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성결혼

동성 결혼 소감문: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by 행성인 2015. 6. 10.



2015. 5. 23.

찰스+프랜시스 까야사

 



 

결혼을 앞두고 다시금 동성애(자)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감사

 

늘 호모포비아적 사회와 교회 환경에서

성소수자를 편들어주시는 퀴어 크리스챤 형제∙자매 여러분,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고 성소수자와 연대해주시는 모습으로,

저에게 목숨을 거는 정의로운 싸움을 알려주는 장애운동 식구들,

언제나 집에서 격하고 말썽투성이 막내인 저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먼 필리핀에서 막둥이 찰스의 결혼을 축하해주러 한걸음에 달려오신 새로운 나의 필리핀 가족들,


레인보우 깃발아래 손잡고 걷는 퀴어 벗님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성소수자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

저희 결혼식에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신랑바보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이주노동자로 와서 일도 열심히 하고 세금도 내고 살아온 신랑 찰스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중적 낙인이 찍힌 사람이었고,

자신 스스로 '나는 불법사람' 이라 칭하며 커밍아웃하는 모습에 안쓰럽고,

한국 정부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국 사회에 기여한 자랑스러운 이주노동자이니 자긍심을 갖자”고 격려했지요.


상처를 입고도 의료보험이 없어 악화되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는 모습이 참 처량하고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다 정이 들었고 사랑한다 고백했지요.


우리가 만나서 처음으로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 My love, don’t cross that river’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 ‘할머니, 할아버지’ 스토리를 농담처럼 이야기 많이 했지요.

우리 한날 한시에 함께 하늘나라로 손잡고 가자고요.

요리도 잘하고, 청소와 빨래도 잘하고, 베란다에 화분과 텃밭도 잘 돌봐서 전업주부가 되고자 했던 제 꿈을 접게 해줬습니다..


결혼식 준비에 필요한 돈을 벌러 갈 때 아쉬워서

밥상머리에서 함께 울고,

제가 일하는 대학에서 늘 머리 아프고, 추위 알러지로 약을 달고 산다고 울먹이며

매일 밥 많이 먹고 살찌라고 잔소리해주는 신랑입니다.


100일째 되는 날 앞으로 천년을 함께 살자고 메세지를 보내주고,

기념으로 직장에 스파게티를 배달해온 배달의 왕자 입니다.

 
 

동성결혼=사랑, 분노, 저항


결혼식을 앞두고

밤마다 베란다에서 담배 한대 물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성애자는 한국 사회에서

학교와 직장 등 모든 인간관계 조직에서 숨어 유령처럼 살아가야 하고

연애와 결혼은 불경한 짓으로,

결혼을 해도 의료, 재산, 시신처리, 직원복지, 사회복지 등의 모든 법적 권리에서 배제 당하는,

자신이 속한 교회나 절과 같은 종교 공동체 기관에서 결혼식을 할 수 없는,

그렇게 비참한 존재 입니다.


결혼식은 마냥 설레였지만,

차별과 억압에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성소수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 소중한 존재이거든요.

자신의 노동으로 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도 제 신랑의 나라 필리핀에서도

동성애와 동성결혼은 불법도 아니지만 또한 합법도 아닙니다.

불법이 아니라고 해서 완전한 평등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보수 기독교의 동성애혐오증 환자들은 온갖 혐오의 저주를 퍼붓고,

드러내지 말고 조용히 살아가라 입에 재갈을 물리고

동성결혼이 행해지면  그 위대하고 잘난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이 모든 혐오, 차별, 억압으로 동성애를 지우려고 해도

결코 우리의 존재를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존재하고, 성장하고 변화 발전하여 사랑하고, 분노하기에 동성애혐오증환자들은 동성애자의 사랑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지난 아이다호 행사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우리의 투쟁은 혐오를 박살내고 이기는 싸움이라는 믿음을 더욱 더 확고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같아선 찰스와 제가 광화문 한 복판 레인보우 깃발 아래

서로의 목에 쇠사슬을 걸고,

십자가를 손에 쥐고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보다 더 귀하다'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앞으로 자라나는 성소수자 청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더욱 더 열정적으로 투쟁하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특별히 성소수자 부모님들이 참여하고 계신데

특별히 청하고자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소중한 아들, 딸들에게

무한히 따뜻하게 받아주시고, 지지하고 격려해주세요.

연구결과에 의하면

부모님들의 받아들이는 만큼

자녀들이 우울증과 자살시도가 낮아지고 자긍심은 더욱 커져

부모와 자녀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자녀의 사랑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퀴어문화축제, 자긍심 퍼레이드, 영화제도 열심히 자녀와 손잡고 참여하시고,

권리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서주신다면

나약하고 힘없는 자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 인사

 

끝으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동성결혼 백년가약과

오늘의 행사를 준비해준 나의 친정식구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아우들

그리고 지지와 격려로 참여해주신 하객 여러분과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5. 5. 23.

찰스+여기동 까야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