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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인터뷰

[인터뷰]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손잡고 걷기.

by 행성인 2009.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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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반가웠다. 그동안 그녀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보내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간간히 이런 저런 소식들을 들었지만, 자주 연락하고 지내기에는 서로의 삶이 너무나 빠르고 바빴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까요. 그녀의 제안에 나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 달 인터뷰는 그녀와 진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예전보다 살이 좀 빠져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향해서 따뜻하게 지어보이는 눈웃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우리는 대학로 구석에 자리한 제법 입소문이 난 중국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거리를 걸었다. 아이스크림은 그녀의 지갑 안에 빼곡히 들어있는 쿠폰으로 샀다. 지갑에 들어있는 커피전문점이며, 아이스크림 체인이며, 도넛 전문점의 할인 쿠폰들을 보고 왠지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와 : 자기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양원 : 안녕하세요. 동인련 회원 이양원입니다.


해와 : 이성애자시죠?


양원 : 예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하


해와 : 요즘 어떻게 지내요? 꾸준히 다함께 활동도 하시구요?


양원 : 요즘에 어떻게 지내냐면요. 하하. 많이 활동하고 움직이고 싶기도 하지만, 대학원 졸업하면서 직업을 구해야 해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번에 교육대학원 졸업할 거구. 이젠 임용고시를 보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생각만큼 활동을 많이 그리고 안정적으로 하려면 빨리 시험에 붙어야겠죠.^^


 다함께도 그렇고 동인련도 그렇고 활동이 중요하다는 걸 많이 알고는 있는데, 나 스스로가 먼저 서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일들을 해보려고 계획 중이고, 자리를 잡고 나서 내가 만들어 놓은 기반위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해와 : 네. 역시 훌륭해요.^^ 빨리 합격하시길 기원할게요. 조금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 볼까요? 열애설 진상 규명의 특명을 받았거든요. 하하. 요즘 연애하신다고 들었어요.


양원 : 소문이 빠르군요. 민망하네요. (웃음)


해와 : 네. 우선 축하드리구요. 어떻게 만났어요?


양원 : 대학원 다닐 때 동갑내기 대학원생이 자기 친구를 소개해 줬어요.

해와 : 좋아요?


양원 : 뭐 한 3년 만에 만나는 거라 나쁘진 않아요. 근데 활동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라 좀 심심하고 답답한 느낌은 있어요. 물론 그도 이명박을 싫어하지만요. 하하하.


해와 : 주로 어디서 데이트를 하나요? 거리에서 손도 잡고 그러죠?


양원 : 논문을 끝낸 지 얼마 안됐는데, 논문 쓸 때는 남자친구가 매일 학교로 왔어요. 같이 공부도 하구요. 주로 대학로나 종로에서 만나구요. 서로 집이 멀어요.


해와 : 이성애자들도 집이 멀면 연애하기 힘들어요? 우리들은 집이 멀면 아예 연애할 생각을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양원 : 좀 자주 보기 힘들거나 그렇죠. 잠깐 볼 수 있는 시간이 나도 시간이 애매하고. 그럼 잘 못 보는 경우가 많죠. 근데 그에겐 차가 있어요.(웃음)


해와 :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에요?


양원 : 이분이 연애를 처음 하는 전형적인 일반 남자라 부인은 순종적이어야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현모양처의 모습? 그런 걸 꿈꿔요. 초반에는 그런 거 맞춰주느라 애교도 부리고 해줬는데, 조금 지나니까 진짜 내 모습 그대로의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형에 맞는 환상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그런데 내가 그런 연기를 평생 할 순 없잖아.(웃음) 연애 초반에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지속되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나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내가 내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도 싫고. 그냥 내 생각과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남자친구를 훈련을 시키고 있죠.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좀 까칠하게 굴기도 하고. 하하하.


해와 : 어머. 밀고 당기기 잘하시는군요. 하하하.


해와 : 그건 그렇고. 동인련에 처음 온 건 언제였어요?

 

양원 : 2001년도입니다. 학교 선배를 통해서 다함께를 먼저 알게 되었고 다함께 활동을 하면서 동인련을 알게 되었죠.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시작하고 경험을 하면서 전 많은 걸 배운 것 같아요. 이전에는 장애인이나 동성애자나 소외된 사람들을 머리로 이해했던 것 같아요.그런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가슴으로는 이해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동인련을 만나면서 동성애자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죠.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정을 나누고 하는 운동의 경험이 머리로 하는 이해를 넘어서 가슴으로 진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 같아요.


해와 : 동인련에서 이성애자회원으로 꾸준히 함께 해오고 있는데, 동인련의 어떤 점이 그동안 양원씨가 이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고 싶게 했나요?


양원 : 일단은 2001년도 당시에는 다함께나 동인련이 둘 다 신생단체였어요. 그때 당시에 열정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였죠. 사실 저는 제 문제를 가지고 운동을 시작했던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운동이 저에게 있어서 절실한 어떤 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절실하게 활동하는 걸 보고 감동받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제 눈에는 굉장히 진지하고 진솔해 보였어요. 학교나 이런데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드물지만 가끔 자기 지식적인 면을 과시하려고, 혹은 나는 남을 위해서 이렇게 운동해라는 식으로 자기는 좋은 사람이라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는데, 동인련은 그런 단체가 아니었어요. 운동의 형태를 떠나서 정말 설득력 있고 진실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해와 : 혹시 동인련에서 소외감 같은 거 느낀 적 있었어요? 난 왠지 이런 게 궁금해요. 나는 이성애자들 사이에 있으면 항상 좀 소외감 느끼거든요. 겉도는 것 같고.


양원 : 사실 없진 않았죠. 그런 느낌이 근데 즐거웠어요. 회원들이 모였을 때, 가끔씩 농담으로 그러잖아요. 이 순간만큼은 나더러 소수자라고. 하하. 사실 내가 소수자가 된 심정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거나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솔직히 말하면 한두 번 그럴 때도 있었죠. (웃음)


해와 : 어떤 면이?


양원 : 예를 들어, 어느 순간에 같이 재밌게 막 놀다가도 모래알처럼 내가 못 섞이는 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구요. 어느 이상은 더 다가갈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런데 뒤집어보면 이런 경험을 동성애자들이 일상적으로 하겠구나. 그런 공감도 들고 그랬죠.


(망설이다가) 근데, 이런 얘기해도 돼나? 웃긴 얘기인데요. 하하. 동인련에 물론 거의 대부분 동성애자지만 남자 회원들이 많잖아요. 근데 난 이성애자잖아. 하하. 그래서 좋은 느낌이 없을 수 없어요. 그래서 막 회원들이 손잡고 그러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내가 이성애자인 걸 확 깨닫는 거죠. 하하하하. 좋아해도 내가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아. 나 민망해 죽을 거 같아. 하하.


해와 : (정색하며) 네. 그렇군요. (웃음) 사실 저 같은 경우에도 이성애자인줄 알면서도 학교선배나 후배들이 안기고 손잡고 그러면 좀 설레긴 해요. 그건 성정체성을 떠나서 자연스런 게 아닐까 싶네요. 하하.


양원 : 그렇죠? 내가 이상한 거 아닌 거죠? (웃음)


해 와: (정색하며)이상한 건 맞아요. (웃음) 하여튼 그건 그렇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동인련에 오기 전과 후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나요? 편견이 있었어요?


양원 : 처음에 저는 거의 모태신앙이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좀 힘들었어요. 운동이 아니라 바로 직접 동성애자들을 맞닥뜨렸으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동성애자인 학교 선배를 만나고 동인련에서 동성애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아~ 다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구나 하고 깨달았죠. 아무래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로 겪고 경험해보지 못하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편견을 가지기 쉽고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도 같아요.



해와 : 동인련은 양원씨에게 무슨 의미인가요?


양원 : 사실 활동을 많이 안하고 있어서 좀 얼굴 내밀기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도 들어요. 음. 동인련은 다른 동성애자 커뮤니티 보다 좀더 진지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단체인거 같아요. 지금까지 10년을 봐왔는데 한결같이 내가 처음에 받은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한 거 같아요. 그게 말은 쉽지만 너무 어려운 일인데. 그리고 가끔씩만 가지만 갈 때마다 반가워해주고 잘 대해줘서 너무 고맙고. 사실 내가 한 것도 없는데. 가면 왠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마음이 편해지는 게 있어요. 좋은 사람들 때문인 것 같아요. ^^



해와 : 동인련과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양원 : 지금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계획했던 것들을 차근 차근해나가면서 활동을 넓히기도 한 것 같구요. 비록 규모가 많이 커진 건 아니지만, 요즘 단체로서 가져야할 완성도를 갖춰 나가는 것 같아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열정만으로 끝나선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열정으로만 끝나지 않고 완성도를 갖춘 모습으로 성장해낸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또, 동인련은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잖아요. 그게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모습 잃지 않고 열심히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옆에서 지지하고 돕겠습니다. 파이팅!!^^


해와 : 인터뷰에 솔직하게 응해줘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남친 만나러 얼른 가봐야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