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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회원 에세이] 퀴어의 연애:나의 연애는 건강한가요?

by 행성인 2025. 7. 25.

바을(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지금까지 나는 다양한 형태의 연애를 경험해왔다. 이성애 관계도 있었고, 퀴어로서의 연애도 있었다. 관계의 모습은 달랐지만,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과 고민은 언제나 나에게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내 연애는 건강했을까?’라는 물음이다. 그동안의 연애를 돌아보며, 나와 관계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 글은 그 과정을 정리해보려는 시도이다.

 

왼)Y와 찍은 사진을 그린 그림 오)Y와 만든 하트.커플링이 잘 안보인다며 검지에 끼고 찍었다



몇해 전, 정신질환을 가진 퀴어들을 위한 오픈카톡방에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따뜻한 대화들이 오갔고 나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 빌런이 들어와 나에게 성희롱을 했고, 당황한 나는 방장 언니인 Y에게 연락했다. Y는 빌런을 방에서 내보냈고, 내가 감사 인사를 전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밤 3~4시간씩 통화를 나눴고, 약 두 달간 썸을 타다가 연인이 되었다. 사귀기로 한 날 홍대입구역에서 Y를 만났다. 정모에서 얼굴을 본 적은 있었지만, 연인이 되어 마주한 Y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빛나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 회의를 하기로 했지만, 정작 우리는 서로의 눈만 바라보며 조심스레 애정을 주고받았다. 내가 Y만 바라보다 커피를 쏟아버렸고, 둘이 함께 허둥지둥 치우던 장면은 지금도 따뜻하고 선명한 기억이다. 그렇게 지내다 몇달 뒤 Y는 자신의 지향성과 나와의 연애감정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이별을 고했다.

 

2023년 대학에 입학했다. 신입생 단톡방에서 먼저 알게 된 친구가 있었고, 얼굴도 모른 채 카카오톡으로 자주 대화를 나눴다. 개강 행사 날 실제로 만난 H는 유쾌하고 다정했으며, 당시 외로웠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내가 전 애인과의 이별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는 조용히 들어주었고, 위로의 말 대신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날 우리는 함께 술을 마셨고, 그렇게 사귀게 되었다. 그러나 반복된 거짓말로 인해 신뢰가 무너졌고, 나는 이별을 택했다. 그 선택을 후회하진 않지만, 가끔 그와 계속 사귀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후 연애 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2024년 행성인에 가입하게 되었다. 송년회에서 A를 만나 먼저 말을 걸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받다 직접 만나기로 했다.만나서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고 A의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렇게 새벽 2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지금 A와의 관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애에서 나는 종종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 사랑했던 것 같다. 애인을 중심으로 일상이 짜이고, 감정이 흔들리고, 삶의 리듬마저 그 사람에게 맞춰졌던 적이 많았다. 그만큼 사랑이 전부였고, 관계 안에서 나의 존재를 증명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사랑하고 싶다. 자존감을 지키고, 나를 잃지 않은 채 상대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 감정이 격해졌을 땐 피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연습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불편함이 생길 땐 쌓아두지 않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연애가 삶을 삼키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다. 나를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조금씩 포개는 관계를 꿈꾼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면서도 서로에게 따뜻하게 머무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런 바람은, 내가 살아온 다양한 연애 경험과 그 안에서 마주한 사회적 맥락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성애 연애를 할 때, 나는 ‘정상성’이라는 사회적 틀 안에 자동으로 포함되는 경험을 했다. 그냥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나의 연애를 설명 없이 받아들였다. 길거리에서 손을 잡든, 친구들에게 연인을 소개하든, 질문은커녕 응원이 따라왔다. 사회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분류했고, 그 편함은 분명 매끄럽고 쉬운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도 무언가 억압적인 감정이 분명 있었다. 보이지 않는 역할이 분명했고, ‘여자친구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무언의 기대도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에 적합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더 먼저 고민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연애는 겉으로는 이성애적이었지만, 안쪽에서는 나의 자율성과 욕망을 억제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제는, 헤테로 연애조차 퀴어하게 다시 보고 싶다. 단지 성별 구성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 자체를 퀴어하게 만들어볼 수 있다는 생각과, ‘정상적 연애’라는 외피를 벗겨내고 그 안에 어떤 권력과 감정의 역학이 흐르는지를 살펴보는 일 말이다. 이러한 퀴어한 시선은 이성애 관계 안에서도 스며들 수 있고, 또 스며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반대로 퀴어 연애라고 해서 언제나 특별하거나 자유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퀴어 관계에서는 애초에 연애라는 언어 자체가 설명을 요구받는 경험이 많다. 거리에서의 손짓 하나에도 주변을 살피게 되고, 연인을 친구로 소개하는 일이 일상처럼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 연애는 나에게 늘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우리 관계는 어디쯤 와 있는가, 나는 이 사람과 어떤 감정의 언어를 공유하고 싶은가, 서로의 경계는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겹치는가. 주어진 모델 없이 만들어가는 과정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 질문들 덕분에 나는 조금씩 나다운 방식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A와 찍은 사진


결국, 연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지만, 동시에 사회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나로 존재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지금 A와의 연애는 그 고민의 연장선 위에 있다.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 머무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나는 연애관계 안에서 더 이상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로 했다. 연애를 통해 삶을 확장할 수 있다면, 그건 ‘정상적인 관계’에 맞췄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