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economics : capitalism, community, and lesbian and gay life>(edited by Amy Gluckman and Betsy Reed) p.229~p.240에 수록된 “Laboring for Gay Rights"를 번역해 싣는다. 분량 관계상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오리가 번역하고 나라가 교정교열을 보았다.



동성애자 노동권을 위한 노력 - 수전 무어[각주:1] 인터뷰 1





수전 무어 (사진 출처 : http://www.cpcs.umb.edu/lrc/facstff_smoir.htm

1995년 6월에 에이미 글럭먼(Amy Gluckman)이 진행한 이 인터뷰에서 동성애자 노동운동가 수전 무어(Susan Moir)는 그녀가 바라본 노동조합 기반의 동성애자권리운동이 가진 성과와 문제점들에 대해 얘기한다. 무어는 보스턴 지역의 '게이 레즈비언 노동운동 활동가 네트워크(GALLAN)[각주:2]'에서 수년간 활동했다.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동성애자운동과 노동운동 사이의 마찰들을 솔직하게 거론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녀는 동성애자운동이 조직된 노동운동과 꾸준히 협력함으로써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신의 동성애자 노동운동 경험과 '게이 레즈비언 노동운동 활동가 네트워크(GALLAN)'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저는 철강노동조합 8751지부(Steelworkers Local 8751)에서 학교버스 운전사들과 함께 노동조합 운동을 시작했어요. 레즈비언을 포함한 진보적인 사람들의 모여서 학교버스 운전사 노동조합을 조직했죠. 노조 초기 대표 중 한 명이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었고 노조의 여성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레즈비언이었어요.


그때가 언제였나요?


저는 1979년에 함께하기 시작했어요. 대의원이 돼서 노조 활동을 했지요. 저는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한 상태였지만 동성애자 쟁점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우리 단체협약에는 이미 차별금지가 명시돼 있었죠. 동성 배우자에게도 복지 혜택을 주는 문제는 쟁점이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죠.

제가 노동운동 안에서 레즈비언/게이 활동에 참여하게 된 건 1987년 무렵에 GALLAN이 결성되면서부터였어요. 저는 초동모임 소집에는 참여하지 않았어요. 세 사람이 모여서 이런저런 노조 행사에서 보곤 했던 레즈비언과 게이들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자고 결정했죠. 이 시기 GALLAN에 함께 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버클리 음대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노조 캠페인들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동성애자들, 특히 커밍아웃한 게이들이 많은 일터에서 벌어진 이 캠페인들은 접전이었거나 패배했어요. 초기에 토론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많은 일터에서의 계급 관계였어요. 그런 직장에서 남성 동성애자들은 전통적인 가족 부양의 책임이 없었고, 전통적인 직업 경로를 따르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흔히 관리자와 손을 잡는 것처럼 보였고 자신의 직업--노조가 있는 일자리일 수 있겠죠--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죠.


  1989년에는 “우리의 커밍아웃 파티”라고 부른 행사가 있었어요. 우리가 처음 벌인 활동은 농업노동자 노동조합(UFW)과 펜웨이 커뮤니티 의료센터(보스턴에 있는 게이와 레즈비언에 초점을 둔 지역의료센터)를 위한 기금 마련 행사를 조직한 것이었어요. UFW의 포도 보이콧과 농업노동자들이 제기한 건강문제와 레즈비언 게이의 건강문제를 연결시키고 팬웨이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는 생각이었죠. 우리는 이것을 “건강을 위한 단결/90년대의 동맹”이라 불렀어요.


  행사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어요. 노동조합 회관인 뉴잉글랜드라이프홀이 가득 찼죠. 이성애자 노조원들이 우리와 같이 일을 했어요. 행사는 아주 동성애자다웠고 노동조합다웠어요. 행사의 일환으로 우리는 UFW를 위한 연대의 시간을 가졌어요. 노조원들이 자신의 노조로 가서 이 행사와 포도 보이콧에 대한 지지 표명을 요청했었죠. 무대에 큰 현수막을 펼쳐놓고, 노조의 이름이 불리면 대표자들이 나와 현수막에 서명을 했어요. 세자르 차베스[각주:3], 보스턴 건설노조 위원장과 몇몇의 드랙퀸을 포함해서 백여 명의 사람들이 무대로 올라왔어요. 행사 내내 음악이 흐르고 아주 신났죠. 사람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그런데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더 흥미로운 일이 진행됐죠. 우리는 펜웨이가 새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돈을 모금했어요. 그날 저녁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많은 모금이 진행됐어요. 프로그램 책자 등등. 그런데 우리가 이런 지지 표명을 하려고 조직하고 있던 참에 펜웨이 측에서 우리에게 말했어요.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건물을 노조가 없는 회사를 통해 지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단 행사 준비를 몇 주간 중단하고, 펜웨이 측에 표준임금(prevailing wage)[각주:4]의 이점과 확실한 안전교육, 경제에 미치는 면에서 노조가 있는 회사에 일을 맡기는 것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설득하려 했어요. 우리는 노조와 협력해서 현장에 레즈비언 게이 노동자들을 고용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죠.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일을 희망했던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게이 건설노동자들을 최대한 고용했을 거예요. 우리는 협상을 했고, 모금행사를 열었죠. 그런데 펜웨이가 약속을 어겼어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로 낮은 임금에, 복지혜택도 주지 않고, 엄청 싸게 건물을 지었죠. 펜웨이측의 배신이었어요. 더구나 완전히 불필요한 짓이었어요.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한 것도 없었고,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돈은 모두 모금을 통해 현금으로 마련했어요. 그들은 건물을 짓는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불할 돈이 있었어요.  


  그 즈음 우리는 헤이마켓 민중 기금(Boston에 있는 조그만 진보적인 재단)도 건물을 짓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오래된 건물을 사서 개조하는 일을 노조가 없는 회사와 하고 있었죠. 우리는 헤이마켓과 여러 차례 협상을 했지만 그들도 결국 노조 없는 회사를 통해 건물을 지었어요.

펜웨이 사건은 대체로 더 특권을 누리는 계급 출신들이 협소하게 정의한 게이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이익과 부딪혔을 때 흔히 노동계급의 이익이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을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지요. 그리고 그 일은 우리가 모금행사를 위해 끌어들인 건설노조 사람들과의 단결을 해치는 것이었죠. 그런데도 건설노조 사람들은 이해해 주었어요. 그들은 우리가 이견을 무릅쓰고 노조가 있는 곳을 통해 건물을 짓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원하던 바를 이루진 못했지만 모금행사와 두 번의 노력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해주었어요. GALLAN의 그 누구도 우리가 하는 일이 옳다는 데에 의문이 없었어요. 건물을 싸게 짓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타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데에 이견은 없었죠. 위의 두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래서 우리는 더 똘똘 뭉쳤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가 우리의 연대 대상인지 분명히 하게 됐죠.

우리는 레즈비언/게이 이슈를 노조 커뮤니티로 끌어들이고, 노동계급과 노조 이슈를 레즈비언/게이 커뮤니티에 끌어들이려 해요. 이 작업은 레즈비언 게이 커뮤니티보다는 노조 커뮤니티에서 훨씬 수월해요. 물로 노조에서도 마찰이 있었지만, 기층 수준에서 노조원들은 연대의 개념을 알고 있어요. 그들은 한 명이 입는 상처를 그대로 두면 모두가 상처 입게 된다는 걸 이해하죠. 하지만 레즈비언/게이 커뮤니티는 그렇지 않아요.

 

GALLAN 배너를 들고 집회에 참가한 활동가들 (사진 출처 : http://www.gallan.org/)


그 이야기를 더 해보죠. 노조원들에게 게이 레즈비언 이슈를 알리고 노동조합운동 안에서 연대세력을 만드는 활동은 이제 끝난 일인가요? 노동조합 문화에서 어떤 지점이 동성애혐오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거죠?


이런 활동들이 쉽다는 것은 아니에요.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노조에서 제 경험은 노력을 하면 뭔가 답이 나온다는 거예요. 합의점이든 원칙적인 이견의 지점이든 어딘가 도달하죠. 반면에 레즈비언/게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 보면 사람들이 계급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를 계속 모르는 상태에서 끝나버리게 되죠. 거기에 더 좌절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노동조합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네. 하지만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우리는 천대받는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고, 그들은 천대를 이해하니까요. 많은 노조 사람들이 이를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건 아니고 그것에 대해서 얘기하려 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들은 이 사회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고 패자들이 승자에 맞서 단결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알아요. 노조의 모든 개개인이 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조 자체가 조직적으로 이를 이해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노조의 이념이고 문화이기 때문이죠.

1970년대에 브릭스 발의안과 관련해서 벌어진 일이 이를 보여주지요.(1978년 브릭스 발의안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레즈비언/게이가 교사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려는 시도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노동조합운동 안의 개개인을 일일이 설득하는 데에는 여름 내내 걸렸을지 모르죠. 하지만 결국 결정은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졌어요. 왜냐하면 노조원들은 브릭스가 교사를 공격하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퀴어 교사에 대한 공격은 교사에 대한 공격이고, 교사는 노동자이니까요.



브릭스 발의안 반대 시위 모습 (사진 출처 : http://www.allyaction.org/s/341/images/editor/glbths_1998_36_1978GayDayParade005_BACABI_web.jpg)



이 이슈와 관련해 노조 지도부와 일반 조합원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건가요?


아니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도부든 평조합원이든 동성애혐오는 모든 커뮤니티에 존재하고, 노동조합운동도 마찬가지죠. 지도부가 더 세련될 수는 있어요. 지도부들은 확실히 경험도 많고 노조의 원칙에 더 충실하죠. 그러한 것들이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요. 하지만 동성애혐오는 모든 층위에 존재해요. 그래도 노조에는 왜 동성애자 권리가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맥락이 존재하죠.

너무 장밋빛 미래로만 그리고 싶진 않으니 일화를 하나 얘기해 드릴게요. 요즘 노동조합운동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어요. 서비스직 노동조합 (SEIU;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의 존 스위니가 레인 커클랜드의 AFL-CIO(미국노총) 위원장 재출마를 반대하면서 이런 변화가 가장 눈에 띄게 전국적으로 드러나고 있죠. 레즈비언/게이 운동도 이러한 변화의 한 부분이지요. 스위니가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모두들 그가 이 조직에 레즈비언/게이 노동자, 유색인종 노동자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모두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요. “AFL-CIO에서도 당신이 SEIU에서 했던 것처럼 노조와 노조 지도부에게 레즈비언/게이 운동에 대한 지원을 지속할 것입니까?”라고 직설적인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그는 “네, 당연하지요.”라고 답했어요.

커클랜드는 오랫동안 유지한 AFL-CIO 지도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1995년 5월에 전국에서 간담회를 진행했어요. 보스턴에서도 열렸는데 전 참석하지 못했죠. 질의응답 시간에 GALLAN 회원인 탐 바베라(Tom Barbera)가 AFL-CIO의 레즈비언/게이 이슈에 대한 지지에 관해서 물으려고 일어서서 “게이로서 제가 묻고 싶은 건...”이라고 말하자, 갑자기 청중석 한 구석에서 야유가 쏟아졌어요. 탐이 질문을 계속하자 더 많은 야유가 나왔죠. 질문을 마쳤을 때 이번에는 야유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일어서서 박수갈채를 보냈어요.


  청중의 다수는 우리편이였어요. 노동운동진영은 우리를 놓고 갈 수 없어요. 우리는 주류들, 한 자리 차지하고 싶어하는 워싱턴의 족속들 같은 이익 집단이 아니에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표 집단도 아니에요. 스위니가 이기고 지는데 우리의 표는 필요가 없어요. 그에게 필요한 건 조합원수가 많은 소수의 핵심 노조들이죠. 우리는 그런 집단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 나라를 더 진보적으로 만들 새로운 연합을 대표해요. 우리는 단지 레즈비언/게이 노동자가 아니에요. 우리는 가난한 사람, 노동하는 사람, 복지 수당을 받는 여성, 유색인종, 이주노동자 들을 대표하죠.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탔으니까요.(편집자 주 : 1995년 10월 존 스위니는 AFL-CIO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1996년 5월에는 진보적이고 동성애자에게 우호적인 후보 앤디 스턴스가 스위니의 후임으로 SEIU 위원장에 당선됐다.)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인가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컴바히강 공동체 선언문--컴바히강 공동체는(Combahee River Collective)는 1970년대 초 보스턴에서 만들어진 흑인 페미니스트 그룹이다.--과 바바라 스미스(Barbara Smith)[각주:5]와 같은 유색인종 레즈비언들의 글을 통해 정체성 정치를 받아들였어요. 어떤 사람들은 정체성의 정치라는 사상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이 정치의 뿌리에서 내가 배운 것은 내가 내 자신의 억압을 이해하기 때문에 이주민들의 처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거예요. 레즈비언으로서 내가 받는 억압을 이해하기에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거죠. 이것이 제가 말하는 정체성 정치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경제 사회 체제에서 억압받는다는 공통의 정체성을 가지죠.

저는 이타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니에요. 단순히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주노동자들 또는 LA의 건물 관리인들을 위해 나서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과 내가 구체적인 면들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은 공통의 억압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해야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죠. 이것이 계급적 관점입니다. 제 생각에 이타주의는 시야가 좁아요. 그것은 자유주의의 감정적 기초고, 오늘의 진보를 가져온 요인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중간계급과 상층 중간계급 레즈비언/게이는 이 정치에 어떻게 포함될 수 있나요?


중간계급 사람들은 노동계급 이슈들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흔히, 진보적인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상호작용은 일방적인 도움이 되어버리곤 하는 것 같아요. 그들의 특권을 나누어 주려는 거죠. 사실 우리에겐 그런 특권이 필요 없는데 말입니다. 기회가 생겨서 노동조합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집단적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엄청난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의 관점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사회를 훨씬 더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죠. 노동조합은 단결해서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 기구입니다.



GALLAN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GALLAN이 특정 작업장의 단체협상 등에 관여하기도 하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의 활동은 회원 또는 회원의 주변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개입으로 단체협상에서 성과를 얻은 사례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네요. 우리와 가까운 몇몇의 노조들에는 오랫동안 차별금지 조항들이 있었어요. 지금 저는 한 SEIU 지부에서 지회를 조직하는 활동에 함께하고 있는데, 그 지부는 진보적이지 않아요. 우리는 회의에서 동거관계와 혼인 및 가족 복지 혜택에 대해 제기했어요. 제가 이 문제를 꺼냈을 때 비록 지역 담당자가 침을 꿀꺽 삼키긴 했지만 요구안에 들어갈 것 같아요. 지부에서 이 쟁점이 의제에 오른 지회는 처음일 겁에요.

다른 예로는 GALLAN의 몇몇 회원들이 (매사추세츠 주지사 윌리엄) 웰드로부터 차별금지조항을 얻어내는 활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어요. 웰드가 취임한 직후 그가 주(州) 노동자 권리에 동거관계 권리를 허용했다는 신화가 존재하죠. 뭐, 행정명령으로 그가 주정부에서 일하는 비노조원인 관리자들에게 비용이 들지 않는 실속 없는 선물 꾸러미를 준 것은 사실이었죠. 그것은 높은 자리에 그가 정치적으로 임명한 수십 명에게만 영향을 미쳤을 뿐이에요. 이제 그들은 병원에 입원한 연인을 방문할 권리를 가졌죠. 동시에 차별금지 조항이 주정부 고용인 노조와의 단체 협상에서 의제에 올랐지만 웰드는 이를 거부했어요. 현재 주정부 노동자들이 다시 협상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차별금지조항을 꼭 넣을 거예요.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요?


지난번에 주정부 노동자 연합은 이걸 파업이슈로 가져가기로 투표를 통해 결정했었죠. 그런데 노동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단체협약 없이 있었다는 이유로 마지막 순간에 협상테이블에 있던 레즈비언들이 차별금지조항을 파업 쟁점에서 철회했어요. 협상에서 차별금지조항은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은 쟁점이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파업 쟁점에 들어갈 겁니다.



시카고 여성 노동조합원 모임 (사진 출처 : http://prideatwork.org/public/images/606w/chicwomen_01.jpg)



동성애자 노조활동가들에게 현재 의제에 올라 있는 중요한 작업장 쟁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야기하셨다시피 동거관계 권리와 차별금지조항이 있는 것 같은 데 다른 것들도 있나요?


단체협약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차별금지 조항이죠. 일단 차별금지조항이 있다면 우리의 권리는 불만 처리 절차와 중재 절차에 들어갈 것이고 모든 문제를 포괄할 테죠. 그렇기에 흥미로운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제 머리로는 단체협약 쟁점 말고 다른 게 떠오르지 않거든요. 물론 나아가서 노동현장에서의 존중, 관리자들과 다른 노동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도 쟁점이죠. 괴롭힘 같은 끔찍한 문제들도 계속되고 있어요. 조합원 사이의 괴롭힘 말이에요. 우리는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노조에서 나서서 해결하기를 바라죠.



그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진척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세요.


GALLAN과 전국 조직인 ‘일터의 자긍심(Pride at Work)[각주:6]의 존재와 레즈비언/게이 운동의 가시화 덕분에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퀴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노조원이 노조에 기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죠. 노동조합 운동 안에서 권리로서 인정되지도 않았고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대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이 같은 권리를 잘 몰라요. 우리는 괴롭힘이나 차별을 당했을 때 노조에 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교육하는 활동을 더 넓은 범위에서 하려고 해요.

그 다음 과정은 노조가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노조는 조합원들을 공정하게 대변할 법적 의무가 있지요. 만약 내가 당신의 노조 간부이고 당신에게 문제가 생겨 나를 찾아왔는데 제대로 대변해 준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노동위원회에 가서 DFR[대표로서의 공정히 대변해야할 의무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세요. 그러면 조사 과정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아마 이 나라에서 가장 빠른 행정처리 중 하나일 거예요. 아직도 어떤 노조들은 그 일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기도 하지요. 항상 믿을 만하게 처리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대체로 DFR은 아주 믿을만합니다.

그렇기에 요즘은 DFR을 통해 레즈비언/게이 권리들을 지킬 수 있다는 걸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요. 만약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해 노조 간부에게 찾아갔는데 날 적절히 대변해주는 것 같지 않는다면 노동위원회에 가서 DFR을 제출하세요. 이길 겁니다.



이라크 전쟁 반대 집회에 참여한 ‘일터의 자긍심’ (사진 출처 : http://www.uslaboragainstwar.org/image.php?action=resize&class=original&filename=Jan27SF_PrideAtWork.jpg&)



그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그건 단체협약에 불만 처리절차가 어떻게 되어있느냐에 따라 달라요. 저는 1987년인가 1988년에 게이 조합원이 괴롭힘을 당한 일을 처리한 적이 있는데 그는 수년에 걸쳐 회사로부터 약 10만 달러를 받아냈어요. GALLAN이 만들어지고 나서의 일이예요. 만약 제가 이런 조직에 있지 않았다면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해결하지 못했을 겁니다.



괴롭힘이 없어졌나요?


그렇죠. 자동차산업노동조합(United Auto Workers)에서도 동료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남성 동성애자가 있었어요. 로널드 우즈라고 아주 유명한 사건이에요. 그는 노조 안에서 문제를 제기했어요. 하지만 그를 대변해주지 않아서 더 크게 항의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그는 부서를 옮겼어요. 그 놈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가야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옹호 받았고, 지금은 UAW의 시민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동성애자 운동(gay activism)이 노동조합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나요? 어떻게 바꾸었다고 생각하나요?


바꾸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뉴욕의 37지역노조(District Council 37) 집행위원장인 스탠리 힐(Stanley Hill)을 인용하길 좋아해요. 그는 이성애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뉴욕에서 열린 최초의 레즈비언/게이 노동자 대회에서 축사를 했지요. 그의 얘기인 즉 우리가 노동운동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노동운동이 우리, 레즈비언 게이들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1980~1995년, 노동운동이 패배하던 바로 그 시기에 레즈비언/게이 운동은 승리를 경험하고 있었거든요. 그 어느 때보다 억압과 탄압이 강화되던 시기에 레즈비언과 게이들은 밖으로 나왔죠. 우리는 커밍아웃을 하고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했어요. 이런 활동들이 노동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요. 우리는 그저 다양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죠. 공룡들[노조활동가들]과 퀴어들이 한 방에 앉아서 여러 가지를 토론하고 논의했어요.




- 인터뷰어 _ 에이미 글럭먼(Amy Gluckman)
- 번역_오리, 교정교열_나라

- 원문
<Homo economics : capitalism, community, and lesbian and gay life>(edited by Amy Gluckman and Betsy Reed) p.229~p.240 “Laboring for Gay Rights"



  1. 수전 무어는 미국 보스턴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노동운동가이다. 현재는 보스턴 매사추세츠 대학의 노동자센터(http://www.cpcs.umb.edu/lrc/) 이사직을 맡고 있다. [본문으로]
  2. Gay and Lesbian Labor Activist Network(http://www.gallan.org/) 보스턴에서 활동하는 LGBT 노동조합 활동가 조직. 현재는 AFL-CIO(미국노총)의 LGBT 부문조직인 Pride At Work를 건설하는 데 주도적 구실을 했다. [본문으로]
  3. UFW 공동창립자인 유명한 노동운동가 [본문으로]
  4. 한 지역이나 업종에서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 임금과 복지혜택. 노사협상에서 최저임금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5. 미국의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컴바히강 공동체의 공동 창립자이다. [본문으로]
  6. Pride At Work(http://prideatwork.org/) AFL-CIO에 가맹한 LGBT 노동자 단체. AFL-CIO 대의원 선거구로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다. LGBT 커뮤니티에서 노동조합 가입 독려 활동을 벌이고, LGBT 커뮤니티에서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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