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행 및 편집: 남웅
인터뷰이: 호림
행성인 25주년은 단지 숫자에만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일례로 25주년 후원캠페인은 상임활동가의 안정적 확충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요. 행성인은 단체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의 지속과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 아래 상임활동가를 충원했습니다. 2019년까지 상임 활동을 했던 남웅이 다시 돌아왔고, 호림이 새로운 상임활동가가 되었지요.
25주년을 맞아 행성인 미디어TF는 호림 상임활동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호림은 이전에도 HIV/AIDS인권팀장과 동성애자인권연대 운영위원, 행성인 운영위원과 공동운영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주요 활동가들처럼 단체 안에 인터뷰와 같이 집중적으로 활동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없었습니다. 새로운 상임활동가이지만 알고 보면 경력이 짧지 않은 호림은 행성인 상임활동가들 중에서 요즘 제일 바빠 보이기도 한데요, 그 모습이 지금 행성인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호림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12년차 신입 상임활동가
남웅(웅): 호림이 10년 전쯤 친구사이에서 인터뷰를 했죠. 링크 연결해서 미리 읽어주십사 넣어드리고 ((웃음)을 눌러주세요.) 먼저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호림: 행동하는성소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호림이라고 합니다. 보건학 박사입니다. 행성인의 새로운 상임활동가고, 13년 된 애인과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웅: 직함이 세 개 군요. 상임활동가로 시작을 하죠. 상임 활동을 3월부터 한 거잖아요. 요즘은 어때요? 할 만한가요?
호림: 할 만하다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지만 상임활동이라고 하면 나의 본업으로 활동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의 올해 기조가 ‘제안이 들어오는 일을 막지 않는다.’ 최대한 들어오는 활동들은 다양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지냈어요. 그런데, 8월 이후부터는 약간 감당 불가능한 상태에 접어들어서 내년부터는 조금 정돈된 일상을 살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웅: 평소에 정리 하셔야…호림이 마다하지 않았다는 활동은 뭐가 있었는지 천천히 들어보고 상임 활동 이야기부터 시작하죠. 사무실에서는 주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호림: 재정과 관련해서 일상적인 지출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리고 노동권 기획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웅: 노동권 기획사업 이야기도 이따가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행성인에 오래 있던 사람들은 호림을 예전부터 봐서 알지만 신진 활동가들이나 행성인과 연대 활동을 한 지 얼마 안 된 단체 활동가들한테는 호림이 새로운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오래된 신입 활동가‘ 정도로 호림을 소개하는데요.
제대로 소개를 드리면 호림은 저랑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공동운영위원장을 역임했죠.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까 임기 다 끝나고 인터뷰를 하네. 공동운영위원장을 하고서 보건학 박사를 따고 올 초 상임 활동을 하게 됐잖아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다른 할 일도 많았을 텐데 운영위원장을 하고 박사까지 따고서 다시 행성인에 돌아와서 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듣고 싶었어요.
호림: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는 2018년 단체가 여러 내부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대위 체제로 넘어오고 단체 사무국 활동가도 5명에서 3명으로, 근래에는 2명으로 줄어들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단체의 맥락을 아는 사람이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여기서 활력 있게 활동을 하면서 단체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한 편에 있었고요.
또 한편으로는 박사 과정 동안 성소수자 연구를 하면서 졸업한 동료들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일을 해나갈 것인가 생각했을 때, 당장 성소수자 연구를 하는 집단으로 함께 뭔가를 하기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들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어요. 각자 돈을 벌면서 역량을 쌓고 여건을 만들어내서 같이 뭐든 하자는 이야기를 나눴고요. 저는 그 일환으로 일단 단체에서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상임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웅: 단체 차원에서는 새로운 상임활동가를 발굴해서 같이 역량을 키워가기보다 대중운동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운영을 하면서 운동을 키워낼 수 있는 활동가가 필요했다고 판단했죠. 호림이 운영위원장을 역임할 때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호림: 그때는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제약이 많았어요. 그래도 회사에서 돈을 버는 건 아니니까 최대한 내 시간의 많은 부분을 활동에 쓰려고 노력을 했죠. 대표로서 외적으로 보이는 활동을 중심으로 했었던 것 같아요. 어디 가서 발언하고 발제나 발표를 하고 회의에 참여하는 일들을 했거든요.
그게 진짜 다른 것 같아요. 그전에 내가 활동할 때는 사무실이랑 교육장 청소도 별로 신경 써 본 적 없거든요. 회원을 확충하는 건 주변에 후원해주십사 알리면 됐지만, 내가 그 단체의 재정을 담당해서 지출하는 일은 사실 해본 적 없는 일이었죠. 단체의 어떤 기물 혹은 물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서 채워 넣는 것도 제 역할이었던 적이 없었고요.
웅: 그 당시엔 저도 운영위원장이었지만 상임 활동을 병행했잖아요. 그래서 나에게 없는 관리자의 마인드가 호림에게 보였어요. 사무국회의를 할 때면 이것 저것 필요한 요구들을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지금은 본인이 필요한 걸 본인이 담당하게 되니까 태도 변화도 당연히 있을 거 같은데요. 그렇게 중간평가를 했을 때 이호림은 활동가로서 어떤 부분이 강점이라고 생각하나요?
호림: 강점…생각이 많지 않다. (웃음) 행동이 앞서는 게 강점일까요? 강점인 것 같아요. 깊이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일단 들어오는 일들을 최대한 하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판단이 필요한 일들이 있을 때 빠르게 해내는 것이 강점인 것 같고,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알려주세요. 저의 강점.
웅: 호림은 뭐랄까. 활동하다 보면 멀리 내다보는 방향이 있고 지금의 조건에서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호림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면서 방향을 잃지 않을 판단을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잘하는 것 같아요.
호림: 그건 제가 생각이 깊지 않아서라고도 생각하는 면이 있어요. 지금 닥친 일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생각할 때는 현실적인 여건 안에서 감당 가능한 활동을 잘 판단하는 편이다.
웅: 그럼 보강하면 좋겠다 생각하는 건 뭔가요?
호림: 그 반대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덜렁대는 게 있고 세심하게 못 챙기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일에 휩쓸리면 나 자신의 호흡을 잘 못 가져가요. 어디서 발표를 맡거나 할 때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준비하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가져가는 법을 아직 모르는 거 같아요.
웅: 아직 신입 상근이니까.(웃음) 근데 너무 바쁘면 호흡을 놓치기도 쉽죠.
연구와 활동 사이에서
웅: 호림은 보건학 박사라고도 자신을 설명했어요. 활동하면서 연구를 병행했는데요. 대학원 다니면서 활동을 했다고 말했죠? 학부 시절에 법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은 사회복지를 하고 박사 때는 공중 보건으로 종횡무진 했어요. 정신없어 보이는데도 그 궤적을 꿰는 주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연구 키워드나 주제가 뭐였는지 설명해 주세요.
호림: 대학 때 활동을 시작해서 진로를 결정한 거니까 성소수자와 관련한 연구를 실증적인 방법론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에 동인련 HIV/AIDS 인권 팀에서 활동하기도 했고요. ’건강‘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있어서 석사를 마쳤고, 박사는 당시 여러 고민이 있었는데 제가 박사 과정을 했던 연구실 교수님에게 성소수자 건강 연구를 하는 팀에 와서 함께 연구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가게 된 거죠. 석박사는 전공이 달라졌지만 배우고 연구한 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웅: 저는 개인적으로 2010년도 즈음해서 퀴어 관련 언어가 많이 생산‧유통되고 이론도 많이 소개됐던 걸로 기억해요. 관련한 주제로 연구와 번역작업도 많아졌다고 체감을 하거든요. 근데 그 안에서 호림의 접근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거는 그 당시엔 이론적인 내용이나 질적 방법론의 연구들이 주로 소개되거나 시도되었던 경향이 있는데, 호림은 성소수자 연구를 하면서도 건강을 키워드로 양적인 연구방법론을 이어갔잖아요. 그 부분에서는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호림: 저한테는 당연한 연구 방법이었어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꾸고자 할 때 핵심 중 하나는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인데, 그 일에 기여할 연구가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성소수자의 다양한 사회적인 경험이 이들의 삶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론 분야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이건 학부 전공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 이론은 모릅니다.(웃음)
웅: 호림이 연구한 성과나 출판 작업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어요. 저자로 검색해도 나오는데 2018년도에는 『오롯한 당신』을 공저하기도 했고,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 접근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죠. 올 초에는 「국가 대표성 있는 설문조사에서의 성소수자 정체성 측정 필요성」 논문을 내기도 했어요. 연결되는 지점일 텐데, 저는 호림이 이번 인권포럼에서 얘기한 게 기억나요. 성소수자를 카운팅할 수 있어야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국가가 주목을 하고 국민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얘기했던 건데요.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활동하는 호림의 스타일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호림은 연구와 활동을 병행했잖아요. 물론 국내에서 활동하는 많은 동료가 그렇게 병행하고 있죠. 하지만 활동을 위해 연구를 진행하는 것과 활동과 별개로 연구사업을 받거나 학위를 위해 연구를 하면서 활동을 병행하는 건 다르잖아요. 어떨지 궁금했어요.
호림: 답답한 일이죠. 그러니까 저글링 하면서 무엇도 잘 해내지 못하면서 산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 무언가 밖에서 시급하게 대처해야 할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내가 그것에 충분히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는 측면도 있었고, 한편으로 대학원 과정은 독립적인 연구자로 연구하기보다는 배워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여기 완전히 집중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해서 그 과정 안에서는 시너지를 느끼지는 못했죠. 지금도 연구를 병행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의 상태가 좀 더 마음이 편하다고 해야 되나.
웅: 그래도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그냥 학문으로만 현안에 접근하면 성소수자의 삶이나 인권운동을 프레임에 억지로 맞춰 해석하기 쉬울 것 같거든요.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토론하면서 부딪히고 호흡을 맞추는 게 연구의 방향을 정하거나 진행할 때 다른 감각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림: 그런 면은 당연히 있죠. 반대로 연구를 하면서 알게 된 어떤 현황들을 생각하면서 지금 활동에 빈틈이 무엇일지 찾기도 하고, 어떤 종류의 활동이 추가로 필요할지 생각할 계기를 던져주는 것들이 있죠. 이런 건 당연히 굉장히 큰 힘이 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건 좀 당연하게 깔고 가서 생각을 못했네요.
한편으로는 어떤 종류의 통찰이 꼭 활동을 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있어요. 저희 연구실에서 같이 진행한 연구의 기본적인 대전제는 성소수자라서 어떤 종류의 질병에 취약하다거나 정신 건강이 나쁜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이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종류의 낙인을 부여하고 그 낙인을 당사자들이 어떤 차별과 폭력 등으로 경험을 하는지에 따라서 건강이 결정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성소수자의 삶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인 요인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연구들인데요. 이런 관점을 꼭 활동을 통해서만 체득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웅: 아까 활동하면서 연구를 병행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이야기했는데요. 특히 퀴어 커뮤니티는 다른 배경도 있을 것 같아요. 학제적으로 퀴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없고, 본인을 설명할 이론이나 언어를 만들려면 결국에는 본인이 찾아 다니면서 공부해야 하는 지점도 필요한 것 같고요. 공동체에 기여하고싶고 사회를 바꾸고 싶어하는 욕구들을 연구나 활동으로 풀어보려는 마음들이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호림은 신진 연구자들을 조직해서 성소수자 연구자 네트워크를 결성했잖아요. 어떻게 결성했고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호림: 정확하게는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 연구자 네트워크‘인데요, 제 석사 과정에서의 경험과 박사 과정에서의 경험의 차이를 실감하면서 어떤 네트워크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석사 때는 학과를 통틀어서 성소수자 연구를 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고 교수님의 주 연구 분야도 성소수자와 관련한 게 아니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사회복지 석사 과정생들은 대부분 자료를 직접 수집하기보다 2차 자료를 분석해서 논문을 쓰는 분위기였는데, 성소수자는 국가 통계 자료가 없기 때문에 자료를 직접 수집해서 연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대학원에서 서로 연구 주제가 달라도 비슷한 과정과 방법으로 연구를 하면 서로 고민을 나누면서 진행하게 되는데요. 저는 분야도, 주제도, 방법도 다르니까 좀 외로웠죠. 그런데 박사 과정에서는 ‘성소수자 건강 연구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료들이 함께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알게 됐던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대학원 다니면서 외롭게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같이 네트워크를 만들자고 했죠. 분야가 다르더라도 가지는 고민 같은 것들은 비슷할 수 있고 성소수자를 연구하거나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으니 모임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웅: ‘성연넷’이라고 줄여 부르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호림: 월별로 연구 세미나와 방법론 워크샵을 하구요. 메일링으로 연구 발표 기회나 학회 정보들을 공유해요. 조금 느슨한 모임으로 가고 있습니다.
웅: 몇 명 정도 있어요?
호림: 100명이 조금 넘어요. 성연넷을 만들자마자 코로나가 시작돼서 연회비를 한 번만 받고 추가로 받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멤버십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기회가 없긴 하지만 일단 가입한 분들은 100명이 좀 넘는 상태에요.
웅: 지금은 활동에 집중해서 대학원 공부와 병행할 때보다는 편해졌다고 말씀하셨는데, 박사 과정 당시 연구팀 동료들이랑 이후를 도모하고 있잖아요. 그건 연구를 손 떼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앞으로 어떤 연구 주제를 가져가고 싶다거나 계획이 있는지 들려주세요.
호림: 지금도 하고 있어요. 전업으로 연구에 집중하는 상황이라도, 저의 바람은 그래도 1년에 논문 한 편 혹은 두 편 정도를 꾸준히 쓰면서 연구를 완전히 손 떼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 일단의 계획이에요.
국가에 나의 파트너십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기
웅: 야금야금 연구를 하는 것으로.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게요.
아무래도 이제 본론이 될 것 같은데요. 일단 성소수자 운동 안에는 의제가 많잖아요. 호림은 HIV/AIDS 운동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본인이 새로 참여한 의제 운동 외에도 단체 활동과 그동안 해온 활동까지 담당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떤 의제들에 집중하는지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하나씩 들어가 봅시다.
호림: 어떤 의제에 집중하고 있냐고 물으면 동성혼 법제화를 꼽을 수 있을 것 같고, 노동권 관련한 지원 사업을 받아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고, 무행 집행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올 상반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운동에 열심히 참여했죠.
웅: 기후정의운동도 하시잖아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인터뷰 작업도 하시고.
호림: 그런 것도 다 의제로 넣어야 하나요?
웅: 당연하죠. 동성혼 법제화 관련해서는 성소수자 가족 구성권 네트워크(가구넷)라고 하는 연대체에서 활동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어떤 활동들을 했었는지 들려주세요.
호림: 가구넷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동성혼 법제화 운동을 보다 전면적으로 해보자는 논의를 진행하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기반을 만드는 활동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한국의 일반 대중이 성소수자에 대해서 그리고 동성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는 조사 사업을 리서치 회사랑 같이 진행했어요. 운동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 진행한 조사였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은 운동의 메시지를 만들고 대중 캠페인의 일환으로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 진행 중이에요.
그리고 가구넷에서 ‘4종 세트’라고 부르는 성소수자, 동성커플의 역량강화를 위한 커뮤니티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요. 동성 커플이 삶의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알아야 할 유언장 작성법과 의료결정권, 임의후견, 재산/세금 문제에 대한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이걸 리뉴얼 해서 ‘뉴 4종 세트’를 만들었어요. 기존의 정보 전달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에 일상에서 마주하는 차별에 대응하는 방법, 동성혼에 대해 말하는 방법 등 권리의식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추가했어요. 이런 작업들을 하면서 보다 본격적인 운동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웅: 가구넷은 당사자와 접점을 넓혀가면서 활동해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최근에는 결혼이 성소수자에게도 의식이자 이벤트로 자리 잡았잖아요. 반공개적으로 결혼식 하는 커플들이 많아지고 성소수자까지도 주요 고객으로 삼아 결혼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시야에 들어온 상황인 것 같아요. 매체에서도 동성혼이나 다른 가족 구성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고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요?
호림: 좋게 보고 있습니다. 동성혼 법제화라는 제도적인 변화는 국회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혹은 법원의 논의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변화가 있어야 동성혼 법제화가 가능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커뮤니티 당사자들이 자신이 애인/파트너와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겠다 하는 것을 결혼식이라는 의식으로 선언하고 추구하는 분위기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당사자들의 높아진 권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고요. 단지 우리 둘 안에서의 관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정받고, 의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축하받고 싶은 욕구들이 있잖아요. 이러한 욕구가 제도적으로 이 관계를 보장받고자 하는 권리의식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가시화 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디어에서 동성 커플이 어떤 방식으로든 많이 재현이 되는 것도 필요하고요.
여자가 여자와 남자가 남자와, 성별과 무관하게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를 한국의 대중이 본격적으로 인식하는 것부터가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의 변화들은 동성혼 법제화로 가는 길에 기여하는 사회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웅: 지금 시점에서는 어떤 활동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호림: 두 가지 큰 방향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인식을 끌어올리기 위한 계기들을 어떻게 만들고 동성혼의 필요성을 폭넓게 알려낼 것인가가 있을 것 같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싸움에 용기 내서 참여할 의지를 가진 당사자들을 만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오소리/소주 부부처럼 함께 싸울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또 함께 하자고 설득할 것인가. 크게는 이런 활동들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아요.
웅: 동성혼은 동성 부부라는 하나의 가족 구성 모델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고 있잖아요. 호림이 활동하는 가구넷에서도 집중하는 활동이 동성혼이고요. 한편에서는 퀴어 커뮤니티 안에 다른 가족 구성 모델에 대해서도 적지 않게 얘기를 하고 가시화하는 시도들을 보게 되는데요. 그 안에서는 결혼제도가 특권적이고 기성 가족체제에 편입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주장들이 있죠. 지금도 논쟁이나 긴장이 없지는 않을 텐데, 저는 이 논쟁이 고인물처럼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성소수자 운동 역시 동성혼을 고민할 때 동성혼 법제화라는 목표만이 아니라 가족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배경이라던가 혼자 살기를 택하거나 결혼하지 않고 살더라도 어떤 제도적 인정과 지지가 필요한가를 오랜 시간 고민해오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지금 시점에서는 다른 가족 모델과 실천들, 동반자나 시민결합같이 동성혼과 다른 제도적 대안들도 이야기되고 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호림: 결혼보다 낮은 수준의 결합 관계 혹은 비성애적인 비혈연 가족 공동체의 관계를 보장하는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가구넷도 당연히 공감하죠. 생활동반자 제도와 같은 대안적인 가족 제도가 필요하다고도 생각해요.
다만 그런 대안적인 제도가 동성 부부의 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현실적으로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동성혼을 배제하는 혼인 제도가 유지되는 한 제도적 차별은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구넷은 동성혼 법제화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한편으로는 동성혼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대안적 가족 모델에 대한 논의들도 조금 더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에도 파트너십과 같은 대안적인 제도들이 동성혼 운동의 과정에서 제안되어 온 것도 있고요.
법‧정책의 고착 위에 분투하는 성소수자 인권운동
웅: 동성혼은 최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무행)에서도 중장기 집중 투쟁 의제로 논의 중이라고 들었어요. 호림이 참여하는 다음 연대체 활동으로 넘어오게 되는데요.
차별이나 혐오에 대응하는 수세적인 싸움에서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한데 전파매개행위죄나 군형법상 추행죄 등 비범죄화 의제 외에도 시민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한 축이 차별금지법이나 트랜스젠더 특별법이라면, 다른 축은 동성혼 법제화가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무행에서는 어떤 논의들이 있었나요?
호림: 현재 운동의 현황을 살펴보면 성소수자와 관련한 주요 의제 중 92조의 6이나 전파매개행위죄는 이미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고, 차별금지법은 이제 성소수자만의 의제가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시민들이 함께 제정을 요구하는 운동이에요. 지금 다양한 성소수자 권리 의제 중에 운동의 구심이 되면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모아내는 성소수자 운동의 독립적인 의제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올해 무행 집행위에 결합하기 전부터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어져 왔어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무행 집행위가 최근 전체회의에서 동성혼 법제화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의제 운동을 해보자는 제안을 던졌어요. 다양한 의제 중 동성혼 법제화를 제안한 건 이미 커뮤니티의 제도적인 욕구도 굉장히 높고,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의제라는 점을 고려했던 것이죠.
사실 핵심은 수십 년동안 성소수자와 관련한 실질적인 법·제도적 변화가 없는 지금 상태에서 운동의 돌파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입니다. 지금의 정체 상태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조금 더 긴박한 동기였던 것 같아요.
웅: 무지개행동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정체 상태‘라는 무서운 단어가 등장했어요. 제대로 공론장에서 얘기 나누지 못했지만, 안에서는 이미 많은 활동가들이 체감하고 고민하는 지점이죠. 법·정책 의제가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 대한 답답함일 수도 있고 지금 운동의 여건이 처한 답답함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호림의 경우에는 무지개 집행위원을 하면서는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운동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호림: 개별 단체는, 예를 들어 행성인에서는 단체가 집중하는 몇 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현황을 파악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무행은 성소수자 단체들의 연대체다 보니까 이걸 다 펼쳐놓고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무행은 국회와 정부를 직접 대하는 대응 활동들을 개별 단체에 비해 많이 하죠. 선거 국면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10대 요구안을 중심으로 후보에게 정책 질의를 하거나 우리가 제안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들과 협약도 하고요.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 성소수자 운동이 놓인 조건을 조망하는 게 행성인 같은 개별 단체 활동과의 차이인 것 같아요.
지금의 현황은 우리가 성소수자와 관련한 다양한 법제도적 변화를 요구하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수십 년을 살고 있잖아요. 특히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성소수자 운동에게는 법·제도적인 변화를 본격적으로 요구하게 된 계기였는데요.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이후 15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제정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가지며, 운동에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법제도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성소수자 운동이 어떤 의제를 중심으로 집중해서 싸워보는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일종의 절박함이랄까.
웅: 인권운동이 커지는 어떤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커뮤니티 퀴어들이 성소수자 운동에 관심을 갖고 후원을 많이 한다거나 참여도 적극적으로 하는 시점들이 있는데요. 대개 제도적인 성과 보다는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거부당하거나 차별당하는 수세적인 상황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분노의 감정이 갑자기 모였다가 터지는 상황들이 있었는데 이게 한시적으로 모이고 저항했다는 기쁨을 주더라도 실질적으로 진전된 변화는 보이지 않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인권 상황은 그대로인 가운데에 비슷한 성격의 사건들이 몇 년이 지나도 반복되고, 운동은 커지고 분노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과정이 패턴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운동이나 커뮤니티를 피로하게 만들지 않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호림: 지금 무행 집행위에서 하는 고민은 특히 지금 정부가 들어오면서 느끼는 어떤 위기감인데요. 운동이 어떤 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이제 성소수자를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는 분위기 속에서 성소수자를 언급하지도 않고 그냥 없는 존재 취급하면서 5년의 시간이 지나갈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런 점에 지금 정부나 우리의 조건은 과거 이명박근혜 정부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운동이 적극적으로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답보 상태가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있어요. 그게 활동가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공유된 것 같기도 하고요.
웅: 동성혼 법제화를 볼 때 올 상반기 무지개행동이 집중했던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에 접근하는 논리들과 만나면서 서로 의제를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동성혼 자체에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논리 중에서는 뭐랄까, 여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전시할 수 있는 특권적 관계 아니냐, 여기에는 서구를 중심으로 선전되는 이미지들이 있고 결혼 자체도 기성 질서를 따르는 게 아니냐고 하는 비판적 논리들이 여전히 있잖아요. 저는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를 그저 성적 지향과 정체성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계층과 빈곤, 노동, 세대, 장애, 질병, 지역 등으로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점에 동성혼의 의제를 좀 입체적으로 결을 만들고 폭을 넓히는 영향도 주는 것 같고요. 그런 맥락에서 무행 집행위나 호림은 어떻게 의제들을 서로 교차시키는지 궁금했어요.
호림: 이렇게 던져놓고 말을 하라니. (웃음) 저는 가족이나 혼인제도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동성혼을 중심 의제로 대중운동을 하자는 무지개행동의 제안에 의구심을 갖거나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논쟁해봤으면 싶은 지점들도 있구요.
예를 들면 동성혼이 정말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의 욕구일까. 저는 특히 한국의 맥락에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동안 한국에서 동성혼과 관련한 행사를 하거나 조사를 할 때 가장 호응이 높은 층은 언제나 여성이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젠더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에서 여성 커플이 가진 경제적인 취약성, 혹시 있을지 모르는 미래의 경제적인 취약성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것들이 동성혼에 대한 강한 욕구로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교해서 생활동반자법 같은 느슨한 제도에 만족하고, 공증, 신탁 등의 절차를 통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안전망을 기획하고 꾸릴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인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저는 동성혼 법제화가 계급적인 이슈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거든요.
저는 한국에서 어떤 논쟁들은 아직 우리가 경험하거나 발견하지 않은 현상을 문제시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어요. 예를 들면 미국의 동성혼 운동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논쟁과 비판점들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미리 경계하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 나라에서 진행한 운동이 다른 나라에 동일하게 복제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지역이나 국가가 가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경제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맥락에 따라서 똑같은 의제라도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또 운동이 전개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여기에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논쟁의 지점을 확인하고 그 쟁점들을 중심으로 한 토론의 경험을 운동 내에서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웅: 혼인을 계급적으로 봐야 하는 문제라는 데 공감을 하면서도, 호림의 의견이 많은 토론 지점들을 남겨두고 있다고 생각해요. 얘기를 듣고 보니 무지개행동이 상반기 동안 차별금지법 운동을 정말 절박하게 했던 배경이 이렇게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상반기 동안 특히 많은 행동을 했죠. 국회에서 현수막을 갑자기 막 펼친다거나 민주당 주요 인사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림자 시위를 한다거나 기동력 있게 진행했어요.
제가 보기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지금까지 막혀있는 상황은 운동 사회의 한계보다도 국회에서 답을 하지 않는 무책임이 지금 우리가 체감하는 답보 상태를 만드는 것 같은데,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대해 무지개 행동 집행위는 어떤 평가를 하고 있나요?
호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소속 단위로 무행 혹은 성소수자 운동단체들이 함께 결합해서 해 온 활동들이 있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과정에서 무행이 주도해서 혹은 무행이 독자적으로 진행했던 활동들이 있는데요.
일단은 한정된 역량으로 열심히 했다고 평가를 하지만, 무행 집행위를 중심으로 몇몇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서 진행이 됐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어요. 코로나를 거치면서,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소수자 운동단체들이 처한 환경이나 여력이 낮아진 측면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연결성이 약화된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행위가 주변 활동가와 단체들을 조직하면서 더 넓은 활동으로 만들어나가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아요.
웅: 직접행동 자체가 수위가 높고 부담감 있는 선택이죠. 물론 당시 사정을 생각하면 고착된 상황에서 직접 행동은 당연히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지만요.
정치적인 고착상태에서 운동이 더 확장할 수 있는 여건은 좋지 않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한편에서는 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조직을 하고 이슈를 만드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 맥락에서 무지개행동 집행위가 집중하는 활동 중 하나가 ‘아이다호 데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행사는 무지개행동의 대중 조직 사업 중에서도 대표적인 활동이잖아요. 물론 근래 들어 성소수자들이 주최하는 행진들이 많아졌지요. 지역마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그 외에도 집단으로서 퀴어가 어느 정도 가시성을 보일 수 있는 행사들도 적지 않고요. 그럼에도 무지개행동이 아이다호 데이 행진을 조직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주면 좋겠어요.
호림: 아이다호가 가지는 의미라기보다는 아이다호를 기획하면서 무행이 지향하는 방향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성소수자라는 사람들이 여기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권리를 위해 싸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자, 우리의 싸움을, 싸워나가야 하는 의제들을 보여주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획하는 행사인 것 같아요.
저는 이게 전장연에서 하는 4.20 같은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을 하는데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로 만들어 가야겠죠.
2부에서 계속됩니다.
'회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동이 밥 먹여 주냐?' (0) | 2022.09.30 |
---|---|
25주년 특집 기획 - 상임활동가 호림 인터뷰 (2) (1) | 2022.09.15 |
[회원에세이] 데이팅 어플이 보호한 것과 내가 지키지 못한 것 (1) | 2022.08.29 |
[회원 에세이] 그 여름 (0) | 2022.07.25 |
국회앞 단식농성 공동상황실장 지오 행성인 운짱 간단 인터뷰 (0) | 2022.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