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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38. 토끼와 거북이

by 행성인 2025. 6. 22.

 

여기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대성통곡 에피소드 1인보는 토끼 엄마는 거북이

 

아이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자기는 토끼하고 엄마는 거북이 하자는 겁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를 본 모양입니다. 토끼는 무엇이든 빨리해서 이기는 승자, 반대로 거북이는 느릿느릿해서 지는 녀석으로 여겨서 자신은 토끼가 하고 싶은 겁니다.

 

어느 날 아이와 점심을 먹었어요. 그런데 자기는 토끼, 엄마는 거북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OK하고 계속 밥을 먹었습니다. 밥 먹다 말고 이리저리 해찰하는 녀석에게 저는 인보야 짜잔, 엄마는 다 먹었네 하면서 빈 밥그릇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으앙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화가 나면 방으로 들어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날도 방으로 들어가더니 대성통곡을 하는 겁니다. 저는 속으로 아니 이게 대성통곡할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녀석 생각에는 자신이 토끼라서 엄마보다 빨리 먹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 천천히 먹다가 거북이 하기로 했던 엄마가 그만 텅 빈 그릇을 보여줬던 겁니다. 결국 엄마가 이겼고 자신은 졌다며 울어버린 겁니다. 그야말로 춘향이 모친의 통곡은 대성통곡도 아니었답니다.

 

이 사건 이후로도 아이는 자주 토끼와 거북이 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좋다고 하고 늘 토끼 딸내미에게 져주는 거북이 엄마입니다(앞으로 아이와 다툴 때 알고도 져주는 부모가 되면 좋겠는데). 

 

 

어린이집을 옮기게 된 배경

 

작년에 아이가 다녔던 공립 어린이집은 여러 모로 장점이 많았습니다. 이 어린이집은 교육 재료, (필리핀 과학부가 개발해서 만든) 고단백 비스킷 그리고 신선한 우유를 무상으로 제공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역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공교육이 무상교육이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는 좋은 교육과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남편을 따라온 필리핀 이주민으로 살면서 코딱지만 한 혜택도 거의 못 받고 세금만 냈었는데 이 어린이집 서비스를 받으면서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공공교육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교사 1인이 많은 어린이를 담당해야 합니다. 새로 지은 어린이집인데 교실 한 개에 어린이 수가 많아 공간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스 아빠와 올해도 이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기로 마음먹었어요.

 

아이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인보가 네 살을 먹으니 세 살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더라고요. 인지적 변화가 눈에 띈 변화를 보이는 겁니다. 그리하여 인지 학습의 기회가 더 많은 사립 유치원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모태 가톨릭 신자인) 찰스 아빠가 좋아해 노래를 부르는 가톨릭 학교로요.

 

 

산뻬드로 학교 유치원

 

 

 

아이가 다니는 새 학교는 산 뻬드로 학교(Colegio De San Pedro-Recoletos, CSP-R)입니다. 이 학교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사목을 담당하는 발렌시아 성당 옆에 부속된 가톨릭 학교입니다. 우리 집에서 가깝고 엄마와 아빠 손잡고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어서 아이도 낯익은 학교입니다.

 

새 학교는 선생님이 두 분 (담임과 보조교사)입니다. 교실도 큼지막하고 나무로 된 책상도 넓어서 아이들이 책과 여러 도구를 놓고 공부하기에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무더운 필리핀 날씨에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 쾌적한 교실입니다(단점은 사립이라서 학비를 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부지런히 교복을 두 벌 주문했습니다. 유치원에서 준 구비 물품과 학용품도 샀지요. 그리고 등록금과 책 값을 납부하고 학부모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에는 저와 조안 이모가 다녀왔습니다.

 

교장 신부님과 대부분 젊은 선생님들이 인사를 하시고 학교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학교의 교칙을 설명하면서 특별히 부모님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학교는 초(중)고 과정을 운영합니다. 주로 고학년들이 언니 오빠들이 땡땡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점심은 꼭 학교에서 먹어야 한대요. 그리고 아파서 결석을 하는 경우 핸드폰이 아닌 부모님들이 직접 서명한 결석계를 제출해야 한답니다. 

 

 

핸드폰 하지 말고 일찍 코~자자꾸나

 

 

 

산 뻬드로 학교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핸드폰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주 3일은 핸드폰의 학교 내 반입을 금지합니다. 안 봐도 그림책인 것이, 핸드폰이 학생들의 수업을 심각하게 방해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이 문제가 어디 산 뻬드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청소년만의 문제인가요? 바로 우리 집의 문제이기도 하답니다. 사실 요즘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눈이 빠지게 보는 시간이 많아서 제 마음의 근심 덩어리랍니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것은 잠들기 전까지도 핸드폰을 보다가 잠이 듭니다. 그래서 묘안을 생각해내야 했습니다. 

 

우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 인터넷 와이파이를 껐습니다. 인터넷이 꽝인 상태에서 아이패드와 핸드폰은 빙글빙글 돌기만 하지요. 그러면 아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지 않을까? 덕분에 저는 책을 읽는 시간이 생겼습니다(아이가 안 자면 저는 계속 책을 읽어야 합니다)

 

한편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을 손에 쥐기 전에 TV로 유튜브 키즈 채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유와 비타민을 챙겨서 먹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네 살 되면서 잠자리에서 물리던 분유병을 치아 건강을 위해 더 이상 물려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루에 우유 먹는 양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분유 가루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우유에 따로 타서 먹도록 하는 묘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미운 네 살, 아이가 크면서 뭐든지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인보가, 인보가를 외치며 우겨 댑니다. 그래서 우유에 분유 타는 것을 아이가 하도록 해주면 신나게 저어 댑니다. 

 

아이는 키가 큰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다 언니는 우유를 잘 안 먹어서 키가 작고 인보는 우유를 잘 먹어서 키가 크다고 비교를 해주면 어깨를 으쓱대며 좋아합니다. 

 

가끔 이 녀석 벽에 그려진 키재기에 가서 엄마 아빠 보라고 성화입니다. 그러면서 몰래 발 뒤꿈치를 올려 자신이 크다고 연기를 하는데 엄마는 못 본 척 속아 주지요. 

 

 

 

 

행성인 식구 여러분

 

 

 

아이의 대성통곡한 토끼와 거북이 에피소드가 재미있으셨나요? 다음에는 두 번째 대성통곡 까만 발’ 사건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6월은 성소수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긍심의 달(Pride Month), 퀴어퍼레이드 마음껏 즐기셨는지요? 

행성인 동지들의 자긍심이 개인의 마음에서 뿜어져 나와서 함께 하는 가족, 친구, 지인, 직장 동료에게 물결치기를, 넘쳐나기를 그리고 휘몰아쳤으면 합니다.

이 퀴어의 자긍심 토네이도가 차별과 혐오의 쓰레기를 한방에 날려버리면 참 좋겠습니다. 어디로? 지구를 떠나 우주 저 멀리로.

 

끝으로, 모국도 많이 더워지는 6월에 몸도 마음도 시원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