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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윤가브리엘의 봄밤

by 행성인 2009. 4. 28.


2007년 혹독한 봄밤

2007년 봄, 가브리엘은 벼랑 끝의 삶을 살고 있었다.
국내에 있는 에이즈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각종 기회감염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13가지 에이즈치료제(대부분1990년도에 개발되었다)가 판매되고 있고, 이 약들에 대해서는 보험적용이 되어서 무상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 약들도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리지널 약이라 건강보험과 한국정부에서 지출하는 약값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가브리엘이 먹는 1년치 약값이 1300만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에이즈가 발견된 지 20년이 지나 이 약들에 대해 내성이 생긴 에이즈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가브리엘 역시 한국에서 판매되는 13가지 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그 약들을 복용할 수 없었다.
2000년 이후에 미국에서 승인을 받은 에이즈치료제는 약제성분기준으로 12가지이지만 한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은 것은 3가지뿐인데, 이 중에서도 실제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은 2가지뿐이다. 가브리엘이 꼭 먹어야할 다국적제약회사 로슈(Roche)의 푸제온(Fuzeon)에 대해 2004년에 우리나라에서 판매허가를 받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을 요구하면서 한국에서는 단가가 낮다는 이유로 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


가브리엘은 이 신약을 기다리는 사이 오른쪽 시력을 잃었고, 걷기도 힘들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하루빨리 신약을 써서 면역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지만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거나 약값을 너무 높게 요구해서 신약을 구할 수가 없으니 버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두렵기도 하고 너무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는 가브리엘을 우리는 옆에서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생명의 가치를 단지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치부해버리는 다국적제약사에 저항하며 에이즈환자와 감염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워온, 가브리엘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가브리엘의 친구들은 2007년 윤가브리엘 후원회를 만들어 가브리엘과 함께 싸워왔다.



2009년 바람 부는 따뜻한 봄밤.

2009년 봄 밤,
칼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날들, 한끝 차이로 살기도 죽기도 하는 위태로운 날들을 이겨낸 가브리엘은 70여명의 후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더 건강하게 살아서 생명의 가치를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제약회사에게 따져 묻고,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걷어내기 위해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후원회 보고와 가브리엘의 특별한 두 친구의 소개와 가브리엘이 후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곡을 만들어준 노래들로 진행된 이날, 세상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숨어 꿈틀거리고 그 아름다운 행위들이 내 마음을 흔들고 울린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날 우리는 더 단단해졌다.



정숙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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