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원 이야기

[회원 에세이] 퀴어의 언어 : 혐오 속에서 우울과 쾌락 사이를 건너며

by 행성인 2025. 9. 18.

바을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나를 설명하는 단어는 “나, 성격, 추상적, 뜨개질, 영화”다.


‘나’를 가장 먼저 적은 이유는, 이 단어가 곧 나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타인을 설명할 때 사회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언어를 빌린다. 그러나 퀴어로 살아가다 보면, 사회가 정해놓은 언어는 나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아예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설명의 출발점을 ‘나’에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사회가 아니라 내가 고른 언어로 나를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성격’이라는 단어는 나를 단일한 정체성으로 가두지 않는다. 다정할 때도 있고, 날카로울 때도 있으며, 때로는 조용히 침잠하기도 한다. 이 모순적인 성격들이 공존하는 것이 곧 나다. ‘추상적’이라는 단어는 언어로 쉽게 규정되지 않는 나를 남겨둔다. 언어가 포착하지 못하는 세계를, 감각과 이미지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뜨개질이나 영화처럼 천천히 시간을 엮고 감각을 풀어내는 활동들은 그래서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언어가 된다.

하지만 나를 설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워버리는 언어들도 있다. ‘일반, 정상, 남자’ 같은 말이다.


‘일반’은 언제나 다수를 기준 삼아 소수를 밀어낸다. ‘정상’이라는 말은 더 노골적이다.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을 곧바로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남자친구 있어?” 같은 질문은 나를 당연히 이성애자라고 가정한다. 그 짧은 말 속에서 나의 가능성과 관계의 모습은 이미 규범이 정한 틀에 갇힌다.

 

사회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언어는 누군가를 계속 지워낸다. 그래서 퀴어에게 언어는 단순한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우리는 사회가 남겨둔 언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을 때, 스스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여자친구, 남자친구’ 대신 ‘애인’, 혹은 ‘짝꿍’이나 ‘파트너’라고 부르는 일. 어떤 사람은 자신을 ‘논바이너리’라고 설명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마저도 내려놓는다. 이렇게 단어를 바꾸는 순간, 우리는 사회가 지워버린 자리에 다시 우리 자신을 써 넣는다.

언어화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연인을 소개하고 싶어도, 그 순간 상대가 퀴어라는 사실이 곧바로 설명을 요구받을 수 있다.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 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자주 침묵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침묵은 개인의 선택만은 아니다. 사회가 이미 “말해도 되는 것”과 “숨겨야 하는 것”을 가려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퀴어가 언어 앞에서 늘 우울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규범적 언어에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자기 언어를 찾지 못하는 상황 자체를 유머로 바꿔버린다. “아직 딱 맞는 단어는 못 찾았는데, 일단 그냥 나라고 해요”라고 웃으며 말할 때, 그 순간 주도권은 내 손에 있다. 퀴어에게 우울과 쾌락은 늘 붙어 있다. 언어의 부재가 곧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장난감이 되기도 한다. 모순과 역설 속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퀴어의 일상일지 모른다.

퀴어의 언어는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 말하기와 침묵, 우울과 쾌락 사이를 오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실험하고 발견한다.

행성인 같은 공동체는 바로 이 언어의 실험실이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꺼낸 낯선 단어가 공동체 안에서 나눠질 때, 그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말이 된다. 작은 선택이 모여 더 많은 퀴어의 삶을 지켜낼 수 있는 언어로 자라난다.

결국 퀴어의 언어는 사회가 강요하는 ‘일반’과 ‘정상’에 맞서, 나와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지워지는 순간에도 우리는 다시 말을 만들고, 웃음을 통해 거리를 두고, 서로의 단어를 붙잡는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울에 머무르지 않고, 쾌락과 다정함을 함께 길어 올린다.

 


처음에 나는 ‘나’라는 단어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의 언어는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선택한 단어들은 공동체 속에서 다른 이들의 언어와 부딪히고, 조율되고, 때로는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단순히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언어적 관계망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퀴어 언어는 ‘나’에서 시작해 ‘우리’로 확장된다. 그것은 개인의 자기서사이자 동시에 공동체의 집단 서사다. 서로의 언어를 존중하고 빌려 쓰고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법을 만든다. 그 문법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렇기에 계속 쓰이고 고쳐지고 다시 태어난다.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울에 머무르지 않고, 쾌락과 다정함을 함께 길어 올린다.

우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어를 만든다.
우리는 언어로서 서로를 불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