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 만난 종로 그리고 종로의 밤

Posted at 2009. 10. 21. 19:27// Posted in 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동성애자인권연대는 9월 중순부터 말까지 용산참사 유가족, 구속자 지원을 위한 모금 및 추석맞이 용산참사 유가족 및 수배 활동가와 성소수자들의 만남을 '종로, 용산을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모금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0월 2일 용산 참사 현장과 명동성당에서 각각 유가족분들과 대책위 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모금액은 446,000원이며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대책위)'에 전달했습니다. 동참해 주신 성소수자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달 전,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 침해, 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의 사무국회의가 있었어요. 네트워크 사무국은 친구사이와 동인련이 꾸리고 있죠. 회의가 끝나고 술 한 잔 걸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각 단체의 추석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친구사이는 이번 추석에 게이명화극장을 그리고 동인련은 매년 명절 저녁에 사무실에 모여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죠. 즐겁게 추석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느 틈에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용산 참사 현장에 가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종로, 용산을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의 제목과 모금 방식, 방문 날짜 등의 이야기가 순식간에 정해졌습니다.


10개월 가까이 지나도록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용산 참사입니다. 사람이 이미 사는 곳을 살기 편하게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수십 년 살았던 사람들을 내쫓았지요. 망루를 짓고 올라가 노점상 터라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고 외치던 70대 할아버지, 50대 가장이 까맣게 타버려 시신이 되어버린 그야말로 재개발이 사람 죽인 어이없는 참사였습니다. 아직까지 이 정부는 입을 닫은 채 그 어떤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유가족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란 생각인 거겠지요.


10월 2일 추석 연휴 첫 날, 10명 남짓의 동인련과 친구사이 회원들이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앞으로 모였습니다. 경찰들은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감시하는 눈빛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직 따가운 가을 햇빛과 마른 바람만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었어요. 참사 현장에서 희생된 분들에게 분향을 하고 대책위 활동가 한 분과 참사 주변 설명을 들으며 거닐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레아 촛불 방송국(남일당 뒤편 레아호프란 곳에서 활동가들이 방송국을 차리고 활동하고 있는 곳,링크 ) 앞 철거를 앞둔 건물 벽이었습니다. 그 벽에 걸어놓은 만장들은 날카로운 칼로 찢겨진 듯 너덜거리고 있었습니다. 명절 연휴... 쉬지도 않고 유가족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인간성이 있는지 의심이 될 뿐이었습니다.




참사 현장 주변은 사연들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사람들이 먹거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고, 그 돈으로 아이들을 키워내고, 그렇게 자라나던 아이들이 뛰어 놀았던 곳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20년 전 삼천만원을 내고 얻은 노점상 터는 재개발 보상비로  겨우 몇백만원을 받았다 하고, 유가족들은 순천향병원 영안실에서 나와 복요리집에 모여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바로 위층은 현재 용역들이 사무실로 쓰고 있답니다. 포크레인이 들이닥치기 전에는 주변 직장인들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이면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술 한 잔 걸쳤을 텐데,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을씨년스럽게 서있을 뿐입니다.




레아 방송국에서 잠시 쉬다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보았습니다. 저 넘어 육중한 용산 민자역사가 보이고 삼각지 쪽으로는 높게 솟은 아파트가 보입니다. 삼각지, 용산 그리고 개발이 확정된 서부이촌동... 초고층 아파트들이 비집고 들어서는 개발 예비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 세입자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참사 현장 바로 건너편에는 초고층 아파트가 보입니다. 집값이 50억이라고 하더군요. 50억... 그곳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을 누르는 것은 살인적인 철거뿐 아니라 보상을 받아도 살수 없는 값비싼 집일 뿐입니다.





유가족 분들과 그 분들이 직접 담그신 식혜와 우리가 가져간 떡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혹시 집회에서 무지개 깃발을 보신 적 있냐고 여쭤보았죠. 본적이 있으시다며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시더군요. 종로도 재개발이 된다는데, 임차인들 보상도 이후 대책도 없는 재개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용산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간 모은 모금도 전달해 드렸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찾아와서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명동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명동성당에는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대책위)’ 활동가 3명이 수배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달 전, 용산 참사 이후 몇 개월간 있었던 순천향병원 영안실을 나와 유가족들은 용산 참사 현장으로, 수배자들은 명동성당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배자 중 박래군 활동가를 만나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스스럼없이 지내던 친분있는 활동가여서 그가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을 했는데 그의 밝은 성격은 여전했습니다. 몇 개월 간 병원 4층에 머물다가 명동성당으로 옮기게 되어 땅을 밟으며 운동도 할 수 있어서 좋아 졌다며 그는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가서도 마음이 편치 많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씩 성당에서 나가달라며 찾아오는 신도들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 하더군요.


박래군 활동가는 초고층 주거지는 마치 새롭고 살기 편하며 누구나 살 수 있는 곳처럼 보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서울 주변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특히 지하철 노선이 연장되고 경기도에는 GTX라는 광역 전철 노선까지 생긴다고 하니 이제 서울은 잘사는 사람들의 도시, 아마도 일본 동경처럼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재개발에 들어가면 임대아파트가 기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이 되지만 이제 돈이 없어서 임대 아파트에도 못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많아질 거라고도 했습니다. 용산 참사처럼 주거지가 아닌 상가, 즉 먹고 살 근거지가 되는 곳에서 계속 장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재개발에 맞선 싸움에서 처음이니만큼 이 싸움은 더 없이 중요한 위치에 서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정부에서도 추석 당일날 찾아온다고 하더군요. (찾아왔으나 ‘중앙정부’ 책임이 아니다.라는 뻘소리만 하고 갔지요.)





프로그램을 마치고 친구사이는 게이명화극장 프로그램을 하러 사무실로 향했고 동인련은 종로3가 포차거리로 몇몇이 옮겨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보름달 아래 훤히 자리를 틀고 있는 포차거리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봅니다. 종로는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포차거리 양 옆으로 위치한 낙원상가 일대를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지정하고 피카디리 극장에서부터 창경궁까지 돈화문로를 제2인사동 거리로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미관상 흉하니 고쳐서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발상이 이제 우리 앞에 위기로 놓인 것입니다. 이곳은 20여년 넘게 혹은 그 이전부터 숨죽이며 서로의 인연을 찾아 만나고 골목골목 늘어선 간판들이 게이들의 이정표가 되어 사회가 쏟아내는 차별로부터 피한 나름의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주말이면 포차거리를 지나다니며 주변 쪽방촌 사이로 위치한 게이바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달래며 편하게 찾아와 지내는 공동체가 된 곳입니다. 게이들 뿐 아니라 주변 탑골공원은 나이 드신 분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노년을 즐기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문화적 환경이 재개발이라는 포크레인 앞에 놓인 것입니다.


대책 없는 개발, 기존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가꾸어놓은 문화들을 밀어버리는 개발, 그리고 개발이 밀려오면 함께 발생하는 살인적인 철거. 악순환이 반복되는 개발정책이 종로3가를 덮치게 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아니면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주거지가 아니기에 심각할 것 없다는... 혹은 이태원으로 가면 된다는.. 대안은 언제나 늘 쫓겨다녀야한다는 아픔이 있을 뿐입니다. 과연 종로만의 문제일까요? 지역공동체 운동이 잘 되어있고 레즈비언들이 주거지로 선택하고 있는 마포, 은평은 어떨까요? 그리고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은 어떻게 될까요?


용산에서 바라본 종로 그리고 추석 전날 종로에서 바라본 용산은 각기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즉 일방적인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같은 운명이 될 처지에 놓인 곳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용산 참사의 억울함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풀 수 있는 고민을 나누는 것은 앞으로 종로에서 혹은 여타 지역에서 만들어진 공동체를 어떻게 지킬 것이냐에 대한 답을 갖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장병권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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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욜
    2009.10.30 11:59 [Edit/Del] [Reply]
    며칠 전 용산참사 철거민들을 조직폭력단으로 둔갑시킨 재판부의 판결이 있었지요.
    중형이 선고되었는데. 그렇게 되면 아들이 아버지를, 동료가 동료를 죽인 꼴이 된다고 합니다.

    재판부의 어이없는 결정으로 유가족으로 그동안 싸워왔던 세월이 한스러운지 울면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가슴아프고 열받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석때는 재판 전이어서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만날 수 있었는데.

    정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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