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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성소수자

2010년 첫 번째 무지개학교 놀토반 - Winter 참가 후기

by 행성인 2010. 3. 29.

1.

무지개학교에 오게 된 까닭은 뭐라고 해야 하나? 음, 갑갑함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친구들 사이에서의 커밍아웃 후 서로 간에 우정이 사라진 일은 없었지만 무언가의 답답함은 여전했습니다. 이해를 바란 적은 없지만(타인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제대로 된 인식은 바랬는데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서로 약간 빗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거기다 평상시에 맞닿아 있는 공간들도 성정체성과 관련하여 별로 친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학교였습니다. 학교 측에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던지라 가시적 차별 같은 것은 말을 통한 것 이외에는 없었지만 약간 어긋나 있는 몰인식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갑갑함에 지쳐있으면서도 참여는 미루고 미뤄왔었습니다. 어째서였는지는 지금에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고교 입시 등을 이유로 댄 것도 같습니다. (뭐, 결국 실패였지만.) 하지만 겨울방학이 하루하루 끝나가고 고등학교 입학은 성큼성큼 다가오자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나가려고 해도 못 나갈 것이다 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그러자 일은 일사천리. 후원회원 신청을 하고 무지개 학교가 열리던 날 길을 못 찾은 채 빙빙 몇 바퀴 돌다 전화를 걸어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역시나 초면이어서 어색한 것과 함께 매우 기뻤습니다. (이런 저질스런 어휘력, ‘기쁘다’라는 말밖에 쓰지 못하다니!) 퀴어는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일종의 소속감을 처음부터 다시 배운 것과 같은 기분이었달까요. 아니, 어떻게 보면 처음 배운거나 마찬가지네요. 비록 벽장 속에서 나왔지만 벽장 속에서 나온 다른 사람들을 만난 적은 그 때까지 없었으니까요.

 
생각했던 것보다 오시는 분들은 많았고, 그 어색함은 꽤 지난 뒤 프로그램이 시작된 뒤부터는 곧 사라졌습니다. 무지개학교에 오기 전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으려나 걱정도 했었는데 괜한 걱정을 했더군요. 별명과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휴식시간들을 가지면서 한 분, 한 분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심지어 한 사람과는 전화번호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무지개학교 놀토반 - 자기소개 프로그램 시간

                                                            

2.

별명 이야기하기와 자기소개, 영화 감상 및 대화, 가치 경매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쳐서 떠오릅니다. 매 수업시간마다 영화를 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본 이춘기는 제 온갖 경험과 겹쳐지면서 여러모로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 그런데 그 날 참석하셨던 분들 대부분, 저를 포함해서, 영화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이야기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 점에서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저마다 이야기가 매우 다양했을 것 같았는데 말이죠.

 
가치 경매지는 처음에 받고 두번 째 쪽에 있었던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서는) 19금 소재의 가치를 보고나서 속으로 꽤나 크게 웃었습니다. 자제를 바란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 어떻게 들고 가야하나 생각은 들더군요. (그거 부모님이 보시기전에 어디다 뒀는지 기억해 내야하는데.) 바람몰이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투기는 확실히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식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뒤풀이를 했는데 거기에는 참석하지 못했죠.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습니다.

 

무지개학교 놀토반 - 가치경매 프로그램 시간


                                                          

3.

이 뒤는 좋지 않은 일들 투성이입니다. 여러분은 나오실 때 집에 무슨 이유를 말하고 나오셨나요? 저는 참 용감하게도(이럴 때는 용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놓고 다 말하고 나와 버렸습니다. 그 뒤 결과는... 아마 지금까지의 평판을 다 깎아버린 것만 같습니다. 며칠 전인가에는 어머니가 저의 정체성을 의심하시더군요. 집마저도 암초투성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차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게 오히려 다행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덕분에 그 주제가 슬그머니 묻혀 들어갔으니요. 다만 제 사생활은 완전히 감시받게 되었습니다.

 
그 덕에 지금은 참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갑갑함에서 벗어나는 듯 했는데 쾅! 떨어졌네요. 뒤에서 후원회원으로 남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아쉽습니다. 아니, 가족들에게 적당히 둘러대어 나갈 수 있는 분위기가 다시 돌아온다면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겠지요. 그 때, 아니 될 수 있으면 그 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기린이었습니다.

기린 (고등학교 1학년, 무지개학교 놀토반 참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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