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지개문화읽기

행복한 성장통

by 행성인 2008. 9. 29.
동인련 웹진 "너, 나, 우리 '랑'" 9월호

                                                                                -<형제>, 테드 반 리스 하우트 지음, 양철북



내 머리에 떠오른 유일한 생각은, 정상적인 남자 아이가 되는 것이었어. 여자 아이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인생이 재밌을 수도 있을테니까. 그래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너처럼 여자 애들에게 키스를 받으려고. 하지만 단지 겉으로만 그랬던 거야.

  사춘기 시절이 주는 감성의 떨림을 나는 이제까지 혼자 겪는 고통의 순간들이라고 생각했다. 사춘기는 어느 때보다 외로운 시절이고, 사람들과의 소통보다는 자기 내부의 소통에 힘쓰느라 애썼던 시절이었다. 특히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사춘기의 내 성장통은 누구보다 아프다고 생각했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나만 동성애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위 친구들은 모두 이성애자인데, 나는 이상하게, 정말 재수 없게도,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운명을 선택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위의 확률을 계산할 틈도 없이 나는 숨기고, 또 아닌 척 하면서 동성애자가 아닌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숨겨야했다. 어른이 된 것처럼 말이다.


  두 소년이 있다.

  한 살 차이의 두 소년은 형제다. 동생인 마리우스와 형인 루크는 여느 형제와 다름없는 그런 형제였다.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고, 또 싸우기도 하고, 서로 대화를 안 하기도 하고, 서로 각자의 비밀도 만들어가면서 그렇게 지내던 형제였다. 그러던 형제가 같은 일기장을 공유하게 된다.

  동생의 죽음으로 동생을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추억하려 했던 루크는 자기가 1년전에 동생에게 선물했던 일기장에 자기 일기를 쓰게 된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일기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고, 동생이 죽은 후의 일상을 동생에게 알려주게 된다.

  동생이 앞서 써놓은 일기를 안보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결국 동생의 일기장을 열어보게 된 루크는 동생이 자신과 같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게 된다는 것보다는 인정하게 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루크와 마리우스는 서로 생전에 둘이 서로 동성애자인 것을 알았지만, 사회적 관념상 루크는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자신이 사랑했던 알렉스와의 입맞춤과 애무를 통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알렉스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동생의 인정방식은 일기를 통해서 형인 루크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형인 루크가 결국에는 자신이 일부러 눈길을 다른 방향으로 두고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동생과의 소통을 통해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동성애자임을 인식하고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두 형제의 부모들은 그들을 조건을 달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


  이 형제의 일기장 대화에서 나는 사춘기 시절의 내가 얼마나 혼자서 헤매었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같은 문제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그와 소통했다면, 내가 정체성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방식은 또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형제는 소통의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해갈뿐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의 크기도 키워간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지내면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느끼면서 지낸 형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 자연스럽게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 동생의 대화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들을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우리 사회는 종종 아무렇지 않게 부정적인 것들과 긍정적인 것들을 가르고, 그것들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내고,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교육하기도 한다.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교육들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상처를 안고 성장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또 그들이 이 형제처럼 소통할 대상도 없이, 부정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긍정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에게 훌륭한 소통의 문이 될 것 같다. 동성애가 정말 어떤 관념적인 해석을 떠나서 그냥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해주는 것도 놀랍고, 우리의 성장통도 함께 숨쉬고 함께 이야기하면 좀 더 행복한 성장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고맙다.

  마리우스와 루크가 책 속에서라도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소통했으면 한다.




욱 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형제>, 테드 반 리스 하우트

-주로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쓴 작가는 우울한 유머가 바탕에 깔려 있는 소설과 시들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정체성을 추구한다. 특히 <형제>는 동성애와 죽음의 문제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 아름답고 슬픈 소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신홍민 옮김, 양철북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