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레드리본 센타 건물을 관리(듣기좋게 관리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사실은 청소부)하고 있는 에이즈 감염인입니다.  ‘RNA정량검사’는 에이즈감염인의 혈중 바이러스 농도를 측정하는 검사로 에이즈감염인의 치료효과를 평가해 치료제와 치료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이는 면역검사, 내성검사와 더불어 감염인들이 적절한 치료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검사입니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종양 바이러스과에서 해오던 ‘RNA 정량검사’를 민간기관에 이양한다는 소식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6월 20일입니다. 이전에 레드리본센터 2층 사랑방을 방문한 감염인 한분이 병원을 다녀오셨다고 하면서 3개월마다 검사비가 부담스러워 검사를 한번 연기해 달라고 의사선생님에게 사정을 해 6개월 후에 검사를 받게 됐다며 좋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검사비에 대한 부담이 커서 2년6개월 동안 이용하던 병원을 멀리하고 검사비를 안 받는 병원으로 옮겼기에 남의 말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검사비로 약 3만원을 부담하는 것이 버거운 상황에서 정량검사와 내성검사를 민간기관으로 옮긴다는 소식과 이로 인해 특진비 명목으로 대폭적인 검사비 인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RNA정량검사’ 문제를 가지고 우리 감염인들을 많은 혼란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감염인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그 사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감염인의 입장은 전혀 상관치 않고 질병관리본부측과 의사들이 모여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데 대한 허탈감이 밀려왔습니다. 앞으로 모든 감염인이 겪어야 하는 경제적인 사정 등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여러 부서와 보건복지가족부 에이즈 담당자와 통화를 하였지만 그 누구도 감염인이 처한 사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고, 복지부 관계자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지고 답답했습니다.
  ‘이건 안된다. 감염인이 무슨 경제적인 여력이 있다고 이런 부담을 안기다는 말인가. 그들 중에 만에 하나 이번 조치로 치료를 중단하는 사태가 생긴다면...... 이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였습니다. 전화로 설명을 하자 자세히 알아보고 대응하자는 그 한마디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의 빠른 대응으로 6월29일 여러 감염인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과 함께 질병관리본부 정문 앞에서 우리 감염인이 처한 현실과 특진비 인상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정량검사의 민간이양에 따른 감염인의 입장을 기자와 온 국민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질병관리본부 면역병리센터장, 에이즈종양바이러스과장과 면담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감염인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다시 대책회의을 열어 감염인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9일 RNA검사를 민간에게 이양시키겠다고 적극적인 언론 플레이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벌써 민간병원에서 인상된 특진비를 받는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감염인들에게 중차대한 결정을 감염인 어느 한명에게도 의견을 묻지도 않고 에이즈종양바이러스과, 에이즈결핵관리과, 감염내과 의사들끼리 자리를 하여 결정한 결과는 질병관리본부 자신들의 일거리를 줄이고 대신 특진비라는 명목으로 검사기관에게 대폭적인 검사비 인상이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사태를 야기시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감염인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감염인들이 부담해야하는 이번 인상액은 한 달 기초생활수급비의 25%에 달합니다. 많은 감염인들은 주거비로 전체 수급비의 약 50% 가량을 지출하고 나머지 금액으로 의식비를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정량검사 민간기관 이양으로 인한 특진비인상은 감염인의 치료접근권을 제약할 것이 분명합니다. 검사비가 없어서 검사를 기피하고 그로 인한 병원출입을 삼가게 되어 제때에 이루어져야하는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 질수 없는 문제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서글픈 현실입니다. 내년부터는 에이즈 치료 약제에 대한 내성검사도 민간기관에 넘기고 그 후론 치료약값 마저도 부담시키려는 저의가 분명합니다. 이는 돈 있는 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없는 자는 그대로 죽으라는 처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치료를 받아야하고 그러려면 의식주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입니다. 감염인에게는 약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약과 더불어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식량도 필요합니다. 이번 결정은 최악의 상태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감염인들의 식량을 송두리째 빼앗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이제 확실하게 감염경로가 밝혀진 이상 감염인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다면 더 이상 가족과 직장에서 배척 받으면서 살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질병관리본부는 감염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검사는 돈 안 된다고 민간에게 넘기면서 “에이즈코호트 연구 사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에이즈코호트 연구 사업”이란 감염인의 치료와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기위한 연구사업이라고 질병관리본부는 밝혔습니다. 매년 5억여원을 투입하여 20년 실시한다는 장기 사업이며 앞으로 대상인원을 늘린다 하니 예산의 증액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코호트 연구를 한다며 감염인의 피를 뽑아가고 있지만 코호트 사업의 목적과 배경, 실행과정과 감염인의 동의여부, 현재까지의 결과물, 평가회의 내용 등을 감염인들에게 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감염인의 치료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입니까? ‘감염인의 치료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라면서 감염인의 피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도 못하게 하고, RNA정량검사를 민간에게 이양하여 치료를 중단시킬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게 앞뒤 말이 됩니까?






  많은 감염인들이 감염사실을 알게 된 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직장생활을 할 수 없어서 방황과 좌절의 시일을 보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기초생활수급비 월40여만원을 가지고 지하단칸 셋방, 고시원, 쪽방 등지에서 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이 맞을 정도의 최악의 조건에서 근근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직도 많은 감염인들이 치료를 제때에 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노숙인 신세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감염인들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들에게 따뜻하게 환자로서의 배려와 치료을 받지 못하는 감염인에게 치료할 기회와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힘없고 말없이 죄인처럼 살아가는 감염인을 어떤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질병관리본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하고 실험실의 쥐 마냥 칼자루 쥔 자의 실험대상으로만 여겨왔다는 것을 이번 조치로 인하여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감염인은 이 사회의 죄인들이 아닙니다. 감염인들은 국가와 사회가 잘못 규정한 “에이즈” 그 단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가장 큰 피해자들입니다. 감염인에게 정당하게 치료를 받게 하고 질병에 걸린 환자로서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우리를 둘러싼 특수한 환경에 편승하여 정책담당자들도 감염인은 힘없고 자기 할 말도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만 여겨 왔음이 분명 합니다.


  에이즈의 발병을 감소시키고 국민 모두와 더불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인하여 정당한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작금의 질병관리본부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 감염인의 힘만으로는 너무 부족 합니다. 우리도 직장에서 일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함께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도움이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편견과 잘못 알려진 에이즈에 대한 오해를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고 질병에 걸려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다시는 거론되지 않도록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저는 믿습니다.




박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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