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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학생인권조례

청소년 성소수자 스스로가 투쟁에 앞장설 날을 기대하며

by 행성인 2011. 10. 11.

청소년 성소수자 스스로가 투쟁에 앞장설 날을 기대하며


외국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성소수자 운동이 매우 과격한 형태를 취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스톤월 항쟁처럼 현재의 노동(혹은 철거민)운동과 비슷한 강도와 형태로 운동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오늘날 한국에 이르러서는 성소수자 억압이 보다 교묘해졌기 때문인지, 혹은 노동운동이 가지는 ‘해고는 살인이다’의 급박함이 희미해서인지, 혹은 가부장체제와 이성애중심주의가 눈에 보이는 실체라기보다는 무엇에나 녹아 들어간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인지, 어디에서나 사진을 찍고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유포시킬 수 있게 되어 아웃팅의 우려가 많아서인지 성소수자 운동은 캠페인이나 커뮤니티 공간 확보, 문화적인 창조(책 출간, 영화 찍기, 레즈비언 라디오, 잡지 발간 등)에 다소 국한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사실은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의 계몽적 의제를 가지고 비성소수자에게 다가가려는 사람이 많다(아마도 그래서 캠페인이나 비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책자 발간이 보편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성소수자 스스로의 자긍심과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커뮤니티와 문화 사업에 중점을 두는 면도 있다. 이런 것들은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한 가지의 흐름이 지금보다 더 선명한 빛깔을 띠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것은 보다 적극적이고 가시적인 저항의 흐름일 것이고, 조금 더 큰 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보는 눈일 것이다. 아마도 학생인권조례, 차별금지법 등의 제정이나 정치인의 커밍아웃이 그 부분일 것인데, 그러나 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가장 공적이라 불리는 영역에서의 커밍아웃 외에도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온건한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옳지 않은 것에 강하게 분노하고, 생애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사회의 성소수자 혐오에 대하여 강하게 저항하는 언행이 필요하다.


성소수자운동 안에서 나오는 주요 의제로는 LGBT에 대한 인식 변화 운동에서 에이즈 감염인 인권, 성소수자 노동권, 섹슈얼리티 정치, 약간의 여성주의적 성격을 띤 레즈비언 운동, 문화사업,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 등이 있다. 이 중에 자기 목소리를 직접 내는 경우가 가장 적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가장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청소년 성소수자 의제이다. 그들은 섹슈얼리티의 권한을 박탈당하는 것이 일상이고 외부와 단절된 채 학교에서 정해진 인원만을 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경우가 많으며 보호자의 뜻에 따라 가장 많이 자유를 빼앗기는 계층이기에 청소년 성소수자 의제는 더욱 드러내야만 한다. 20세 미만이 갖는 사회적 지위로 볼 때 청소년 성소수자야말로 ‘강하게 이야기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부모님의 감독 때문에 동성애 잡지를 집에 가져오기도 힘들고, 성소수자 내부의 나이주의 문제와 바(bar)&클럽 문화가 대부분의 퀴어 문화인 현실도 있으며, 늘 상 (소문에 민감하고 서로서로 연결되어있는) 몇 십 명의 정해진 사람들하고만 마주해야하는 학교도 있는 등 첩첩의 고난이 쌓여 있다.


청소년들은 성소수자 문화와 커뮤니티를 마음껏 누릴 수 없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경우가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캠페인에도 영향을 받기가 어렵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나 가정 같은 제도권에서의 특권을 포기해야 하는가의 고민에 많이 부딪치는 것도, 그리고 때로는 강제로 빼앗기기도 한다는 것도 위와 같은 사회적 배경 때문이다. 자신의 공간과 시간과 몸과 욕구에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숨기도 힘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초중고등)학생’이란 존재는 설령 그 사람이 성소수자나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정체성이 인식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 말인즉슨, ‘미성년자’가 개인의 섹슈얼리티나 젠더를 가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커서’ 여성(남성)이 되리라, ‘커서’ 이성 애인을 사귀고 결혼을 하리라는 청소년을 현재형이 아닌 미래형으로 보는 나이주의와 ‘사춘기 때 잠깐의 감성’ 쯤으로 동성애나 성별 정체성을 간주하는 (나이주의와 혼합된) 이성애중심주의 때문이다. 십대 여성에게 사람들은 ‘너희는 여자가 아니라 학생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로써 청소년은 무성화되고 무성욕적이고 무섹슈얼리티적인 존재로서만 받아들여진다. 그렇지 않은 청소년에게 대게의 경우 ‘비행’이라는 딱지가 붙기도 한다.


성소수자 학생은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가. 위에서도 여러 번 언급한 바가 있지만 자율적으로 공간과 사람들을 선택할 수 없고 가정과 학교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학생들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낼 수도, 잘 숨길 수도 없는데 숨겨야만 하며 나날이 긴장할 수밖에 없고, 부모 등 보호자나 형제자매, 교사, 또래집단으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되기가 쉬워진다. 가장 갑갑한 환경에서 정체성을 찾고 가져나가는 것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은, 아직 한국에서 발생된 적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인터넷에서 당사자에 의해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성소수자 운동권 내부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 의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커뮤니티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은 당사자 운동이 아닌 경우가 많으며, 즉 비청소년이 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커뮤니티와 문화사업에 더 국한되어 있다. 나이주의 문제 또한 다른 운동과 비교했을 때 성소수자 운동 내부에 결코 덜하지 않고 더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된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크게 변혁을 요구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이를 위한 운동에 따르는 난관, 자유와 권리를 침탈당한 청소년이란 계층이기에 오는 사회적 한계, 가정과 학교에 복속되어 드러내기 어려운 커밍아웃 문제, 운동 내부에서의 나이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 청소년이라서 더 많이 돌아오는 야유와 비난과 조롱들이 있을 테지만 말이다.


서울시에서 성정체성에 대한 청소년의 권리를 포함한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되었고, 이것은 한국 최초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법 제정 시도이다.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에서는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원인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개인의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의 비밀이 사생활로서 보장받을 권리, 가족형태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임신이나 출산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소수자 학생을 위한 상담을 받을 권리 등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학교는 소수자 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상담 창구를 만들고, 어려울 시 교육청과 연계하여 성소수자 등 소수자 학생이 차별받지 않기 위해 인권관련 적극적 조치를 취할 의무 등을 갖는다.


그러나 교육청 발의 초안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관련 조항이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 참여하에 재개정된 학칙으로, 학생의 두발, 복장, 휴대폰, 집회 등과 관련한 인권의 실질적 내용이 제한 될 수 있다는 단서 조항들이 들어가 있으며, '교육목적상' 등의 애매모호한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고, 종교의 자유에 관련해서도 '종교적인 학교를 기피할 권리'라는 소극적 조치로 제한되었다.


교육청 발의안과 주민발의안은 입법 예고 후에 병합 심의를 거쳐 재조정되어 학생인권조례 최종안으로 완성된다. 교육청이 발의를 하지 않거나 교육청 발의안이 후퇴하면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것은 어려워진다. 교육청의 최종 발의안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학생인권조례를 교육청이 발의할 지는 의문이다. 설령 교육청이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 안을 갖고 입법예고를 한다 해도 학생인권조례가 서울에서 시행될 수 있을지, 어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질지 우려되는 지점이 많다. 성소수자와 함께 가고 학생의 모든 권리가 보장되는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청소년 당사자들이 가시화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쥬리_ 동성애자인권연대 청소년자긍심팀,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