구 중 통계의 결과로써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로 묘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 조사를 보고 나서, '어 그러면 나도?'라고 물음표가 붙고, 젠더퀴어를 더 공부하게 되었죠. 그랬더니 난데없이 젠더블라인드라는 개념과 만나게 되었고, 그 표현이 제게 적절하다고 느껴져서 그렇게 연결이 됐었던 거죠. 사실 젠더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고 싶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저 스스로는 젠더 개념이 직관적으로 와 닿는 게 없어요. 그런 상태에 있고 그렇게 해서 정체화하게 됐죠.

 

 

연구는 연구고, 사람은 사람이다

 
오소리: 몇 년에 걸친 공부를 통해서 정체화를 하게 됐군요. 정체화를 하는 과정이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서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정체화하는 과정 중에 불편한 점은 없었어요?
 
케이: 저는 어떤 일에 대해서 충격을 받거나 하는 일이 잘 없어요. 어떤 지적인 충격은 있지만 저의 정신상태를 흔들어놓는 충격은 잘 없거든요. 그래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느낌으로 다가왔지, 큰일났다거나 비정상인가 보다 하며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제 섹스판타지에 섹스가 포함되지 않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겠죠? 그런데 제게는 지적인 충격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라는 느낌이 컸어요. 저 스스로 더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있었지,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번도 없고, 당연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니까.
  
오소리: 스스로는 충격 없이 잘 받아들이신 것 같은데, 한국 사회에서 무성애를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지는 못하고, 성소수자 활동가나 커뮤니티 사람들 중에도 무성애까지만 알지, 더 깊게 들어가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설명하세요?
 
케이: 저는 학문적 접근을 많이 해요. 무성애자로 정체화 해도 각각이 갖고 있는 성향은 다 다르단 말이에요. 저는 그래서 에이븐에서 취하고 있는 관점이 되게 마음에 드는 게, ‘연구는 연구고 사람은 사람이다’ 에요. 연구는 연구로써 모델링을 해요. 연구 중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을 묶는 모델을 만들고 분류를 하기는 하죠. 하지만 그 분류는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만드는 의의가 있는 것이지, 그 분류에 누군가를 꼭 끼워 넣으려 하지는 않거든요. 저는 그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모델을 알려주고, 나는 그 중에 어떤 단어를 사용하여 정체화한다고 말을 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제 정체성을 설명할 때면, '단어'와 ‘나’를 최대한 그 사람의 개념 속에서 분리 시켜 놓으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까 무성애자를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편견을 갖기 쉽기 때문이에요. 저는 로직 퍼즐로 비유를 많이 하는데요. 한 명의 무성애자를 만나보고 무성애자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는 것은, 로직 퍼즐에서 점하나 찍어 놓고 그 그림 전체를 알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나 다름 없다고 비유해요. 그런데 사실 아무리 점을 많이 찍어도 로직 퍼즐은 원래 있는 이미지를 묘사해놓은 흑백사진, 그것도 해상도가 엄청나게 낮은 흑백사진 밖에 안되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면 그런 관점을 실어주려고 노력해요.  
 

오소리: 학문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 주변에서 반응은 어떤가요?
 
케이: 주변 사람들은 제가 학술적인 분위기를 많이 갖고 있다고 얘기하는데요, 저는 그런 제 특성을 잘 이용하는 것 같아요. 데이터베이스를 엄청나게 쌓아놓고 말하니까, 보통 듣는 사람은 압도돼서 반론을 잘 못해요. 구체적으로 딱 보이는 텍스트를 던져주면 그 순간에는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한 순간에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더라도 직접적으로 바로 포비아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대신 이야기하면 할수록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생기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잘 답변해주려고 노력하죠.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곤 하니까.

 

무성애자들의 쉼터, <A community, 승냥이 카페>

 

오소리: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승냥이 카페>를 알게 되셨고, 매니저까지 맡게 됐다고 하셨는데, 어떤 커뮤니티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케이: 2009년에 <고독한 승냥이 카페>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고독한’이라는 단어가 선입관을 줄 수 있는 단어라서 현재는 <A community, 승냥이 카페>로 카페 명이 수정되었어요.
커뮤니티 소개를 하자면, 처음에는 ‘개로루’ 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이 약간은 충동적으로 만든 카페에요. 제가 들어가기 전까지 매니저를 맡고 계셨죠. 제가 가입을 했을 때 총 회원이 100명 정도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분위기 자체는 비연애적이고 섹스를 혐오하는 듯한 느낌으로 편중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무성애자인데 왜 이런 사람들만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돈독하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정모를 열기 시작했어요. 제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총 3회의 정모가 있었는데, 제가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한 후에는 거의 매달 한번씩은 열었어요. 정모를 많이 주최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활동을 하게 되고 카페도 많이 활성화 됐죠. 여전히 성적인 것을 혐오하는 분들도 있겠고, 또 비연애주의를 무성애로 잘못 알고 와서 활동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계속 에이로그(A-log) 활동을 하면서 무성애 자체에 대해 알리고, 그런 공통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커뮤니티 자체의 목표는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쉬었다 갈수 있는 쉼터를 만들자는 거예요.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 곳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목표인 곳. 그런 공간으로서의 목표를 갖고 있어요. 한때 천 명 이상 넘었을 때도 있는데, 잠수 회원들은 지속적으로 정리하기 때문에 지금은 800명 정도 활동하고 있고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들어오는 분들이 200명이 넘어요. 실활동회원 비율이 높아진 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오소리: 정모하면 몇 명이나 오나요?
 
케이: 정모하면 보통 15~20명씩 오고요. 초반에는 대 여섯 명씩 모이다가 후기들이 쌓이고, 제가 매니저로서 주최하다 보니 믿어주시고 잘 나와주시더라고요. 어느 정도 기대를 갖고 나오실 텐데 그거에 대해 어느 정도 충족을 시켜야 되니까, 레크레이션이나 주제 선정, 이야기 소스 등을 계속 연구하고 있죠.

에이로그팀 심볼

오소리: 카페 존재 자체가 목표라고 하셨는데, <승냥이 카페>를 통해서 좀 더 해보고 싶은 활동이나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이 있나요?

 
케이: 작년 8월에 에이로그(A-log)팀을 만들게 됐는데, 그 팀에서 하는 주요 활동이 무성애에 대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에요. <승냥이 카페>와 연합을 하고 있기는 한데, 독립된 팀으로 운영되고 있거든요. 독립된 팀으로 운영하려는 이유는 <승냥이 카페> 자체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으로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에이로그 팀 자체는 <승냥이 카페>의 회원이 구성원의 주가 되기는 하지만, <승냥이 카페>의 회원이 아니어도 활동할 수 있어요. 에이로그 팀의 목적은 뚜렷하죠. 무성애에 관한 정보를 생산하고 알리는 것.

 

오소리: 에이로그 팀에서는 몇 명이 활동하고 있나요? 
 
케이: 팀 자체는 열 두 명이고, 들어오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아직 어떤 일을 배정 받지 못한 분들이 세 명 있어요. 에이로그 팀 자체에서는 아무래도 <승냥이 카페> 회원 분들이 주축이에요. 하지만 <승냥이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진 않더라도 에이로그 팀 자체에는 속할 수 있어요. 
 
오소리: 무성애에 관한 정보를 어떤 식으로 생산하고 알리고 있나요?

 
케이: 일단 지금은 블로그를 만들고 있어요. 계기 자체는 허지웅씨가 ‘무성욕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건데, ‘무성욕자’라는 단어랑 무성애자는 다르죠. 저 같은 경우 ‘무성욕자’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농담적인 단어로 생각하거든요. “요즘 성욕 떨어졌어.” 하면 “너 무성욕자야.” 이런 식으로 나오는 단어인 것 같고. 무성애자 같은 경우는 옛날부터 쓰여져 왔던 학술적인 단어이면서 성지향성의 하나인데 말이죠. 그런데 ‘무성욕자’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무성애자랑 똑같이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무성애자라고 검색을 할 때, ‘무성욕자’라는 단어가 갖는 뉘앙스적인 것들이 다른 여러 블로그들에서 검색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검색에서 정확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무성애자를 '네이버'에서 검색할 테고,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구글이나 그런 데에서 검색을 잘 안 하잖아요. 네이버에서 하잖아요. 그러면 상위에 나오는 건 허지웅이에요. 그래서 위기감을 느끼고 검색어 방어를 위해서 블로그를 만들게 된 거예요. 티스토리나 그런 곳이 아닌 네이버 블로그를 한 이유도 네이버에서 검색어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래서 지금은 무성애, 무성애자, 에이섹슈얼, 에이섹슈얼리티 등 무성애와 관련된 많은 검색어 들로 검색을 하면, 에이로그의 글이 상위에 적어도 세 개가 나와요. 전체를 방어하고 싶지만 그거까진 힘들고요. 일단 최상위에서 저희 블로그 글이 나왔다는 걸로 지금은 만족하고 있어요.
 

 

실제 네이버 검색 결과. 에이로그의 글이 상위에 네 개나 나온다.


시리즈 글을 많이 쓰는데요. 요즘에 하는 건 ‘비기너 프로젝트’라고 해서, 무성애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접하면 좋은 지식의 글을 다섯 개로 구성해봤는데, 무성애자라고 검색하면 그 중의 세 개가 나와요. 이전까지는 제가 글만 적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검색만 하고 다 읽지 못한 채로 나가는 패턴이 반복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미지를 따로 작업하는 분이 생겨서 그 분과 같이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미지화를 좀 시켜놓으니까 사람들이 좀 더 호응을 잘 해주는 것 같아요. 검색어 방어를 위해서 블로그를 만들게 됐는데, 그 다음부터는 정보의 바다, 아카이브 형식 혹은 사전 형식으로 해서 운영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제가 번역하고 있었던 것도 올리게 됐어요.


이전에는 혼자만 하고 있다가 번역 팀도 꾸려서 활동하고 있어요. '에이븐 위키(AVEN wiki)'라는 무성애자들의 위키피디아가 있거든요. 다른 위키피디아처럼 모든 사람이 수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에이븐 포럼(AVEN forum)'이라는 자리에서 논의된 사항만 업데이트 될 수 있는 위키피디아에요. 무성애에 관련된 가장 합의된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공간이죠. 하지만 그 공간은 영어로 되어있어서 인지, 이미 다 적혀 있는 건데 사람들은 관심이 없고 계속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고 혼란스러워 했어요. 그래서 아예 번역을 다 해버렸어요. 번역을 엄청 오래 걸려서 했는데, 지금은 잘 읽어주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보람을 느끼고 있죠.
 

 

아예 모르니까 혐오하지도 못하는.

 

오소리: 아까 허지웅씨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매체에서 무성애를 다룰 때, 아예 혐오적으로 대하지도 않지만, 편견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기는 한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성욕자'가 언급된 JTBC '마녀사냥' 프로그램


케이: 그런 것을 읽으면 속으로 부들부들 하기는 하죠. 한숨도 나오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얼마나 아무도 안 알려 줬으면 저렇게 알고 사용할까 해요. 그래서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요. 대신 제가 클레임을 걸었을 때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수용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오소리: 그렇게 의견을 주면 수용이 되나요?
 
케이: 지금까지 세 번 연락 했는데, 한 군데에서는 아예 글을 내렸고, 다른 한 군데에서는 수정을 해줬어요. 또 다른 한 곳은 능동적으로 정보를 묻기도 해서 좋았고요.

 

오소리: 동성애에 대해서는 대놓고 비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점이 무성애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케이: 무성애 자체에 대해서는 포비아라고 해도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해.” 이런 발언까지 나오지는 않거든요. 대신 “너희는 비정상이야.” 하는 관점이 있는데, 그걸 저희는 무성애혐오적(A-phobic)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동성애가 더 이른 시기에 가시화 되었다고 한다면, 무성애는 이제 막 가시화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예 모르니까 혐오하지도 못하는.
 
지금 주된 혐오세력 중에 기독교 관련 단체가 꽤 있다고 알고 있는데, 기독교 쪽에서 보수라고 칭해지는 분들도 무성애를 혐오하진 않더라고요. 되려 신성하게 포장하는 사람까지 만나봤어요. 들으면 기분 나쁘긴 한데, 정면에서 포비아적인 태도를 취하진 않으니까 그건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도 같아요. 에이븐에서 펼친 무성애 운동은 일반적인 퀴어 운동과는 그 속성이 조금 달라요. 저항이 아니라 내공을 쌓는 쪽으로 활동해왔어요. 저도 그런 쪽으로 활동해왔고, 그래서 '으쌰으쌰' 할 게 없어요. 그냥 열심히 데이터 베이스 쌓고, 누군가 검색했을 때 제대로 된 정보를 나오게 하는 활동을 하고 있죠.

 

 

무성애자, 성적끌림을 느끼지는 않는 자

 

오소리: 무성욕자와 비슷하게 의학계에 저활동성 성욕장애(HSDD, 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라는 말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무성애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케이: 일단 그런 진단명이 있는 이유는, 원래 성욕이 있다가 없어진 것이 의학적으로 유의미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없었던 사람이 계속 없으면 의학적으로 문제가 안되거든요. 그래서 진단명 자체가 있어야 하는 건 맞는데, 무성애에 대입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AVEN에서도 판단 척도 자체에 조항을 추가해주길 요구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오소리: 그럼 원래 성욕이 있다가 없어진 사람은 무성애자가 아닌 건가요?
 
케이: 우리가 보통 듣게 되는 단어는 '성욕'인데, 사실 무성애자들은 '성욕'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무성애자들은 성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세분화해서 성적 욕구, 성적 끌림, 성적 충동, 성적 본능의 네 개의 단어로 나누어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유성애자 입장에서는 이 네 가지가 다 성욕으로 읽히고 구분을 뚜렷하게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무성애자들은 자신을 정체화하고 표현을 할 때 가장 적절한 단어를 스스로 찾은 거예요. 그게 '성적 끌림'이에요. 그래서 ‘무성애자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거죠.
 
오소리: 네 가지 단어(성적 끌림, 성적 욕구, 성적 충동, 성적 본능)에 대한 설명 부탁드려요.  
 
케이: 사람이 성적 행위를 통해 느끼는 쾌락이 성적 쾌락, 이러한 성적 쾌락을 얻고자 하는 게 성적 본능, 이 본능은 성적 욕구로 발현되고, 이게 대상을 갖게 되면 성적 끌림이라고 합니다. 이런 끌림 중에서 특히 일시적으로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걸 성적 충동이라고 합니다.

 

자세히보기

에이로그 수록 글   <Asexuality : 무성애자(Asexual)를 처음 이해하기>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는 자, 무성애자

 

오소리: 무성애자를 정의할 때, 왜 성욕이 아니라 성적 끌림으로 설명하는 건가요?
 

케이: 무성애라는 개념이 처음 나오게 된 게 과학으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 사회학적인 것으로 시작된 거잖아요. 자신을 정체화 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란 얘기에요. 그랬을 때, 그렇게 정체화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인과 성관계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것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이러한 개념을 만들게 된 거예요. 대상과 성관계를 하기 위해서는 성적 욕구가 있고 성적 끌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거고요. 그런데 성적 욕구는 혼자서 풀 수 있거든요. 실제로 무성애자라고 스스로를 정체화 하는 사람들도 자위를 통해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도 다른 사람과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 해당되기 때문에 무성애자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들을 다른 사람과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서 나온 개념이 성적 끌림인 거예요. 성적인 욕구는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 따라서 혹은 질병이 생기면 바뀔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성적 끌림은 어떤 방향성이기 때문에 의학적인 상태나 생애 주기에 따라서 바뀌는 개념이 아니에요. 물론 정체화 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게 어느 날 한 순간에 다른 방향으로 바뀌거나 하지는 않는 개념이기 때문에 성적 끌림으로 정의를 내리게 된 거예요. 앤서니 보거트라는 사람이 성적 끌림이라는 단어로 무성애를 정의한 게 2004년이에요. 그 때 1차적으로 정의를 내리고, 성적 끌림이 재정의 되면서 지금과 같은 의미로 정착된 것은 2012년이에요.
 
오소리: 여기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성적 행위란 어디까지 포괄하는 거예요?
 
케이: 이 부분은 논란이 많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긴 해요. 개개인마다 성적이란 개념 자체가 다를 거란 말이죠. 그래서 각 개인이 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범위에 따라 행위도 달라진다고 봐요. 어떤 사람은 심지어 섹스 자체를 일반 행위로 생각할 수 있는 거고, 어떤 사람은 손 잡는 것 자체도 성적 행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제가 성적 행위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개개인에 따라 다 다르다고 보는 거예요. 심지어는 어떤 관점까지 존재하느냐면, 무성애자는 성적인 개념 자체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어요. 왜냐하면 모든 성적인 행위를 일반 행위로 보는 거고, 그 중에서 하고 싶은 것, 안 하고 싶은 것을 고르는 거예요. 그 안 하고 싶은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성적 행위가 아니냐,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관점도 존재해요.
 
오소리: 예를 들어, 키스를 성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대상에게 키스를 해도 자신을 무성애자라고 정체화하는 거지만, 키스를 성적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상에게 키스를 하는 것을 무성애로 보지 않는 거네요? 사람 입장마다 다른 거네요?
 
케이: 그런 의문점이 들 수 있어서, 무성애 커뮤니티 안에서는 네 가지 끌림을 이야기해요. 끌림에는 성적 끌림, 로맨틱 끌림, 감각적 끌림, 미적 끌림이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 끌림을 느꼈을 때, 그 끌림은 이 네 가지 끌림의 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각각의 끌림의 비율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키스를 예로 들어 말해보면, 키스를 성적 행위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키스를 감각적 끌림으로 하는 거지, 성적 끌림으로 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 키스는 로맨틱 끌림으로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 사람과 로맨틱한 관계기 때문에 키스라는 행위를 하되, 대신 키스라는 행위가 성적 행위로 인지가 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이 네 가지 중에서 성적 끌림이 없는 사람을 무성애자라고 하는 거고요. 그 중에서도 로맨틱 끌림이 있으면 로맨틱 무성애자, 로맨틱 끌림을 느끼지 않으면 무로맨틱 무성애자라고 이야기해요.

 
무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누가 해주기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오소리: 이번 행성인 웹진 4월호에 앞서 말했던 저활동성 성욕장애에 대해 의학적으로 접근한 글을 써주셨어요. ([성소수자와 장애] 그들이 생각하는 무성애 보러가기) 대학 전공이 의료 관련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신가요?
 
케이: 아직은 의학과니까 의료 그 자체라고 얘기해도 되겠죠. 의료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직업이고요. 제 진로 자체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아마도 임상 의사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오소리: 의학 전공자 입장에서 성소수자 의료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케이: 제 주위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의사가 될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은 성소수자의 의료 환경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누군가는 그 개념에 대해서 잘 알고 의료적으로 케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누가 해주기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걸 하면 된다고 생각 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성소수자를 위한 의료환경을 만들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제가 앞장서서 차별없는 의료환경을 만들어가고 싶기는 해요.

차별없는 의료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오소리: 어떤 식으로 차별없는 의료환경을 실현시키고 싶으세요?
 
케이: 가장 처음에 생각했던 건 정신과 의사가 되는 거였어요. 트랜스젠더 분들의 병역 문제까지 돕진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정신의학을 전공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편견을 갖고 접근하는 건 참 의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개개인에게 더 맞는 의료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가 이런 저런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성적이 안돼서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가정의학과에요. 얼마 전에 뜻 깊은 경험이 있었어요. 가정의학과 파견을 나갔다가 한 로컬 의원에 가게 되었어요. 의원을 방문했을 때, 거기에 계신 선생님이 성소수자들에게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그 후에 행성인의 다른 분들에게 그 로컬 의원에 대해 물어봤더니 다들 잘 알고 있더라고요. 다음에 다시 그 의원을 방문해서 원장선생님과 말씀을 나눌 수 있었어요. 제가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관련해서 가정의학과 전공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더니 반가워하시면서 여러 이야기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많은 의사들이 성별 이분법 적으로 생각을 하고 거기에 환자들을 맞추려고 해요. 일리가 있기도 하지만 예외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예외까지도 규격화된 분류에 맞추려고 해요. 개개인에게 맞추어야 하는 분들에게까지 그러니까 폭력적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호르몬 치료를 받고 계신 분들에게도 통상적인 접근을 하고, 같은 의료 행위를 하려고 해요. 그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질환 같은 게, 호르몬 치료를 안 하는 사람과는 다를 수 있는데 보통 의사들은 거의 고려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원장선생님 같은 경우는 개인 의료원인데도 불구하고 관련되어 연구를 열심히 하고 계세요. 이런 의사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해봤어요.
 
오소리: 현재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진단이 필요한데, 정신과 진단 자체가 필요하냐 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케이: 제도 자체에 대해 말하기는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요. 악용하려면 크게 악용이 될 수도 있어서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트랜스젠더 분들이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 너무 가혹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장 문제인 것은, 과정 자체가 복잡한 게 문제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만약 의사들이 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는 전제가 되어 있으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거든요. 그런데 정신과 의사들이 진짜 정신병으로 바라봐 버리니까, 그 태도 때문에 정신과를 방문하기도 힘들고요. 그러다 보니 이 병원이 좋다 하는 족보가 생기게 되고……. 사실 그게 결코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좁은 시야, 삐딱한 생각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오소리: 무성애 활동이나 전공 공부 외에 취미나 관심 가는 분야가 있나요?
 
케이: 사실 제 취미는 다 일이랑 연관이 되어 버렸어요. 공부 외의 것은 다 재미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공부가 힘들면 에이로그 팀 활동하고 말이죠. 영문을 번역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일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게 재미있어요. 공부하기가 진짜 싫으니까. 그래도 그 중에서 취미라고 얘기할만한 건 여행 계획 짜는 거예요. 여행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1년에 해외 여행을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다니고 있어요.
 
오소리: 여행 다녀온 곳 중 어디가 제일 좋던가요?
 
케이: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지금 이 사진 찍은 곳이요. 우유니 사막.
 
오소리: 우와. 인터넷에서 퍼온 건지 알았어요.
 
케이: 제 컴퓨터의 배경화면들은 다 제가 여행가서 찍은 사진들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제가 치밀하다고 이야기해요. 여행에서도 그게 보이는데, (여행 계획을 보여주며) 이게 제가 여행 계획을 짠 건데, 계획이 200페이지 정도 돼요. 얼마 전에 일본 여행 갈 때도 계획을 짰는데 120페이지 정도. 정보 공유하는 걸 좋아해요. 혼자 여행을 갈 때도 있고, 친구 한 명과 같이 가는 걸 좋아해요. 남미 갈 때는 다섯 명이 갔다 오기도 했어요. 주체적으로 뭘 하는 걸 좋아해요. 사진 관련되어서 동아리도 하는데, 1년에 만장 정도 찍어요.

 

잠시, 케이님이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감상해볼까요 :)

쌍무지개가 떴네요

 

 

 

 

 

무성애자들을 위한 커밍아웃 가이드

 

오소리: 앞으로 행성인에서 해보고 싶은 것 있으세요?
 
케이: 주로 하는 활동이 무성애 관련 활동이니까 무성애 관련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 할 때,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편으로는 무성애 관련 활동 밖에 안 했기 때문에 다른 성소수자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싶어요. 이직 배울 점이 많이 있고, 그러면서 저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될 것 같고요. 내공 쌓고 이야기 나누고 글을 쓰는, 그런 활동들을 하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목소리 내는 활동에만 집중하다 보면 내공이 점점 소모되는 느낌이고, 반대로 내공만 쌓다 보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목소리를 못 내는 상황이 생긴다고요. 저는 그 타이밍에 서포트 해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맡고 싶어요.
 
무성애자들은 커밍아웃 할 때 어떤 반문을 받느냐면요, '해보면 알아', 뭐 이런 말도 듣지만, 보통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해요. '그런 게 존재해?', '독신주의 아냐?', '금욕주의아냐?'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보통은 정신적인 문제,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 듯이 묘사하는 쪽으로 많이 가니까, 그게 아니라는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해요. 그래서 작업중인 것 중 하나가 '무성애자들을 위한 커밍아웃 가이드'에요.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커밍아웃을 하는 당사자를 위한 가이드, 다른 하나는 커밍아웃을 받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에요. 그 중 커밍아웃을 받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는 이런 서문으로 시작해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이 사람이 커밍아웃한 이유는 당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 줬으면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소리: 가이드북에도 들어갈 것 같은데, 사람들이 아예 모르니까 하는 질문이지만, 무성애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질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케이: 유성애자 중심적인 사고에서는, 성적인 것과 연애, 결혼이 다 연결되어 있잖아요. 무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고 일단 받아들여주더라도 어느 부분에서인가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있어요. 연애는 안 하냐고 묻고, 연애를 하되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다고 하면, 결혼은 안 하냐고 묻고 말이죠.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 질문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말씀 드리기 애매한 게, 저는 설명을 하지, 기분 나빠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그게 너무 반복돼서 스트레스 받는 분들을 보긴 했어요. 여기에 어떠한 강요가 끼어들면 스트레스는 배가되겠죠. 특히 가족들이 그럴 때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아직 그런 적이 많이 없어서 스트레스는 받지는 않고 있어요.
 
오소리: <승냥이 카페>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많이 공유할 것 같아요.
 
케이: 일단 첨예하게 생기는 갈등은 무성애자가 유성애자를 사귈 때 발생해요. 보통 대개의 루트는,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나서 '난 왜 이러지' 하면서 <승냥이 카페>로 찾아오세요. 한 사람은 별로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는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무성애자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강요하는 것이 스트레스인 거예요. 원래 무성애자가 성적인 것을 혐오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것을 계속 좋다고, 좋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싫어지게 되는 것이 더 큰 것 같아요.

오소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케이: 퀴어 단체에서 무성애자로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제가 보기에는 별로 없는 것 같거든요. 저는 그래서 무성애자로서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무성애자 커뮤니티에서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배경이 되어서, 무성애자들의 대표로 활동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봐 걱정되기도 해요. 저는 단지 한 사람의 성소수자로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를 이러한 관점에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성애와 관련해서도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주시면 감사하겠고요, 에이로그 도 많이 찾아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개개인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가져보고 싶어요. 저는 사람을 많이 좋아합니다. :)
 

인터뷰는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에이로그 _ http://asexual.xyz
승냥이 카페 _ http://cafe.naver.com/asexual
텀블벅: A LOG BOOK _ https://www.tumblbug.com/alog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1. 2016.04.15 13:55 신고 [Edit/Del] [Reply]
    좋은 얘기가 정말 많네욤 !
  2. 오소리
    2016.04.15 14:14 신고 [Edit/Del] [Reply]
    인터뷰 즐거웠어요~! 인터뷰 하는 내내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ㅎㅎ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