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회원인터뷰] 가슴 속 품고 있는 날개를 펼쳐라 - 노동절 드랙의 주인공, 루카를 만나다!

by 행성인 2016. 6. 4.

인터뷰 받은 사람: 루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인터뷰 한 사람: 오소리, 스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루카

 

오소리: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루카: 안녕하세요 저는 행성인 노동권팀에서 활동 중인 루카라 하고 오늘 첫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오소리: 축하드려요! 연애 이야기는 인터뷰 끝나고 하는 걸로 하고요. (웃음) 루카라는 닉네임을 사용 중인데 뜻이 무엇인가요?
 

윤이형의 <루카>


루카: 루카라는 되게 유명한 소설이 있어요. 윤이형 작가님의 소설인데, 거기서 되게 와 닿았던 부분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한 부분이 와 닿아서 아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해서 루카라고 부른 거거든요. 거기 구절 하나 읽어 드리자면,

 

그리고 그 순간부터 너는 나를 유일한 시민으로 갖는 사회가 되어야 했다. 네가 내 사회의 유일한 시민이었으니까. 너는 나를 온전해지게 하는 가족이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단 한 명의 친구였으며, 주기적으로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지인이었고, 내가 살아 보지 못한 좀 더 나은 삶이었다. 나는 너라는 한 사람 속에서 그 모두를 찾고 구했다. 그 일이 잘못이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거를 활동하면서 이상향으로 삼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되게 좋은 친구고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지인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환기시켜주는 매개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맥락에서 누군가의 루카였으면 했어요. 만인의 연인처럼. 이것도 동성커플 얘기인데 퀴어 커뮤니티 영화 소모임에서 만난 두 사람이 어떻게 연애를 하고 어떻게 사회 혐오와 균열 속에서 살아가고 헤어지는지 그 과정을 담은, 되게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청소년 노동자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로 

 

오소리: 행성인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루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되게 길게 한 편이에요. 한 2년 정도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쭉 고민했었어요.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 LGBT 관련 페이지에 '좋아요'를 눌러 소식을 계속 받고, 어떤 단체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활동 한다더라 하는 걸 접하면서, 나도 나중에 정체화를 제대로 하면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올해 초에 확실히 게이가 맞구나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알고 나서 고민하던 중에, 그러다 행성인 노동권 팀에서 하는 세미나에 신청하고 나오게 되었어요. 세미나가 계기가 되긴 했지만 (이전부터) 행성인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집회현장에서 혼자 영롱히 빛나던 그 무지개깃발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단체의 지향점 자체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고 저항하고 그러면서 연대하고. 노동권팀이 그 세 가지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팀이라고 생각해서 행성인 노동권팀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됐죠.
 
오소리: 정체화를 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요?
 
루카: 제가 남중을 나왔는데, 저희 반에 저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근데 평소에는 티를 내지 않다가 어느 날 방과 후에 잠깐 교실에 있어 달라 해서 기다리는데 계속 안 오는 거예요. 후에 농구복을 입은 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와서 한참 뜸을 들이다가 저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땐 너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 답변을 못 해 줬는데 나중에 건너 건너 들으니 그 친구가 그날 너무 긴장돼서 오랫동안 농구를 계속 하다 들어온 거래요. 그때는 그 친구의 진심 어린 고백에 제가 답을 못 해 준 게 친구로서 미안했는데, 점차 남자를 좋아한다는 정체화 과정을 거치면서, 저도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던 거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첫사랑을 말하라 하면 그 친구가 첫 사랑이 될수 있을 정도로. 근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 친구랑 연락이 안돼요. 그 친구도 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갔다고 들었거든요. 잃어버린 첫사랑에 대한 고뇌 그리고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에서부터 정체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어요. 그때부터 '난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날 너무 부정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들이 점점 축적되고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면서 난 게이구나 하는 걸 올해 초에 확실히 알게 됐죠.
 
오소리: 아쉽네요. 그때 정체화를 했으면 그 친구와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텐데. (아련)

 

아련해서 만들어 본 루카가 고백받던 장면

 
오소리: 세미나를 계기로 행성인 노동권팀에서 활동하게 됐다고 하셨는데, 노동권에 관심을 갖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있나요?
 
루카: 사실 제가 노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건 좀 엉뚱한 계기가 있어요. 2008년인가 그때 언론 노조가 총파업을 해서 방송이 줄줄이 결방이 되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를 굉장히 즐겨 보는데, 계속 몇 주씩 결방이 되니까 너무 이상한 거예요. 나의 피디님이 이럴 리가 없다고 하면서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러다 불합리한 구조나 체제에 대해 알게 됐고 그런 과정에서 맞서 싸우는 노동조합이라는 세력, 단체를 알게 되었어요. 그 때부터 노동조합에 대한 약간 우호적인 시각을 갖게 됐고, 언론의 중요성을 알고 기사를 더 접하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어요. 그리고 중학교에 와서 가정환경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그때 부터 알바를 하면서 청소년 노동자로서의 현실을 실감을 하게 되었어요. 노동환경이 굉장히 열악하고 노동을 하는 거조차 허가되지 않는 세상이란 걸, 그러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 노동조합이 생긴 걸 보고 바로 가입을 했어요. 그때도 약간 정체화의 고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노동자일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러다 예고에 와서 예술가에 대한 선망이 커서 예술가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나는 노동자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1년 정도 있었던 거 같고, (성정체성 관련) 고민을 떨치고 행성인에 나온 것처럼 2학년 때부터 (노동자 관련) 고민을 떨치고 본격적으로 현장 활동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지금은 집회 관련 활동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고.

 

같은 맥락으로 행성인 노동권팀도, 점차적인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일단 청소년으로서 나를 정체화하게 해 줬고 노동자로서 정체화해 줬고 그 다음 성소수자로서 저를 정체화해 주는 그런 점에서 노동이 매개였던 거 같아요. 이제 청소년 노동자로서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이제는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를 위한 준비과정의 출발점이 노동권팀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너무 모르거든요, 성소수자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 그냥 막연히 정체성에 대한 괴롭힘 차별 정도만 알지, 그걸 고민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배우고 얘기를 나누고 같이 해결점을 찾아보고 싶어서 노동권팀에 왔어요.
 

오소리: 노동권팀에 들어온 이후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좀 알게 되셨나요?
 
루카: 네. 특히 세미나가 많은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요. 3회차로 진행되었는데 처음부터 성소수자 노동자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였다면 실수할 수도 있고 하니까 말 꺼내기도 어려웠을 거 같고 정체화한 지 얼마 안 돼서 내면화된 차별적인 가치관들이 씻겨 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고민을 했었는데, 처음에는 노동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간이어서 그동안 제가 체득해 왔던 것들을 통해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그러고 이제 성소수자 노동자 관련 자료집도 보내 주고 하셔서 꼼꼼히 읽어보고 그리고 한 가지 차별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 차별이란 뿌리 위에 정말 많은 가지들이 있구나. 체감할 수 있었어요. 사례 위주가 많아서 어떤 문자화된, 수치화된 것보다 더 와 닿았어요
 

 

출발은 사소했으나...

 

오소리: 집회현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보고 동경했다고 하셨는데, 언제 처음 보셨어요?

루카: 제가 속한 '청소년 유니온'은 세월호 집회같은 곳에는 많이 연대하러 나가지만, 평소에는 집회보단 내부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해요. 그런 청소년 유니온에 비해 저는 집회를 많이 나가는 편이에요. 주로 세월호 집회를 나갔고, 틈틈이 노동조합에서 주관하는 집회를 가게 됐고. 사실 집회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우연치 않게 행성인 깃발을 많이 봤어요. 처음 행성인의 무지개깃발을 접한 건 세월호 1주기 집회 때인 거 같아요. 그때 많이 놀랐었어요. 되게 폭력적인 억압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게 일어난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 곳이였고. 또 예전에 저는 물대포가 그냥 물인줄 알았는데 되게 맵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눈물콧물 다 흘리고..
  

오소리: 동경하던 무지개깃발 아래서 처음 집회에 참여했던 게 노동절이라고 들었어요. 그 첫순간, 드랙을 하셨어요. 하게 된 계기와 하고 난 후 심정이 궁금해요.
 
루카: 출발은 되게 사소한 것부터 시작을 했는데 한창 '게이스북' 계정을 파고 올릴 게 없으니까 카메라 어플로 여장한 것처럼 꾸며서 페이스북에 올렸었어요. 근데 모리님이 너무 예쁘다고 이번에 노동권팀에서 드랙 하는데 같이 하라고 하셔서. 저는 그때 되게 고민이 많았어요. 되게 두려웠고. 드랙을 하고 거리에 나선다는 사실 자체가 되게 두려웠어요. 사회 규범상 받아지지 않는 거잖아요. 제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인데 세상이 말하는 남성성을 벗어 던지고 그런 성별 규범을 깬다는 게. 근데 데뷔 무대에 대한 욕심이 있기도 했고 '나는 퀴어다' 라고 세상에 용기내서 말할 수 있는 그런 기회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드랙을 했어요.
 
오소리: 원래 드랙에 관심이 있었나요?
 
루카: 조금 있었어요. 흔히 중고등학생 때 체육대회때 남학생 여장시키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때 한 두 번 했는데. 그때는 재미로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이거는 메시지가 있는 행사에 뭔가 사명감을 가지고 나가는 행사니까. 많은 사람이 참가하고 퀴퍼처럼 우리 가치나 정체성을 공유하는 곳과는 결이 다른, 노동권에 대한 입장은 같지만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는 분들도 있을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지만 주변에서 옷도 빌려 주고 화장도 해 주고 많이 도와 줘서 예상보다 훨씬 예쁘게 첫 데뷔 무대를 잘 마친 거 같아요.
 
오소리: 드랙을 하고 나서 심정은 어땠어요?
 
루카: 전 자존감이 되게 낮은 편이었어요. 내면이나 외면이나 되게 여러 방면으로 자존감이 부족했거든요. 근데 드랙을 하면서 프라이드가 많이 고취됐고 나도 충분히 나만의 아름다움이 있는걸 알았고 이렇게 나를 통해 뭔가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구나 싶어서 좋았어요.
 
오소리: 노동절 때 드랙해서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 있을까요?
 
루카: 저는 누가 쳐다보거나 혐오 폭력을 당하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세상이 말하는 여성성에 되게 부합하는 모습이어서... 그런 분도 있었어요. 뒷모습을 보고 놀라시거나 앞모습을 멀리서 볼 때는 그냥 여자구나 싶다가 너무 가까이 오면 놀라고.
 
오소리: 너무 이쁘게 했구나 (웃음)
 
루카: 아! 그런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이후에 노동절 회의를 갔더니 이경님이 그때 드랙하신 분이냐고 2시간이나 지나서 물어보신 거죠. 그러니까 2시간 동안 몰라보신 거죠. 아 그래서 되게 내 모습이 달랐구나. 내가 다채로운 면이 있구나 싶었죠.


 

드랙했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몰랐을 법 하다


오소리: 퀴퍼 때도 드랙을 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차량에도 올라가고요. 어떻게 계획 중이신가요?
 
루카: 저는 할리퀸 컨셉인데. 복장은 한복을 입고 싶어요.

 

 이 컨셉으로 화장을 하고 한복을 입는다고 한다. 기.대.만.발.

 

오소리: 차량도 올라가시잖아요? 제안 받고 어떠셨어요?
 
루카: 정말 급작스러운, 하하. 일단 엄청 놀랐고 왜 나한테 제안한건지 되게 궁금하기도 했고 진짜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친구사이에서도 활동하는데 거기 트럭에 올라가시는 분들은 정말 치열한 경쟁을 벌이시더라고요. 미모와 춤과 모든 게 출중해야 올라가는데, 저는 너무 검증 과정 없이 올라가는 게 아닌가 해서 불안하기도 하고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오소리: 아직 주변 사람 모두에게 커밍아웃 하지는 않으신거죠?
 
루카: 네 아직.
 
오소리: 노동절 때와는 다르게, 퀴퍼 차량에 올라갈 경우 외부의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아직 모두에게 커밍아웃을 한건 아닌데, 부담되지는 않으세요?
 
루카: 저는 행성인에 나오는 게 용기를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용기를 키우고 자긍심을 키워 나가면서 내 자신을 더 혐오할 이유도, 숨길 이유도 없다고 생각을 해서. 사실 그게 좀 커밍아웃 계기가 됐으면도 해요. 가정에서의 커밍아웃은 많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조금 여유를 두고 긴 시간 동안 준비를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주변 친구들한테는 되도록이면 빠른 시일 내에, 올해가 가기 전에 하고 싶어요.
 
오소리: 얼마 전에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이 속한 노조에 공개 커밍아웃을 하셨잖아요? 어떻게 해서 커밍아웃을 하기로 결심을 한 건가요?
 
루카: 일단 자기혐오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어요.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청소년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게 제가 소수자이기 때문이거든요. 소수자일수록 더 모여서 같이 행동해야 소수자들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서 또 다른 소수자인 나의 모습을 숨긴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생각했고. 또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어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솔직히 살짝 기겁하기도 했죠. 직접 얼굴 보고 하는 것도 아니고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거니까. 근데 정말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아서 감사했고. 그렇게 하고 처음 중앙모임에 나갔는데 다들 평소대로 대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다 살짝 정체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어떻게 커밍아웃을 하게 됐냐고 물어봐 주셔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더니 어차피 서로 다른 성격이랄지 그런 것처럼 서로 다른 부분들이 있는데 난 (성정체성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니 굳이 스스로 위축되지 말고 혐오하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예전 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고.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달라진 거 없이 다만 더 솔직해졌을 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감동을 받고. 솔직해지고 더 용기를 내야겠다. 소중한 사람들이 옆에 있고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구나 하는 마음을 느껴서 되게 기분이 좋았죠.
 
오소리: 그때 제가 축하드린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저한테 도움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저는 뭐 딱히 도움을 드린 기억이 없어서... 어떤 도움인지?
 
루카: 제 기억으론 게이스북을 하기 전에 일반 페이스북으로 오소리님한테 친추를 걸었어요. 당시 제 페친들 중에는 LGBT 친구들이 없었거든요, 제가 아는 바로는. 어쩌면 제 처음 LGBT 지인이였던 거예요. 그 활동 하시는 걸 보면서 그때부터 용기를 얻었어요. 그래서 '아 진짜 정말 멋진 분이구나.'를 느꼈어요. 정말 세상이 좁았아요. 벽장 안에 있었고. 제가 볼 수 있는 LGBT 활동이 그 페이스북이 전부였거든요. 공개적인 페이지의 창들은 어떤 활동 위주만 담기는데, 개인 페이스북은 개인의 고민과 감상이 짧게나마 담겨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제가 좀 더 용기를 내서 벽장을 열어 젖히는데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오소리: (웃음♡)

 

활동 하는 노조 총회 때 발표 중인 루카

 

 

루카의 '움직이는' 이야기

 

오소리: 행성인 외에 다른 곳에서 활동을 하는 게 있나요?
 
루카: 행성인 모임에 3월에 나갔고, 지보이스를 3월말? 4월 초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사실 지보이스는 초반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기센 ‘언니’분들이 너무 많으시고... 그리고 지보이스가 워낙 친목을 중요시 하는 단체라서 이미 서로 끈끈히 이어져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저 혼자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살짝 그런 것도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되게 열심히 했어요. 나온 지 1~2주 만에 뮤직캠프도 따라 가고. 이번에 다큐멘터리 찍은 결혼식 가서 공연도 하고. 열심히 하니까 되게 예쁘게 봐 주시는 거 같기도 하고. 잘 챙겨 주시는 거 같기도 하고. 제가 노래를 잘 못하고 음치 박치이지만 그것도 용기를 내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즐겁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소리: 노래를 잘 못한다고 하셨는데 지보이스에 가신 이유가 뭐에요?
 
루카: 사실 전 책읽당을 나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보이스도 어떻게 보면 나를 드러내는 것이잖아요. 물론 책읽당이 숨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못하는 것일지라도 그 매개를 통해서 나를 세상에 드러내고, 그 매개 안에 메시지도 있고.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또 종로의 기적에 나온 지보이스가 너무 충격적이고 센세이션 했거든요. '이렇게 용기있는 분들이 있다니!' 하면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알게 됐고. 그래서 나도 해봐야겠다 해서 찾아갔어요. 공연도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드러냄에 있어서는 노래가 정말 좋은 매개 였던 거 같아요.
 
오소리: 지보이스 외에 다른 관심 있는 활동이나 분야는 무엇인가요?
 
루카: 요새는 여성주의, 생태주의 이런 거에 관심이 있어요. 그것도 결국 이기심, 혐오에서 기인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좀 더 관심이 가는 거 같고. 그것도 공부 열심히 하고. 여러 잘 아시는 분들이 얘기해 주시고 하니 잘 듣고. 책도 열심히 읽고 하면서. 살짝 입문단계인거 같아요.
 
오소리: 예고에 다니면서 예술 분야에서도 공부를 하고 계신다고.
 
루카: 문예 창작과 소속이고 전공은 소설 창작이에요.
 
오소리: 작품 쓴 거 있으세요?

 
루카: 작품은 많이 쓰는데 제가 가장 애착 있어 하는 작품은 ‘놀이터 디자이너’라는 원고 50페이지 분량의 작품이에요. 산업디자이너였던 중년 남성이 기상천외한 행동을 해서 해고를 당하는데, 좀 억압되어 있고 규범적인 상징의 '놀이터'를 해방시키고 싶어 하는 그런 내용이에요. 어린이, 청소년이 놀 수 있는 자유롭고 자연에 가까운 놀이터로. 그런 것을 통해서 억압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나 너무 규범에 얽매여 있으니까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작품관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작품이랄까.

놀이터

 
스톤: 해방자가 왜 중년 남성인지?
 
루카: 일차적으로 놀이터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노는 곳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놀이터에서는 누구나 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작품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사람들과 언쟁을 벌이다가 상황을 못 버티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는 장면이 있어요.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간다는 게 놀이터 규범에 있어서는 상당히 반항적인 거잖아요. 저는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해방시킨다는 개념으로 보기 보다는 모두가 어우러져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생각했어요. 그것도 사실 폭력적일 수 있잖아요, 놀이터를 어린이나 청소년만 영유할 수 있다는 생각도. 모든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창작을 한 지 좀 오래 돼서, 보호주의 맥락에서 이 부분이 문제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오긴 했어요.
 
오소리: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루카: 전 글쓰기는 별로 안 좋아했어요. 책읽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고.
 
오소리: 근데 어떻게 문예 창작과를 갔어요?
 
루카: 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제가 중학교 때 상처가 많았는데, 정체화의 고민도 있었을 거고. 중학교 2학년 때 수필을 썼는데 선생님이 공감도 많이 해 주시고 애들한테도 읽어 주고, 그러면서 이 친구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물어보기도 하고 어쩌면 나를 드러내는 매개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글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오소리: 문예 쪽으로 대학 진학까지 생각하고 계세요?
 
루카: 네, 저는 현재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요새는 희곡에 관심이 생겨서 연극영화과나 극작가로 진학을 해 보고 싶어요. 소설이 들려 주는 이야기라면 희곡은 움직이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내가 이야기를 쓰면 누군가가 거기에 이야기를 덧대고 행동을 더하고 말소리를 더해서 조금 더 부가적으로 살아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좀 더 역동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희곡에 더 중점을 두고 쓰고 있어요.

오소리: 글을 쓰셔서 그런지 표현이 좋아요. '잃어버린 첫사랑' 이라든지, '움직이는 이야기' 라든지. 글쓰기 말고 갖고 있는 다른 취미가 있나요?
 
루카: 연극 보는 거, 걷는 거, 밤에 혼자 걷는 거 좋아해요. 이제 둘이 걸을 수 있겠다. 늦은 밤에 나오면 사람들이 없잖아요. 되게 어둡고 바람이 불고 그런 게 좋아요. 무작정 걷다가 힘들면 잠시 앉기도 하고. 목적도 없이 걷는 걸 되게 좋아해요. 어떤 날은 책을 가지고 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음악만 듣기도 하고 어떤 날은 숨이 찰 정도로 뛰어 보기도 하고. 물론 얼마 못 뛰긴 하지만(웃음). 아무도 없는 외딴 곳에 떨어져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고 그러기도 하고 그런 곳에서 생활의 활력도 얻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 해요. 그런 게 되게 좋아요.
 


 

웹진 '랑' 애독자에서 웹진의 인터뷰 대상으로

 

오소리: 행성인에 오고 나서 바뀐 게 있나요?
 
루카: 매일이 설레요. 스스로 가뒀던 것들에서 벗어난 게 너무 상쾌하고 해방감이 들고 이제는 기대하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생각해요. 만날 수 있는 사람도 더 많아졌고, 사랑도 얻었고.
 
스톤: 다 얻었네...
 
루카: 제일 중요한 게 그거 같아요. 당당히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게 좋은 거 같고. 매일 설레요, 내일은 어떤 일이 있을까. 저는 행성인에 나오기 전엔 대한민국에 LGBT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예상외로 너무 많은 거예요. 소수자인건 맞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장 속에서 나와서 같이 외치고 손잡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정말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이더라고요. 그런 거에 맨날 감사하면서 주말을 항상 손꼽아 기다리죠. 행성인 활동이나 지보이스 활동이 있는 날들이 되게 기대되고. 매일 갈 때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요.
 
오소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설레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
 
루카: 물론 저도 일상 생각하면 숨이 막힐 때도 있지만, 이런 활동들이 약간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어요. 고마워요 그래서.
 
오소리: 앞으로 행성인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가요?
 
루카: 되게 팀이 많잖아요. 다 흥미가 가는 것들이거든요. 청소년 팀은 말할 것도 없고 웹진팀도 되게 재밌어 보이고 HIV/AIDS는 제가 모르는 부분이니까 더 알아가고 싶고. 부모모임 너무 좋아보이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행성인이 스펙트럼이 되게 넓은 거 같아요. 그리고 팀간 장벽도 없는 거 같고요. 굳이 제한을 두지 않고. 일단 노동권 팀에 주력을 하면서, 성소수자 노동조합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꼭 만들어져서 행성인 노동권팀이 그의 뿌리가 돼서 당당한 그 일원으로서 함께하고 싶다는 거대한 포부가 있습니다.
 
오소리: 해보고 싶은 팀활동이 있다면?
 
루카: 웹진 되게 재밌을 거 같아요. 제가 되게 웹진 애독자거든요. 한 일년 반. 되게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인터뷰도 재밌지만 그때 이슈가 되는 시의성 있는 것들도 있고 아니면 상식처럼 알아 두면 좋을 만한 글들도 되게 많고 아니면 개인의 체험에서 발화되는 이야기들도 너무 좋고. 기회가 된다면 한번 참여해보고 싶어요.
 
오소리: 이렇게 좋아하는 웹진에 본인 인터뷰가 실려요. 기분 어때요?
 
루카: 처음 (인터뷰 선정됐다고)들었을 때 너무 영광이었어요. 너무 진부한 반응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다호 때 처음 들었거든요, 바람님한테. 약간 선망의 대상이었거든요. 엄청나 보이고. 또 인터뷰 하신분들 보면 되게 열심히 활동하시고 주관도 뚜렷하시고 되게 멋진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거기에 실린다니 행복하죠.
 
오소리: 왜 본인이 선정된 거 같아요?
 
루카: 아마 노동절 드랙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고. 뭔가 급작스럽게 등장하기도 했고. 노동권팀에 들어간 것도 한 몫 한 거 같기도 하고.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그 조그만 용기로!  

 

 

오소리: 앞으로도 더 왕성한 활동 기대할게요. (웃음)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같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루카: 저는 벽장 안에 있는 성소수자, 특히 그 중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빨리 행성인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진짜 세상이 무서운 거 맞는 거 같아요. 근데, 세상이 무서운데 진짜 좋은 사람들도 많은 거 같아요. 나오면 함께 손잡아 줄 사람들이 많으니까 각자 품고 있는 날개만큼, 날개를 펼치고 서로 안고 보듬어 주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걱정만큼 세상이 아직, 추하지 않고 기대보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요. 꼭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오소리: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루카: 띵동이요? 사실 저는 띵동을 직접 체험해본 게 띵동 포차 딱 한 번이거든요. 갔을 때 되게 좋은 인상을 받았었어요. 따뜻한 분위기였고 친근하게 잘 대해 주셨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확장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약간의 금액이지만 띵동에 후원하고 있거든요. 그 이유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엄청난 위기에 있어요. 진짜 하루 하루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많은 요소들이 있고. 그런 환경에서도 본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모일 수 있는 거점이나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띵동이 정말 소중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스톤: 저도 청소년 때 정말 힘들었고, 그때의 기억들이 행성인에 나오게 했어요. 지금 활동을 하게 하는 원동력도 되고 있고요. 그래서 루카씨가 정말 신기해요. 저는 그 당시에 밖에서 성소수자 관련 얘기하면 얼굴 가리고 얘기할 정도였거든요. 너무 트라우마가 심해서. 루카씨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계기들이 뭐였는지 들어 보고 싶어요.
 
루카: 사실 저 진짜 소심하거든요. 정말 소심하고. 무대공포증도 있고. 대인공포증도 좀 있었고 공개된 장소에도 잘 못 있고. 그랬었는데. 용기를 낸 건, 제 일이잖아요. 전 되게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이타적인 삶을 살거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오소리: 그게 최고예요. (웃음)
 
루카: 근데 행성인에서 하는 활동은, 저를 위해 싸우는 거잖아요 일차적으로. 지금 내가 처한 현실들이 너무 좌절스럽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내야 하는 용기는 그 좌절에 비해 정말 작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낼 수 있는 용기라 생각해요. 우리가 겪어선 안되는, 갖고 있는 좌절이잖아요. 저는 그 좌절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야 하는 용기가, 롤러코스터를 처음 탈 때의 그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처음 행성인 세미나 왔을 때 사무실 앞에서 못 들어가겠는 거예요. 일부러 모리님한테 전화해서 "여기 어딜까요. 저는 모르겠어요." 이러고. 모리님이 만약 그때 마중을 나와주셨으면 오히려 용기를 더 못 냈을 거예요. 모리님이 "어디 있으니까 찾아오시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오소리: 모리의 귀차니즘이 한 건 했네요. (웃음)
 
루카: 그 올라갈 때의 용기. 지보이스도 마찬가지였고. 그때도 용기를 내서 올라갔고. 모든 게 첫 순간이라는 게 가장 어려운 거 같고 정말 떨리고 설레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정말 그게 좋고 설레는 기억이거든요. 모든 첫 순간이라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름다운 첫 순간이 꼭 올 수 있도록 롤러코스터를 처음 탈 때의, 그만큼의 용기를 꼭 내서....
 
스톤: 용기를 정말 빨리 내셨네요. 전 그렇게 하는 데 정말 오래 걸렸어요. 대단한 거 같아요.
 
루카: 보채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그런 설렘과 용기가 조금만 문을 열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계속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막 꼭꼭 닫고 있지 말고. 사실 현실이 두렵거든요. 저도 충분히 이해를 하고. 막 억지로 열어 젖힐 수는 없잖아요. 다만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을 그 조금의 용기가 생길 때까지 자긍심을 내면에 소중히 키웠으면 좋겠어요. 행성인에 나왔을 때는 롤러코스터 열 번을 타는 것보다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