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3월 초 어느 밤에 아빠에게 스트레스성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다.
써 놓고 보니까 글을 시작하기에 이보다 구린 문장이 있을까 싶긴 하다. 그런데 진짜 이것 말고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커밍아웃 유경험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조언을 한다. 원가족(특히 부모)에게서 심리적, 물리적, 경제적으로 독립했거나, 그럴 준비가 되었을 때 커밍아웃을 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은 청소년기나 대학생 시절에 덜컥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가 제대로 실패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집에서 쫓겨나거나 전환 치료까지 받은 경우도 주변에서 들었다. 나는 이십대 중반이고, 대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보내는 중이다. 당장 혈혈단신으로 밖에 나가면 단 일주일도 제대론 된 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통장 잔고는 오늘내일 하고 있으며, 알바와 학교 근로, 그리고 아빠가 주는 용돈으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당장 생계를 이어 갈 일을 구할 만한 능력도, 스펙도, 자격증도, 그 뭣도 없다. 아빠가 퀴어프렌들리한지 아닌지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지만, 아빠와 엄마가 둘 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것은 안다. 외적으로만 보면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기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왜 커밍아웃을 했느냐, 고 누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스트레스성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집회와 정치 시국 때문에 지쳐 있기도 했고, 복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와 알바, 그리고 단체 활동 사이의 균형을 맞추느라 날이 서 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작년 12월 초, 나의 집회 커밍아웃 영상과 사진이 어떻게 해서인지 학교 사람들에게까지 가 닿았고, 그 덕분에 학교를 다니는 것도 괜히 불편해 마음고생을 하던 참이었다. 지금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정말 내가 그 당시에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차고 넘쳤던 것 같다. 내가 정말 커밍아웃을 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을 꼽으라면(대부분의 내 나이 또래 성소수자들이 비슷하겠지만) 학교 사람들과 가족을 고르겠는데, 이미 학교 사람들이 아는 마당에 가족이라고 모를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더군다나 이미 내가 숙소비와 교통비를 써 가며 비수도권의 퀴어 퍼레이드를 다니는 것까지 아빠가 알고 있는데,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몇 달 전에 이미 아빠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당황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나서 심한 현타가 왔던 기억이 있다.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과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고, 마침 마셨던 술이 결정타로 작용해서, 한밤중에 아빠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남자를 좋아하는 성소수자라고 말했다. 당시 아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내가 알 방도는 없지만, 내가 걱정한 최악의 경우, 그러니까 신부님에게 데려가 구마를 부탁하거나 정신병원에 데려가거나 집에서 쫓아내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그럴 거 같다고 짐작하고 있었다고 해서, 내가 게이 티가 그렇게 많이 나나 싶었고, 내가 하고 있는 활동에서 의미를 찾고 행복하다면 응원한다고 했다. 딱히 성소수자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단 본인의 아들이 그렇다니까 행복하기를 바라는, 어느 정도는 내가 만족할 만한 결과의 커밍아웃이었다. 물론 시스젠더 남성 게이와 트랜스젠더 여성을 구별하지 못한 나머지 수술을 받고 싶으면 빨리 말하라고 해서 십 분 동안 둘의 차이점을 설명해야 했지만.(함께 집회 나가는 활동가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수술한다고 말하고 천만 원 정도 받아내지 그랬냐고 한 기억이 있다.)
원가족이 있는 성소수자라면 대부분 가족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1)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그럴 계획도 없거나 2)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가족이 애써 이 화제를 피하려 하거나 3) 정말 극적으로 대충 자신을 인정해 주는 가족을 만났거나 4) 가족 중 최소 한 명과 연락하지도 않고 살거나, 이 넷 중 하나 같다. 나는 동성애가 죄라며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엄마와 반 년 넘게 연락도 안 하고 만나지도 않고 살고 있으면서, 완전한 이해와 포용은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아빠와 살고 있으니, 3번과 4번이 섞인 그런 상황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렸을 때부터 원가족(특히 엄마)에게 많은 상처를 받고 지낸 입장에서, 커밍아웃을 했든 하지 않았든 가족을 우선순위로 소중히 여기고 가족과 사이좋게 지내는 성소수자 친구들을 보면 많은 감정이 든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소중한 친구, 동료, 혹은 애인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사는 사람인데, 다들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 항상 변하기 마련인 인간관계에서 변하지 않고 내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족밖에 없는 것 같아 (친척을 포함한) 가족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나 자신이 조금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커밍아웃을 한 상태에서 가족과 잘 지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아빠에게 커밍아웃을 한 맥락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일단 나는 뭔가를 감추거나 거짓말을 한 채로 오래 버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족이나 애인, 배우자 등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계속 그렇게 유지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나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커밍아웃을 평생 하지 않은 채로 원가족과 평생 화목하고 잘 지낼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면, 그렇게 해서 잘 지낸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커밍아웃을 하고 연을 끊는 게 내 입장에서 속이 편할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가족에게 평생 커밍아웃을 하지 않을 계획이 애초에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가족에게는 그들이 받아들이든 말든 많은 것을 말하고 싶지만, 동시에 굳이 말하지 않는 것도 많다. 내가 지금까지 연애를 몇 번 했고, 애인을 어디서 만나고, 구체적으로 어떤 의제의 성소수자 활동을 하고, 내가 자주 다니는 이태원의 게이 클럽들은 어떤 곳인지, 내가 X(구 트위터)에서 퀴어 계정을 운영하며 어떤 말을 하고 다니는지, 그런 것들은 아빠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사항이다. 가족이 알고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내가 이런 것들을 포함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딱히 없고, 그냥 생각해 보면 아빠도 나의 정말 개인적이고 깊은 것까지 알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빠에게 내가 허락하고 오픈하는 ‘모든 것’에는 내가 성소수자, 그 중에서도 시스젠더 동성애자이며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까지이다. 하지만 이만큼 말해도 나는 아빠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말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동성애자이자 활동가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내가 동성의 애인을 사귀고 있을 수도 있고, 그 애인과 친밀한 스킵쉽이나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으며, 각종 집회와 퀴어퍼레이드에서 내가 부스 운영을 돕고 깃발을 든 채로 행진할 수도 있다는 것, 내 얼굴과 이름이 몇몇 온라인 뉴스 기사에 나올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언젠가 준비가 된다면 동성의 배우자와의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 말이다.(물론 지금 내가 결혼을 생각하거나 계획할 때는 딱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이론상 그렇다는 것이다.) 아빠가 이렇게 많은 함의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직접 눈앞에 닥치기 전까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도 아빠도 감안해야 하는 것, 조급해하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퀴어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부모와 자식 간에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고, 다만 나의 경우에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이 조금 많을 뿐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아빠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나의 ‘모든 것’을 말한 셈이니, 대충 만족한다. 아빠는 나의 커밍아웃을 듣고 서른 살 전까지 독립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청년 전세대출 지원을 받든 일을 하든 최대한 빨리 독립할 생각이고, ‘청소나 빨래와 같은 집안일을 해줄 여성 배우자’를 평생 가질 운명이 아니기 때문에 독립하지 말라고 하는 아빠가 나를 막을 방법은 딱히 없다.

동시에 말하면, 내가 아빠에게 이 정도로 스스로를 오픈한 것만도 꽤 많이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일단 나는 엄마에게 평생 커밍아웃을 할 생각이 없지 않은가. 연락할 계획도, 만날 계획도 없는 엄마에게 갑자기 달려가서 내가 게이라고,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동성혼과 차별금지법 제정해 달라고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고 할 생각은 정말이지, 내가 물리적, 경제적으로 가족과 독립한 후에도 추호도 없다. 만약 나중에 엄마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거나 소식이 들려와 만난다면 혹시 모르지만, 엄마가 나를 아빠만큼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굳이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마음속에서 가족이 아니라고 지워 버린 엄마에게, 나의 정체성과 활동이라는 소중한 것을 공유하기는 싫다. 나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이게 최선이라고 느끼고, ‘가족에게는 무조건 언젠가는 커밍아웃을 하자’는 목표를 가진 내가 이런 선택을 한다고 해서 딱히 모순이거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러 카페로 가기 전에, 집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문득 물어보았다. 단체 활동 하고 집회에서 발언하고 그런 거 말고, 혹시 일상에서도 오픈리 퀴어로 살고 있냐고. 물론 아빠의 정확한 워딩은 ‘오픈리 퀴어’라는 mz스럽고 깔끔한 단어가 아니고 ‘너가 그런 거’였지만, 아무튼 학교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만약에 내가 일상에서 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성소수자인 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인이 나의 속도에 보조를 맞춰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라고 했다. 나는 일상에서 누군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굳이 밝히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빠는 알겠다고 했고, 나는 다음달 초에 대전에 내려가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그렇게 유유히 집을 나섰다. 나는 아빠에게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청년 성소수자 단체의 부대표라는 사실도, 행성인에서 HIV/에이즈 의제를 가지고 활동한다는 사실도, 지난 1년 반 동안 꽤 많은 연애를 했고, 그동안 외박한 밤들 중 상당수는 애인의 집에서 잔 것이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아빠와 꽤 잘 지내고, 아빠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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