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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병권의 성북동 무지개

2009년 8월 4일, 검은 하늘에 무지개는 설자리를 잃다.

by 행성인 2009. 8. 7.
 

오늘 하루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언제 터질지 모를 그 화약고 한가운데,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한 달 전 비를 뚫고 찾아간 쌍용차 투쟁 현장에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빠이고 누군가의 오빠이고 누군가의 동생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정리해고 철회를 새긴 붉은색 띠를 머리에 두르고, 쌓여가는 피로와 분을 삭이며 그들은 목이 터져라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었다. 그 주변에선 노동자들의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들의 ‘가장’을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입은 연두색 티셔츠에 새겨진 ‘우리 아빠 힘내라!’ 라는 문구가 어쩐지 슬프게 보였다.


쌍용차 정문을 가로막은 사측은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불법이니 해줄 것이 없다. 다쳤다면 나와서 진료를 받으면 되는 것’이라는 비인간적인 헛소리들을 해댔다. 그들은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려는 의료진의 진입을 막아섰고 이에 항의하는 인권활동가들을 경찰이 나와 군홧발로 짓밟아버렸다. 인권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현장에는 온갖 악다구니만 남았다.


7월 22일 인권단체연석회의,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당시
동인련도 함께했었다. 기자회견 후 가져간 팻말을 걸어놓았다.




오늘도 쌍용차 현장은 살고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불법’으로 낙인찍은 채, 하늘에는 최루액이, 땅에는 용산에서 살인을 저지른 특공대가 난무하는 무법천지이다. 무엇이 타오르는지 모르겠지만 도장 공장 쪽에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사람은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목소리로 현장 소식을 전한다. 사무실에 앉아 이곳저곳 인터넷 매체를 돌아다니며 속보를 확인하고 현장에서 전해오는 영상을 지켜보는 나는 그저 막막한 기분이 되어 버린다. 사무실 상근자들은 이러다 무슨 일이 나는 것 아니냐며 현장에 나간 회원들에게 연신 전화를 하고 있다.



용산에서 살고자 망루 위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검은 주검이 되어 내려온 지 반 년이 지났다. 어제 ‘광화문 정원’에서 집회, 시위를 막겠다는 광화문 조례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사람들은 연행이 되었다. 심지어 그곳에서 유인물을 나눠주거나 1인 시위를 해도 경범죄 위반으로 연행된다고 한다. 온 세상이 다 아는 대리투표도 ‘정당할 뿐’이라며 방송법은 이미 끝난 일인 듯 공중파를 통해 홍보되고있다. 온갖 거짓말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닫아버렸다.  자신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피를 말리는 사람들과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오로지 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모두들 심상치 않아한다. 이러고 있다간 내가 죽을 판이다. 용산과 평택에서 보여준 그 누군가의 사권력은 사람도 죽이고 물길도 죽이고 눈과 귀를 막아 없는 사람들의 숨통을 조여올 것이기에 불안하다.


불안은 분노로 바뀌어야 한다. 검은 하늘이 세상을 덮는 꼴을 그냥 앉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꼼수, 날치기, 거짓말은 양치기 소년의 최후처럼 비참할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분노는 저항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비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노동자라면, 종로에서 이태원에서 홍대에서 주말을 보내며 일주일 간 받았을 노동의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가족에게 친구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혔든 밝히고 싶은 사람이라면, 또한 세상이 무지갯빛 다양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분노를 반드시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후에 있을 저항에 함께하자.


검은 하늘이 무지개의 설자리를 빼앗는 꼴을 볼 수는 없지 않는가.



병권 _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