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5월 17일부터 6월 20일은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그리고 무지개행동이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로 지정한 기간이다.
사회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여러 이슈 중에 성소수자들이 연대하지 않는 의제가 어디 있겠냐마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는 나에게 다른 의제들보다 조금 더 다층적이고 섬세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탄압의 역사가 애초에 여러 강대국들이 관련되었고 수십 년 전부터 이어 온 복집한 문제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탄압은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대중의 관심이나 호응을 받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며, 이란을 비롯해서 이스라엘이 공격하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동성애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에게 매우 적대적이기 때문에 왜 성소수자들이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혹은 이란)과 연대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의 성소수자 권리에 대해 찾아보면, 아시아권에서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매우 잘 보장된 축에 속하고 대규모 퀴어문화축제도 열리며,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고도 전한다. 그래 봤자 어차피 이스라엘 안에서의 동성혼은 여전히 법제화되지 않았고 올해의 텔아비브 퀴어문화축제는 ‘안전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취소되었지만, 어쨌든 이스라엘과 가까운 이슬람 국가들보다는 이스라엘이 성소수자들에게 더 안전한 국가라고 외부에 보여지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나 이란에 자행하고 있는 학살과 무력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강대국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이슬람 국가들과는 다른 ‘정상 국가’임을 주장하며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의 행보가 성소수자 인권을 치부하고서라도 인권 친화적으로 고려될 수는 없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국가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스라엘에서 동성 파트너는 사실혼만 가능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동성혼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스라엘처럼 성소수자 친화적이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신장하는, 중동 지역에서 유일한 ‘정상 국가’인 척을 하면서 집단학살을 미화하는 것을 퀴어-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는 ‘핑크워싱’이라고 한다. 팔레스타인 집회에서 자주 울려펴지는 구호 ‘No Pride in Pinkwashing’도 이런 정황에 기반을 두었다. ‘핑크워싱’은 국가나 기업이 자신들의 만행을 감추기 위해 성소수자 인권이나 다양성을 상업적,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이 초토화된 팔레스타인의 전장에 성소수자인 이스라엘 군인을 세워 놓고 무지개 깃발을 손에 들린 다음 사진을 찍어서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그런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념과 맥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은 바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조금 더 다양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시오니즘을 기반으로 건국된 나라이다. 수 세기 동안 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던 근거도 신이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 등에게 약속했던 축복의 땅이라는 종교적 근거다.
이스라엘에서 유대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이다. 물론 그만큼 세속주의 성향의 유대교인이 강하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국민들이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한다기보다는 문화, 사상적 전통으로서 유대교를 바라본다고는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유대교와 시오니즘의 이스라엘 건국 당시의 가장 크게 내세운 명분 중 하나였고, 지금도 이스라엘의 문화나 정서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교 교리는(기독교와 이슬람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 아브라함계 종교가 비슷하겠지만) 애초에 그렇게 성소수자 친화적인 편이 아니다. 구약성경에 성소수자나 동성애자, 정확히 말하면 ‘남자와 동침하는 남자’에 대해 뭐라고 적혀 있는지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기독교보다도 성경(더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 구약성경의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는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에 쓰여진 규율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경향이 강한 유대교에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근본주의, 혹은 전통주의 유대교인이라면 성소수자 친화적인 입장을 취할 확률이 낮을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성혼에 반대하는 높은 비율의 사람들 중에서도 근본주의 유대교인들의 반대가 강하다고 한다.
유대교 이념과 교리를 당위로 밀어붙여 세운 나라에서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동성혼 법제화까지는 아니어도 동성 부부의 사실혼까지는 가능하며, 무지개 깃발을 든 성소수자 군인의 사진을 홍보에 사용하는 이스라엘의 행태는, 아무리 핑크워싱이라 하더라도 모순적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너무 놀랄 일도 아니다. 종교도 인권도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변형시켜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정치인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유대인들이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약속해 주신 땅을 되찾고 정복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일까. 그보다는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여러 강대국들의 정치와 야욕이 유대인들과 시오니즘을 발견하고 이용해서 이스라엘이 탄생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스라엘 정부와 정치인들이 정말로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지지하고 이에 관심이 많아서 성소수자 친화적인 프로파간다를 내세우기보다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국가로 이스라엘을 포장하는 것이 중동 유일의 정상 국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핑크워싱을 하는 것이다. 신이 유대인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다는 경전의 구절이 이스라엘 건국에 도움이 되었기에 이를 내세웠을지 몰라도, 남자와 동침하는 남자를 돌로 쳐 죽이라는 경전의 구절은 21세기 국제 사회에서 딱히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종교와 성소수자, 그리고 정치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말하다 보니까 문득 생각나는 광경이 있다.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이다. 그리스도교에 속하는 개신교도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계열 종교이지만,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과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내보내는 메시지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는 성소수자 담론과 동성애가 신의 뜻에 어긋난다고 성경에 적혀 있다는 이유로, 또한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과 사회 전반에 해롭다는 이유로 성소수자 혐오를 드러내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기를 망설이는 극우 개신교 세력, 혹은 이에 영향을 받은 정치인들이 많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은데, 그럼 그렇게 혐오를 드러내는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은 정말로 신에 대한 믿음이 독실하고, 자신들이 신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진지하게 믿어서 성소수자 혐오를 뱉는 것일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일삼는 개신교 세력(목사이든 정치인이든, 혹은 사회의 유명 인사나 일반인들을 포함해서) 중에서는 실제로 성소수자가 신의 뜻에 반하는 죄인이라고 굳게 믿고 그들에 대한 혐오가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유의미한 수를 차지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극우 개신교 세력의 조직화도 어려웠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종교적 믿음으로 충실하게 가져가는 것을 신앙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들에게 마이크를 쥐여 주고 사회각계에서 주목하는 세력으로 조직한 것은 분명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결과다. 성경에는 남자 둘이 동침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하며 동성(정확히 말하면 남성)간 성관계를 죄악시하는 구절이 있지만, 이웃을 사랑하라거나, 물질적인 부보다 신을 더 사랑해야 한다거나, 하는 그런 청렴과 덕행에 관련된 구절도 확실히 존재한다. 그런데 정교가 엄연히 분리된 나라의 공개석상에서 성경 구절을 읽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정치인들이나, 가장 앞장서서 성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혐오를 발산하는 목사들이 청렴과 덕행에 대한 성경 구절 앞에서는 흐린 눈을 하고 남성끼리 동침하면 안 된다는 구절을 가져와 성소수자 혐오가 신의 뜻이라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성소수자 혐오가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만은 아닌 게 확실하다.
종교적 믿음은 종교를 지닌 사람들의 마음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종교가 국가나 문명의 문화 혹은 역사를 결정짓기도 하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믿고 의지하는 종교의 율법, 혹은 종교인이 하는 말들은 종교에 미쳐 분별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거의 신이 한 명령 그 자체처럼 받아들여진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종교에 대한 인간의 바로 이 취약성을 이용해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등에 대한 혐오를 결집시키고, 이를 신의 뜻이라고 포장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종교의 다른 가르침과 모순되는 지점이 발생하더라도, 이는 권력 유지에 그닥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국가임을 표방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의 사람들을 학살한다.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은 종교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를 혐오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매우 다른 두 입장은 근본적으로 똑같다. 권력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며, 실제 종교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는 권력 앞에 프로파간다로 쓰이기도, 에이즈를 퍼트리고 가정을 파괴하는 종북 좌파 세력으로 호도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담론과 의제는 존재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이 더더욱 괘씸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대교의 토라와 기독교의 구약성경에는 남자들끼리 동침하면 돌려 쳐 죽이라고도, 또한 주님을 믿지 않는 이민족들을 쳐 죽이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도 쓰여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두 번째 문장을 이토록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으면서도 첫 번째 문장은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무시한다. 성소수자와 이교도를 공평하게 혐오하는 근본주의 유대인들도 이스라엘의 정치에 엄청나게 유의미한 영향까지는 주지 못하기 때문에 마이크를 자주 갖지 못한다.

핑크워싱에 앞장서는 이스라엘 정치인들이나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근본주의 유대인들이나, 성소수자 혐오를 세력 결집에 이용하는 한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이나 성소수자의 눈에는 다 똑같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을 규탄하고, 함께 탄압받는 팔레스타인의 사람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퀴어 당사자들과 연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퀴어로서 자신들이 프로파간다와 권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우리도 목소리와 권리가 있으며 이를 지울 수 없다는 외침이기도 하다. 이런 외침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가끔 찾아보는 성소수자 관련 유튜브 채널에 주한 영국 대사관의 외교관이 나오면 조용하게 채널을 돌리고, 비건 음료에 이스라엘산 바나나가 들어가면 그대로 진열대에 다시 내려놓고, 퀴어문화축제에서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을 찾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존재를 위한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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