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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동성애 혐오

가십과 혐오 사이, 종편발 반동성애 찌라시 - TV조선 <뉴스쇼 판> ‘동성애 시리즈 보도’에 부쳐

by 행성인 2016. 5. 8.

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달 말 TV조선은 톱뉴스로 동성애를 세 번에 걸쳐 다뤘다. 해당 프로그램인 <뉴스쇼 판>은 기독자유당 총선 득표율에 1퍼센트 부족한 시청률을 갖고 있지만, 명실공히 뉴스 황금시간대에 방영하는 TV조선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준비부터 시끄러웠다. 기자들은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며 단체와 전문가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획 하나에 세 명의 기자가 붙어 각기 다른 주제를 담당한다는 얘기도 돌았다. 나름 기획에 심혈을 기울였고, 방송사에서도 힘을 실어줬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자들은 인터뷰 섭외차 성소수자 활동가와 전문가에게 연락을 취하며 동성애 혐오로부터 균형을 취하겠다 말했지만, 글쎄.

 

전체 내용을 살피면 ‘기승전결’의 골격을 갖춘 보도다. 청소년에게 스며드는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성을 다루고, 에이즈 요양병원을 둘러싼 논란을 차례로 다룬다. 말인 즉, 동성애가 젊은 층에 스며들어 10~20대 HIV감염율이 높아지며, 환자들을 받는 요양병원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동성애 허용 여부를 놓고 논란만 지속된 채 동성애가 어느새 젊은 층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는 긴급성으로 포장된다.  


 

반복되는 동성애자 비참서사의 장치들

 

그 첫 장을  여는 기획이 ‘[AIDS ①] 10대 청소년까지 파고든 동성애’다. 파고들었다는 표제부터 동성애를 기생충, 두더지 취급한다. 기자는 이태원, 낙원동, 학교 BL, GL, 인터넷 웹툰을 나열하며 접근상의 짜임새를 보이는 척, 성소수자 문화를 두루 섭렵한 척 과시한다. 하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다. ‘젊은 층’의 많은 구성원들이 향유하는 문화가 특종마냥 반복된다. 게이들이 모여드는 이태원과 낙원동 등지에 굳이 잠입해서 굳이 당사자들의 얼굴을 가리고 몸을 자르며 목소리를 변조해 낯선 타자로 포장하고 전시한다. 대낮의 시청 광장 한복판에 수만 명의 성소수자들이 얼굴에 몸까지 드러내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지금, 음지를 찾아다니고 어둠을 덧씌우는 태곳적 연출을 굳이 반복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4월 29일 TV조선 <뉴스쇼 판> ⓒTV조선 화면캡처

 

 

이미 익숙한 동성애가 ‘더 이상 외국의 일이 아니라고’ 문제 삼는 첫발은 약하고 해묵었다. 보다 센 한방이 필요할텐데, 그렇게 나온 논리가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관계다. 임유진기자의 ‘[AIDS ②] 10대~20대 에이즈 심각…"동성애 확산 때문?"’ 은 ‘동성애 확산’과 ‘10대~20대 감염률 증가’의 인과관계를 내세운다. 염안섭 수동연세요양병원 원장과 서울대 조병희교수의 인터뷰를 대치하며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인지 아닌지 병치하지만, 결론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10대, 20대 젊은 층 사이에서 늘고 있는 에이즈 감염자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차고 넘치는 반동성애 논리인지라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시대착오적 프로파간다는 최근의 통계자료와 전문가 인터뷰를 끼얹어 종합편성채널에 당당하게 등장한다.

 

뉴스에 인용된 통계는 맥락을 소거한 채 수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짜깁기한 흔적들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 힘을 쏟아가며 논란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기실 최근 20-30대 남성동성애자 사이에서 감염자 수가 늘고 있는 현상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가시화된 문제이다.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인 문장에 반박하기 위해 동성애와 에이즈가 무관하다고 선긋는 논리는 외려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의 질병 문제를 묵인하고, 성소수자의 비도덕적 낙인을 깨는 과정에 HIV/AIDS 혐오를 묵인할 우려가 있다.

 

그렇지만 통계자료로부터 문제를 도출하는 과정에는 관점과 해석이 필요하다. HIV/AIDS는 질병이다. 말인즉,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청년층 남성 감염자 수 증가 원인을 묻고 예방 환경과 치료접근권을 살피는 것이 기본적 태도이다. 문제는 특정 연령의 남성 동성애자 감염자 수가 늘었다는 사실보다 이에 대한 성찰이나 예방과 지원대책 없이 대상 집단을 편견과 혐오로 낙인찍는 태도이다. 통계 대상과 특정 행위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고 질병을 무기 삼아 도덕적 낙인을 찍는 태도는 의도부터 불순한데, <뉴스쇼 판>의 기획이 바로 그렇다. TV조선은 제 전파지분을 활용하여 대중 사회에 동성애를 문제삼고  관리 가능한 HIV/AIDS를 죽을 병으로 낙인 찍는다. 나아가 뉴스 프레임을 빌어 객관적인 목소리인 양 성소수자문화를 음지화하고 성적 규범의 방패막이로 삼는다. 이는 인권감수성이 하락한 사회에서 매체권력이 어떤 병폐로 작용할 수 있는지 위압적으로 드러내보인다.

 

하지만 의약품이 개발되고 감염 인권이 환기되며 인식 개선 캠페인이 십 수 년 동안 진행되어온 상황에서 HIV/AIDS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전시하는 것은 예전만큼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TV조선 간판 채널의 톱뉴스라면 확실하게 똥물을 끼얹기 위한 마지막 한방이 필요했을 터, 그게 최근 화두가 되었던 요양병원이었나 보다. 송지욱기자가 담당한 ‘ [AIDS ③]요양병원 "에이즈 환자 안 돼"…현실은?’ 은 요양병원들이 에이즈환자를 꺼리는 현상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이상한 점은 이들이 환자를 거부하는 병원보다 환자가 아픈 것을 문제 삼는다는 점이다. 보도는 흐리게 처리된 병상과 현장 상담간호사의 인터뷰까지 배치하여 사실성을 더하는듯 보인다. 하지만 의료전문가로서 공중매체에 에이즈환자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을 토로하는 행위는 질병당사자에게 노골적 거부를 표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대 의견도 소용없다. 기자는 ‘항바이러스제의 발달로 에이즈가 죽음을 부르는 전염병이 아닌,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인 만큼 요양병원에서 치료 받는 게 적절하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입장을 인용한다. 더불어 ‘의학적으로도 다른 혈액매개 질환인 B형, C형 간염보다 감염률이 낮아 일반 환자와 같은 병실에서 치료 받아도 전혀 문제 없다는’ 상식들도 길게 열거한다. 하지만 환자를 기피하는 현장 전문가의 맨 얼굴이 이어지면서 인용문은 겉치레 공염불로 증발한다. 질병이 무서워 환자를 거부한다는 말을 의료인으로서 부끄럼 없이 입에 담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태도가 질병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정당화되어 여과 없이 톱뉴스 이름표를 달고 방송되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기획과 섭외단계부터 TV조선 기자들은 균형을 잡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많은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은 접근 자체를 거부하고 채널을 보이콧했다. 그간 조중동 류의 보수언론이 보여온 동성애 혐오의 관성이 시민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3년 말, 같은 계열사 신문이 수동요양병원을 현장취재한답시고 환자의 아픈 몸을 전시하며 아무렇지 않게 HIV/AIDS환자를 혐오와 편견으로 몰아넣은 전례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중함을 보이는 기자들의 의지 표명에, 배움의 태도로 접근하겠다는 일견 겸손한 자세에 감응했던 몇몇 활동가와 법조인들은 <언론과 미디어를 위한 HIV/AIDS 길라잡이>,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함께 제정한 인권보도준칙, 국제 인권규약 등을 친절히 공유하며 조언을 줬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보수언론의 태도는 변치 않았다. 적어도 메인 종편채널의 일관된 동성애 · HIV/AIDS 혐오 스탠스를 파악한 것이 이번 방송을 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느낀 점이다.


 

반동성애 부작용을 상쇄하는 TV조선 발 ‘추억의 혐오’

 

하지만 명불허전 TV조선을 여타 혐오선동과 함께 구겨 넣고 무시할 수 만은 없다. TV조선은 CTS를 비롯한 오합지졸 방송언론과 반동성애 선동가들처럼 해괴한 프로파간다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샤워기를 몸속에 삽입해 관장한다느니, 메르스와 HIV가 합쳐져 슈퍼바이러스가 되었다는 가공할 무리수도 아직은 자제하는 듯 하다. 수간 피해동물을 적나라하게 전시하거나 탈동성애자의 증언, 아프고 빈곤한 성소수자의 몸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살펴보면 예의 자극적인 이미지 선동은 80년대 전반에 뽑을대로 뽑아먹은 재현방식이다. 당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치르며 반도의 세계화를 표방하던 시기에, 조중동을 비롯한 온갖 언론매체들은 생소하고 막연한 수입 '괴질'에 개방의 '위기'를 전이하여 온갖 서스펜스 블록버스터 막장 에로서사를 배합했다. 당시 HIV/AIDS이슈를 전하는 기사들은 많은 경우 성적 문란에 아프리카의 지역적 편견을 엮고, 바이러스 이미지에 감염인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우주복과 인류에게 바이러스를 전한 원숭이를 교차시켰다. 

 

케케묵은 레토릭이 오늘날 반동성애, 에이즈 혐오에 재활용되는 현상은 그야말로 포스트모던 이후 초납작해진 시간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진공 포장처럼 고스란히 전래된 30년도 더 묵은 HIV/AIDS 혐오논리가 집단적으로 조직되어 2016년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위축시키고 성소수자의 근방에서 위협을 가하는 현실은 혐오에 물든 반도의 풍경이다. 당사자의 구체적인 삶을 배제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논리가 초역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너무 절망적이지 않은가.

 

    

 

 

(왼) <AIDS 인류의 종말 몰고 올 것인가 2- 성도덕 파괴의 경고>, 동아, 87, 3, 17
(오른) <AIDS 인류의 종말 몰고 올 것인가 3- 정체모를 바이러스>, 동아일보, 87, 3, 18

(아래) <공포의 AIDS…약 없는 죽음의 병>, 동아일보, 87, 2, 13

 

 

물론 상황은 그때와 달라졌다. 언론들이 가십 취급하며 존재를 부인했던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지역사회의 이웃이 되었고, HIV감염인은 시민사회에 제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으로 당사자를 소외시키는 문제 전반을 따져 묻기 시작했다. 당사자들의 언어가 발화되는 과정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사회에 각인시킨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듯 TV조선은 80년대 말의 무지를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무지에 기인한 두려움을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성/ 논란' 따위의 언어로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세기말 음성변조기술과 잠입취재 앵글을 재활용하여 밖으로 나온 성소수자를 묶고 다시금 지난날의 벽장으로, 음지의 게토로 집어넣는다. 여기에 ‘동성애 허용 여부를 놓고 논란만 지속된 채 동성애는 어느새 젊은층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는 찌라시 멘트로 갈음하며 또다른 혐오의 향수를 되새김질한다.

 

한편에서는 자살이나 범죄사건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에 성소수자 혐오를 가십으로 채워넣는 현상이 비일비재해졌다. 사건에 성소수자가 연루되거나 연상이라도 되면 당사자의 정체를 고스란히 노출시켜 온갖 억측과 혐의를 점철시킨다. 이는 악질 저널리즘의 오랜 재현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지극히 사적인 정보까지 고스란히 공개하고, 독자로 하여금 같은 방식으로 당사자의 신상털이를 유도한다. 여기서는 성소수자의 존엄은 커녕 프라이버시도 찾을 수 없다. 사건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고 쉽게 소비된다.

 

‘종합편성방송’류의 동성애 재현 스타일은 저열하고 말초적인 차별선동 세력들의 레토릭과는 표현상 격이 다르다. 하지만 적나라한 표현이 지양될지라도, 이들은 비교적 절제된 프레임 위에 혐오와 편견을 전개하면서 '외설성'을 고양시킨다. 이들은 ‘동성연애자’를 재현했던 구식 프레임에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성소수자를 타자로 끼워넣고 성애화와 병리화의 필터링을 투과시켜 대중사회에 전시한다. 동성애를 음험하게만 다뤄왔던 세기말 시사 프로그램 형식이 최근의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웃기는 레토릭이지만 촌스럽다고 비웃을 일만은 아니다. TV조선의 구식 연출 배합에는 타깃 시청자 집단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어른들’이 많이 보는 채널인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 <뉴스쇼 판>의 보도는 과거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올 뿐 아니라, 과거 편견과 혐오의 표현방식들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이른바 ‘추억의 혐오’다. 혐오만 이야기한다면 재미를 반감시킬 뿐더러 노골적인 표현에 거부감을 가졌을지 모른다. TV조선의 기획은 혐오의 정서를 그대로 노출하기보다 성소수자를 몰래 관찰하고 성애화하고 기존의 편견을 집어넣음으로써 혐오의 ‘옛맛’을 배합한다. 종편발 건강방송에서 자주 언급하는 지방과 설탕의 적절한 비율이 가져오는 중독효과처럼, 동성애 혐오에 성애적 이미지와 병리화가 가미된다. 가십과 혐오의 배합은 적절한 타자를 설정하여 거리를 둠으로써 혐오표현의 부작용을 상쇄할 뿐 아니라, 잠입취재의 관음효과와 ‘카더라’식 막장서사로 낙인의 공감대를 증폭시킨다. 말 그대로 뉴스 ‘쇼’가 ‘판’ 위에서 널을 뛴다.


 

황색찌라시 종편은 혐오방송을 중단하라! 방송통신위원회는 TV조선 <뉴스쇼 판>을 규제하라!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성을 다루는데 있어 보수언론은 항상 거리를 둔 가십으로,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채색했다. 성소수자를 문제적 존재, 찬반 논란의 대상으로 뒤집어씌움으로써 차별과 편견에 대한 자성과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부정해왔다. 흥미를 위한 성소수자의 대상화는 주체와 타자를 나누는 도덕적 성규범을 재차 확인하고 강화하며 성소수자를 반사회적 존재로 낙인찍어왔다. 여기에 HIV/AIDS는 질병에 앞서 동성애 혐오와 낙인을 위한 상징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HIV/AIDS 이슈는 예방을 비롯한 공중보건이나 감염인 인권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 동성애자의 질병으로 추상화되고, 동성애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며 사회적 고립을 추동하는 수단으로 오용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무책임하고 냉소적인 종편발 성소수자 보도는 손이 닿지 않지만 간간히 감시와 관음의 시선을 내리 꽂을 수 있는 가십 넘치는 음지로 당사자를 밀어 넣는다. 이는 주류 보수 신문사들이 수 십여 년 간 반복해온 동성애 재현 프레임이다. 하지만 해묵은 논리는 오늘의 종합편성채널 시스템을 통해 혐오의 예능, 차별선동의 논픽션, 타인을 관음하고 타인을 타자화하며 성애적 호기심과 혐오로 뒤섞는 자극적인 반인권 차별선동의 포르노로 진화한다.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의 몸을 몰래 포착해서 일방적으로 가공하고 유통하는 시대착오적 만용과 뻔뻔함은 저널리즘의 폭력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아무리 화면에서 키스를 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동성애를 ‘퍼뜨려보려’ 해도 성적 보수주의 아래 만들어지는 종편발 황색 찌라시의 막강한 힘은 이기기 어렵다. 외설적 재미와 성적 보수주의를 한방에 얻는 종편의 효과라 할 수 있겠다. 이쯤 되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성소수자들의 소소한 존재표현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성적 대상화하여 중독성 강한 외설로 만드는 TV조선 방송을 심의해야 하는 것 아닌지 되묻고 싶어진다. 무엇이 더 해악인가? 하지만 싸움의 상대가 TV조선 류의 혐오선동 확성기라면 비전은 달리 보일 수 있다. 우리는 더 시끄럽게 떠들어 '추억의 혐오'에 젖어있는 한반도의 시계를 2016년으로 돌려놔야하는 임무도 갖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