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케이 (논모노로그,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논모노, 바이만 있는줄 아셨죠?

패널 겨울, 케이 (논모노로그,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웹진기획팀)

 

※편집자 주: 성소수자 인권포럼 자료집에 실린 발제문을 케이님이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수정본을 게시합니다. 

 

하나보다 많다!

“하나보다 많은 성 또는 젠더에 끌림을 느낀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이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 하듯 팬과 폴리 당사자 중에는 “일단 바이가 뭔지 아니?”와 같은 질문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는 분들이 있다. 사람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이분법적인 바이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띄운 다음에는 조금 더 깊은 설명으로 나아간다. “나는 남성만 혹은 여성만 좋아하는 게 아니야. 일단 세상에는 둘 말고도 무수히 많은 젠더가 있고, 나는 하나보다 많은 성 또는 젠더에 대해 끌림을 느껴.” 젠더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면 기나긴 부연설명의 장이 펼쳐지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전에 설명이 끝난다. 대개 논모노의 커밍아웃 서사는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것도 바이에 대해서 들어보기라도 한 사람들에 한한 이야기이고 바이가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논모노(nonmono)는 하나보다 많은 성 또는 젠더에 대해 끌림을 느끼는 사람들의 지향성을 말한다. 이때 하나보다 많은 성 또는 젠더에 대해 로맨틱끌림을 느끼는 사람을 논모노로맨틱이라고 말하고, 하나보다 많은 성 또는 젠더에 대해 성적끌림을 느끼는 사람을 논모노섹슈얼이라고 한다. 논모노에 속하는 대표적인 지향성에는 바이(Bi)·폴리(Poly)·옴니(Omni)·팬(Pan)이 있으며 각각 로맨틱지향성과 성지향성에 대응하는 바이/폴리/옴니/팬로맨틱(-romantic)과 바이/폴리/옴니/팬섹슈얼(-sexual)이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논모노지향성에 대한 담론이 부족했다. 팬로맨틱/섹슈얼만 하더라도 등장하기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3년에 문화일보에는 "범성애"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여기서는 “범성애”를 "open sexuality"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을 하나의 독립된 섹슈얼리티로 보기보다는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의 점이지대"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는 범성애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런 태도들이 성 정체성에 대한 관념을 부수고 있다고 표현한다. 범성애가 성 정체성에 대한 관념을 부수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편이지만 하나의 정체성에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문제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워딩은 이 시기에 범성애를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다루기에 종합적인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상영했던 어떤 영화 리뷰에는 "판섹슈얼리즘"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하지만 이 리뷰에서 사용한 “판섹슈얼리즘”은 정신분석학에서 "심리질환의 모든 원인을 성에서 찾으려 하는 경향"을 뜻하는 말이었고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정체성의 개념으로서 팬섹슈얼이나 팬로맨틱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또 다른 책 리뷰에는 "범성애적 충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몸지각의 전면적 개방을 요한다"는 말과 함께 서술되어 있었다. 역시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하나의 정체성으로써 팬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범성애 항목이 만들어진 시기가 2012년인 것을 참고하여 추정해보면 아마 2010년대가 되어서야 관련 담론이 퍼져나갔을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담론이 부족했다보니 당사자가 맞닥뜨리는 문제도 비가시화 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와 언어가 부족하여 생기는 문제가 대다수이다. 일단 사람들이 바이, 폴리, 팬이라고 말했을 때 각각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그리고 이 셋 말고도 논모노에는 다른 많은 정체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단어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정 안 될 때는 “나는 이 젠더에 몇 퍼센트 끌림을 느끼고 저 젠더에 몇 퍼센트 끌림을 느껴.”와 같은 식으로 설명을 할 때가 있다. 사실 위와 같은 표현은 "진정한 바이는 반반으로 남녀를 좋아한다."는 바이다움(biness)를 떨쳐내지 못한 바이 포빅한 표현이다. 아무튼 논모노에도 여러 다양한 지향성이 있는데 소개되어 있는 지향성이 얼마 없고, 바이·폴리·팬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도 이 정의 자체를 몰라서 정체화 고민을 해볼 생각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바이의 정의는 현재 "비슷한 젠더 하나 이상, 다른 젠더 하나 이상" 혹은 "두 젠더 이상"에 대해 로맨틱/성적끌림을 느끼는 지향성이라고 내려진다. 종종 여기에 덧붙여 "꼭 같은 방식으로, 같은 강도로, 같은 정도로 끌릴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 추가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이를 약간 변형한 “바이+(바이플러스)”가 “트랜스*(트랜스별)”이라는 용어처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쓰이기도 한다. 바이의 정의가 처음부터 위처럼 내려졌던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정의는 예전에 사용되던 성별이분법적인 바이의 정의인 "남성/여성을 둘 다 좋아한다."라는 뜻에서 좀 더 포괄적이게 넓어진 결과이다. 1990년대부터 미국의 몇몇 바이 단체들은 이러한 정의를 사용하고 있었다. 일례로 1990년 바이섹슈얼 매니페스토에서는 "두 개의 젠더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라고 하면서 이 점을 명시하고 있다.
 
과거에 폴리의 정의는 "여러 젠더”에 대해 로맨틱/성적끌림을 느끼는 지향성이었다. 폴리라는 지향성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많은 사람들이 바이를 "여자와 남자 두 성별에 모두"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이 때문에 젠더이분법에 저항하면서 “나는 그냥 여러 성별에 끌림을 느낀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고 폴리라는 라벨을 만들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바이"라는 단어가 주로 "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간혹 바이가 “둘 이상”이라는 뜻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주된 쓰임이 “둘”이다보니 그것 자체로 다른 이분법적인 사고와 얽히게 된다. 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동성애자/이성애자의 이분법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라고 느껴서 바이보다는 폴리라는 라벨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많은 성별에 끌림을 느끼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뜻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는 바이의 뜻이 달라졌기 때문에 폴리의 뜻도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아직 확정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의미로는 “바이를 포함하여 하나보다 많은 성 또는 젠더에 끌림을 느끼는 지향성”, “세 개 이상의 성 또는 젠더에 끌림을 느끼는 지향성”, “여러 성 또는 젠더에 끌림을 느끼는 지향성” 등이 있다.
 
옴니는 “모든 젠더”에 대해 끌림을 느끼는 지향성이고 팬은 “젠더와 관계없는” 끌림을 느끼는 지향성이다. 서로 정의가 다르지만 실상 구분해내기 어려운 정체성이라서 그런지 옴니와 팬이 서로 같은 의미인 것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혹은 옴니와 팬을 묶어서 넓은 의미의 팬으로 서술하는 경우도 있다. 옴니와 팬의 차이는 상대방의 젠더를 인식하고 있는지의 여부에서 발생한다. 옴니의 경우, 상대의 젠더를 인식한 상태에서 끌림을 느낀다. 다만 끌림을 느끼는 대상이 되는 젠더가 거의 모든 젠더일 뿐이다. 팬은 젠더를 인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끌림을 느낀다.
 
논모노를 이해할 때 명심할 점은 여러 성 또는 젠더에 끌림을 느낀다고 하여도 각각의 성 또는 젠더에 같은 방식으로, 같은 강도로, 같은 정도로 끌림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하나보다 많은 성 또는 젠더에게 끌릴 때, 그 끌림에서 성 또는 젠더에 따른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당사자가 정체화를 하는 과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이 당사자 중에 “나는 이 젠더의 사람에게 끌림을 조금 더 강하게 느끼는데 그럼 나는 ‘진정한’ 바이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고 혼란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오해와 인식이 있다 보니 젠더에 따른 동등한 끌림을 느끼지 않는 지향성을 표현하려는 시도로 여러 라벨들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플루이드(Fluid)”이다. 이때의 플루이드는 끌림을 느끼는 성 또는 젠더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남성과 여성에게 끌림을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성에게 느껴지는 끌림이 줄어들고 여성에게만 끌림을 느끼게 되는 경우 등이다.
 
비슷한 다른 지향성 용어로는 플렉시블(Flexible)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건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첫째는 스스로 동성애자로 정체화 했는데 가끔씩 이성과 섹스를 한다는 의미/그 반대로, 스스로 이성애자로 정체화 했는데 가끔씩 동성과 섹스를 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주로 동성에게 끌림을 느끼는데 가끔씩 이성에게도 끌림을 느낀다/주로 이성에게 끌림을 느끼는데 가끔씩 동성에게도 끌림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최근 들어서 이 용어는 첫 번째 의미보다는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때 플루이드 와는 다르게 플렉시블은 바이를 삭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왜냐하면 바이가 특정 젠더에 끌림을 느낄 때 젠더에 따른 끌림이 동등하다는 오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 젠더에 특별히 끌림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 바이일 수 있다 - 아니다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지금은 한 젠더에 특별히 끌림을 더 많이 느끼더라도 바이로 정체화 할 수 있다는 정의를 채택하는 곳이 더 많다.

 

이 밖에 "바이큐리어스(Bi-curious)"라는 단어도 있다. 바이큐리어스는 자신이 끌림을 느끼는 성 또는 젠더가 아닌 사람들하고도 로맨틱 또는 성적인 관계를 시도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에 반해, 플렉시블의 경우에는 이렇게 실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인 것이 아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용어에는 트라이섹슈얼(Trysexual)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용어는 "한 번씩은 모든 걸 다 해보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즉, 앞서 설명한 바이큐리어스처럼 자신이 주로 끌리는 정체성이 아님에도 한번 로맨틱관계나 섹스를 해보겠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바이와 관련된 개념이나 단어가 여럿 등장하자 혼란을 느끼거나 바이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이 외에도 바이크, 바이펨, 앰비어드벤쳐러스 등등 여러 가지 지향성 용어가 있는데 대부분이 서로 뜻이 겹치거나 유사하여 여기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다른 용어 중에는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거나 특정 지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있다. 예를 들어 바이크의 경우에는 레즈비언을 칭하는 속어인 다이크를 끌어와서 바이+다이크로 칭한 것이다. 철자로 하면 Byke가 되는데 발음이 똑같은 bike가 영국에서는 "문란한 여자"를 욕할때 쓰이는 은어로 사용되어, 이 단어는 영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
 
지금까지 여러 정체성 용어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과연 이들 정체성에서 서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부분은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정체감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지금까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뜻의 정체성 용어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러한 예시가 앞에서 설명했던 플루이드나 플렉시블 같은 용어이다. 이 때문에 제안된 해결법이, 에이섹슈얼 엄브렐라나 트랜스젠더 엄브렐라처럼 하나의 엄브렐라 개념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엄브렐라 개념이란 하나의 넓고 포괄적인 개념이 존재하고 그 하위에 여러 가지 다른 정체성이 있는 것이다. 혹은 이를 스펙트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 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팬 스펙트럼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팬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정체성은 팬로맨틱/섹슈얼과 옴니로맨틱/섹슈얼이 있다. 팬 스펙트럼은 종종 팬로맨틱/섹슈얼로 지칭되며 혼용되기도 하는데 이를 넓은 의미의 팬, 좁은 의미의 팬 정도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때 넓은 의미의 팬은 앞으로 설명할 좁은 의미의 팬과 옴니를 아우르는 넓은 의미이다. 좁은 의미의 팬은 "젠더에 관련 없는 끌림을 느낀다."라고 묘사된다. 넓은 의미의 팬을 설명할 때에 종종 "젠더에 관련 없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앞의 표현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당사자가 느끼는 끌림이 젠더와 연관성이 없거나 적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전자보다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당사자가 느끼는 끌림이 젠더와 연관성이 없거나 적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현재 지향성 용어의 범주화 주요 기준이 젠더이기 때문에서인지, 후자는 "젠더에 관련 없이 (누구에게나) 끌림을 느낀다."처럼 해석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팬로맨틱으로 정체화한 경험에서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를 만나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표현을 "젠더에 관련 없는"이라고 수정하자 어느 정도 위와 같은 오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때 넓은 의미의 팬 당사자가 젠더에 관련 없이 느끼는 끌림은 두 가지 양상으로 갈릴 수 있다. 첫 번째는 당사자에게 젠더 관념이 희미하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하는 끌림과 젠더가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이다. 팬을 설명하는 개념에는 젠더 관념이 희미하거나 거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젠더블라인드(gender blindness)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특정한 사람을 볼 때 상대로부터 어떠한 젠더 관념도 느껴지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끌림을 느낀다면 상대방의 젠더에 대해서 전혀 인식하지 않으면서 끌림을 느끼는 좁은 의미의 팬이 된다. 이 젠더블라인드라는 개념은 좁은 의미의 팬 개념을 설명하는 주요 도구이면서 좁은 의미의 팬과 옴니를 구분 짓는 중요한 차이점이 된다. 두 번째 양상은 젠더블라인드가 아니면서 동시에 거의 모든 젠더에 대해 끌림을 느끼는 경우이다. 이 경우 젠더블라인드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젠더에 대해서는 인지하지만 끌림은 모든 젠더에게 경험한다. 혹은 일부에서는 옴니를 “상대의 젠더에 대해 인지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끌림에 젠더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커피에 비유를 해보겠다. 팬의 경우에는 다양한 커피의 종류를 처음부터 구별하지 않은 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 빗대볼 수 있다. 옴니의 경우에는 다양한 커피의 종류를 구별을 하지만 커피를 좋아함에 있어서 종류에 구분을 두지 않는 사람에 빗대볼 수 있다.

 


바이의 경우에도 넓은 의미의 바이가 있고 좁은 의미의 바이가 있다. 이때 넓은 바이를 바이 스펙트럼이라고 하는데 하나보다 많은 젠더에 끌림을 느낀다는 의미로, 좁은 의미의 바이, 폴리, 팬, 옴니, 플루이드 등이 이 스펙트럼에 들어간다. 이를 “바이 엄브렐라(Bi-umbrella)”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그림처럼 하나의 스펙트럼에서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우산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비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 스펙트럼을 사용할 때가 국가에 어떠한 정책을 요구할 때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에는 정책입안 혹은 대책을 요구하면서 바이 엄브렐라 개념을 사용하였다. 예로 2014년부터 백악관에서 열린 바이섹슈얼 포럼이 있었는데, 당시 바이섹슈얼이 아닌 팬, 폴리, 플루이드 등이 함께 참여했다.
 
하나보다 많은 젠더에 끌림을 느끼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스펙트럼을 명명할 때도 많은 난관이 있었다. 일단 둘보다 많은 젠더가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바이의 정의를 두고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특히 여성 혹은 남성 이외의 젠더에게 끌림을 느끼는 논바이너리 바이들은 바이의 더 포괄적인 정의를 원했다. 그런 중에 “전통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정의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던 일부 바이 당사자들과 마찰이 있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폴리라는 새로운 지향성을 만들게 되었다. 폴리라는 지향성이 등장하는 가운데에도 그 의미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하나보다 많은 젠더에 끌리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말로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었고, 논바이너리 바이의 의미로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주장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폴리의 정의는 분명하게 합의되어 있지 않다.
 
그 후로 논모노섹슈얼, 즉 “우리는 모노섹슈얼이 아니다!”라는 배경에서 나온 단어가 등장하게 된다. 현재에 운동권에서는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단어고 학계에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이 단어는 무성애 스펙트럼(asexual spectrum, ACE spectrum)의 사람들이 논모노에 포함되는지 아닌지 혹은 논모노가 무성애 스펙트럼에 배제적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여기에 동의하는 에이 스펙트럼의 사람들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논모노라고 자신을 칭하는 것이 모노가 주류인 사회에서 주류를 중심으로 두는 것이 아닌가하는 지적이 나왔다. 예를 들어 청소년을 청소년이라고 칭하지 않고 “비성인”이라고 칭하면 성인이라는 카테고리가 구별의 중심이 되어버리듯, 모노 지향성이 또 다시 구별의 중심으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유사한 다른 시도로는 멀티, 플러리 등이 있었다. 이 단어는 멀티로맨틱/섹슈얼, 플러리로맨틱/섹슈얼 등으로 쓰인다. 플러리는 영어로 다수를 뜻하는 “plural”에서 따온 명칭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이 쓰이지 않고, 무엇보다 팬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이 소외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여러 개(plural)" 와 "모든(pan)"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미권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용어는 바이 플러스(Bi+)이다. 넓은 의미의 바이가 하나보다 많은 젠더에 끌림을 느낀다는 의미로 가장 넓은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포함한다는 것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용어이다. 두 젠더에 끌림을 느끼던, 세 젠더, 여러 젠더, 모든 젠더에게 느끼던 하나보다 많은 젠더에 대해 끌림을 느끼는 사람을 포괄하는 개념인 것이다.
 
지금까지 명칭과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그런데 이런 명칭과 스펙트럼에 대한 요구는 결론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노 규범 때문에 파생되었다. 모노섹시즘(Monosexism)은 단성애(monosexual), 즉 이성애, 동성애, 남성애, 여성애 등등이 하나보다 많은 젠더에 끌리는 지향성보다 우월하거나 더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이, 폴리, 팬 등의 정체성을 도덕적으로 잘못되었거나, 진실 되지 않다거나, 바람을 핀다거나,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보는 게 여기에 속한다. 이를 특권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데, 그러한 해석에서는 헤테로중심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들과 시스헤테로들을 같은 그룹으로 묶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특권층/비특권층으로 나누는 특권을 설명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우리가 바이/폴리/옴니/팬 등 하나보다 많은 성 또는 젠더에 끌림을 느끼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모노섹시즘의 영향에 대한 통계는 우리나라보다는 외국에 더 많다.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발생하는데 모든 통계가 전부 바이섹슈얼들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팬, 폴리, 혹은 바이로맨틱 에이섹슈얼들을 다 배제해버린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모노섹시즘은 우리 모두를 억압하는 하나의 방식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각자 억압방식이나 특성 등에는 다른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뭐냐면 이게 앞에서 말했던 넓은 의미로서의 바이, 즉 하나보다 많은 성별에 끌림을 느끼는 사람인지, 아니면 좁은 의미로서의 바이인지 이게 분간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만약에 전자면 아까 전에 말한 팬, 폴리, 바이로맨틱 에이섹슈얼을 포함할 수 있다는 의의가 있지만 후자면 이들이 현재 모노섹시즘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모른다는 뜻도 된다. 이런 한계를 감안하고 해석해야 한다.
 
첫 번째로 샌프란시스코 인권위에서 만든 "Bisexual Invisibility: Impacts and Recommenda-tions"라는 논문이 있다. 바이섹슈얼 당사자들과 단체들에 자문을 구하였고, 이를 번역하면 "바이섹슈얼 비가시화: 영향과 이에 따른 권고"라는 뜻이다.
- 바이섹슈얼들은 전체 국민들보다 더 많은 건강문제를 갖고 있고, 특히 불안질환이나 기분장애에 시달릴 확률이 더 높았다.
- 바이섹슈얼들은 자신의 의료인에게 커밍아웃할 가능성이 더 낮았다.
- HIV/AIDS와 성병 관련한 프로그램들은 바이섹슈얼들에 관한 부분의 설명이 부족했고, 남자와 여자하고 모두 섹스를 하지만 바이섹슈얼로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부족했다.
- 모노섹슈얼 파트너를 가진 바이섹슈얼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보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 아래의 도표는 성소수자들의 자살충동 비율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바이섹슈얼들이 자살충동을 느끼는 비율이 가장 높다.

 


- 캘리포니아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시스헤테로 남성과 비교해서 게이 남성들은 2~3%정도 임금이 낮았고 레즈비언들은 2.7%정도였는데 바이섹슈얼 남성들은 10~15% 더 낮았고 바이섹슈얼 여성들은 거의 11%였다고 한다.
- 또한 2009년에 윌리엄스 연구소(UCLA 법학대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관한 법과 행정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곳이다)에서 찾은 결과에 따르면 바이섹슈얼 여성들은 레즈비언보다 저소득층이 될 가능성이 2배였고 (7.8% vs 17.7%) 바이섹슈얼 남성들은 게이 남성들보다 저소득층이 될 가능성이 1.5배였다. (6.2% vs 9.7%)
-LGBT 관련 모금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바이 관련 이슈는 매년 가장 적은 양의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2008년에는 LGBT 이슈 관련 지원이 늘어났는데 바이 단체나 관련 프로그램에 들어간 돈은 오히려 줄었다.
 
논문에서는 함께 이런 이슈를 어떻게 해소할지를 적어놨는데 대부분이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이어서 현재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조금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단체 단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가 있다.
- 이 논문의 연구결과를 지역 NGO단체에 알려 어떤 바이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리뷰하게 하고, 바이섹슈얼들을 위한다고 말하는 프로그램이 실제 이들에게 열려있는지, 그리고 바이섹슈얼들의 요구에 따라 어떻게 프로그래밍이 바뀌어야 할지 알려야 한다.
- 다양성 관련 교육할 때 바이섹슈얼에 대한 구체적이고 독립적인 정보를 넣어야 한다.
- LGBT 커뮤니티에 대해 설명하는 포럼, 패널, 혹은 다른 자리가 있을 때 바이섹슈얼 발언자가 있게끔 한다.


또 다른 자료는 LGBT Movement Advancement Project(이하 LGBTMAP)라는 곳에서 펴낸 자료인데, 여기선 "Invisible Majority: The Disparities Facing Bisexual People and How to Remedy Them" 이라는 자료를 냈다. 번역하면 “비가시화 된 다수: 바이섹슈얼들이 받고 있는 격차와 이것을 어떻게 시정할까”라는 뜻이다.
- 2014년 LGBT 청소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바이섹슈얼 청소년들 중 가족이 이들을 수용해주고 지지해주는 경우가 낮았다. (27%만 가족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는데 레즈비언, 게이 청소년의 경우 33%였다)
- 2005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26%의 바이섹슈얼 청소년들이 그들이 부모에 의한 육체적 학대 때문에 가출했다고 답했다. (헤테로의 경우 15%, 게이, 레즈비언의 경우 13%)
- 2011년 윌리엄스 연구소에 따르면 40%의 레즈비언과 게이들이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한 반면 바이섹슈얼 중에는 6%밖에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그리고 퓨 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바이섹슈얼들의 11%만 자신과 가장 친한 직장 동료가 자신이 바이섹슈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게이/레즈비언의 경우 50%에 육박했다. 또, 44%의 바이섹슈얼들이 직장환경이 바이섹슈얼들에게 열려있다고 말했으며, 게이의 경우 60%, 레즈비언의 경우 50%였다.
- 아래의 통계를 보면 아직도 바이포비아적 농담에 사람들이 많이 시달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또 다른 통계에서는 정신건강 통계를 냈는데,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서는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헤테로섹슈얼/잘 모르겠다로 나눴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성경험을 "여자와 섹스한 적이 있다." "여성 그리고 남성과 섹스한 적이 있다." "남성과 섹스를 한 적이 있다." "섹스를 한 적이 없다."로 나눴다.

 


- 또한 바이섹슈얼들, 혹은 섹스를 두 성별과 하는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 생각하거나 자살을 할 계획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 마지막으로 중요한 통계는 바이섹슈얼들의 성폭력 경험인데, 보시면 알 수 있듯이 다른 집단들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에서 진행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가 있는데, 여기에서 몇 가지 특징을 추려낼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외국에서도 발견되는데, 이 이유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바이섹슈얼 남성들은 쉽게 지워지는 특성이 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외국에서는 "바이섹슈얼 남성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기도 했었고, 때문에 이런 인식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것은 바이섹슈얼 들이 받는 바이포비아 때문에 더욱 커밍아웃을 꺼리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아래 표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도 바이 남성들의 커밍아웃이 비교적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또한 이 보고서에서는 바이섹슈얼 커밍아웃의 경우 이중의 고충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진정성"을 의심받기 때문에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로 자신을 패싱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중요시해야 할 부분은 이 부분인데 "바이섹슈얼의 경우 동성과 연인일 때는 동성애자로, 이성과 연인일 때는 이성애자로 주변에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성적 지향을 한 쪽 성에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고, 그래야만 정체성이 안정되었다고 보는 인식이 바이섹슈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원인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정체성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언어나 각본이 바이섹슈얼의 경험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이 모노섹시즘에 의해 바이가 어떻게 비가시화 되는지에 대한 거의 정확한 설명이다. 특히 "동성과 연인일 때는 동성애자로, 이성과 연인일 때는 이성애자로 주변에서 인식 한다." 이 부분은 거의 1970년대부터 외국에서 나왔던 문제제기고 그래서 이걸 보면 모노섹시즘의 방식 중 하나가 한국에서 비슷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여기서 보면 "매우 중요"와 "별로 중요하지 않다"에서 바이섹슈얼들의 응답율이 낮고 "매우 긍정"에서 바이섹슈얼 남성들의 답변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 역시 위에서 말하듯 커밍아웃의 경험에서 바이포비아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바이섹슈얼들에 대한 정체성 자체가 현재 제대로 성립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만 여기서 좀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귀하의 삶에서 LGBTI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느끼십니까, 부정적으로 느끼십니까?" 부분에서 "매우 부정" 이 낮다는 점인데, 이것은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조사에서 바이섹슈얼들이 "바이섹슈얼이라는 것은 나를 자유롭게 해줬다"라는 경험을 많이 공유한 것과 겹쳐서 다행이라는 점이다. 즉, 정체성이나 롤모델이나 프라이드 전반은 조금 미흡한 상태지만, 아직도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 또 다른 통계는 바이섹슈얼 남성의 경우 가장 낮은 차별, 폭력 경험 비율을 보이는데 (31.1%), 이것은 아직 바이섹슈얼 남성에 대한 바이포비아가 대중적으로 퍼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바이섹슈얼 여성의 경우 36.7%로 전체보다는 낮다. 이 역시 아직 바이포비아적 인식이 한국에 대중적으로는 외국에 비해 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경우 바이섹슈얼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만연하기 때문에 성폭력 등 사건이 바이섹슈얼 여성들에게 많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즉, 바이의 비가시화 때문에 이들이 바이 들에게 고유한 방식의 억압은 아직 덜 받고 있는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점은 바이섹슈얼 여성의 차별이나 폭력을 겪었을 때 신고율이 2.7%로 가장 낮다는 점인데 이게 자기 지향을 알리고 싶지 않고 (68.5%), 신고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 (62.5%)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이것은 자기가 받을 바이포비아를 크게 걱정하고 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얘기인데 이게 바로 바이섹슈얼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이중차별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종합해보면 한국의 모노섹시즘은 바이섹슈얼 전반적으로 커밍아웃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쪽으로 작용한다. 그래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전반적인 프라이드는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비가시화 때문에 아직 바이에게만 특이적으로 발생하는 바이포비아는 일상생활에서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한 것을 보면 소수의 경험에도 배척받은 기억이 굉장히 강해, 바이포비아에 대해 많은 걱정과 불안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프라이드를 확립해 나갈 것인가, 어떻게 외국처럼 바이 여성의 성적대상화가 만연하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외국의 예처럼 바이섹슈얼 대상화나 성소수자 이슈에서 계속 바이들이 소외되어 통계에 잡히지 않아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서비스가 마련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가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폴리, 팬, 옴니 그리고 바이로맨틱 에이섹슈얼들 역시 모노중심 규범 하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하고, 이중적 고충을 겪고 있고, 커밍아웃을 하기 꺼려지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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