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행성인 성소수자 노동권팀)
지금 저는 ‘월급루팡’ 중입니다. 행성인 웹진에 기고할 글을 노동당에서 돈 받고 일 하는 시간에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업무시간에 쓰게 된 건 이 곳이 내가 뜻이 있는 활동을 업무시간에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과 삶이 구분이 잘 안 되는 업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어쩌면 이 글을 업무시간에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근활동가라는 ‘직업’의 명과 암을 다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양한, 또는 잡다한
노동당 선전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상근자로 일한 지는 3년즈음 됐지만, 중앙당의 홍보 담당으로 일을 한 건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총선이 한창일 때 홍보 일을 시작했는데, 수습이고 인수인계고 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됐습니다. 맨몸으로 전쟁터에 내던져진 기분이더라고요. 그 때는 아, 왜 이럴 때 일을 시작해서, 조금 억울하기도 했는데, 탄핵 정국과 지금 대선까지 거치고 나니 언제 입사했어도 비슷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이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니까, 사실 ‘더 바쁜’ 시기는 있어도 마냥 한가한 시기는 없더라고요. 당장은 별 일 없더라도 항상 바빠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홍보 담당이지만, 홍보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일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상근활동가를 부르는 별칭(멸칭?)인 ‘전문 데모꾼’이라는 말답게 집회 참석은 기본입니다. 대외협력 담당을 따로 둘 여력이 못 되어 중앙당 상근자들이 나눠서 외부 연대체에 파견을 가는데, 저는 주로 인권/성소수자 분야와 기후환경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행사를 기획하거나, 정당연설회 등의 사회를 보기도 합니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일이 조금 잡다합니다.

담당하고 있는 일 중 상근활동을 하며 배정된 업무도 있지만, 상근을 시작하기 전부터 맡고 있었던 역할도 있습니다. 상근자이기 이전에 활동가이기 때문에, ‘업무’와 ‘활동’이 잘 구분되지 않는 지점도 있습니다. 당사에 출근해서는 돈 받아가며 하는 일, 그러니까 홍보 관련 업무를 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성소수자 활동 관련한 일들을 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놓긴 했지만 잘 지켜지지는 않네요. 이 글도 업무 시간에 쓰고 있고요.
번아웃 또는 열정페이
어떻게 보면 퇴근하고도 – 그것도 돈 안 받고! -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서글픈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행성인 회원분들도 자기 돈 쓰고, 자기 시간 내어가며 행성인 모임에 참석하고, 집회에 가고, 어쩌면 팀 활동을 같이 기획하고 준비하기도 할 겁니다. 상근활동가라고 다른 활동가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일을 하진 않아요. 다만 그런 일들을 직업적으로, 조금 더 역량을 쏟아서 할 뿐이고요. 회원들이, 또 당원들이 돈 받아가며 집회 나오는 것도 아닌데 제가 집회 나가는 걸로 추가근무 수당을 달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죠.
상근활동가가 노동자냐, 아니면 활동가냐 하는 해묵은 논쟁도 있지만, 저는 둘이 서로 양립 불가능한 정체성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직업으로서의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의 성격을 갖는 부분이 있겠지만,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임금노동으로 협소하게 정의된 노동의 범주를 뛰어넘는 면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상근활동가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건 일의 양 자체보다는 일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다들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Work와는 구분된 Life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이야기일 거예요. 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입니다.
상근활동가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 활동이 목표하는 바와 내 삶의 가치가 대체로 일치한다는 이야기일 텐데(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호모포비아가 성소수자 단체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할 수 있을까요? 아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이런 둘 사이의 ‘일치’가 때로는 내가 살면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고된 노동으로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내 일을 ‘돈 안 받고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도 해요. 의욕이 죽거나,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하게 되는 거죠.
만남의 연속
그런 고충들이 많지만, 상근활동가를 하게 된 걸 후회하지 않아요. 이 일에 대한 애정도 있고요. 퀴어 프렌들리한 직장 찾기도 하늘에 별 따기인데, 그저 환대하는 것을 넘어 나의 퀴어니스가 업무의 핵심적인 영역인 일을 하는 경험은 상근활동가가 아니라면 어려울 겁니다.
또 정당활동가이면서 성소수자 활동가로서 갖는 경험의 특수함도 있을 것 같아요. 정당활동가로서 해야 하는 일들을 두고 앞에서는 잡다한 일이라고도 말했지만, 사실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제 활동의 반경과 고민의 넓이를 더 크게 만들어준 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방향과 속도의 차이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활동이란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일 텐데, 어떤 세상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위한 조직이 바로 정당이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라고 차별받는 일만 없어지면 내가 자유로워질까? 나와 같은 사람들을 옥죄고 있는 차별의 이유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런 차별이 없어진 세상은 어떤 모습이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정당에서 활동하는 것은 이런 고민들을 구체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당의 성소수자 활동가는 이런 고민을 중심으로 성소수자와 다른 차별받는 사람들을 정치라는 끈으로 연결짓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우리의 공통된 요구를 찾기 위한, 더 많은 사람과 공간을 만나는 일의 연속인 셈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닻이 될 수 있길
힘들지만 사랑하는 이 일이 지속 가능해지기 위한 조건들을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탄핵 국면 네 달을 거친 후 번아웃이 와서 떠나는 활동가를 특히 많이 보게 되는데요. 활동가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회운동, 그리고 진보정당의 위기 속에서, ‘꼭 필요한 일이니까’라는 당위와 ‘원래 이런 일이니까’의 체념 속에서 허우적대다 소진되어 떠나는 사람들의 존재가 가시처럼 가슴에 박힙니다.
사실 지금이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떠나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중심을 잃지 않도록 나를 단단하게 잡아준 ‘닻’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정치에 관심 없다면서도 “네 얼굴 봐서 보낸다”라며 십만 원을 노동당에 후원하던 친구, 크게 할 말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면서도 “사루동지가 홍보하는 거니까”라며 노동권팀 집담회에 참가해준 당원, 그리고 이 글을 대놓고 업무 시간에 쓰고 있는데도 별 말 없는 동료 상근활동가들. 나의 활동을, 그리고 활동가로서의 나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사람들과 공동체가 나의 닻이었습니다.
올해가 행성인 28주년입니다. 행성인이라는 공동체가 30년 가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행성인을 비롯한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공동체를 일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여러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행성인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사무국 상근활동가들의, 무지개행동 총회에서 볼 수 있는 각 단체 활동가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지지와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시는 것이 활동가들이 오늘 하루 더 버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묵직한 닻이 되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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