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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가족/명절과 가족

[추석-커밍아웃]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인 나, 추석이 지긋지긋하다

by 행성인 2016. 9. 3.

겨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커밍아웃을 이미 한 상태에서 가족하고 추석을 보내는 것이 왜 힘든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했다면서? 그러면 부모님이 결혼이나 연애 관련 질문도 차단해주지 않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했다는 것이, 부모님이 이해해주고 배려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겨울의 파란만장한 겨울’에서 보면 알듯이, 내 커밍아웃은 전혀 순탄하지 않았고, 지금도 부모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연애, 결혼에 관해서 남성 파트너를 전제로 한 말을 자주 한다. 부모님이 이해해주고 배려해준다는 게 내가 나머지 친척들에게도 커밍아웃한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나의 경우에는 친척간 왕래도 별로 없기 때문에, 특정한 날에만 잠깐 만나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해서 무슨 이득이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감정적 소모를 내가 왜 견뎌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부모님이 내가 커밍아웃한 것을 안 후에도 "평판"이 나빠질까봐 연애와 결혼 관련한 불쾌한 말에도 아무 반응을 안 하는 것을 쳐다보는 일도 몹시 진이 빠지는 일이다.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는 것 같고, 그 시간 자체가 고욕인데도 참으라고 하는 말이 서럽다. 그런 힘든 시간을 지내고 나서 "잘 참았다,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듣는가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이 모든게 하나의 커다란 감정소모의 블랙홀이 되어서 나한테 늘 부족한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감정 에너지를 얻을 가능성이 정말 있는가? 친구와 카카오톡을 하거나 아니면 유투브에서 BBC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려고 하면 “어른들 앞에서 핸드폰만 본다”(과연 내가 핸드폰이 아니라 책을 들고 있었어도 그런 말을 들었을까란 생각을 난 늘 하고 있다. 둘 다 정보를 얻는 매체인데?)는 지적을 받고, 여기에 고분고분 핸드폰을 끄지 않으면 버릇없다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그 후 운이 나쁘면 이것은 증폭되어 “겨울이 핸드폰을 추석때 어른들 앞에서 했대”가 “겨울이 어른들에게 말대꾸를 했대” “겨울이 어른 앞에서 육두문자를 내뱉었대” 이런 식으로 퍼질 수도 있다. 그러면 그건 곧바로 “부모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위가 된다. 추석이라는 날은 일종의 수확을 기념하고 풍성함을 기원하는 날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년동안 쌓아온 내 감정 에너지를 모두 소비해서 감정적 빈털털이가 되는 날이다.


사실, 친가쪽 친척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몇가지 이점이 있다. 모일때마다 다른 집에서 추석을 지내고, 두번째로 인간적으로 사람이 그날 해올 수 있는 음식의 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음식을 다 차릴 수가 없어서 사오는 게 어느 정도 용납된다. 역시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성별에 관계없이 (물론 나이많은 남성들은 어느 정도 제외되지만 사촌들 중에서는) 모두 다 차출되어 추석때 가장 큰 가족내 분란 중 하나인 상 차리는 일이나 기타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사가 늦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친척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내 행동의 오점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고, 연애와 결혼 이야기 혹은 성소수자 비하적인 이야기를 그만큼 다시 반복해서 듣는 것 역시 곤혹스러운 일이다.


난 그래서 작년 추석에 참여하기가 너무 싫었다. 늘 터져나오는 연애와 결혼 관련 이야기, 으레 나오는 "여자는~"으로 시작 하는 말들을 듣는게 너무 힘들었다. 비록 별로 오래 진행되지는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 내내 마음졸이면서 이번엔 누구와 비교될지, 혹은 이번에 내가 잘못 행동한 것을 두고 얼마나 욕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기에 그만큼 더 빨리 퍼지는 유언비어와 감시의 눈초리 속에서 내 심신의 평안은 그만큼 더 잘게 부서진다. 때문에, 나는 이번 추석도 거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