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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

젠더퀴어 - 이분법을 해체하고 흐르게하다

by 행성인 2015. 11. 9.

바람(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나는 14살 때 시스젠더[각주:1] 남성 동성자(이하:시스게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6년 동안 성소수자 사회에서(또는 시스게이 사회에서) 소위 “끼”가 많고 벅찬(활동적인) 게이로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다녔다. 그러던 중 나는 시스게이 사회 내부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여성비하적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가령 자신이 남성 동성애자이면서 본인을 종종 여성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방과 이야기 할때 “~년아”를 붙이거나, 시스젠더 여성의 생식기관을 성적으로 삼는 일부 시스게이 사회에 대해 막연한 불쾌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참여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커뮤니티는 게이 커뮤니티였기에 20살 까지 그들의 문화를 바꾸려는 시도 없이 조용히 활동만 해왔다.

 

혼자라고 느껴졌던 시스게이 사회에서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친구를 만남으로써 스스로 젠더퀴어라고 재정체화를 했다. 동성애자에서 젠더퀴어로 재정체화를 하고 주변에서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필자는 상대방이 나를 바라볼 때 어떤 성별로 바라보는가와 더불어 재정체화를 하고 일상을 보내던 중에 불편감을 느낀 몇 가지를 웹진을 통해 글로 정리 해 보려고 한다.

 


첫번째: 내가 지정 받은 성별에 따른 교육 문화 그리고 자연스러움 속에 있는 불편한 감정.

 

난 염색체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지만, 사회에서 지정 받은 성별은 ‘남성’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회에서 가르치는 남자다움을 강요받으면서 “남자는 여자를 사귀어야 하고”, “여자에게 잘 대해줘야 하고”, “딱 3번만 울 수 있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외부성기만 보고서 여자/남자 인지 결정한다

 

어렸을 때부터 무슨 사고가 나면 우는 게 일상 이어서 또래 남자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말이 없고 여자애들과 어울린다고 같은반 남자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남자애들이 빗자루랑 우산을 가지고 칼싸움을 할 때 나는 소위 ‘여자애들’이 하는 스킬자수랑 구슬꿰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남자아이들과 전혀 다른 공간에 있다고 느꼈지만, 성별이 나뉜 화장실에서 만큼은 같은 공간에 있다고 느꼈다. 왜였을까?

 

‘남성다움’에 대한 교육의 영향인지, 아니면 어릴적  습관의 영향인지 화장실이나 성별이 표시된 공간에 불편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재정체화를 한 이후 성별이 표시된 공간에 가는 것이 점차 불편함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떨 때에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하게 얽히고 설킨 내 생각은 “남자는 뭘까? 페니스와 고환이 달리고 XY염색체를 가진 사람?” 이라는 되물음으로 이어져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근거한 이분법적 성별인식으로 누군가는 상처 받을 수 있다.

 

 

 

성별표현으로 인해 제한받는 공간

 

이분법을 통해 성별이 나눠지고 자신이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에 입장 할 수 없다면 자존감이 얼마나 떨어질지 감히 상상 할 수 없다.


두번째: 재정체화 후 커밍아웃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나는 상대방에게 커밍아웃을 두 가지 방식으로 한다.

 

먼저 젠더스펙트럼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상대에게는 정체성을 게이로 바꿔 말한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바람입니다. 저는 게이입니다.”

 

 

동성애자-바람

 

14살 커뮤니티에 가입을 하고부터 20살까지 알고 지낸 사람들 대부분은 나를 시스게이로 알고 있다. 시스게이로 정체화 하는데 약간의 불편감이 있었지만 그당시에는 달리  나를 표현할 언어를 몰라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게이’라고 말했다. 18살 행성인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육우당 10주기 행사에 참여해서 비(非)성소수자 사회와 성소수자 사회에 ‘청소년 동성애자 바람’ 이라는 존재를 알렸다. 

 

육우당 10주기 행사 기간중


행사가 끝난 뒤에도  각종  언론사 인터뷰에 나의 이야기가 나가면서 나를 모르는 사람까지 나를 ‘청소년 동성애자 바람’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젠더퀴어로 정체화한 지금에 와선 다시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것에 작은 부담을 안고 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바람입니다. 저는 젠더플루이드 남성애자 입니다.”

 

플루이드-바람

 

젠더플루이드는 두가지 이상의 다른 성별이 시간과 비율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정체성이다. 또한 정체성이 변화하는 시간과 비율은 당사자의 의지로 변할수도 있지만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변화한다.

 

젠더플루이드 설명

 

영상 [https://youtu.be/1m0z9XsPzWk]

 

 

‘젠더퀴어[각주:2]’라는 용어는 당사자를 만남으로써 알게되었다. 18살 때 동인련 청자팀과 청소년 커뮤니티 ‘라틴’에서 두명의 젠더퀴어 당사자를 만났고, 젠더이분법 사상이 아직 덜 깨진 그때의 나에게 젠더퀴어란 그저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었다. 젠더퀴어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난 젠더퀴어에 관한 정보를 조금씩 찾으면서 나에 대해서 조금씩 다시 알아 갔다. 게이와 젠더퀴어 두가지 (비)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중, 한 친구가 운영하는 퀴어 블로그를 접하게 되고 불안한 내 마음은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아갔다. 우연한 기회로 트랜스 캠프를 도와 주면서 트랜스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여성’이 되고 싶다고 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스스로를 젠더플루이드라고 소개했다.

 

20살이 되어서야 젠더플루이드로 재정체화를 하고, 더불어 사랑하는 상대의 성별에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 ‘남성애자’ 로 재정의 하면서 나에게 맞는 단어로 표현하게 되었다.

 

 

GenderFluid 를 상징하는 깃발 GenderFluid 성별심볼

 


지정 받은 성별 그대로 내 모습을 표현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지정 받는 반대의 성으로 혹은 중성적인 성별로써 살 것인가. 외적인 모습을 어떻게 표현 해야 하는지는 지금도 고민이다.

 

.젠더를 표현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내 젠더가 시스 남성이라고 느끼지는 않지만 여성이라고 느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시스여성들이 하는 복장과 악세사리 그리고 ‘여성스러운’ 가발을 착용하고 내 성별을 중성적으로 CD[각주:3]를 하면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로 자랑스럽다.

젠더표현을 하지 않을때 젠더표현을 할때

 

 

하지만 이렇게 자유분방한 정체성으로 정체화를 하게 된 뒤 한가지 고민이 든다.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도 알아듣기 힘든 내 젠더변환을 어떻게 비/트랜스/ 젠더/퀴어들에게 설명 해야할까? 자신을 어떤 단어로 정체화 하는 것은 자존감을 높일 수 있지만, 그것을 상대에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젠더인식을 그림으로 표현

 

 

세번째: 뒤늦게 나에게 찾아온  젠더& 바디 디스포리아[각주:4] 그리고 트랜지션의 고민

 

gender_dysphoria

 

20년간 지정받은 성별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고 불편감도 딱히 겪지 않았다. 하지만 젠더퀴어로 재정체화를 한 이후 다양한 트랜스/젠더/퀴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사회가 나에게 지정한 성별에 나를 규정하고 순응했다. 하지만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교육으로 인해 남성의 몸에 대한 불편감을 인식하지 못한 것 뿐이었다.

 

아침마다 내 페니스가 발기하는 현상이 불편하고 내 몸이 아닌것 같다. 하루에도 몇번씩 트랜지션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가끔씩 내 몸에 나타나는 불쾌감은 어느정도  조절하고 있다. 트랜지션에 대한 욕구가 있지만, 물리적인(호르몬,수술) 트랜지션에 있어서는 앓고 있는 선천성 심장질환 때문에 고민이 든다.

 

글을 마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글로 다시 정리하고 쓰자니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첫번째는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막막함이다. 두번째는 내 이야기로 인해 모든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들이 나와 같은 불편감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이다.

 

 

눈물을 흘리는 젠더퀴어 아이


 


  1. (시스젠더란 자신의 지정성별로 정체화한 사람, 지정성별에 순응하여 사는 사람, 혹은 트랜스젠더 및 젠더퀴어가 아닌 사람을 뜻한다.) [본문으로]
  2. 자신의 지정받은 성별에 관계없이 자신을 여자/남자 중의 하나가 아닌 다른 성별로 정체화한 사람, 혹은 여자/남자 중 어떠한 성별로도 정체화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본문으로]
  3. Cross Dressing 의 약자로 트랜스/젠더/퀴어가 자신의 지정성별과 다른 성별로 보이기 위해서 옷,장신구,가발,메이크업을 통해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성별을 표현하는 행위를 뜻한다. *드랙과 같은 표현 같지만 드랙은 일시적인 행위(파티,행사)를 위해 하는것이면 CD는 일상 생활에서의 성별표현을 다룬다고 보면 된다. [본문으로]
  4. 성적인 불쾌감과 신체적인 불쾌감을 뜻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