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애자는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무성애는 다른 성지향성에 비해 가시화가 덜 되어있습니다. 아직 무성애가 어떠한 성지향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고 무성애 스펙트럼의 다양한 지향성도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퀴어 사회에서도 무성애자로서 활동하는 활동가의 수는 얼마 없고 국내에 무성애와 관련된 컨텐츠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무성애 가시화 주간(AAW, Asexual awearness week)는 이렇게 비가시화 되어있는 무성애를 집중적으로 가시화시키기 위해 지정된 주간입니다. 2015년에는 10월 19~25일에 진행되었고 올해는 10월 23~29일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행성인 웹진팀 케이는 무성애 가시화 주간에 발맞춰 특히나 가시화 되어있지 않은 무성애 스펙트럼의 정체성에 대한 기획을 준비하였습니다.

 

케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무성애 스펙트럼에는 오토코리섹슈얼(Autochorissexual)이라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오토코리섹슈얼은 대상에 의해 성적으로 흥분할 때가 있지만 대상에게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토코리섹슈얼은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성애 스펙트럼에 속합니다. 오토코리섹슈얼은 야동을 본다거나 야한 상상을 하는 등으로 성적인 흥분을 느끼고 그 흥분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자위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토코리섹슈얼은 성적인 상상을 할 때 등에서 본인이 주체가 되는 순간 위화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다른 표현으로는 주체가 없는 성애(Identity-less Sexuality)라고도 불립니다. 오토코리섹슈얼로 정체화하는 알렉스 님을 인터뷰하여 해당 지향성과 비가시화 문제에 대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오토코리섹슈얼(Autochorissexual) 프라이드 깃발!

 

 


어떻게 오토코리섹슈얼로 정체화하게 되었나요?


작년에 무성애자 포럼인 AVEN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 때 처음 무성애라는 걸 알게 되어서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뻤죠.


저는 그 이전까지 성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근데 그 성경험이라는 것도 늘 상대방의 유도와 흐름에 따라 한 것이었고, 제가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떻게 섹스를 하긴 했는데, 억지로 해야 되는 집안일처럼 고달팠거든요. 할 때나, 하고 난 후나 불편하고 침해당하는(violated) 기분이 들어서 데이트할 때 둘이서만 있는 자리는 피하기 일쑤였어요. 그래도 성행위를 할 때만큼은 좋아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도저히 안 되더라구요. 그랬기 때문에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는 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걸 알고 굉장한 해방감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어요. 무성애자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볼수록 제 머리 속에선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성애자는 다른 사람에게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는다는데, 나는 야동 보는 것도 좋아하고 묘사가 자세한 19금 소설을 읽는 것도 매우 즐긴다. 그것도 사실 대상에 대한 성적끌림인건 아닌걸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무성애자가 맞는걸까? 하지만 나는 타인과의 성적 행위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단 한 톨도 없는데?’


심지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성적욕구가 풍부했습니다. 많을 땐 하루에 두세 번씩도 자위를 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성적욕구가 많은데 성적행위는 직접 하고 싶지 않다니 스스로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고민도 했어요. 무성애자는 성적욕구 자체도 적을 것이라는 편견을 저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성애자도 유성애자에도 속하지 못하고 연옥(purgatory)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어요. 결국 이런 사정 때문에 처음엔 회색무성애자(Gray Asexual) 정도로 정체화를 하고 있었죠. 뭔가 들어맞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구글 검색을 하던 중 ‘Autochorissexual’이라는 단어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드디어 나를 설명해줄 단어를 찾은 느낌이었어요.  제가 본 설명에 따르면, 오토코리섹슈얼이라는 용어는 무성애 연구자인 앤서니 보개트가 만들었으며, ‘오토코리스(autochoris)’라는 라틴어에서 따온 것으로 ‘주체가 없는 섹슈얼리티’로 해석할 수 있는 정체성이에요. 오토코리섹슈얼은 무성애의 유형(부분 집합) 중 하나로서, 자기 자신과 성적 대상과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성적 판타지가 있거나 포르노, 에로티카 등에 의해 성적 흥분(arousal)을 느끼기도 하지만, 해당 성적 행위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구는 전혀 없는 것을 말하죠.


그동안 오토코리섹슈얼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 그리고 무성애라는 걸 알기 전까지, 성적욕구와 성적끌림이 다른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그저 성적욕구는 많지만 섹스할 땐 못 느끼고 자위하는 걸로만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뭔가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보통은 사람이 a) 성적욕구가 많으면 섹스를 좋아할 것이다. 혹은 b) 성적욕구가 낮으면 섹스를 딱히 즐겨하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로 밖에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토코리섹슈얼로 정체화를 하게 되었을 때, 이제야 나를 설명할 수 있고 속할 수 있는 표현을 찾았다는 희열감이 있었습니다.

 


 
오토코리섹슈얼은 어느 정도나 가시화 되어있나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해외에도 비가시화 되어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곳은 개인 블로그 활동(Tumblr 등)이나 AVEN 포럼이 활발해서 오토코리섹슈얼을 아는 사람들의 수가 조금은 더 있는 편이죠. 그래도 오토코리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한다고 하면 대부분 길게 설명을 해야하는 실정입니다. 한번 만에 알아듣는 사람은 아직 못봤어요.


그래서 무성애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사람들이 오토코리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오토코리섹슈얼을 알기 전까지는 대부분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가봐, 회색 무성애자인가, 무엇인가.”하고 고민하며 자기는 Bad Asexual(*Asexual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불량한 무성애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꽤 많고요. 그러다 정말 우연히 오토코리섹슈얼이라는 용어를 접하고 그제야 안심하고 정체화를 하는 편입니다.
 

 


가시화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일들이나 어려움이 있나요?
 
오토코리섹슈얼은 아무래도 유성애자에게서 보이는 측면과 비슷한 면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처음 오토코리섹슈얼에 대해서 듣게 된 사람이 “유성애자랑 뭐가 그렇게 다르죠?”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래서 정체성을 고민하시는 분들 중에서 유독 오토코리섹슈얼의 몇 가지 특징 때문에 “사실 내가 무성애자도, 유성애자도 아닌 것 같다” 하며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오토코리섹슈얼을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는 항상 오해를 푸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토코리섹슈얼은 성적 흥분을 느끼고 성적욕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형성된 성적욕구를 해소할 때 느껴지는 성적 쾌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에 성적인 상상을 하거나 성적인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성적욕구를 해소하거나, 자위를 해서 성적욕구를 풀기도 합니다. 하지만 굳이 다른 사람과의 행위를 통해 욕구를 풀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야동, 에로티카, 기타 19금 컨텐츠에 의해서 성적흥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상황에 스스로가 들어가 있다는 상상은 하지 않고 배우들이나 등장인물에 이입하지도 않습니다. 성적판타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실생활에서 아는 사람이 등장할 일은 거의 없고 그 판타지에 자기 자신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직접 그 대상과 성행위에 참여한다거나 그 행위가 나에게 행해진다는 상상을 하면 흥분이 싹 식거나, 아무 감흥이 없거나, 오히려 거부감이 들거나 합니다. 잘 나가다가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정리하자면 오토코리섹슈얼은 "그들이 있다(존재한다)." "그들이 --하고 있다." 라는 식의 3인칭 전지적 시점 형태로 성적 판타지를 즐깁니다. 이렇게 밖에 상상하지 않습니다. 절대 1인칭이 안됩니다. 만약 '내가 --'라는 상상을 하게 되면 얼음물 끼얹은 것처럼 싹 식어버립니다. 흥분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집니다. 오토코리섹슈얼을 “성적흥분 대상과 자신과의 분리”라고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가시화 된다면 어떤 것이 달라질까요?


한번은 AVEN에 오토코리섹슈얼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댓글로 자기는 결혼한 사람인데 이제야 남편에게 자기를 설명할 수 있는 용어를 찾았다면서 기뻐하는 내용이 달렸어요. 남편에게 왜 자기는 ‘남편과’ 섹스를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섹스 자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설명을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 같은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고, 섹스 판타지가 있지만 자신이 한 번도 그 일부가 되어 본 적이 없다구요. 그걸 보면서 느낀게, 이렇게 우연히 오토코리섹슈얼이라는 단어를 맞닥뜨려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성애자나 오토코리섹슈얼로 정체화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까 생각됐어요.


유성애 중심 사회에선 우선 욕구와 끌림을 구분해서 설명하기 힘들고, 그마저도 무성애에 대한 편견이 있어 욕구가 있는데 끌림이 없다는게 인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가시화가 되면 성적욕구는 느끼지만 성적끌림을 느끼지 않는 분들이 정체화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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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03 18:06 신고 [Edit/Del] [Reply]
    와... 대박... 나 오토코리섹슈얼이었어 이제 이해가 가는군
  2. A
    2017.06.10 07:03 신고 [Edit/Del] [Reply]
    대부분이 저에게도 해당되는 사항들이라 오토코리섹슈얼인가? 했는데 1인칭으론 상상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네요. 저의 경우엔 절 거기에 대입하지 않고, a와 b의 행위에서 a의 입장에 이입해서 상상하는 편인데(그걸 저라고 여기진 않습니다) 오토코리섹슈얼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요? 아니면 오토코리섹슈얼은 아닌걸까요. 이 항목 외에는 전부 저에게 해당되는 사항들이었어서 고민되네요.. 답을 알고 싶습니다.
    • B
      2017.06.10 11:07 신고 [Edit/Del]
      아래에도 달았지만... 알람이 안 가실까 싶어서... 상상을 할 때 정확히 이것이 '나' 라고 대입이 되는 게 아니라면 같은 정체성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오토코리섹슈얼로 정의를 내렸는데 일반 드라마나 다른 책을 볼 때도 몰입을 하듯 그런식인 것 같아요ㅎㅎ 여기서 말하는 1인칭이란 정확히 나와 누군가를 뜻하는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3. F
    2017.06.10 09:40 신고 [Edit/Del] [Reply]
    저 또한 윗 댓글 분처럼 a와 b의 행위에서 a의 입장에 대입해 상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게 저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토코리 섹슈얼의 다른 부분들은 다 들어맞지만 저 부분만 애매히네요.
  4. B
    2017.06.10 11:05 신고 [Edit/Del] [Reply]
    저도 오토코리섹슈얼이지만 위의 다른 분들처럼 몰입을 합니다! 근데 그게 정확히 정말 뚜렷히 나의 모습을 한 혹은 나의 모습을 한게 아니더라도 '나'라고 다가오지 않으면 같은 정체성이라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ㅎㅎ 그냥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5. J
    2017.06.11 13:35 신고 [Edit/Del] [Reply]
    내가 저 사람이면 으... 하면서 이입을 하고 흥분하는데 실제로 할때 흥분이 되지 않는다면 이 정체성인가요??
  6. 2017.06.18 18:07 신고 [Edit/Del] [Reply]
    성적욕구는 느끼지만 절대 행위는 내가 직접 하는일이 가능한 없었으면 하는데..저는 제자신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지않고 부정하고싶지만 이러한 관점이 존재하기는 한단거네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7. 2017.09.05 01:00 신고 [Edit/Del] [Reply]
    그럼 무성애자와 유성애자가 사랑을하게된다면 어떻게 해결하는게 좋을까요? 성관계를 하고싶지않아하는 쪽에 맞추는 편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유성애자도 많은 힘듬을 느낍니다. 무성애자는 무성애자끼리만나야 되는걸까요?
  8. K
    2017.09.05 08:51 신고 [Edit/Del] [Reply]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제 그사람을 이해하고 놓아줘야겠네요. 첫사랑이라 많이 힘들었지만 그게 행복이라면 응원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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