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효석인가


 

1930년대의 대표적 작가인 이효석은 우리에게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무척 친숙하다. 한국의 자연과 향토적 정서를 매우 아름답게 다룬 ‘메밀꽃 필 무렵’은 우리에게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결코 이 작품이 이효석의 작품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면,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 엿볼 수 있는 소박한 한국의 아름다움보다는 당시 쏟아져 들어오던 서구 문명의 화려함에 훨씬 경도되어 있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당시에 그는 클래식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고, 특히 쇼팽을 즐겨 들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피아노와 전축은 그가 생전에 가장 아끼던 보물들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이효석은 이미 원두커피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까다로운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스타벅스’에 해당하는 서울 시내의 다방들을 차례로 돌며 원두커피를 주문하곤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이효석을 둘러싸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자, 비 오는 날 오후 쇼팽이 흘러나오는 카페테리아에 앉아 원두커피를 음미하는 조선의 지식인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떠오르는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는데.

 이러한 그의 고상한 취향은 ‘메밀꽃 필 무렵’ 이외의 작품들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곤 한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작품들 중 하나가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화분’이다.

 ‘화분’은 본격적으로 동성애를 소재로 한,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이 놀라운 점은 단순히 동성애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작품이 특이한 점은 동성애를 전혀 괴상하거나 우울한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대의 작가들이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과 비교해 봤을 때도 이는 매우 급진적인 시각을 가진 작가가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시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내가 이효석에 주목한 이유다.





 자연과 세계주의


 이효석은 흔히 ‘동반자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동반자 작가’란 사회주의 문학을 표방했던 카프계열의 문학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작가군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대부분 국제주의사회운동을 지향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효석의 급진적 시각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화분’에는 바로 이러한 급진성이 잘 녹아 있다. 이효석은 이 작품에서 다른 여타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자연을 찬미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러한 자연에 대한 찬미가 지향하는 곳이 이효석의 급진성과 등을 맞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 작품의 주무대인 ‘푸른 집’은 수풀과 수목이 우거진 자연 속의 공간이며 인간이 세운 문명을 상징한다. 이 공간 안에서 작중인물들은 동성애와 이성애를 넘나들며 자유분방한 성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인 현마는 길거리에서 데려온 미소년 단주를 첩으로 삼아 푸른 집에 머물도록 하며, 현마의 부인인 세란과 처제 미란은 여기에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또한, 단주는 이 푸른 집에 머물면서 미란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세란과도 하룻밤을 보낸다. 작품 속에서의 급진적인 파격은 이 뿐이 아니다. 작품은 주인공 현마가 처제인 미란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세란과 미란 자매 사이에 묘하게 감도는 동성애의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세운 문명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문명 속 인간의 성애가 고정된 관념으로 규정될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것이라는 작가의 의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 ‘화분’ 역시 이러한 작가의 의식을 정확하게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가 암꽃과 수꽃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듯, 인간의 성애도 어느 곳이든 향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며,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화분’은 이효석이 꿈꾸는 이상향을 향해 날아가는 꽃가루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효석은 서구문명에 대한 동경을 작품 속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작중의 피아니스트 영훈의 ‘구라파 주의’에서 절정을 이룬다. 한국에 살건 구라파에 살건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가난’은 구역이 없고 서로 공통된 것이라는 영훈의 ‘구라파 주의’는 세계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세계주의’ 이상을 드러낸다.

 이효석은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국지적인 어느 한 지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든 가능한 것이라는 인식을 영훈의 입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이 다같이 살기 좋은 나라를 꿈꾸었던 그의 초기작들을 참고하면, 이효석의 이러한 인식이 던지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과 제도의 속박으로부터 태어난 가난, 그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내야 한다.


 

하늘을 날아가는 꽃가루처럼


 이효석이 꿈꾸었던 이상향은 원시적 아름다움으로서의 자연이자, 비틀린 현실의 국경을 뛰어넘는 가능성의 교통 공간이었다. 또한, 그가 향하는 이상향은 인간이 만들어낸 도덕적, 혹은 제도적 속박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연 상태의 자유, 그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성소수자의 시각에서 볼 때, 매우 유의미한 의미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특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허위의식을 극복하고 자연 상태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모두의 다양한 성지향성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적 자세가 아니겠는가? 또한, 성소수자들 대부분이 이 사회의 차별 아래서 가장 소외당하는 가난한 노동자 계층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리가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매우 명확하지 않겠는가?

 수십 년 전을 살았던 이효석이 우리의 귓가에 소근대 듯이, 우리는 어디로든 향할 수 있고 어디에든 가 닿을 수 있다.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꽃가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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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숙
    2010.03.03 22:19 [Edit/Del] [Reply]
    화분은 이효석의 생명력 넘치는 에로티시즘의 걸작인것 같아요.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에도 가보고 싶고~

    참, 그 시절엔 맹물커피라 해서 다들 원두커피를 즐겨 마셨데요,

    그러다, 6.25때 미군이 들어오면서 지금의 다방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2. 쫑철
    2010.03.05 01:10 [Edit/Del] [Reply]
    음.. 내가 글을 읽어 가며 첨 생각난 단어....'한량'... ㅎㅎㅎㅎ
    그냥 내 생각이라구........... ^^
  3. 2010.03.14 03:06 [Edit/Del] [Reply]
    고등학교 때 이효석 문학제에 참석하면서 봉평에 다녀왔던 기억이 나네요.
    참 푸근한 곳이었는데.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오늘 과외학생에게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을 수업했었는데..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던 표현을 기가막히다고 나만 흥분한 수업이었던 듯...
    다시 돌아와 수능식으로 이 소설에서 달빛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이효석 수업이었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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