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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노동

[나, 성소수자 노동자 ③] 저는 영화 현장에서 노동했던 게이 노동자입니다

by 행성인 2022. 1. 4.
어디에나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당연히 다양한 일터에도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성소수자 동료가 있는지 묻는다면 대부분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혐오와 차별을 피해 일터에선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막연한 상상 속에 가려진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생생한 언어로 기록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이번 연속 기고는 현재를 살아가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현장을 바꾸고서야 비로서 나의 삶이 바뀌었듯 모두를 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동자가 함께 나서야 일터도, 우리의 삶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번 연속 기고를 통해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곁에 함께하는 동료가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선원, 비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JUN은 20대 후반의 남성 성소수자이며, 약 4년 동안 영화산업에서 종사했었다. 20대 초반에 처음 영화 제작현장에 들어간 후, 대략 3년 동안 영화 제작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그 후 일을 그만두고 3여 년간 성소수자 인권 활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한 후 다시 영화 제작현장으로 돌아갔으나, 나이와 경력이 어긋나면서 여러 불편한 상황이 있었다. 결국, 더 이상 본인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코로나 19로 많은 영화 현장이 중단되면서 아예 영화 현장을 떠났다.

 

 

순간 1.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영화산업 노동현장

 

군대와도 비슷한 조직인 것 같아요. 영화산업이라는 곳이 되게 마초적이고 남성들이 많고, 그래서 최근까지도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이나 범죄들도 빈번하게 일어났었던 곳이고. 폐쇄적인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죠.

 

JUN 이 경험한 영화 현장처럼 대다수 영화 현장은 남성 노동자의 비율이 매우 높으며 서열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여성을 마치 물건처럼 소비하는 일부 스태프도 있었다. 공기처럼 퍼져있는 암묵적인 문화 하에서 여성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및 혐오표현이 쉽게 이뤄졌다. JUN 또한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동안 동료들로부터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들어야 했다.

 

“영화현장이 다양하잖아요. 저는 상업영화현장에 있었어요. 독립영화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상업영화현장은 얘기를 하다 보면 이 사람과 얘기를 안 통하겠는데 정도의 빻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중략) 초창기에 일을 할 때는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많았죠. 혐오발언도 심심찮게 들리거든요. 최근에 올해 초에 들었던 말이 ‘이태원 클라쓰’ 유행할 때잖아요. 영화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같이 모여서 봤는데, 트렌스젠더가 나오잖아요. 트렌스젠더 혐오와 함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 내 앞에 있으면 죽이고 싶다는 말을 제 앞에서 한 거예요.”

 

해당 발언을 한 동료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였다. JUN 또래의 20대 노동자였다. 누군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는데 따로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소수자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JUN 은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까 두려워 이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소개로 일자리가 구해지는 영화 현장의 특성 상 다른 현장에서도 노동하기 위해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순 없었다.

 

 

순간 2. 영화 현장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로 존재하기

 

 (커밍아웃을) 했는데, 이것도 되게 일을 할 때 얘기한 게 아니라, 쉬는 기간이 있다고 했잖아요. 쉬는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마주칠 사람들인데, 제가 두루뭉술하게 얘기했어요. 그 사람과 연락이 안 되죠. 말 하고 나서, 그렇죠.

 

이렇듯 영화산업 내에는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분위기가 있었지만, JUN이 커밍아웃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약 3년간의 노동 후 쉬는 기간에 JUN은 용기를 내서 신뢰할만한 동료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커밍아웃 이후 그 동료와는 연락이 끊겼다. 본인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친한 동료였지만, 그는 석연치 않게 모든 관계를 끊어버렸다. 이렇게 영화산업 내에서의 첫 커밍아웃이 좋지 않게 끝나면서 JUN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 더욱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영화산업 내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말을 못 하는 이유가, 그 분위기도 있고, 영화산업에서는 계약을 장기간 하지 않잖아요. 작품 당 3~6개월을 계약을 하는데, 그런 말을 했을 때 그 현장은 어떻게든 버티겠죠. 그런데 다음에는 계약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되게 지배적이죠.”

 

영화 제작현장에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노동자는 많지 않다. JUN 은 영화 현장에서 커밍아웃한 스태프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자신만의 기술과 능력이 확고한 사람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영화 제작의 특성상 한 편을 촬영할 때마다 새로 계약을 하게 되는데, 성소수자에 우호적이지 않은 여건 하에서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면 다음 계약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로 인해서 영화산업 내의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순간 3. 퀴어 프렌들리한 영화 현장은 존재하나

 

“취지는 영화 일을 하고 쉬잖아요. 어제 일 끝났다고 바로 시작하는 건 아니니까, 모든 스텝들이 1~3달이 비어요. 이 기간 안에 이 사람이 수입이 없으니까, 수입을 메우는 용도로 그 교육을 하거든요. 영화 스텝들의 능력이나 이런 걸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인데, 이러면서 가장 최신의 기술들을 습득하는 거죠. 학교처럼."

 

영화진흥위원회는 작품 제작 간에 발생하는 영화산업 노동자들의 쉬는 기간에 대한 임금을 보전해주고, 재교육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교육을 진행했다. JUN도 이러한 교육에  참여했었는데 직장 내 성차별적인 문화라거나 폭력적인 위계질서를 개선하는 데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느껴졌으나 내용이 좋은 것들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어떻게 성평등한 현장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한 달여 동안 진행했던 교육에는 유용한 내용들이 많았다. 여기에서 넷플릭스의 사례를 설명했는데, OTT 플랫폼 넷플릭스 지침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포용과 다양성’을 인사 지침으로 두고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직원들 내부 모임 활동도 독려한다. 넷플릭스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성별 고용 현황은 ‘남성(48%)’, ‘여성(47%)’ ‘비공개(4%)’ ‘그밖에 성 정체성(1%)’ 등이다.

 

또한 넷플릭스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및 평등한 고용 준칙도 두고 있다. 넷플릭스는 준칙에서 “어떤 직원이나 지원자도 ‘보호 대상’이라는 이유로 다르게 대하지않는다. 보호 대상이란 인종, 종교, 피부색, 혈통, 출신 국가, 성, 성적 지향, 성별, 성적 정체성, (중략) 기타 특성을 말한다.”며 “채용, 고용, 배치, 직무 할당, 보상, 승진, 발령, 복리후생, 트레이닝, 강등, 징계, 고충 처리, 해고 등을 포함한 제작 모든 측면에서 이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을 하는 거 하면서 되게 퀴어프렌들리(Queer-friendly)한 것도 많이 나왔어요. 엄청 적극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고. 예시를 드는 게, 게이 스텝들, 이런 게 아니라, 영화 캐릭터에서 성소수자를 집어넣는다거나, 이런 얘기가 나왔었고. 그러면서넷플릭스 사례를 잘 들어주면서, 영화스텝들의 일정 비율 이상을 성소수자로 채워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는 거예요. 넷플릭스 기준에는. 실제로 그렇게 채워졌고, 그런 사례를 가져오면서 한국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었어요.”

 

 

성소수자 노동자가 꿈꾸는 영화 현장

 

2020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성소수자 방송·미디어노동자 인권을 위한 캠페인 ‘스탠바이큐’를 진행했다. 여기에 참여한 이혁상 감독은 ”현장은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누구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바뀐다. ‘LGBTQ 프렌들리’한 현장을 위해선 구성원 교육이 중요“하다며, “현장에 성소수자들이 많이 있다. 어렵겠지만 '자신의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다면' 커밍아웃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30대 초반 게이 촬영 스태프입니다", 미디어오늘, 2020.09.26)

 

“저는 항상 커밍아웃을 주장하는 사람들한테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라고 하거든요. 이게 굉장히 안 좋은데, 저는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한테 커밍아웃하라면 할수 있어요. 하지만 알고 있는 사람한테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특히 같은 직장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더더욱 못하겠는 거죠. ‘우리는 조금은 바뀌어야 할 것같다.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숨도 좀 쉬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문득 영화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영화를 보며 공감대의 폭을 넓히고 지금의 세상을 돌아본다. 그러나 정작 영화 제작 현장은 공감대의 폭을 넓히기엔 거칠다. 퀴어 프렌들리할 것이라는 상상에 영화 제작 현장을 찾았다 소수자에게 폭력적인 분위기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성소수자 노동자가 JUN 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 제작 현장 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지금의 세상을 돌아보는 것처럼 각자 자신의 일터를 둘러보자. 성소수자 노동자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그러나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는 스스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성소수자 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동료의 존재가 중요하다. 당신이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에 귀기울이고, 지지하고, 연대하며 새로운 일터에 대한 상상을 시작할 때 우리의 노동 현장은 바뀔 것이다. 함께 새로운 일터를 상상하자.

 

 

* 이 글은 민주노총 기관지인 [노동과세계] 에도 공동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