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야기

Posted at 2009. 4. 28. 16:45// Posted in 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동인련 4월 회원프로그램 '외출' : 벚꽃놀이 참가기


 

 영화 <4월 이야기>가 개봉한 것은 내가 고3이었던 무렵이었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4월, 나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그 영화를 보았다. 벚꽃이 비처럼 우수수 떨어지던 계절이었다. 마츠 다카코가 우산 속에서 청초하게 미소 짓는 <4월 이야기>의 포스터를 볼 때면, 아직도 아련하게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은 가물거릴 듯 선명하고, 따뜻하면서도 스산한 바람이 부는 흐릿한 풍경이다.


 기억과 욕망으로 얼크러진 잔인한 4월이 다시 돌아왔다. 동인련은 이토록 잔인하게 아름다운 4월을 맞아, 꽃비나리는 봄의 산 속으로 잠시 외출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스무 명이 넘는 회원들이 참가했고, 우리 모두는 일상의 욕망을 떠나 살구 빛 봄 속으로 녹아들었다. 조약돌을 집어 들어 툭 던져 넣고 싶은 청아한 하늘 아래서 잠깐이지만 아득하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우리를 둘러싼 봄의 파릇파릇한 시작만이 거기에 있었다.

 
  나라씨의 주도 아래 우리는 짝을 지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비탈을 오르면서 각자의 사랑과 소외와 미래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했다. 그 날만큼은 결코 우울하거나 심각하거나 진지해질 필요가 없었다. 팝콘처럼 하늘로 터져 오르는 벚꽃 봉오리들처럼, 우리의 자유로운 기쁨도 함께 터져 오르는 것 같았다. 때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위로 산위로 올라가면서도 누구도 지치는 것 없이 상기된 표정들이었다.


 중턱에 다다르자 작은 연못하나가 등장했다. 연못은 벚꽃 잎이 수북이 내려앉아 물 반, 꽃잎 반이었다. 우리는 연못 주위에 둘러 앉아 사진 촬영을 했다. 청소년 회원인 우주군이 가져온 카메라 덕분에 4월의 봄을 기념하는 사진들을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고, 우리들의 즐거운 수다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지럽게 피어난 꽃나무 사이를 지나 산비탈을 내려와서 우리는 연세대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캠퍼스에는 연두빛 잔디가 막 움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따뜻해진 공기 때문인지 잔디밭에 모여 앉은 학생들의 무리가 여럿 있었다. 우리 또한 잔디밭에 둘러앉아 노래를 듣거나,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거나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가 중국집에서 배달시킨 맥주와 요리를 나누어 먹으며 우리는 아까 산을 오르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조별로 발표하기로 했다. 각자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하면서 나른한 봄이 흘러가는 것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바람이 참 따뜻하고 신선했다.


 그림자가 점차 길어지고, 해가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소풍이 끝난 뒤 여성 영화제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아쉬운 봄날의 한 자락이 뉘엿뉘엿 저무는 가운데, 누군가 장난으로 건드린 꽃나무에서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쉬었던 자리를 정리하는 활동가들과, 회원들과, 청소년들의 머리 위로 꽃잎이 날아와 내려앉았다. 나는 그 순간 이것 또한 영화 <4월 이야기>를 보았던 나의 신입생 시절 그 아스라한 기억처럼, 흐릿하고 가슴 아린 추억 저편에 아로 새겨질 풍경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꽃비 내리는 저녁, 새롭게 동인련과 함께하는 청소년 회원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문득 고 육우당의 얼굴이 섞여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가 시를 통해 예언한대로, 그는 정말로 꽃비로 환생하여 우리들 가운데로 걸어들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꽃비가 내리는 4월의 잔디밭을 당당하게 가로지르며, 그날 우리는 제각기 그의 축복의 속삭임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새롭게 움트는 희망을 예견하며 캠퍼스를 빠져나오는 우리들 앞에, 자꾸만 자꾸만 복숭앗빛 꽃잎들이 아프도록 흩날리고 있었다.






환생

                              - 육우당


내 혼은 꽃비 되어 당신 곁에 내리는데


당신은 이런 나를 못 느끼고 계시군요.


임이여! 내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아요.





해와 _ 동성애자인권연대



  1. 정욜
    2009.04.30 00:11 [Edit/Del] [Reply]
    정말 아름다웠던 봄. 벚꽃구경이었지요^^ 다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알찬 회원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엔 자전거를 탄다는 소문이.. ㅋㅋ
  2. 2009.04.30 11:51 [Edit/Del] [Reply]
    욜 // 진짜요? 앗, 전 자전거 못 타는데 ㅠㅠ....
  3. 병권
    2009.04.30 14:30 [Edit/Del] [Reply]
    2,3월 참가 못한 회원프로그램... 벚꽃 가득한 곳에서 점심도 나눠먹고~ 활동하면서 여유가지기가 힘든데.. 많은분들과 함께 있으니 편하고 좋더만요~
  4. 종철
    2009.05.06 18:27 [Edit/Del] [Reply]
    자전거 타는거 내가 가르쳐 줄께~~~~~ ㅎㅎ..^^

    글구, 자전거 못타면 인라인 타면 되~~ ^^
    → 인라인도 내가 가르쳐 줄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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