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 (한국HIV/AIDS감염인인권연합 KNP+)
| 연재의 말 게이들은 외계에서 온 것 같다. 그래서 지구에 여행 온 외계인의 삶을 기록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참…이 나이에 글을 쓸 줄이야, 가 아닌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 보는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남자로서가 아닌 게이로서의 내 삶을 솔직하게 기록해 본다. |

다시 본업으로 돌아온 나는 당시 주소가 지방 소도시 형님 집으로 되어있어서 그곳 보건소 히브 담당자와 자주 만났다. 그분은 보건소에 자주 찾아오고 말도 잘 듣는 나를 좋아해 주었다. 그래서 그분 덕에 그 지역 다른 감염인의 상황도 알게 되었다.
하루는 그 담당자가 나에게 말하길 부산에 감염인 쉼터가 생겼는데 거기 가서 좀 지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집을 두고 왜 쉼터에서 지내느냐고 싫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가 쉼터에 지금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게 생겼다며 새로 집을 꾸며서 시설도 좋고,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된다며 부탁하듯 제안했다. 결국 나는 일터도 부산이고 출퇴근이 편할 것 같아서 부산 쉼터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부산 쉼터는 구세군 사관님이 출퇴근하며 운영했고 60대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쉼터에서 지내게 된 나는 부산대 병원과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부산지회 국장님과 자주 연락하며 가깝게 지냈다. 그 사이 부산대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몸이 많이 안 좋은 분이 있다고 해서 사관님과 함께 그분을 쉼터로 데려왔다. 그분은 40대인데 배를 타다가 10년 만에 내렸는데 얼마 안 가서 쓰러졌다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10년 전에 확진을 받았는데도 약을 안 먹고 병원도 안 다니고 원양어선 배를 타다가 10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185센티미터 키에 몸무게가 원래는 88킬로그램이었는데 결핵과 폐렴으로 58킬로그램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뼈만 남을 정도로 쇠약해진 그는 잘 걷지도 못해서 나는 쉬는 날마다 그를 데리고 동네 뒷산으로 산책하러 다녔고 보양탕을 사주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그러자 그는 4개월 만에 예전의 몸무게를 되찾고 체력을 회복했다.
부산 쉼터에 또 한 분의 아저씨가 들어왔다. 그는 부인과 딸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결핵과 임파선암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입원을해서 치료를 해야하지만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해서 병원응급실앞에 여관을 잡아놓고 응급상황이 생기면 응급실로 가곤 했다 목숨만 겨우 건진 상태로 쉼터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응급실에 입원할 당시에 간병할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부인에게 감염 사실을 털어놓고 간병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부인이 딸보기가 부끄럽다며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분은 날이 갈수록 몸이 점점 좋아졌지만,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매일 같이 낙심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일을 마치고 쉼터로 돌아와서 슬픈 소식을 들었다. 그분이 자기가 쓰는 방 창틀에 목을 매고 숨져서 시신을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었다.
가슴 아픈 죽음이 있고 얼마 후에 20대 초반의 청년이 쉼터로 들어왔다. 그 친구는 건강이 안 좋아서 첫눈에도 얼굴이 핼쑥해 보였다. 그 친구에게도 사연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아서 집에 들어가는 게 죽고 싶을 만큼 싫었고 그래서 약도 안 먹고 방황하다가 몸이 그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모아놓은 돈도 없다고 해서 내가 기초수급을 신청하라고 조언해 주었는데 주소를 옮겨놓을 곳도 마땅치 않다고 했다. 나는 친분이 있는 지방 보건소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그 친구의 주소를 보건소 담당자의 집으로 이전하고 기초수급을 신청할 수 있게 도와달라 부탁했다. 그 담당자분이 잘 처리해 준 덕분에 그 친구는 기초수급을 받게 되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그리고 20대의 어린청년도 한명 들어왔는데 그는 약에 취해있었다.
그약은 병원에서 처방만 가능한 러미널이라는 약에 취해 있었다 그는 얼마후 검거되어 교도소에 가게되는데 그의 교도소 생활에서 어마어마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사건은 이후에 따로 이야기 ......
그렇게 부산에서 생활하며 2004년을 맞이했다. 그때 서울에 있는 예방협회 본부에서 ‘동료 상담 교육’을 4박 5일간 진행하게 됐는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교통비까지 준다고 해서 나도 참가했다. ‘동료상담’은 당시 예방협회에서 전화상담 사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기존의 감염인 동료가 상담을 해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진행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4박 5일간의 ‘동료 상담 교육’을 받기 위해 50여 명의 참가자들이 서울 우이동에 있는 수련관에 모였다. 그때 만났던 사람 중에 많은 수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그때 교육을 받으러 부산에서 함께 올라간 친구가 있었는데, 닉네임은 ‘이브자리’고 나와 나이가 동갑이라 친하게 지냈다. 그 친구는 애인이 있었는데 그 애인도 10년 넘게 약을 안 먹고 보건소 연락도 안 받아 애를 먹이는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날 이브자리에게서 밤중에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자기 애인이 자취방에서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차를 몰고 그의 애인 집으로 달려갔다. 그의 애인은 열이 40도 가깝게 오를 정도였고 의식이 없었다. 급하게 그를 들쳐업고 부산대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이브자리는 응급실 의사에게 애인의 감염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몰라 전전긍긍했다. 결국 내가 의사를 찾아가 환자가 hiv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의사는 그 환자를 즉시 격리해야 한다며 침대를 구석으로 옮기고 커튼을 두 겹이나 둘러쳤다. 그나마 창고 같은 곳으로 데려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친구는 응급실 구석진 자리에서 두 겹 커튼에 둘러싸인 채 보름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다. 그 후 나는 ‘동료 상담 교육’을 계기로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상경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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