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노동]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 발표회 후기
소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3월 28일 저녁, 전국금속노동조합 4층 회의실에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https://kilsh.or.kr/)와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퀴어동네(https://queerdong.net/)가 함께한 성소수자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연구 발표회가 열렸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 사태 이후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연일 지속되고 있는 상태다. 글이 발행될 때쯤이면 이러한 요구대로 내란수괴가 파면되고 내란이 종식되며 거리투쟁도 끝난 상황이 될까? 그러길 부디 바라지만, 결과가 어찌하든 분명한 것은 소위 '내란성 스트레스'와 불면증이 계속되는 중에도 노동자들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동을 계속하고 앞으로도 그러리란 점이다. 일터 안팎에서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쉬이 쉬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연구자의 정리 발표를 통해 그간 국가 통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퀴어노동권포럼 등 몇몇 뜻있는 곳에서 이뤄진 과거 조사들과 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의 인터뷰를 통해 보아온 차별 실태를 연결지을 수 있었다. 자료들은 수년에서 십년 가까운 시간차가 있음에도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는 현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 인구의 정신건강은 국가통계조사의 일반 인구와 비교해 매우 높은 비율로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 안에서도 일터 진입 과정에서 더 많은 좌절을 경험하는 비시스젠더 인구와 시스젠더 인구간의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다.(구체적인 내용은 글 말미에 붙인 연구보고서와 관련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차별에 대한 해법으로 불필요한 성별 기재나 구분을 없애는 조치, 실효성 있는 교육을 일터에 요구하거나 차별금지법을 언급하는 것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체감되는 변화가 느리고 더디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연구가 계엄 이전부터 진행되었음을 고려할 때, 계엄 이후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내 경우 코로나때 벌어진 혐오나 군 동성애자 색출 사건 등 세상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일상에 큰 지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노동자로서의 삶도 포함된다. 요즘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인권위원장과 서부지법 폭력사태를 비롯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계를 50년은 더 되돌리려고 하는 극우 세력들, 한국에 늘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소식들 앞에서 적잖은 불안을 느낀다. 상담과 약물, 거리두기와 활동 등 갖가지 방법으로 또다시 버텨내고 이 또한 지나가기를 기다리지만, 결국 소진되는 건 지갑과 잔여 휴가 같은 내 자원이다. 그러고 보면 소수자에게 사회 분위기는 이처럼 ‘먹고사는 문제’임이 분명한데, 차별금지법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라는 건 대체 무슨 망언일까.
먹고 사는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나는 요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이전 직장들은 운좋게도 성소수자는 물론 페미니즘과 친화적인 공간들이어서 성적 지향은 물론 정치적 지향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었던 곳들이다. 그렇게 서너 곳을 다니다 보니 이제는 아주 예전처럼 내 성적 지향을 드러내지 않고 지낼 자신이 없다. 경력이 좀 쌓여있어서 속모르는 사람들은 내 능력이면 마음만 먹으면 직장을 구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큰 소수자 혐오가 벌어졌을 때 휴가를 쓰는 과정이나 일상에서 간접적으로라도 지지를 받아본 나로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파트너의 유무나 일상사를 얼만큼 공유할수 있는지를 제쳐놓고라도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조건인지라 직장을 찾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채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경우들에 비하면 배부른 얘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연구의 결과를 많은 곳에서 참조하고, 더 나은 직장을 만드는 단초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
더디더라도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건강의 관점으로 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고, 함께하는 퀴어 대상의 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가 있다는 사실. 토론에서 노동조합의 더 실효성 있는 역할을 제안하는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의 존재와, ‘~~ 하지 말자’가 되는 금지를 넘어서 긍정의 언어를 발명하고, 연구에서 일부 드러난 것 같은 더 많은 좋은 사례를 알려내자는 지오의 더 나아간 제안. 발표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재빠르게 주류 매체에서 기사화된 사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창밖에 보이는, 2017년의 외로웠던 무지개 깃발과 대비되는 수많은 광장의 무지개와 트랜스 깃발의 물결들, 그리고 무지개를 향한 광장과 투쟁 현장들의 환대는 다음 세계를 기대케 한다. 어쩌면 일터를, 사회를 변화시킬 책임있는 이들만 출항 직전인 배의 닻처럼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변하지 않고 놓여있는 것이 아닐까?
※ 참고
- 성소수자 노동자 4명 중 1명 우울 증상…“일터 내 차별 영향” - 한겨레. 2025-03-28
- 성소수자의 직장 동료를 위한 일터 가이드북 — 성소수자의 동료가 될 당신에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연구보고서]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