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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171

[LETSSAY] 4월의 렛세이 렛세이어 빨강 춤 낡은 집에는 먼지가 더 빨리 쌓이는 것만 같다. 수치화된 사실도 아니고, 관련 연구가 진행된 적도 없고, 내 지인 중 하나는 그럴 리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기까지 했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낡은 집의 창문이, 그 집의 오래된 거울이, 그 집의 텔레비전 화면이 더 뿌옇고, 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런 집에서 먼지는 얹혀 지내는 백수 삼촌처럼 불편하게 집안 곳곳에 들러붙어 있다. 어렸던 나는 스무 살이 되면 당연히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트콤 논스톱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가구가 있는 원룸에서 아침에는 모닝커피를 마시며, 변신하는 세일러문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아름다워 질 거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달콤한 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뭐 그런, 장.. 2015. 4. 2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9. 산 - 시간, 낙하하는 長篇小說 金 飛 19. 산 - 시간, 낙하하는 ‘밤’이라고 말하면 세상은 더욱 어두워진다. ‘태양’이라 말하고 하늘을 보면, 동그란 그것은 더욱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소나기’라고 말하며 맞는 빗방울은 더 거세고 찌르듯 아프다. ‘바다’라고 말하면 거대한 물덩어리는 더 막막해지고, ‘새’라고 말하면 하늘을 나는 그 날갯짓이 부러워진다. 어쩌면 ‘사랑’이라고 말하니 그건 그래서 더 달콤해졌던 건지도 모르고.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꾸 밀려오는 이 길고 나른한 잠이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이 그것에 ‘병’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기에. “뭐 했어요, 오늘?” 그녀는 사랑이란 말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집에 있었어요.” 그녀가 기다리는 말은 사랑보다 먼저 미안한단 말일까? 그건 무얼 .. 2015. 4. 2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8. 새 - 향기로운, 지독하게 長篇小說 金 飛 18. 새 - 향기로운, 지독하게 나를 두고 ‘지독하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던 건 열 일곱 제일 친했던 친구 S의 장례식 때부터였다. 나 같은 것에게 살아남을 방법은 공부 밖에 없을 것 같아 지독하게 공부를 해 외국어고등학교에 갔지만, 항상 괴리감이었던 학교의 존재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다른 모양의 교복으로 성별이 나뉘었을 뿐, 나에게는 마찬가지 인형이었고 똑같은 벽이었다. 물론 그 벽은 내 것이었다. 내 앞에 모든 사람들을 향해 떠밀었을 뿐 생각해보면 그 벽을 만들고, 숨고, 넘을 수 없다고 단정지은 것은 바로 나였다. 내가 만든 내 벽이었고, 오직 나만 둘러싼 벽이었고, 빈틈도 없이 나 하나만 꽁꽁 가둔 원통형의 굴뚝같은 벽이었다.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고, 몸조차.. 2015. 4. 12.
국내 퀴어 팟캐스트 디제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3편 어나더미, 바람(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최근 몇 년 동안 퀴어 관련 콘텐츠들이 증가했습니다. 최근 1~2년 동안 각광받는 콘텐츠는 바로 '퀴어 팟캐스트'입니다. 말 그대로 퀴어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입니다. 청취자들과 가깝게 이야기와 감정을 공유하는 퀴어 팟캐스트 디제이분들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 했습니다. #5 - 디제이 너 는 과거 인기 퀴어 팟캐스트 의 메인디제이 에소님이 따로 독립하셔서 만든 1인 데일리 퀴어 팟캐스트를 지향하는 방송입니다. 2015년 2월에 시작됐고 2015년 3월 현재 2화까지 업로드된 상태입니다. http://www.podbbang.com/ch/8879 다양한 퀴어 문화콘텐츠 사이에서 '팟캐스트' 라는 플랫폼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 2015. 3. 29.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7. 산 - 생(生), 이름이 없는 長篇小說 金 飛 17. 산 - 생(生), 이름이 없는 나의 생에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말할 수 있는 그들이 나는 부러웠다. 이름이 없기 때문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언제든 입을 벌려 쏟아내기만 하면 나의 생은 몇 개의 글자로 각인되어 더 이상 흐릿하고 모호한 삶은 아닐 것이다. 안다, 나는 안다. 그런데도 이름이 없거나 불리기 쉽지 않은 그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이, 나는 꽤나 부러웠다. 자꾸 잠이 쏟아졌다. 여러 개의 손이 뒷덜미를 끌어당기는 듯 계속 침대 위에 눕고만 싶었다. 오랜만이었다. 사랑 덕분에 조금씩 그 무기력의 공동(空洞)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믿었는데, 나는 반환점을 돈 사람처럼 다시 또 아래로 휘어진 어느 경사길을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 2015. 3. 29.
국내 퀴어 팟캐스트 디제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2편 어나더미, 바람(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최근 몇 년 동안 퀴어 관련 콘텐츠들이 증가했습니다. 최근 1~2년 동안 각광받는 콘텐츠는 바로 '퀴어 팟캐스트'입니다. 말 그대로 퀴어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입니다. 청취자들과 가깝게 이야기와 감정을 공유하는 퀴어 팟캐스트 디제이분들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 했습니다. #3 - 보리 은 따뜻한 팟캐스트 방송입니다. 2014년 4월에 시작했으며 2015년 3월 현재 15화까지 업로드 되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7447 방송이 진행되는 전체적인 방향이나 포맷은 어떻게 되시나요? 팟캐스트 구성은 오프닝 멘트, 오프닝 곡,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보리의 근황, 토크, 엔딩 멘트, 엔딩 곡이에요.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각.. 2015. 3. 22.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6. 데리다 - 디페랑스, 세상에 없는 長篇小說 金 飛 16. 데리다 - 디페랑스, 세상에 없는 "뭐야, 이 분위기? 다들 왜 이래, 재미없게?" "조용히 있어, 너는. 그래도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평소처럼 끼 떨고 그러는 모습 보이고 싶냐? 오늘은 좀 점잖게 잠자코 있어." "어머머, 이 언니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땍땍하게 굴어? 그런다고 언니의 기갈이 감춰질 수 있을 것 같애? 그런다고 감춰질 거였으면 언니가 이 바닥에 이렇게 오픈해서 나올 수 있었겠어? 일반들 사이에서 포비아인 척하며 살지. 형 외모만 보면 완전 성질 더러운 포비아같애, 그거 알아?" "이게 정말? 오늘은 쫌 그만하자, 응? 새로 오셨잖아, 새로! 그러니까 우리 모임을 위해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좀 그렇잖니, 안 그러냐?" "아야야, 왜 발을 밟아? 씨, 우리 원래 이.. 2015. 3. 22.
[LETSSAY] 3월의 렛세이 빨강단숨 붉은 커튼, 닳은 의자, 두꺼운 사진집, 나무 창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카페 구석구석 오래된 담배 냄새가 배어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테이블에서 글을 쓰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유독 예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었다. 기타 줄을 퉁기면서, 스케치를 하면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내뱉은 하얀 날숨에는 각자의 꿈이 한 모금 씩 담겨있었다. 그러니까 그 꿈들이 카페 구석구석마다 진하게 스며들어서, 내 꿈도 한 번 뱉어보고자 담배를 더 피워 댔던 거다. 나는. 처음 담배를 피웠던 곳도 카페였다. 열다섯 살, 여중에 다니던 때였다. 우연히 짝이 되어 친해지게 된 아이는 여자 친구가 있다고 고백해왔다. 그렇게 어느 날 기어이 학원을 땡땡이치고 그 아이의 손에 이.. 2015. 3. 15.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5. 새 - 달라지는 것들, 사랑하면 長篇小說 金 飛 14. 새 - 달라지는 것들,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나면, 잠시 세상이 정지한다. 바쁘게 머릿속을 유영하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오직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 하나만, 등대처럼 새빨갛게 거기 섰다. 언제나 그건 나에게서 멸종된 언어였다. 가족이나 형제, 혹은 친구들의 이름 뒤에 붙이는 사랑 따위도 꺼내어본 적 없어, 내가 아는 언어 속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TV 속에서, 책 속에서, 사랑을 보고 읽었을 때, 나는 전시물 앞에 선 것처럼 멀찌감치 떨어졌다. 한 번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안기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거기 유리벽 안에만 있던 사랑이, 아무리해도 가까워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던 사랑이 하나의 몸으로 마침내 나에게 안긴 것 같았기 때문에. 물 .. 2015. 3. 15.
국내 퀴어 팟캐스트 디제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1편 어나더미, 바람(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최근 몇 년 동안 퀴어 관련 콘텐츠들이 증가했습니다. 최근 1~2년 동안 각광받는 콘텐츠는 바로 '퀴어 팟캐스트'입니다. 말 그대로 퀴어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입니다. 청취자들과 가깝게 이야기와 감정을 공유하는 퀴어 팟캐스트 디제이분들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 했습니다. #1 - 리타&철수 은 퀴어 팟캐스트계의 대모와 같은 방송입니다. 메인 디제이 리타님과 서브 디제이 철수님의 솔직하고 발랄하고 유쾌한 은 2013년 2월부터 시작, 2015년 3월 현재까지 총 30화의 방송이 업로드 됐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5610 다양한 퀴어 문화콘텐츠 사이에서 '팟캐스트' 라는 플랫폼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리타 - 미드 .. 2015. 3. 15.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4. 산 - 세이브, 오토매틱 長篇小說 金 飛 14. 산 - 세이브, 오토매틱 지나고 보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일들이 있다. 내가 도착하려고 했던 곳이 아닌데, 흘러가듯 따라가다 보니 여기가 된 것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왔던 길을 되짚기보다는 떠밀린 여기 이 자리에서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을 찾느라 바빠진다. 어떻게든 되돌리려하지 않고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들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옳은 반성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뒤틀려버린 그녀와의 관계를 두고 화가 났다가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끄집어내 늘어놓기 바빴다. 그녀에게 사과를 하려던 생각이나 마음가짐까지 어리석게 느껴져, 그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배려이자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넘치는 예의였다고 생각해버렸다. 고작 육 개월 아닌가? 몇 번 되지 않던 이.. 2015. 3. 1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3. 새 - 구해줘, 겁이 나 長篇小說 金 飛 13. 새 - 구해줘, 겁이 나 사람에게는, 각자 주어진 몫이 있다고 믿었다. 삶이라는 시간이 저마다의 길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라면, 어떤 골을 만나 휘어지고 고였다가 또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그런 게 삶이라면, 내 몫의 삶에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너비와 다른 방향의 길이 있을 거라고. 그러나 시간의 물살에 나를 내맡겨 흘러가다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높고 가파른 벽에 부딪히면서, 나는 겁이 났다. 그 벽의 크기와, 질감과, 심지어 내가 그 벽에 왜 부딪혔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뭐지, 나는 버둥거리는 게 다였다. 제자리를 뱅뱅 돌며 허우적거리는 나는, 벽 아래 내내 그러고만 있는 힘없는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내 스스로 손을 내밀었던 것은,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2015. 3. 4.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2. 데리다 - 패밀리, 가족 혹은 長篇小說 金 飛 12. 데리다 - 패밀리, 가족 혹은 “정말이야? 정말 헤어진 거야?” “뭘 자꾸 물어? 사람이라는 게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는 거지. 그게 뭐 별거냐?” “그래도 이 누나 이번에는 좀 달랐잖아요? 매번 누가 있기는 했던 것 같았는데, 이렇게 우리한테 그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적은 없었거든요.” “걔네들은 원 나잇이었고… 그냥 즐기려고 만나는 사람 이야길 뭐 그렇게 상세하게 할 게 있냐?” “놔둬라, 쟤네들은 아직 그런 거 모를 때다. 키스하면 사귀고, 같이 자면 결혼해야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애들한테 그런 이야기하면 충격 받아.” “그래서 형은 괜찮다 싶으면 일단 한 번 자보고, 악수하듯 키스하고… 뭐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 “저게 또 슬슬 사람 성질을 긁기 시작하네?” “너야말로 .. 2015. 2. 24.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1. 산 - 파르마콘, 시간의 長篇小說 金 飛 11. 산 - 파르마콘, 시간의 변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 싫었다. 변화는 반드시 있다, 존재한다, 실재한다. 설령 내가 수십 년의 우울 속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살았더라도,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변화는 있고, 있어야하고, 있을 것이다. 휴대폰을 움켜쥐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배신감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은 변해놓고, 그래서 살아남아 놓고서, 변하지 않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너무도 허무하고 절망스러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둘러싼 여기가 너무도 슬퍼서. 끝내 변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곤두박질치고 말 어떤 생이란 게 너무도 안쓰러워서. 문 밖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또 한 번 피를 뒤집어 쓴 아들의 몸뚱이를 발.. 2015. 2. 15.
[LETSSAY] 2월의 렛세이 렛세이어 빨강봄꽃작별 그녀는 외쌍꺼풀이었다. 나는 쌍꺼풀이 없는 그녀의 왼쪽 얼굴을 좋아했다. 내 나이, 그녀의 나이 열일곱, 나른했던 봄날, 아무도 찾지 않는 새하얀 자리들, 밀려 내려온 꽃들이 우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돌았던 것 같다. 그녀가 내게 입을 맞췄던 순간. 그녀와 나는 짝이었다. 봄눈이 내릴 때부터 꽃이 만개할 때까지 나란히 앉아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조잘대다 보니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내가 들은 대답. “너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아.” 지은 지 오래된 학교의 복도는 한 사람만 걸어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음의 크기가 서로 같지 않음에, 그 간격에, 그 높은 벽에, 그 거리에 순식간에 내 마음은 위태롭게 삐걱거렸다.. 2015. 2. 14.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0. 새 - 모르겠어, 행위 수행적 언어는 長篇小說 金 飛 10. 새 - 모르겠어, 행위 수행적 언어는 “모르겠어.” 그는 뒤로 걷고 있었고, 나는 앞으로 걸었다. 나는 그를 향해 다가갔지만, 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나 우린 같은 쪽으로 걷는 중이었다. “정말이야, 이젠 모르겠어. 왜, 모르면 안 되는 건가? 모를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계산을 했던 것도 아니고… 내가 손에 쥔 결과라는 게 틀릴 수도 있는 거잖아? 틀렸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고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그냥 틀린 채로 내버려두고서 다른 걸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거고.” 뒷걸음으로 걷는 그는 카메라를 들어 나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고 그는 나에게서 멀어지면서, 사진 속 .. 2015. 2. 8.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9. 산 - 괴물, and 長篇小說 金 飛 9. 산 - 괴물, and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확신도 없고, 자신도 없고, 제 존재마저 잃어버린 나에게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런 너에게, 미래는 없다고. 종말은 미래가 아닌가, 죽음이 현재라면 큰일 아닌가. 나만 살아남고, 우리만 살아남기를 꿈꾸는 미래는 온전히 미래인가. 현재를 사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면, 미래 따위 없어도 그만 아닌가. 확신이나 자신이 없어도 살고 있다면 이미 존재 아닌가 말이다. 나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하는 그들의 미래를 신뢰하지 않는다.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 앞에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그거 하나다. 미래를 믿는 그들을 믿지 않는 것. 고백하자면, 그럼에도 나는 두려웠다. 확신이나 자신이 없는 내가 이상하지 않았는데,.. 2015. 2. 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8. 데리다 - 세계, 호출하는 長篇小說 金 飛 8. 데리다 - 세계, 호출하는 “비가 오면, 이소라가 생각나지 않아?” “나 같아도 좀 섭섭했겠는데, 뭘.” “누나, 누나. 비 오면 이소라 노래 생각나지 않느냐고? ‘제발’ 부르면서 울먹이는 그 언니 모습이 아직도 선해. ‘이소라의 프로포즈’할 때… 그때 그 언니 그 노래 부르면서 자꾸 눈물 나서 못 하겠다고 무대에서 여러 번 내려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되었던 적 있었잖아, 기억 나?” “그래, 그랬을 수도 있지. 보고 듣는 것하고, 실제로 마주하는 건 꽤나 큰 차이니까. 차이가 있다고 듣는 것과도 또 훨씬 큰 차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그 사람도 자신도 모르는 편견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자격지심 같은 게 더해질 수도 있었겠지.” “그건 말 그대로 자격지심 아니에요? 그건 개인이 .. 2015. 1. 1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7. 새 - 사랑, 사람이라는 말의 오기(誤記)인 長篇小說 金 飛 7. 새 - 사랑, 사람이라는 말의 오기(誤記)인 언젠가 편지에 글자를 잘못 쓴 적이 있었다. 나는 분명 ‘사람’이라고 썼는데, 편지를 받은 사람은 그걸 ‘사랑’으로 읽었다. 가령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라고 나는 썼는데, 그는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라고 이해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썼는데, 그는 ‘사랑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였다. ‘나도 사람이야.’라고 썼는데, 그는 ‘나도 사랑이야.’라는 고백을 닮은 말로 읽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내 엉망인 손 글씨 탓이었다. 한글의 ‘미음(ㅁ)’을 끊어서 쓰지 않고 한 번에 이어서 썼기 때문에, 조금만 성급하게 손을 움직이거나 흘려 쓰면 ‘사람’은 영락없이 ‘사랑’이 되어버리.. 2014. 12. 28.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6. 산 - 괜찮아, 동그랗지 않아도 長篇小說 金 飛 6. 산 - 괜찮아, 동그랗지 않아도 나는 비어 있었다. 구멍이 난 봉지, 찢겨진 상자, 깨진 유리창.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오래도록 텅 비었다. 구멍이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비어있는 나를 채우려고만 했고, 새어나가는 것들 때문에 불안하고 조바심 났다. 스물 네 시간 나를 지배하는 내 안에는 균열이 있었다. 볼록 튀어나온 것이거나 날카롭게 깨진 것이거나, 너덜거리는 것이거나 지저분한 것이거나, 손끝에 만져지는 그것을 통해 내 삶이 빨려나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두려웠던 건 그 틈이 내 몸을 따라 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완결된 구(球)가 아니었다. 그리다가 만, 흔들리거나 뒤틀린,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닌 어쨌거나 동그랗지.. 2014.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