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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누군가의 디딤돌 - 3월 신입회원모임 디딤돌 후기

by 행성인 2016. 4. 5.

스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3월 26일,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신입회원 모임 디딤돌이 있었습니다.
저도 신입회원으로서 참가를 했고 이 글은 후기입니다. 하지만 온전히 3월 26일 진행된 디딤돌에 대한 후기만은 아닙니다. 이 기회를 빌려, ‘신입회원으로서의 나’, ‘내가 행성인에 올 수 있게 해준 디딤돌’에 대해서도 얘기해보려 합니다.
 


나를 행성인에 오게 해준 디딤돌 

 

저를 행성인에 오게 해준 디딤돌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자면 2014년 겨울입니다. 그 당시 온라인 게이 커뮤니티에서 성소수자 정신건강 연구 목적의 설문조사가 시행중이었고, 정신 건강이 많이 안 좋았던 저는, 저런 것들이 무슨 해답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바로 참여했습니다. 또 연구자 분에게 몇 차례 직접 연락을 해서 논문이 언제 나오는지, 나오면 받을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고 이후에 다른 성소수자 관련 논문에도 관심이 생겨 몇 가지 찾아보곤 했습니다. 전 그런 논문들이 참 위로가 많이 됐습니다. ‘자기 혐오 그만하기’, ‘자기 긍정법 찾아보기’ 등. 논문 내용을 요약하고 거기서 나름의 해답과 교훈을 뽑아냈습니다. 적고 보니 참 교과서적인 상투어 교훈뿐 입니다만, 상투어를 귀로 듣기만 했을 때와 상투어가 가슴에 새겨졌을 때는 정말 달랐습니다. 듣기만 했을 때는 무색무취의 아무 느낌도 없던 말이 가슴에 새겨 질 때는 전혀 다른 말처럼 엄청난 감흥이 있었습니다.

 

그간 운동권을 소위 ‘나대는 사람’들로 안 좋게 보기만 했던 저는 ‘운동권 사람들은 어찌 보면 자기안의 혐오와 싸우기 시작한 사람이 아닐까?’ ‘나도 저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그러면 자기 혐오를 멈출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성소수자 운동이 무엇보다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이후에 행성인에 오게 되었고 그 논문들 연구자 중 한 분이 현 행성인 운영위원장님이란 걸 알았습니다. 백퍼센트 ‘운영위원장님 덕분에 행성인에 오게 되었다!’까지는 아니지만 그 당시 저한테 디딤돌을 놔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3월 26일의 디딤돌 후기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여하튼 저는 그렇게 행성인에 왔고, 지난 3월 26일 디딤돌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열다섯 분 정도 와주셨던 것 같습니다. 참가자 분들이 돌아가며 각자 자기소개를 한 뒤, 나라님이 행성인이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 행성인 소모임, 행성인 주요 기구를 설명해주셨습니다. 전 그동안의 발자취 중에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로 이름을 변경한 부분이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다른 인권 단체에 먼저 가입했다가 ‘행성인’이라는 저 이름 때문에 노선을 바꾼 거거든요. 뭔가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느낌이 강했고, 저랑 색깔이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성소수자 문제 말고도 장애인, 여성, 청소년, 노동자 등 사회 각 계층에 관심과 감수성이 뛰어나,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2부에서는 웅님이 나만의 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책은 세 장으로 구성되는데, 첫 장에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키워드, 둘째 장에는 행성인에서 하고 싶은 것, 마지막 장에는 (앞에 것들을 다 담아내는) 나만의 구호가 담깁니다. 많은 분들이 참 각양각색의 내용으로 세 장을 채워주셨습니다. ‘unity’를 키워드로 뽑은 실제 유엔 직원 분, 좌파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던 분, 우울증으로 많이 힘겹다는 분, 금전적 지원으로 행성인을 돕겠다는 분 등. 그 중에서도 대구에서 오신 분은 마치 판매상(?)같은 말투와 사투리로 설명을 하시는데 너무 귀여우셨습니다. 보이스카웃 선서 하듯 “차별을 절대 하지 않으리라”는 나만의 구호를 외치시는 것도 너무 풋풋했고요.

 

 

 

 

 

 

 

저는 키워드로 ‘성장’을 뽑았습니다. 조금 팔랑귀이고, 남 눈치도 잘 보고 남 시선에 지나치게 예민하단 단점이 있었는데(고2때 바이섹슈얼 친구와 밖에서 퀴어 관련 얘기를 할 때면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얘기 했어요…….), 그만큼 내 안에서 남에게 두는 비중이 컸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니까 정말 빨리 나아졌습니다. 단점도 어떻게 컨트롤 하느냐에 따라 장점도 되고 성장하는데 좋은 자원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단순히 ‘남 눈치 보기’를 무조건 탈피하는 걸 넘어서, 때에 따라 좋은 사람 눈치는 더 잘 보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행성인은 그런 좋은 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의 책 둘째 장에서 행성인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부드러운 글쓰기’ 등을 꼽았는데, 결국 다 ‘성장’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전 행성인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성장을 하여서

 


“제 닉네임은 스톤입니다. 그냥 돌이란 뜻은 아니고요. 스톤월 항쟁에서 따왔습니다.” 디딤돌 자기소개 시간에 제가 한 말입니다. 단체에 처음 들어올 때 뭐 멋진 이름이 없을까 해서 이것 저것 찾다가 성소수자 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인 스톤월 항쟁에서 따왔습니다. 단순히 항쟁, 투쟁만의 의미보다는 처음, 시작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가 얼마나 되던, 저에겐 이번이 시작이고 따라서 저만의 ‘스톤월’이니까요. 하지만 스톤이라는 닉네임의 의미도 앞으로 다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스톤에 디딤돌이란 의미도 포함시키고 싶습니다. 제가 앞선 활동가들이 놓아준 디딤돌을 밟고 행성인에 들어왔듯, 저도 디딤돌을 놓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과거의 저와 같은 사람들, 많은 이들이 스톤(디딤돌)을 밟고 ‘스톤월’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