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배제와 낙인에 맞서는 거리 - 민중총궐기에 대한 기억

by 행성인 2015. 12. 29.

소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에서는 11월 14일과 12월 5일, 19일 열린 세 번의 민중 총궐기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참여했다. 행성인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장면들을 함께 나눠보려고 한다.

 

 

 

1. Born this way

 

1차 민충총궐기가 있던 날, 산업은행 앞 광장에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주최로 '성소수자 궐기대회'가 열려 많은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우리는 본 행사에서 나눠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주장이 담긴 전단지 일만 장을 나눠들고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근래 드물게 큰 행사라 거리에는 이미 여러 노동조합과 단체들의 행렬이 있었다. 우리는 걷는 동안 바퀴가 달린 커다란 앰프에 아이폰을 연결해서 음악을 틀었는데, 첫 곡은 다름아닌 Born this way였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행렬 곁으로 세 개의 무지개 깃발(노동당 성정치위원회, 친구사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이 음악과 함께 나아가는 장면은 마치 퀴어 퍼레이드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당당했다. 참가자들은 노래를 따라부르며 행진하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열심히 전단지를 나눠줬다.

 

2. 헤이헤이- 호우호우-

 

민중총궐기 첫날에는 익숙한 팔박자 구호나 투쟁 구호 대신, 낯설고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다. '헤이헤이- 호우호우- 혐오·차별 꺼져라! 헤이헤이- 호우호우-' 노동자 집회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우리의 음악들처럼 이 구호도 어딘지 장난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훨씬 다양해졌다는 뜻이기도 했고, 동시에 언제나처럼 배제와 혐오의 공포 앞에서도 투쟁을 신나게 이어나가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최근에 행인들이 날선 구호로 가득한 문화제 현장을 지나면서 무섭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때 우리의 구호를 들었다면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퍼부은 물대포의 성분 때문에 우리의 '끼부림'도 결국 마스크를 필요로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3. 전단지

 

큰 집회가 있는 곳을 한 바퀴 돌면 양손은 여러 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전단지로 가득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곤 한다.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다른 점이라면 내가 그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는 것이다. 전단지 전면에는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성소수자 궐기대회. 혐오에 맞서는 우리들의 외침! 왜 우리가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는가?'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을 성소수자로 보는 것은 당연할 터. 이럴 때는 피켓을 들고 행진할 때처럼 가장 멋진 모습을 보이겠다 다짐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계속된 거절이 안타까웠는지 옆에서 전단지를 나눠주시던 분이 한장을 달라고 하신다. 그렇게 전단지 맞교환 스킬을 배우고, 유엔 권고문 및 민중총궐기 요구안이 담긴 뒷면과 뒤집어가며 어느 쪽이 더 잘 배포되는지 시험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다가와 인원 수만큼 달라는 분들께 속으로 절을 하기도 하고 한번만 읽어봐달라는 얘기에 슥 훑어보고 다 읽었다며 돌려주시는 분께 감사한 한편으론 당황하기도 한다. 그렇게 반쯤 나눠주었을까, 비가 점점 내리기 시작해 한 장이 다 젖을때 쯤 돌아왔다. 나중에 보니 비는 곧 잦아들었고, 다른 분들은 그때 돌아오지 않고 나머지를 다 배부했다고 하니 무척 부끄러웠다.

 

 

 

 

4. 물대포

우리는 남은 전단지를 광화문에서 다 나눠줄 생각이었는데, 행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행진 신고가 되어있던 광화문은 차벽으로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었다. 잠시 후 서슬퍼런 물대포까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무척 놀랐다. 우리가 뭘 했다고? 청와대로 가려고 하는 게 문제라는 얘기도 있지만, 봉쇄된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광장이다. 집회가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라는 사실이 새삼 무색해지는 광경이었다.

 

대치가 길어지면서 우리는 예정됐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집회를 거리에서 열어야만 했다. 물대포에 들어 있는 성분 때문에 모인 이들은 쉴새 없이 콜록거려야만 했다. 나는 내내 물티슈로 코를 막고 있었다. 엠뷸런스가 분주하게 여러 번을 오갔다. 집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걱정되었다.

 

이날 밥쌀용 쌀 수입 금지와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약속했던 쌀값 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참석했던 농민 백남기 씨는,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아 한 달이 넘는 지금까지 인공호흡기와 약물에 의존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 반면 그에게 일어난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도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5. 폭력

 

다음 날이 되자 정부는 강경 발언들을 쏟아냈다. 한동안 인터넷에는 민중총궐기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고, 이에 호응하듯 자주 다니는 커뮤니티들에도 관련 의견들이 넘쳐났다. 대체로 시위대와 경찰의 폭력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엔 그날 쇠파이프 같은 걸 본 기억이 없어서 당황했고 혹 있었다고 하더라도 함께 매도당하는 것이 억울했다. 우린 극우 세력들의 주장처럼 어딘가의 지령을 받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숙' , '질서',  '평화',  '빌미'와 같은 단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점점 화가 났다. 매일매일 전국의 크고 작은 곳에서 평화적이고 때론 단식과 고공농성 등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일어나는 일들에 이처럼 많은 시선이 닿은 적이 있던가? 성소수자에게 목숨과도 같은 인권이 유린되는 곳에서, 노동자에게 살인과도 같은 부당한 해고와 대우를 일삼는 구조적 폭력에 대해 이처럼 책임이 물은 적이 있던가?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는데도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응답할 수 있는 것이 일부의 물리적 충돌 뿐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기댈 곳 없고 외칠 곳 없는 사람들을 오히려 부채질하거나 죽음으로 내모는, 그 자체로 구조적 폭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사회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성숙한 시민 의식'과 폭력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될 '진정성'은, 시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불온시하고 타인의 고통에 쉬이 눈감아버리는 이들에게 보다 필요한 것이 아닐까?

 

6.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희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성소수자들입니다! 구호 한번 외쳐보겠습니다. 성소수자 차별말라! 노동개악 중단하라! 쉬운해고 반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한상균을 석방하라!'

 

약 3주 뒤 열린 2차 민중 총궐기에서 행성인 회원들은 인사말을 포함한 구호를 만들어 외쳤다. 1차때 이미 우리들만의 구호가 있기는 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이들을 상대로 낯선 장소에서 성소수자로 말을 거는 것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라 내 입에선 모기소리만한 구호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무지개 깃발과 함께 집회에 나오기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피켓을 들거나 전단지를 나눠줄 때 혐오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상대방에게 나는 불편하거나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그러나 행진하면서 타 단체에 있는 우리 회원이 반갑게 맞아주고, 우리의 구호를 당연한 듯 따라해주시는 분들과, '성소수자 화이팅!' '동성애 옹호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서 맞아주시는 분들을 보며 금새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날 집회는 정부의 폭력 시위 프레이밍과 복면 금지 방침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나왔다. 그런데 우리들만은 역으로 더욱 가면을 벗은 셈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겐 더 낯설게 다가왔다. 이후 세 번째 행진에서는 피켓을 들고 더욱 분명한 목소리로 우리의 구호를 외칠 수 있었다. 이날 문화제에서 행성인 운영위원장은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규탄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결의문을 무대에서 함께 낭독하였고, 무지개 깃발과 피켓을 들고 행진 장소 곳곳을 누비며 성소수자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회원도 있었다.

 

7. 행진

 

'내 나이가 어때서'를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이'로 개사해 부르는 노래패 분들. 행진 문화인 팔박자 구호를 해보고 싶다며 열심히 따라해 보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들. 나눠지는 전단지 속에서, 행진 대오를 향해 펼쳐진 현수막에서 내가 모르는 생존 투쟁이 있음을 또 알게 되고, 때론 길을 막지 말라며 호통치거나 이렇게 신사적으로 해야지 얼마나 멋있냐며 비폭력을 칭찬하는 어르신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안에서 다른 이들의 구호를 따라 외치거나 지지의 박수를 보내는 한편 다른 이들이 따라할 수 있는 우리만의 구호도 외친다. 그렇게 도로 위에 서로의 존재가 확인되는 공간이 열린다. 눈에 익은 뻔한 건물들 사이에서 낯선 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일이 보다 특별한 건 그 때문이다.

 

12월 19일 3차를 겸해 열린 소요 문화제에서 사람들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경찰의 '소요죄' 적용에 항의하는 뜻에서 '소'란스런 악기들과 '요'란한 복장들을 준비해 왔다. 우리도 질세라 탬버린 등의 악기들을 들고 갔다. 거리에는 짝짝이나 냄비 꽹가리 등 다양한 악기가 등장했는데 부부젤라의 소리가 특히 굉장했다. 한편으로는 소요라는 얘기에 다들 더욱 떠들썩하게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퀴어퍼레이드에서 '음란한 동성애자'라는 프레임에 맞서 오히려 여느 축제 못지 않은 섹시함을 과시했던 참가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반복해서 덧씌워지는 낙인과 바로 그 낙인으로 유쾌하게 맞서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마치며

 

5일과 19일에는 혜화역을 향해 행진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 인근의 서울대병원에서는 백남기 씨가 한 달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성소수자로서 노동자로서 지지받으며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현실이 많은 노력으로 이미 다가와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이어질 날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많은 이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