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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후원

무지개 텃밭, 동인련 사무실을 위해 작은 씨앗 하나 심자

by 행성인 2012. 8. 6.

 

정욜(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충정로 사무실로 이사온 지도 2년이 지났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 회원이 올 수 있는 공간은 처음부터 엄두내지도 못했습니다. 겨우겨우 마련한 1,000만원 보증금과 월세 50만원이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의 전재산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 촌스러운 녹색 페인트가 거칠게 칠해져 있고 문을 들어서면 음산한 기운마저 감도는 지금의 사무실은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얻은 소중한 공간입니다. 아파트 관리를 하는 옆집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리실 때마다 우리의 정체를 들키지 않을까, 너무 시끄럽다고 핀잔주시는 건 아닐까 가슴을 졸이기도 합니다. 조그만 간판하나 제대로 내걸지 못하고 누가 물어보면 ‘레인보우 출판사’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하는 것도 참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방 두 개, 작은 거실로 구성되어 있는 지금의 사무실은 좋게 말하면 아늑한 곳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열 명 이상 들어오면 회의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후덥지근해집니다. 세미나, 인권강좌, 회원 프로그램 역시 다른 단체에서 운영하는 비워진 공간을 찾아 헤매거나 돈을 지불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사무실에서 퀴어퍼레이드를 준비하는 모습. 정말 발 디딜 틈이 없다


회원들의 사건사고가 워낙 많았던 단체인지라 부동산에서 사무실 계약을 할 때마다 이번엔 2년 동안 잘 버틸 수 있을까? 아무 사고 없겠지? 라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그래도 지금의 사무실로 옮겨 오면서 동인련 답지 않게(?) 좋은 일이 많아졌습니다. 우선 회원, 후원회원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상근활동가 1인 활동비나 대표활동비 지원, 팀 활동 경비 등을 지급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물론 상근활동가 활동비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수준이고 나머지 활동비용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동인련 초기부터 운영의 어려움을 지켜본 저로서는 지금이라도 최소의 조건을 만들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돈과 사람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활동도 많아집니다. 활동은 또 돈과 사람을 부릅니다. 자발적인 회원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관심분야별 활동도 더 많아집니다. 예전부터 회원들과 함께 회원중심으로 활동을 기획해야 한다는 동인련 원칙을 예전에는 모르다가 지금이 되어서야 동인련 활동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

 

어수선한 방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테이블의 역할은 참 다채롭습니다. 어느 날엔 회의용 테이블이 되었다가, 때로 상담을 하기도 하고,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가 홍보물을 만들 때 쓰는 받침 역할도 합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보니 사람이 많을 땐 찬밥신세 애물단지가 됩니다. 테이블 다리를 분리해 잠시 벽에 기대어 놓았다가 또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면 원위치 시켜 놓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상담을 할 때도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싶거나 자료를 찾고 싶어도 사무실 방문이 쉽지가 않습니다.

 

동인련은 지금 보다 더 넓은 사무실이 필요합니다. 청소년, 에이즈, 노동권, 웹진기획, 교육 및 강좌 등 지금 펼쳐놓은 활동을 조금만 돌아봐도 새로운 활동을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무실 이전은 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독립적인 상담실, 커뮤니티룸, 작은 무지개 도서관, 정기적인 세미나․교육․강좌가 가능한 교육장. 어쩌면 동인련이 꿈꾸는 사무실은 과한 욕심도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쉼터의 역할을, 휴식을 취하고 힘이 되는 곳. 새로운 아이디어로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활동을 마음껏 벌일 수 있는 곳. 동인련 사무실은 우리의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만드는 시끌벅적한 상상공간입니다.

 

무지개 텃밭을 위해 작은 씨앗 하나 심자

 

신설동, 제기동, 혜화동, 신당동, 회기동, 후암동, 성북동, 충정로. 지금까지 동인련 사무실이 위치했던 곳들입니다. 후미진 골목, 낡은 건물, 좁다란 방. 옮겨 다닌 사무실 면적을 모두 다 합쳐도 100평이 안될 것입니다. 늘 힘들고 열악했습니다. 사무실도 항상 쫓기듯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제기동, 회기동 사무실에서는 회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고 신당동 사무실에서는 쫓겨나다시피 다른 곳으로 가야했고, 후암동 사무실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모금으로 겨우겨우 구한 곳입니다.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고 시작했던 신설동 사무실과 운영비를 아끼겠다고 겨우내 보일러조차 틀지 않았던 성북동 사무실도 기억납니다. 하지만 갈 곳 없던 성소수자들은 동인련을 찾아 왔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난로를 켜가며 잠깐 쉬었다 일을 나간 사람들도 있었고 억울한 일을 하소연 할 곳 없어 물어물어 사무실을 찾아온 분들도 계셨습니다.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114에 전화를 걸어 동인련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곳’이냐며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동인련은 가장 차별받고 멸시받는 성소수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HIV/AIDS감염인들, 트랜스젠더들이 동인련의 소중한 회원들이 되고 있습니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상담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가끔 경제적,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소수자들의 쉼터 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적은 금액이라고 망설이지 마세요. 동인련이 가꾸는 무지개 텃밭. 2013년 봄 새로운 사무실로 이전하기 위한 후원모금에 함께해 주세요. 동인련이라는 기름진 토양에 씨앗을 뿌리면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수 있습니다. 무지개 텃밭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는 공간입니다.


 무지개 텃밭으로 자라날 동인련 사무실 조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