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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

아이다호 데이를 맞아 다시 생각해보는 전환치료

by 행성인 2016. 5. 7.

겨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국제 아이다호 데이(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요새는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라고 쓰기도 한다)는 1990년 5월 17일 세계 보건 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가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2009년에는 트랜스포비아가 (때문에 IDAHOT이라고 쓰기도 한다), 2015년에는 바이포비아가 이름에 포함되었다. 점점 더 포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고, 더 나아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그만큼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현재 WHO에서는 국제질병사인분류를 검토 중이고 2017년에 개정된 판이 나올 예정이다. 이를 위해 관련 부서 중 정신질환과 약물남용 부서, 그리고 성과 생식에 관련한 부서에서는 성 건강과 성적 질환을 위한 소위원회 (이하 소위원회)를 만들었다. ICD-10(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 통계 분류 10차 개정판)에서 정신장애, 행동장애에 관련한 것은 성적 발달과 지향에 관련한 정신 그리고 행동장애를 포함하는데, 이는 F66항목에 정리되어 있다. 소위원회는 F66항목이 젠더 정체성을 다루지만, 역사적으로는 성적 지향에 관련된 항목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ICD-10에서 "성적 지향은 그 자체로 질환이 아니다"라고 써져 있지만, F66항목에서는 성적 지향과 젠더 표현법에서 파생되는 특정한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고 말한다.

 

해당 소위원회는 결론에서 F66항목이 ICD-11에서 전체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F66에 나와있지 않은 정신질환을 가진 성소수자들은 다른 항목에 의해 의료적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의학적, 공중보건적, 그리고 연구법적으로도 성적 지향에서 파생된 진단상의 분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정신장애나 행동장애가 없는 성소수자의 의료적 요구 역시 다른 항목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련의 권고는 성소수자성에서 파생되는 특정 정신질환이 있다는 인식을 폐기하고, 성소수자들이 인권 친화적이고 제대로 된 의료적 접근을 받게 하자는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곳에서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은 정신질환의 일종인 것처럼 인식된다. 이런 인식을 가장 잘 내포하는 것이 바로 ‘전환치료’다. 전환치료는 말 그대로 성소수자를 이성애자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행하는 폭력적인 행동이다. 미국 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는 "성적 지향을 바꾸기 위해 하는 심리적 치료행위를 지지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고, "부모나 법적 대리인(...)등이 동성애를 정신질환이나 행동질환으로 표현하는 일을 막으라"고 했다. 또한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정신적 상태는 많은 스트레스나 장애를 유발할 때에만 정신질환이라고 정의되는데, 대다수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젠더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장애를 유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커다란 문제는 상담, 호르몬 치료, 의료적 행위, 그리고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차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방해물, 가령 사회 내에서의 차별이나 폭력, 사회가 그들을 인정하는 것 등등이 스트레스를 유발해 비트랜스젠더보다 더 높은 비율의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혹은 다른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삼는 전환치료는 아직도 미국 여러 곳에서 횡행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미국 심리학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성 그 자체가 심리적 문제나 트라우마처럼 처리되어 이들이 마치 영원히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인식이 남아있다. 더구나 이런 호모포비아적 인식을 통하여 학대를 빙자한 전환치료로 돈을 버는 곳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극단적 기독교 집단으로, 성소수자성을 질환이라고 명명하는 곳과 ‘종교적’ 이유를 들어 전환치료를 실행하는 곳으로 나눠진다.

 

미국에서 전환치료가 금지된 주를 보여주는 지도

 
 
 미국 내에서 캘리포니아, 오레곤, 일리노이, 뉴 저지, 그리고 워싱턴 D.C 에서만 미성년자에 대한 전환치료를 금지하고 있다. 도시의 경우 미성년자에 대한 전환치료를 금지하는 곳은 오하이오 주에 있는 신시내티가 유일한데, (뉴욕은 2016년 2월에 뉴욕 시장 쿠오모가 전환치료 금지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2014년 12월 28일 오하이오에서 일어난 릴라 알콘이라는 17살 트랜스젠더 소녀의 죽음이라는 배경이 있다.

 

14살에 릴라는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을 했으나 어머니는 "신이 너를 남자로 만들었고 영원히 남자로 살 것"이라는 폭언을 했다. 이후 부모님은 그녀를 기독교도 전환치료사들에게 보냈고 그녀는 이에 대해 "그냥 더 많은 기독교도들이 나에게 ‘너는 틀렸고 이기적이며 신에게서 도움을 청하라’는 말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16살에 트랜지션을 받기 위해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했으나 거절당했고 그날 밤새 울었다고 썼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님이 나중에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의 일환에서 게이 남성이라고 자신을 지칭했다. 학교에서 그녀는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릴라 알콘의 보수적 기독교도 부모님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릴라 알콘을 계속 ‘조슈아’라고 부르며 그녀의 젠더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퇴시키고 온라인 학교에 등록시켰으며, 5개월 동안 친구나 SNS 등 외부와의 접촉을 아예 차단했다.

 

생전 릴라 알콘의 사진


유서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내 죽음이 뭔가 의미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내 죽음은 올해 자살한 트랜스젠더의 숫자에 포함되어야 한다. 누가 그 숫자를 보고 '이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고 고쳤으면 좋겠다. 제발 사회를 고쳐달라"라고 썼다. 트랜스젠더 인권 기관에서는 ‘릴라 법’, 즉 전환치료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고 1월 24일 하루동안 330,009명이 이에 서명을 했다. 또한 1월 3일 백악관 홈페이지에 ‘릴라 법’을 제정해달라는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1월 30일에만 1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전환치료를 중단"하라는 발언을 했고, 대변인은 "미국의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미 정부의 입장에서, 오바마 정부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전환 치료를 금지하려는 노력에 지원을 보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신시내티 시 의원회는 미성년자에게 전환치료를 금지하는 법을 미국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2015년 12월 9일에 통과시켰다.

 

이것은 비단 외국만의 사례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성년자인 성소수자 자식을 부모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작년 5월에는 20대 트랜스젠더인 김연희(가명)님을 부모가 전환치료랍시고 종교기관에 보내 처음에는 "귀신이 들렸다"며 ‘축사’를 행하고, 힘들게 도망쳤으나 붙잡힌 그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를 가하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종교단체는 근본주의적 기독교계의 군소 교단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보면 전환치료 사례는 소수 기독교인에 의해 행해지는 단편적인 사건에 불과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환치료를 옹호하는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 다큐멘터리는 거대 기독교 단체에 의해 지지되고 있으며, 최근 총신대학교에서는 이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며 반동성애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해당 강연자들은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캠페인을 할 것이라며 포부를 다졌는데, 이는 전환치료의 논리, 즉 성소수자성을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보는 논리가 계속 퍼질 것을 의미한다. 전환치료가  미성년자들에게 국한되어 있지는 않지만 (5월에 일어난 인권침해 사례에서도 해당 피해자는 20대였지 미성년자가 아니었다) 미성년자들은 부모에게 더욱 의지하기 때문에 이런 전환치료에 더욱 취약하다.

 

한국에서도 릴라 알콘같은 사례가 이미 일어났으나 알려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릴라 알콘은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글을 남길 수 있었고, 해당 소셜 미디어는 성소수자들에게 무척 관대한 곳이었다. 더 이상 릴라 알콘이나 김연희님같은 사례가 반복되어선 안된다. 이를 위해서 한국에서도 전환치료를 성인/미성년자와 상관없이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어야 하고, 성소수자성 그 자체를 정신질환이나 트라우마의 일종으로 보는 편견을 없애야 한다. 그럴 때까지, 우리는 아이다호 데이에 씁쓸한 뒷맛을 느낄 것이다.
 


참고자료:
http://www.who.int/bulletin/volumes/92/9/14-135541/en/
http://www.apa.org/about/policy/sexual-orientation.aspx
http://www.apa.org/topics/lgbt/transgender.aspx
http://www.lgbtmap.org/equality-maps/conversion_therapy
https://web.archive.org/web/20150101052635/http://lazerprincess.tumblr.com/post/106447705738/suicide-note
http://www.msnbc.com/msnbc/leelah-alcorns-suicide-note-pointed-out-societal-problems
http://www.wcpo.com/news/local-news/warren-county/leelah-alcorn-suicide-note-sparks-transgender-discussion
http://www.cincinnati.com/story/news/2014/12/30/transgender-teen-death-needs-mean-something/21044407/
http://www.newsadvance.com/news/local/transgender-community-rallies-against-conversion-therapy/article_3f1a7816-a42e-11e4-93ae-ab7430d018fe.html
http://www.advocate.com/politics/transgender/2015/01/30/petition-leelahs-law-banning-conversion-therapy-heads-white-house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337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