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행성인 사무실에서는 행성인 소모임 ‘퀴쓰(퀴어들의 스터디)’ 가 주관한 ‘핑크머니(Pink Money)’에 대한 수다회가 있었습니다. 퀴쓰에서는 올해 초부터 맑시즘 스터디를 하며 성소수자 해방과 맑시즘의 연관 관계에 대해 공부를 해왔는데요, 스터디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수다회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핑크머니와 핑크워싱(Pink Washing)이 어떻게 성소수자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어떻게 전망해볼 것인지 같이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5월 황금 연휴의 시작임에도 3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여 이 주제에 대한 성소수자들의 큰 관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작은 패널 현우 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핑크머니가 무엇인지, 그것이 성소수자들과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조 발제였습니다. 발제문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해서 펼쳐주세요.
발제자, 패널: 현우 (퀴쓰 회원, 정의당 성소수자위회원)
장면1.
작년 11월 5일, 신나는센터는 ‘성소수자와 기업: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핑크 산업의 전망과 비전’이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 강연회에 초대된 우승용 러쉬 코리아 상무는 “(성소수자) 유명인이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라고 발언하며 논란을 야기했다. 우승용 상무는 국내 모 유명 성소수자 연예인의 사진을 모자이크해 보여주며 “유명인사가 행동을 조심해서 성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며 “티팬티 입고 엉덩이 까고 돌아다니면 다른 분들이 불편해할 것이다. 대중들이 (유명인사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것 또한 (성소수자들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발언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숨기고 대중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지 말아야한다는 성소수자 차별적 발언이었기에 논란이 일었고, 결국 강연은 30분 만에 중단되었다. 이날 강연은 성소수자 우호적인 마케팅과 캠페인, 정책을 시행 중인 기업을 조명해 성소수자와 기업에 관해 분석해보자는 취지로 진행된 것이었기에 우 상무의 발언은 소비자들에게 더욱 충격을 주었다.
작년 5월, 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노동자연대의 퀴어퍼레이드 부스 선정을 취소했다. 노동자연대의 ‘강남역 살인 사건’ 기사가 ‘페미니즘을 폄하하고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에 대해 매우 낮은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동자연대의 ‘강남역 살인 사건’ 기사는 논란의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의 노동자연대 부스 선정 취소는 갑작스러웠다. 노동자연대는 이와 관련하여 “조직위원회는 노동자연대처럼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일부인 마르크스주의 단체의 부스는 배제하면서도,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의 대사관 부스는 선정하는 이중잣대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전 CEO의 숱한 성희롱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성차별적 광고로 유명한 ‘아메리칸 어패럴’ 같은 기업이 이미지 변신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퀴어문화축제를 활용하는 것이 용인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에도 조직위원회가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핑크머니와 성소수자 인권
핑크머니는 게이 커뮤니티의 구매력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게이들의 소비를 일컫는 말이다. 서구의 경우, 게이 커뮤니티의 경제적 능력과 구매력이 증대되면서 게이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적지 않은 기업들은 게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마케팅 전략, 캠페인, 기업 내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들은 핑크머니의 수혜를 보게 된다.
성소수자들은 핑크머니로 일컬어지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구매력을 통해 사회 내에서 가시화될 수 있고, 핑크머니를 경제적 압박수단으로 삼아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일정 부분 없앨 수도 있다. 그러나 핑크머니를 둘러싼 사회적 양상들은 핑크머니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마케팅과 캠페인, 기업 내 정책을 통해 핑크머니의 수혜를 입는 기업들은 근본적으로 핑크머니가 많은 이윤을 남겨다 주기에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취한다.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보이는 기업들, 이른바 ‘핑크산업’ 기업들은 단순히 게이들의 핑크머니를 통해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통해 획득한 ‘착한 기업’ 타이틀로 내부적인 인권문제를 은폐하고, 긍정적 기업 이미지를 획득해 장기적인 이윤을 얻는다. 핑크 산업 기업들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는 당위적인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보다는 기업들의 이윤획득 욕구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핑크산업 기업들은 핑크머니가 충분한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고, 오히려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가 이윤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과감하게 성소수자 친화적 정책을 철회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핑크머니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기여하는 바도 있지만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 철폐라는 당위적인 문제를 기업의 경제적 이윤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문제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핑크머니가 성소수자 인권의 문제를 경제적 이윤에 따른 문제로 전락시키는 양상은 핑크머니의 개념적 범위에서부터 드러난다. 핑크머니의 주체이자, 핑크머니를 통해 가시화되는 주체가 성소수자 그룹 중 게이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 등 다른 성소수자들이 핑크머니를 통해 가시화, 주체화되지 않는 모습은 성소수자 그룹 내부에서도 위계적으로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문제를 반영한다. 교차적인 사회적 차별 속에서 게이들은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보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게 되고, 핑크머니라는 권력을 얻게 된다. 소위 말해 ‘돈이 되지 않는’ 다른 성소수자 그룹들은 핑크머니라는 권력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핑크머니가 확장되고 그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핑크머니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의 인권 문제가 비가시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핑크머니와 핑크워싱
핑크워싱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마케팅이나 정치적 전략을 목적으로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언사, 정책을 동원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홍보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핑크워싱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이용해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정책은 대표적인 핑크워싱으로 지적받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인권영화제를 비롯한 영화제에서 ‘핑크워싱에 반대한다’는 기조 아래 보이콧된 이스라엘의 인터섹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3의 성’은 이스라엘 정부의 핑크워싱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이스라엘 정부는 성소수자 우호적 정책을 펼치고 성소수자와 관련된 영화들을 제작, 배급함으로써 중동에서 유일하게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전파하고, 전 세계적으로 ‘문화 다양성을 장려하는 민주 국가’라는 이미지를 유포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정작 이스라엘 내부의 성소수자 인권상황은 열악하다는 점,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통해 이스라엘이 대외적으론 인권을 존중한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핑크워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 정부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정책은 자신들의 반인권적 범죄와 행위를 핑크색(성소수자 이슈)으로 덧칠하는데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핑크머니를 통해 양산되는 핑크산업 기업들도 핑크워싱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다수의 핑크산업 기업들은 정작 기업이 행하고 있는 노동착취나 인권유린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성소수자 인권 친화적인 마케팅과 정책을 펼침으로서 경제적 이윤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핑크워싱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지지를 표명하며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마케팅과 내부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의 제3세계 국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신들의 기업경영 방침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인권친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그 어떤 기업보다도 적극적으로 제3세계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민낯이다.
이처럼 핑크워싱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내세워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사회의 다른 약자를 향해 행하는 착취와 억압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러나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핑크워싱은 무엇보다도 성소수자 억압의 주요기제인 자본주의의 문제를 은폐하고,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 기능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다고 바라보는 맑시즘의 시각에서 성소수자의 해방은 자본주의의 분쇄를 통해서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핑크워싱은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자본들의 착취와 억압을 은페함으로서 교묘한 체제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원적인 성소수자 해방의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핑크머니, 핑크워싱과 성소수자 인권운동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다고 바라보는 맑시즘적 시각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현실에 부닥친 성소수자 차별과 억압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동시에 근원적인 성소수자 해방의 운동 전략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항상 눈앞에 닥친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 하지만 역으로 현실의 문제에만 빠져 근원적 문제의 해결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게 된다면 사회변화는 요원해진다는 것이다.
핑크머니라는 성소수자들의 경제 권력과 수단은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성소수자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핑크머니라는 수단을 성소수자들이 마냥 반기고 활용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체가 큰 한계를 지니고 있을뿐더러, 핑크워싱으로 변질되어 성소수자 의 근원적 해방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어떠한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갖든 자유로운 해방사회를 꿈꾸는 성소수자들은 이러한 면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전략과 방식, 그 수단을 세밀히 검토하고 고려해야할 필요가 있다.
발제 후에는 퀴쓰에서 수다회를 마련하며 준비한 질문에 두 조로 나뉘어 이야기를 나누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 oo 머니,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여성, 노인, 성소수자)에 맞춰져 있는데 이것의 의미가 무엇일지 고찰해보는 것이었는데요, 자본주의 시장에서 시장 확장의 벽에 부딪히자, 그동안 호명하지 않아서 숨겨져 있던 대상들을 호명하여 타겟팅 하는 과정이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노인을 대상으로한 실버머니,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핑크머니는 그런 측면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죠. 또 다른 의견으로는, 소수자들이 고용 등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는데, 핑크머니가 약자들을 대상화하는 측면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또 이 기회를 통해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시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활발해진 것에 대해 이야기 한 분도 있었습니다. 텀블벅 등의 플랫폼을 활용해서 활동하는 경우를 예로 들며 성소수자 기업인들의 측면에서 보면 발전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냐는 의견이었지요.
참여자들의 의견에 대해 패널인 현우님은 자본주의 시장 측면에서 핑크머니는 가시화 되지 않았던 시장 영역에 대한 확장이고, 사회적으로는 착취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또 다른 패널인 행성인 사무국장 나라님은 전반적인 이야기에 공감하며 자본주의와 차별이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누군가를 착취하는 구조 자체가 차별적이기도 하고, 착취 받는 사람들을 다시 갈라놓으며 차별을 가리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에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실현하는 속에서 자긍심이라든가 자기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던 욕구를 실현하는 지점도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굶어 죽고 빈곤의 늪에 빠지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자기 정체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표현되는 것이죠. 우리는 성소수자로서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계급적으로는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는 것 만큼 핑크머니에도 자본주의가 복잡하게 얽혀 작동하고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핑크 머니에서 핑크가 누구를 호명하는 말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게이인가? 레즈비언인가? LGBT 모두인가? 누구는 포함되고 포함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요, 이에 대해 모인 사람들은 이성애자 부부보다 경제력이 클 가능성이 높은 게이 커플 또는 가시화된 대상으로서의 성소수자나 구매력이 인정된 대상이 핑크로 호명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패널인 현우님은 수도권에 사는 게이로 상징되는, 소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소비할 수 있는 사람만이 문화적으로 해방될 수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 같다며 씁쓸함을 표현했지요. 나라님은 핑크라는 단어의 역사성을 짚어주셨는데요, 핑크머니는 80년대부터 나왔는데 그 당시에는 LGBT라는 말도 없었으며 게이라는 단어 자체가 트랜스젠더와 구분해서 쓰이지도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게이들을 소비자로 지칭한다고 이야기되고 있지만 현재도 그러한지는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떤 소수자 집단들이냐에 따라 차이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핑크가 누구인가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확장을 하기 위해 활발하게 작동을 하는 중에도 체게바라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닐지 의견을 밝혀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에 왜 반응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한계가 있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억압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와 연결해서 좀 더 고찰해보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핑크머니를 핑크워싱의 일환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들, 구글이나 미국 대사관이 현재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며 성소수자 친화적인 기업이나 인권 국가로 이미지화하지만 그것이 핑크워싱을 통해 다른 억압과 차별을 가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노동절 전날이었기 때문에 노동절 집회에 참여하면서 차별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대해서도 같이 비판하자며 마무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