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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동시대를 전유했으나 넘어서지 못한 동성애 소설

by 행성인 2010. 3. 29.

 - 앙드레 지드의『코리동』

 

1924년에 앙드레 지드가 발표한 소설『코리동』은 역사와 예술, 생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방대한 자장 안에서 동성애에 대한 전방위적인 담론을 펼치고 있다. 화자와 ‘코리동’이 나누는 심오하고 지난한 대화와 논쟁을 통해 자신의 소외된 정체성을 긍정하고자 분열될 수밖에 없었을 저자의 치열한 자기 고민과 지적 성실성에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더불어 시대적 한계와 그에 대한 타협이라는 곱지 못한 시선을 받는 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두에서 코리동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근본적 원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파스칼의 말을 인용해, “자연이 온통 천편일률적이 아니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까 자연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관습이다. 관습이야말로 자연을 속박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연은 종종 관습을 뛰어 넘어서, 온갖 관습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그 본능 속에 가둬두기도 한다.”고 말한다. 즉 동성애는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관습을 거스르는 것일 뿐이다. 그는 동성애적 결합 행위의 자연스러움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타 생물들의 생식 본능을 세세하게 열거한다.

 
그에 따르면 섹스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쾌락을 얻는 것이며 종족 번식은 그 부수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즉 암컷이 발정기에 암내를 풍기며 수컷을 유도하는 행위는 일상적 성행위의 쾌락을 극대화하며 성공적인 수태에 이를 수 있도록 해준다. 결국 다양한 동물군상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성간의 성적 결합이란 향상진화를 원하는 본능에 충실하도록 이끄는 자연의 순리적 작용이며, 반면에 육체적 쾌락에 도달하기 위한 성적 결합에는 성적 대상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또한 자연의 순리적 메커니즘이다.

자연생태계에서 성행위가 수태와 쾌락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분리되어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코리동은 동성 성애를 순수한 쾌락이라는 합목적적 행위의 일부로서 자리매김한다. 궁극적으로 그는 동성애적 욕망과 이성애적 욕망을 대립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미덕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자 한다. 소년 시절에 경험하는 연장자와의 동성애적 관계는 후에 성인이 되었을 때 여성과의 순결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동성애와 이성애의 화해를 시도한다. 그에게 있어 남성 간의 동성애란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임신을 위한 도구적 차원으로 격하된 섹슈얼리티에서 벗어나 진정한 남성성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성애적 행위이다. 동성애는 분명 남성적인 가치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며 바로 여기에 앙드레 지드의 시대적 타협이라는 오명이 드러나고야 만다.

사족을 붙인다면, 동성애적 행태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성애자로 정체화된 인간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를 생물학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일례로,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자신의 저서『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동성애 유전자의 증식은 그 사회의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동성애 성향을 유도하는 유전자들이 집단 전체에 퍼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존재함으로써 그들의 가까운 친족들이 안심하고 더 많은 아이들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원시 사회의 남성 동성애자들은 사냥을 떠나는 대신 주거지에 남아 여성들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밝혀진 동성애자의 역할이란 남성에게 국한되어 있으며 이 또한 이성애적 역할 구분의 원활한 작용을 위한 보조적 장치라는 협소한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코리동』이 결말이 마주하는 한계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이러한 이성애 중심적인 동성애의 전유가 과거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는 없다. 여전히 다수의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의 가치 체계를 답습 및 모방하면서 이성애적 역할 놀이에 안주하고자 한다. 관대하고 친절해 보이는 이성애자들의 입맛과 눈높이에 맞는 동성애자의 모습으로 주류사회에 편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상적 참여가 필요하다. 그저 동성애를 주제로 연구를 하거나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도 저항일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났으니까.


김경태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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