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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연대, 변화의 바람이 분다

by 행성인 2009. 10. 23.
 *  이 글은 9월26일에 개최된 2009 성소수자 진보포럼, '여섯 활동가에게서 듣는 연대 이야기'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나는 9월26일에 개최된 성소수자진보포럼 여섯 명의 발표자 가운데 하나였다. 회원들과 함께 진행한 두 번의 내부토론 내용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역할을 하였다. 사전 토론이 있었기에 발표내용이 보다 풍부해질 수 있었다. 이전까지 막연히 느끼고 있던 연대활동의 의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연대활동을 통해 얻었던 효과를 정리할 수 있었다. 몇 번의 토론과 포럼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섣부르게 정의내릴 수는 없다. ‘연대란 이런 것이야’ 하며 정의내리는 순간 연대활동이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 사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대는 성소수자들의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다양한 전략 가운데 하나일 뿐, 그것이 성소수자 운동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책임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의 사전적 의미처럼 우리는 연대를 통해 성소수자들의 삶과 인권의 문제에 함께 책임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연대활동의 중요한 의미이자 효과이다.

 연대는 성소수자들의 삶에 중요 이슈가 되는 커밍아웃과도 닮아 있다. 즉 커밍아웃이 상대에게 나의 성정체성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연대활동도 마찬가지다. 때로 심정적인 지지를 넘어 적극적으로 과시하고 보여줄 필요도 있다.



1. 연대활동의 경험을 나누다.

 성소수자들이 사회적 약자,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것은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중요한 활동원칙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연대활동의 경험을 소개하지 못해 아쉽지만, 포럼에 참석한 활동가들이 활동하는 영역을 중심으로 지난 활동을 되짚어 보며 연대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1) 인권 : 지금은 인권단체연석회의와 같이 40여개의 인권단체들이 참여하는 연대활동에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있지만  십여 년 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이 논의될 무렵만 해도 성소수자 인권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인권위법을 제정할 때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을 포함시켜야 할지 말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인권위법에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조항이 포함되었지만 초창기 성소수자들은 인권범주에서조차 소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0년 홍석천의 커밍아웃과 2001년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차별조항 삭제를 위한 투쟁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시민사회, 인권운동 진영은 물론, 여성 / 정보인권 / 문화인권 단체로까지 지지가 확대되었다. 이후 2006~7년 벌어진 군대 내 동성애자 성폭력, 성희롱 사건과 2007년 말 차별금지법 상의 성적지향 조항이 삭제된 문제가 발생할 때는 이전보다 더 많은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방어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제는 다양한 반차별 쟁점(이주, 장애, 여성, 성적지향 등)을 인권운동 영역에서 주도해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2) 종교 : 늘 평행선으로만 갈 것 같았다. 2003년 육우당의 죽음이 있기 전까지 교계에서 동성애에 대해 뭐라 하던지 간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육우당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슬퍼 앉아있기보다 진보적인 크리스천 청년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와 용기를 주었다. 마치 화해의 선물을 주고 떠난 것처럼 그의 추모의 밤 행사에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한기연) 대표자들이 찾아왔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한기연 대표의 연설이다. 그는 죄송스럽다는 말과 함께 교계에도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고 지지를 보내주는 청년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별한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만난 한기연 청년들은 한국기독총연합회(한기총)와 같이 보수교계대표단을 찾아가 사과문 발표를 직접 요구했고, 건물 앞에서 추모예배를 조직했다. 우리가 더 많은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2007년 보수기독교계의 반대로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 조항이 삭제된 일이 벌어지자 교계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지지자들이 등장했다. 차별없는 세상을 여는 기독인 연대와 같은 연대체가 결성되었고, 기독교를 믿는 성소수자들도 대외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도 퀴어문화축제와 같은 성소수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지지를 표현하고 있다.

2006년 이화여대에서 개최된 “강요된 침묵, 기독교와동성애 입을 떼다” 토론회


3) 에이즈 : 2003년 보건의료포럼에서 글리벡 투쟁[각주:1]을 경험한 보건의료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HIV/AIDS 감염인, 환자들의 권리향상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공동행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고 2004년 초 동성애자, 보건의료인, 감염인 당사자, 인권단체 홛동가들이 모여 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를 출범시켰다. 올해로 창립 6년을 맞는 나누리+는 그동안 제약회사 로슈를 상대로 의약품 접근을 위한 활동은 물론 에이즈예방법 전면개정을 위한 활동과 한미FTA 반대 활동 등을 감염인들과 함께 벌여왔다.  

서로 다른 생각, 다른 운동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지금은 에이즈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모순을 알아가고 있고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누리+는 성소수자들끼리만 있으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소중한 활동기회들을 제공했다. 우선 HIV/AIDS 감염인, 환자들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백혈병 환자들과 같이 다른 질병을 가진 환자들을 만날 때는 또 다른 소수자 권리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특허법 문제와 제약회사의 횡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동성애자인권연대가 대안적인 에이즈 운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주변, 우리 회원 중에 감염인이 있다는 사실이었고 그들이 겪고 있는 힘든 삶을 듣고 느낄 때마다 함께 분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제3회 에이즈 인권주간 거리집회 모습

4) 청소년 : 2001년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조항으로 인해 성소수자 사이트가 인터넷 검열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퇴폐’라는 등급에 가로막혀 엑스존(www.exzone.com)과 같은 게이웹사이트는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2004년까지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조항을 삭제하기 위해 기나 긴 싸움이 계속되었고 정보인권, 문화인권 단체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가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동성애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단순 억지 논리였지만 청소년에게 덧 씌워진 동성애 음해론에 맞서 싸우기엔 역부족했다. 청소년들에게 동성애가 유해다는 논리는 청소년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한 부분으로서 작동할 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정보접근의 권리,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근거가 된다. 더 나아가 부모세대, 성인들의 머릿속까지 통제하는 효과까지 가지고 있다. 지금은 깨지지 않을 벽과 같이 느껴지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새로운 운동주체로 등장하고 있는 지금, 청소년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사회에 맞서 청소년 운동 주체들과 함께 조금씩 균열시켜나가는 활동을 펼친다면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논리가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점을 보다 효과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5) 이주노동 : 아직까지 깊이 있는 고민과 행동을 함께 하지 못한 영역이다. 이주노동자의 삶에 대해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동안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계기가 부족했다. 단지 소수자로서의 감성적인 연대의식 정도를 가지고 집회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겪고 있는 노동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이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적극 조직하고 공동체를 지원하는 활동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성소수자들끼리만 있으면 느끼지 못하는 차별과 편견을 연대활동(특히 사회운동 내에서)을 통해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연대하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듣게 된다면 사실 지속적인 연대가 불가능할 정도의 폐쇄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연대활동을 하며 주목해야 할 점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소통할 때 변화의 가능성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고 평가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사회적 수준임을 알고 지지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8년 촛불운동에서 성소수자들은 사회변화를 바라는 구성원으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회인식도 함께 확인하였다. 만약 폐쇄적인 태도로 촛불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2. 지금보다 더 넓고 깊은 연대를 위해

 내부토론을 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연대활동에 대한 간략한 평가가 있었다. 연대활동이라는 것이 외부로만 향할 것이 아니라 내부(게이-레즈비언 간 연대, 성소수자 단체들 간의 연대 등)로도 향해야 한다는 중요성도 제기되었다. 당연하고 지당한 말이다. 우리가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운동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할 때 성소수자들의 힘과 단결을 강조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보폭과 수위에 따라 전략은 달라질 수 있지만 연대는 외연을 넓혀야 함과 동시에 이슈를 고민하고 생산할 수 있는 내적연대.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이만큼 해줘야 한다는 품앗이연대에 초점을 두기보다 연대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강조하는 연대의 가치가 민주주의와 인권과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연대는 많은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왜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활동에 함께 할까. 이 이슈에 상관없어 보이는 성소수자들이 굳이 참여했을까 라는 의문과 질문에 보다 효과적인 대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토론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2008년 촛불운동에서 동성애자인권연대가 촛불게이, 촛불레즈비언 스티커를 만들어 행진하는 길에 붙이고 ‘비정상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이명박 정부’라고 이야기했던 전략은 바로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나온 설득의 과정이었다. 


 연대는 단순히 연대체를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내부의 질적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하고 외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긴장감을 절대 늦춰서도 안 된다. 그래야지 우리가 원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더 빠르게 쟁취할 수 있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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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리벡은 노바티스 제약회사에서 판매하는 백혈병 치료제로 환자들에게 과도한 치료제 비용 요구로 거센 비난을 받아 왔다. 이에 보건의료 활동가들은 환자들과 함께 제약사를 상대로 의약품 접근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벌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