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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파리 특파원 디에고

파리의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 (게이 프라이드) 참가 후기

by 행성인 2015. 7. 18.

디에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

 

 

*드리는 말

여기에 올라온 사진은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해 공유는 할지 말아주세요 :)

 

이번 호에서는 6월 27일 토요일에 파리에서 있었던 게이 프라이드 참가기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정말 뙤약볕 아래에서 열심히 뛰었던 행사의 후기이므로 뜨거운 반응을 부탁드립니다!

 

(사진1) ​이날의 행진 루트. 뤽상뷔르 정원 앞 에드몽드 로스탕 광장에서 모여서 센강 남쪽의 두 대로를 행진한 후 강을 건너서 레퓌블리크 광장까지 또 행진했다.

 

 

벌써 2번째 맞는 게이 프라이드 행사. 먼저 프랑스에서 진행되는 게이 프라이드는 과연 어떤 행사인지 정말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Marche des fiertés (자긍심 행진) 라고 부르는 이 행사는 게이 프라이드, LGBT Pride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며 그 시작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의 퀴어 퍼레이드와 맥을 같이 하는 이 행사는 미국의 스톤월 항쟁 이후에 보편화되었던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프랑스에도 전파되면서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메이데이 즉 노동절 행사에서 성소수자 섹션을 기획해서 전체 노동절 행진 행렬과 같이 참가했던 것이었는데 1977년 6월 25일의 행진부터 성소수자들만의 자긍심 행진이 시작되었다.

 

올해 행사는 대단히 기대가 컸다. 아무 지인 없이 그저 행사 차량들을 쫓아다니며 구경만 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에는 이쪽의 친구들을 몇 명 사귀었고 무엇보다 AIDES에서 자원활동도 시작했기 때문이다. ( AIDES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에 제가 쓴 글을 보시면 대강 이들의 활동에 대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는 다음 호부터 쓸 글들을 기다려 주세요 !) AIDES의 활동가인 막심 Maxime이라는 친구와 이날 14시에 뤽상부르 정원 Jardin de Luxembourg 근처에서 시작될 행진 행렬을 찾아서 AIDES 차량 옆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파리 5구 소르본 대학에서 5분 거리이고 노트르담 성당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한, 파리 남부의 한 축을 가르는 상제르망 대로 Boulevard Saint Germain 인근에 있다. 그리고 뤽상부르 정원은 역시 소르본 대학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여유 있게 점심을 먹고 걸어 나가는 중에 이미 온 상제르망 대로는 차량이 통제가 되어 있었고 도로 위에는 사람들이 붙여놓은 스티커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 걸어가는 동안에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점 더 가벼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드렉[각주:1]을 하신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지개 깃발을 둘러싼 사람들이 보였다. 거의 모든 단체에서 나온 차량들도 보였다. 온 거리가 우리를 위해서 준비된 오늘은 우리를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올해의 행진 루트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뤽상부르 정원 앞의 분수로 유명한 Place Edmond Rostand (에드몽드 로스탕 광장)에서 시작하여 Place de la République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끝나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행진 대열에 속한 사람들 말고도 길가에서 지켜보는 분들을 포함하면 수만 명 규모로 치뤄졌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날이 너무 더웠다. 35도를 치솟는 기온과 서유럽 국가답게 강하게 치솟는 햇살 때문에 고생했다. 혹시라도 이후에 참가하시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선크림을 꼭 챙기시길. 2시에 시작으로 되어 있었는데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 이유인즉슨 행사에 참가한 단체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백 여 개는 되기에 이 긴 행렬이 차례차례 떠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프랑스 퀴어 퍼레이드의 행사 차량은 한국의 퀴어 문화축제에서 볼 수 있는 단체들의 홍보 부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올해 행진의 모토는 다양성과 개인"Multiples et indivisibles"이다. 행사 이벤트를 만든 페이스북 계정은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에서는 모두를 배제하지 않음 그리고, 모두가 연대하는 사회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2) 행렬순서

 

단체의 성격에 따라 색깔을 다르게 해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주황색은 성소수자 건강, 예방 관련한 단체들, 빨간색은 차별에 대항하는 단체들, 노란색은 LGBT 당사자들 간 연대, 연두색은 성소수자 종교단체를 상징한다. AIDES가 속한 행렬은 주황색의 성소수자 건강, 예방 관련 단체들이다. ​위에 나와 있는 또다른 빨간색의 homoparentalité에 대해 얘기하자면, 성소수자의 부모님 모임이 아니다! 성소수자인 부모님의 모임이다. 유럽의 성소수자 담론은 가족 구성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며 이미 그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인상을 준다.

 

한편 AIDES의 차량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AIDES 차량에 도착했을 때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당황했다. 전국 수십 개의 지부로 나뉘어진 단체 특성상 내가 활동하고 있는 파리 동부의 근교 도시 Montreuil 지부 활동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예전에 본 적이 있는 파리 19구 지부의 활동가 뱅상 Vincent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뱅상이 찍어준 나의 사진이 있는데 그것이 불의의 사고로 지워져 여기에 공유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단체 티셔츠를 입고 출발했다. AIDES의 올해 참가 구호는 “나는 뜁니다. Prep (노출 전 예방)[각주:2]도 같이 뛰어요. Je marche, la PREP aussi”이다. AIDES는 올해 prep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진3) AIDES의 올해 행진 구호 "나는 뜁니다. PREP도 같이 뛰어요!" 가 새겨진 단체 티셔츠

 

 

슬슬 갈 채비를 하는데 걱정이 밀려온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피부 특히 목 부분이 완전히 탈것 같았다. 행렬은 보통 차량이 있으면 그 차량을 둘러싼 줄을 잡고 사람들이 걷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줄 바깥에서 지켜본다. 줄을 잡고 걷는데 열기가 뜨거워 견디기 힘들던 중에 우리 바로 앞의 차량을 맡았던 파리 수자원공사 “오 드 파리 (eau de Paris)”에서 행사 참가자들에게 물 한잔을 나눠주는 것을 보았다. 저것이 바로 사막 위의 오아시스! 물을 받아서 마시지 않고 목에 뿌렸다. 오 드 파리는 파리 시 소관의 공기업인데 퀴어 퍼레이드에 함께 참가했다. 길을 거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사람들의 호응이 좋고 서로 물총을 쏴주는 모습도 귀엽고 너무 보기 좋았다. 작년에도 보았지만 집 발코니에서 레인보우 기를 흔들어주는 모습도 그렇고 오늘 하루 이렇게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걸어가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소중하다.

 

 

(사진4) 우리에게 귀한 물을 주신 파리 수자원공사 오 드 파리 (eau de Paris) !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해요!

 

길을 걸어가면서 주변의 참가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고 왔다는 친구도 만나고 나에게 말을 걸며 관심을 가져주는 남자들도 만났다. 그리고 같은 행렬에서 걷던 다른 활동가들과도 소개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행진 시작부터 말없이 걷던 한 매력남에게 집중되었다. 지금부터 사심을 잔뜩 섞어 이야기하겠다. 처음에는 이 분이 같이 온 일행이 계실 것으로 보였는데 이분은 그냥 선글라스를 끼고 시크하게 주변과 이야기도 없이 걷고 계셨던 것이었다! 말을 건넬까 말까 고민을 했으나 말이 유창하지도 않은데 말했다가 괜히 어색하게 끝날까봐 그냥 말았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사진5) 출발하기 전 인증샷.

 

 

우리 차량에도 다른 단체처럼 트럭 뒤에 올라가서 춤도 추고 물총 세례도 주고받고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DJ도 있었다! 센강을 건널 때쯤에 트럭 위에 올라갔다. 트럭에서 내려본 세상은 우리들만의 제국을 축복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올라탄 트럭이 센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리고 행인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축하해줬다. 물총도 쏴줬다. 어찌나 세게 쏘던지 너무 시원해서 사람들이 피해서 옆쪽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한참 가다가 이제 다시 걸어야지 싶어서 내려가서 걸어가는데 아까 그 잘생긴 분이 트럭에 타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올라갔는데 끝내 말을 걸지는 못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을테니 “어느 정도 말할 줄 알면 그때서야 사람들을 꼬시기 시작해야지!” 라고 나름 정당화를 했으나 이게 지금까지 이렇게 후회가 될 줄 몰랐다. 이후 그분을 향한 나의 집념과 수소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분의 이름도, 그 분이 활동하는 지의 여부도 알 수 없었다. 내 지인들 중에서도 그를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흑, 선글라스의 그대여. 내년에 우리 다시 꼭 만나요!

 

 

(사진7) 행진을 같이 했던 언니 ! (사진8) 같이 갑시다 !

 

(사진9) 다르지만 권리는 같은 우리 (사진10) 뭔가 남다르게 준비한 앰네스티의 차량 (사진11) "사형제가 바로 동성애혐오입니다!" ​

 

트럭은 레퓌블리크 광장에 닿았고 나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내렸다. 이후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DJ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나는 얼마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올해로 두 번째 맞는 자긍심 행진!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이 즐기고자 하는 열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더 난잡하게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Vive le droit de l’homme des LGBTs !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서 !


  1. 어떠한 이벤트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반대의 복장을 입는 행위. [본문으로]
  2. Prep(노출 전 예방)에 대한 설명한 글http://lgbtpride.tistory.com/83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