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 (한국HIV/AIDS감염인인권연합 KNP+)
| 연재의 말 게이들은 외계에서 온 것 같다. 그래서 지구에 여행 온 외계인의 삶을 기록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참…이 나이에 글을 쓸 줄이야, 가 아닌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 보는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남자로서가 아닌 게이로서의 내 삶을 솔직하게 기록해 본다. |
‘인생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답답한 나머지 무당이라도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찾아간 무당은 유명 여성잡지에 나온 ‘ㅇㅇ작두도사’였다. 그는 김영삼의 부인이 대통령 선거 전에 점을 보러 가서 유명해진 무당이었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고 예언을 해서 유명해진 뒤로는 예약을 하고 3개월을 대기해야 할 정도로 만나기 힘든 박수무당이었다.
예약을 하고 3개월 후에 그 무당을 만나 점괘를 봐달라고 했다. 그런데 점괘가 나오지 않는지 별 다른 이야기가 없더니, 자기와 같은 ‘신의 제자’가 될 팔자라면서 그냥 자기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갑자기 무당하고 가위바위보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이겼다. 그래서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말했더니 그 무당은 네 팔자에 부자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오래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 무당이 77세까지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세상에 77세는 오래 사는 게 아닌데 하고. 나는 더 용한 무당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무당의 집을 나왔다.
이후로도 전국의 유명한 무당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TV에 나오고 잡지에 나온 유명한 무당들은 거의 다 만나고 다녔다. 수원 ㅇㅇ보살, 대구 무슨 도사, 서울ㅇㅇ도사 등등. 하지만 시원하게 점을 제대로 봐주는 무당은 아무도 없었다. 서울 여의도에서 ‘미래 문제 연구소’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영업하는 박수무당은 연기자 변영훈의 헬기 추락사고를 예언해서 유명세를 탔지만, 그 역시도 점괘는 별신통하지 않은 점사로 꽝이었다.
3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을 시작하였다. 일을 하게 되니 없어진 줄 알았던 욕망도 되살아나서 부산의 게이 술집들이 몰려있는 범일동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밤에 범일동 근처 자성대공원을 거닐고 있는데 젊고 늘씬한 청년이 수풀 속에 서있는 게 보였다. 나는 다가가서 그의 바지춤을 만져보았다. 그도 나의 그곳을 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밤늦은 그 공원에서 서로를 애무했다. 거사가 끝나자 그는 자기가 박수무당이라고 밝히면서 오늘 나와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자기 집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그의 집은 마당이 있는 기와집으로 사찰처럼 지어진 이층집이었다. 놀랍게도 집에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있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나를 제자라고 이야기하고 이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이층은 큰방에 법당처럼 탱화와 불상을 둔 신전을 차려두고 있었다. 우리는 맞은 편 작은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나의 사주를 보더니 나에게 신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운명이 어떤지 그토록 찾아 헤맨 바 있었던 나는 나의 운명이 이 길이었구나, 하고 느꼈고 서서히 그의 말에 동화되었다. ㅇ법사라는 호칭을 쓰는 그는 근교의 산에 기도를 자주 다녔는데 신내림을 받기 전에 함께 기도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산기도는 보통 밤 11시에서 1시 사이를 이용했다. 나는 난생처음 하는 산기도였지만 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는 산기도를 몆 달 동안 다녔고 드디어 신내림 날짜를 받았다. 98년 초, 37세였다. 제물을 준비하고 일할 무속인들을 모아 부산 근교 산속 굿당에서 내림굿을 진행했다. 10여 명의 게이들이 구경꾼으로 와서 앉아있었다. 신아버지 역할인 ㅇ법사가 부산의 자기가 아는 게이들에게 구경을 오라고 한 모양이었다. 목욕재계하고 무복으로 갈아입은 후 점상 앞에 앉았다. 함께한 무속인이 축경과 주문을 읽기 시작했다. 산신님과 조상신, 장군신에 대한 주문이었다. 이윽고 주문과 함께 북과 장구, 꽹과리가 울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신내림 굿이 시작되었다.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굿판은 밤 11시를 넘겼다. 신에 대한 감응이 올 듯 말 듯해서 애간장이 탔다. 기도에 열중하고 있는데 마치 꿈을 꾸듯 하늘 구름 위 누각에서 웬 동자가 빼꼼히 나를 내려다보는 게 보이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새벽녘에 드디어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하면서 산신이 먼저 몸에 실렸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네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소리치며 목청이 터졌고 머리가 천장에 닫을 정도로 몸이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힘이 빠지면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ㅇ법사는 먼저 산신이 내린 거라고 말하였다. 아침이 되어서 힘이 빠진 나는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저녁이 다되어 있었다. 곧 2차전이 시작된다고 했다.
내림굿 이틀째 날 밤에는 동자가 실렸다. 그러자 ㅇ법사는 시험문제를 맞혀야 한다고 했다. 하얀 봉투에 하나는 쌀, 두 개는 소금이 들어있는데 쌀이 든 봉투를 맞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 만에 쌀이 든 봉투를 맞혔다. 두 번째 문제는 세 사람을 앉혀 놓고 쌀이든 봉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고르는 문제였다. 순간 애들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쌀 봉투를 가진 사람을 맞혔다.
ㅇ법사는 처음 내림굿을 받으면 100일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예전에 엄마를 따라서 가본 적이 있었던 고향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암자를 제안했다. 그곳이 산도 깊고 작은 폭포도 있어 기도하기 좋은 곳이라고 하니 ㅇ법사는 바로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신내림 굿을 구경하러 왔었던 게이들 여섯 명도 그곳을 구경하고 싶다며 따라나섰다.
암자까지는 차도 못 다녔고 걸어서만 올라갈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부처님을 모시며 지내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그 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서 마을로 내려가고 암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깊은 산속 기도처에서 함께 갔던 게이들까지 전부 한 명씩 대나무 가지를 잡고 ㅇ법사의 북소리에 대나무 가지가 흔들리는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았다. (이때 함께구경왔던 게이중에 한명을 나중에 서울 예방협회에서 만나기도 했다.)
ㅇ법사는 그곳이 100일 기도를 하기에 좋은 곳이라면서 혼자서 기도하고 내려오라고 했다. 다음날 함께 왔던 일행들까지 다 떠나고 나 혼자 깊은 산속에 남았다.
밤 11시. 깜깜한 산중에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설움이 복받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이며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고 깊은 슬픔이 밀려와 한없이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깊은 산속에서 일주일간 기도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내가 내림굿을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까지 찾아오셨다. 동행한 아주머니 한 분이 내가 ‘애기동자’라서 신빨이 셀 것 같다며 점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아직 법당도 안 차려서 어렵다고 했지만 계속 부탁을 해서 할 수 없이 점사를 봐주었다. 그리고 100일을 채 못 채우고 하산을 해서 ㅇ법사와 함께 법당 차릴 곳을 알아보며 다녔다.
나는 부산 근교의 작은 마을에 법당을 차렸다. 법당을 차리고 나니 신들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먼저 욕정에 대한 시험이 있었다. 밤 12시에 갑자기 욕정이 미친 듯이 몰려와서 뛰쳐나가 밤거리를 헤매고 다녔고 남자를 만나고 나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성욕을 번번이 참지 못했고 심지어는 법당 앞에서 남자와 섹스를 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노름에 대한 시험도 있었는데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화투나 카드놀이를 미친 듯이 하게 되었다. 그 자리의 돈을 전부 다 따고도, 지금 그만 안 두면 주머니에 있는 돈이 다 나간다고 머릿속에서 알려도 주었지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노름을 계속했다.
ㅇ법사는 신내림을 받은 후 1년 동안은 신의 시험이 계속 진행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ㅇ법사와 함께 굿하러 다니는 젊은 법사는 “이 집 할배는 머리가 돌아앉아 있네.” 하며 놀렸다. 그는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며 한 번씩 손장난을 해주곤 했다. 내가 만났던 그 지역의 박수무당들은 거의 게이인 것 같았다.
처음 법당을 차렸던 지역을 떠나 부산에 가서 새로운 법당을 차렸다. 간판을 '총각도사'라고 짓고 손님들을 받기 시작했다. 손님 몇을 받고 나서 혼자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밥 빌어먹겠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사실 내림굿을 받은 후 초기에는 신아버지가 굿판에 데리고 다니면서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법인데, ㅇ법사는 연락이 잘 안되었다. 손님도 소문이 나야 드는 법인데 그렇지 않으니 드물게 찾아왔고 소위 파리를 날렸다. 그래서 근처에 사는 게이 형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 형도 신내림을 받으려 한다며 아는 법사가 있으니 같이 찾아가 보자고 했다.
그 법사는 나를 보더니 아직 제대로 ’신빨‘이 안 들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최소 비용으로 다시 내림굿을 해줄 테니 그 게이형과 같이 받으라고 했다. 나는 그 형과 함께 내림굿을 받기로 하고 그 법사가 이끄는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는 굿당으로 가서 두 번째 신내림 굿을 했다.
한겨울 지리산 계곡의 얼음을 깨고 물속으로 들어가 목욕 재개한 뒤에 굿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기도하는 중에 육이오전쟁 때 돌아가신 외삼촌이 나타났다. 지리산 산신령도 나타났는데 몸에 실리진 않았다. 내가 본 지리산의 산신령은 여성의 모습을 한 산신이었다. 함께 갔던 그 형은 내림굿을 받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산기도만 했다.
지리산에서 두 번째 내림굿을 한 이후로도 손님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 게이 형과 함께 '부부무당'을 찾아갔다. 남편인 박수무당은 역시나 게이였다. 그는 작두장군이라고 작두굿을 하는 무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도 우리에게 한번 해보자고 제안해서 또 내림굿을 하게 되었다. 마침 남포동에 사는 여자분과 수영 팔도시장에 사는 여자분도 내림굿을 받기로 해서 나와 게이 형까지 4명의 내림굿이 진행되었다. 굿 하나는 정확하게 잘하기로 소문난 이였다. 우리는 한 명씩 차례대로 내림굿을 진행하기로 했고 서로를 돕자고 했다.
처음, 남포동에 사는 여자는 돼지를 통째로 잡고 작두굿을 하기로 해서 나와 게이 형이 작두 칼날을 부싯돌에다 갈아주는 역할을 했다. 작두 칼날을 갈 때는 입에다 돈봉투를 물려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칼날이 시퍼렇게 될 때까지 갈아야 했다. 작두칼을 갈 때 부정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작두굿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작두 위에서 내리는 공수는 칼날같이 정확하다고 소문이 나서였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삼지창 위에 올려서 돼지가 쓰러지지 않으면 작두굿이 시작되었다. 장군이 실린 그는 작두 위에서 공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닷가 용왕굿을 한번, 산신굿당에서 한번 굿을 했다. 그때 그 작두 도사가 어마어마하게 긴 대나무를 가져와서 나한테 잡으라고 했다. 나는 굿을 하면서 웬만한 건물 높이만큼 긴 대나무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방방 뛰어다녔다. 대나무를 들고 있는데 작두도사가 나에게 대나무에 할아버지가 왔다고 하였다 그 굿에서도 산신령이 내 몸에 실렸다 갔다
우리 네 사람은 내림굿을 함께 받으며 친분이 생겼고, 그 이후 넷이 함께 내 차를 타고 산기도를 다니곤 했다. 그 당시 일월산, 태백산, 주왕산, 장산, 지리산 등 수없이 많은 산에 기도를 다녔다. 함께 산기도를 하고 내림굿도 함께 받았지만, 손님을 받는 무당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머지 셋은 법당을 차려놓고도 손님이 오면 겁을 먹어서 말문을 트지 못했다. 그 당시 부산 수영 근처에 법당을 차렸는데, 수영에 사는 여자는 손님이 오면 내게로 보내곤 했다.
사실 내림굿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신빨이 생기고 점괘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냥 암시 형태로 느낌이 오곤 하는데 그걸 눈치껏 알아채야 하는 것이다. 처음 신내림을 받으면 산에서 100일 기도를 해야 좋은 기운을 받는다. 산기도를 다니는 이유도 신명의 정기를 받기 위함이다. 무당들이 내림굿을 받았다고 해서 다 족집게가 되기는 어렵고, 현재 무업을 하는 무당들의 절반도 위에 말한 세 명과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림굿을 받고도 철학, 명리학을 따로 공부하는 것이다.
한번은 부산 해운대 장산에서 밤 11시를 넘기며 산기도를 했다. 폭포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도하다가 눈을 떴는데, 옆에서 흰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와 소복을 입은 여자가 기도하고 있는 게 보였다. 소복 차림 여자가 얼굴을 드는 순간 기겁하고 말았다. 여자의 얼굴에 눈코입이 없고 하얀 얼굴만 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니 두 사람이 사라지고 없었다. 사실 부산 장산은 귀신이 나오는 산으로 유명하다. 공포영화의 소재가 된 ‘장산범’이 나타난다고 소문이 난 곳이기도 하다.
또 한번은 우리 네 사람이 주왕산으로 산기도를 갔을 때였다. 주왕산은 소위 기도빨이 세기로 유명한 산이다. 우리는 ‘달기약수’로 가는 중간에 있는 제3폭포 아래에서 밤 12시부터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서 내게 큰절을 올리는 게 아닌가! 나는 그냥 좋아서 흐뭇하게 웃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캄캄한 밤공기에 휩싸인 주왕산 계곡만 보였다. 그 이후로는 신기하게도 머릿속에서 아지야 아지야 이래라 저래라, 하는 선녀의 목소리가 들렸고 점괘도 잘 보였다. 하지만 법당 앞에서 남자랑 섹스하는 바람에 선녀가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 법당 앞에서는 점괘가 안 나왔고, 밖에서 누굴 만나 점을 봐줄 때는 너무 잘 보여서 놀란 적이 많다.
작두를 타는 법사는 여기저기 출장 점사를 자주 다녔는데 나를 꼭 데리고 다니곤 했다. 하루는 서울에 살다가 부산에 내려온 대학교수의 집을 방문했다. 그 교수는 언젠가부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픈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그는 걷지도 못해서 누워서만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집안에 감도는 음산한 기운을 감지했다. 작두도사는 그 집안의 안주인에게 넓은 접시에 쌀을 몇 알을 올려서 부엌칼과 함께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부엌칼을 들고 부엌과 화장실 등을 돌아다니며 주문을 읊더니, 접시 위에 둔 쌀알 사이에 칼끝을 아래로 하여 칼을 세웠다. 아픈이유는 대장군 방위를 침범한 이사 때문이었다. 접시 위에 거꾸로 서있는 칼을 보고 마술사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작두도사는 세우는 건 정말 잘 세웠다. 통돼지도 삼지창 위에 기막히게 세웠으니까. 작두도사도 당시 내 몸을 탐하려다 내가 거절하자 잘 찾지도 않고 데리고 다니지도 않았다.
나는 ‘법당사건’ 때문에 내림굿을 받은 지 2년 만에 무업을 접었다. ‘법당사건’이란 맨 처음에 내림굿을 해준 ㅇ법사 아래에 있는 젊은 박수무당으로 인해 생긴 사건이었다. 그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지 자꾸 찾아와서는 자꾸 내 몸을 탐하려 해서 나는 그를 계속 피해 다녔는데, 하루는 내가 법당이 차려진 방에서 자고 있을 때 찾아와서 나를 덮치는 바람에 결국 법당 앞에서 섹스를 하고 말았다. 그 사건 이후 법당에 찬바람이 부는 걸 느낀 나는 나의 모든 걸 하늘에 맡기기로 마음먹고 장산 꼭대기 기도당에서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린 뒤에 법당을 다 추렴하여 허공에 띄어 보내고 신주단지만 남기고 다 없애버렸다. 1999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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