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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39. 두마게티 시티 2025 퀴어퍼레이드

by 행성인 2025. 7. 25.

 

여기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대성통곡 에피소드: 손은 하얀데 발이 까맣네(?)

 

식습관은 운동과 더불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골고루 먹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여러 묘안들을 짜내고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식사마다 아이에게 생오이를 먹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오이 껍질이 단단해서 그런지 뱉어내버렸어요. 그런데 오이 껍질을 깍아주었더니 받아먹더라고요. 아마도 껍질이 거칠어서 그랬나 봐요.

 

대성통곡 에피소드는 이러했어요. 그날도 밥을 먹이면서 평소처럼 인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저는 아이에게 야채가 좋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오이를 먹으면 피부가 하얘져

우와 그래서 우리 인보 얼굴과 손이 이렇게 하얗고 예쁘구나.

 

엄마 혼자 치고 장구 치듯 자화자찬하였습니다. 아이는 오이 효과를 듣고는 아이의 입이 귀에 걸렸어요. 자신의 피부가 하얗다니 기분이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 결코 하지 말아야 말을 무심히 해버렸지 뭡니까.

 

근데 (인보) 발은 블랙이네!

 

반대 효과의 말을 듣더니 녀석이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대성통곡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뿔싸 엄마가 1절만 했어야 했는데 그만 2절이 아이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어 버렸답니다.

 

사계절 내내 더워서 그런지 필리핀 사람들의 피부는 까무잡잡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부를 선호합니다. 앞으로 아이도 피부 관리에 필요한 화장품에 관심을 많이 갖고 무척 신경을 많이 테지요. 부모로서, 마음의 색도 해맑게 예뻤으면 해요.

 

이다음에 아이와 둘이 누워서 얼굴에 시원한 오이로 마사지 놀이를 해볼까요?(이래서 아이가 생긴 이래로 남편보다 아이가 0순위입니다).

 

 

엄마, 한국말로 해주세요

 

아이가 커가면서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한국어 능력을 쑥쑥 키워주는 일등 공신은 역시나 신나고 재미있는 만화영화입니다(아이가 최고로 좋아하는 뽀로로와 친구들 ).

 

가끔 장난으로 영어로 말을 거네면 녀석 엄마, 한국말 말하라네요.

어제는 조안 이모와 소꿉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인보가 영어로 대화를 하더라고요. 가끔 한국어를 섞어서 말을 해서 조안 이모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한국어, 영어, 필리핀어(비사야어) 두루 섞어 말하고 있습니다. 다중언어에도 불구하고뇌의 언어 중추가 작동하여 여러 언어로 자유롭게 표현할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모국에서 멀리 떨어져 이주민 생활을 하는 저에게는 한국어가 정서적으로 마음과 마음을 교류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데 최고로 좋은 (약과 같은) 언어 랍니다.

 

아이가 존대어를 자연스럽게 익히기 위해 저는 (의도적으로) 아이에게 존댓말로 이야기합니다. 동영상에서 친구들끼리 하는 반말을 저에게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답할 때나 특별히 가르쳐 존댓말을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가면 이모들, 삼촌들에게 예쁘게 말을 해야지요.

 

 

관공서 건물 한가운데 떡하니 걸린 무지개 깃발

 

 

찰스 아빠는 매주 금요일이 쉬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은 남편이 아이를 봅니다. 저는 시내에 나가 책을 읽고 필요한 물품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저만의 쉬는 날입니다.

 

지난달 시내에 나갔다가 시청 국립박물관 외벽에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겁니다.

 

아하, 이번 달이 자긍심의 6,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박물관 1 로비에서 안내해 직원이 프라이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안내원에게 우리가 동성결혼한 커플이고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는 퀴어가족사를 들여주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직원을 두마게티 시티 퀴어퍼레이드에서 만난 겁니다. 아이가 레인보우냐며 이름을 기억하면서요. 찰스 아빠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직원이 함께 여성이 짝지(?)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우리 (레즈비언) 엘언니여서 저를 반갑게 맞이해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이렇게 (우리) 퀴어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니까요!

 

 

열렸네, 2025 두마게티 시티 퀴어퍼레이드

 

 

 

박물관에 다녀온 올해 퀴어퍼레이드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검색해 보았어요. 홍보가 되지 않아 어렵게 찾았는데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어떤 해는 일요일) 열리는 겁니다.

 

퀴어들의 명절 퀴어퍼레이드에 우리 레인보우 패밀리가 빠져서는 되겠지요?

아이 얼굴에 크레파스로 무지개를 그려주었더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흥이 녀석이 직접 아빠와 엄마 얼굴에 그려주었어요. 무지개 깃발과 동생 훈이가 가져다준 Pride Riders 깃발을 챙겨서 행사가 열리는 해상공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작년과 다르게 행사장이 공원 중심 무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스도 많이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혈액형과 혈당을 체크해 주는 건강 부스도 차려졌습니다. 행사 참가자의 연령대는 주로 10, 20, 30대였습니다. 우리같이 50대와 60대는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그럴까? 중장년 퀴어들이 커뮤니티의 참여나 인터넷으로 검색이 어려워서 퀴어 행사를 모르나?

 

부스에서 손으로 무지개 스카프를 사서 아이 머리에 씌워주었어요. 신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레즈비언 언니들과 풍선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드랙쇼가 시작되기 , MC들이 행사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참가자들에게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어디서 왔는지 누구와 왔는지 호구조사를 물어왔습니다. 저희 퀴어가정사를 소개하고 , 필리핀에서도 동성결혼이 법제화되길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평등하길 간절히 원한다는 것도요. 말을 듣고 필리핀 퀴어 동지들의 멋진 환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필리핀 퀴어퍼레이드에서는 드랙쇼가 대미를 장식합니다. 올해도 4명의 드랙 언니들이 춤과 액션을 마음껏 뿜어댔습니다.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으로 행사장이 뜰썩댔어요. 부처님 시절의 야단법석은 야단법석도 아니었습니다.

 

 

모국에서도 보고 싶다오, 무지개 걸개

 

세계가 이토록 6월을 성소수자의 자긍심의 달로 축하해주고 있다오.

세계가 이렇게 퀴어 프랜들리로 변하고 있다오.

시국이 이러하니 모국이여, 한국의 정부와 공공기관들이여 목놓아 외쳐봅니다.

그대들도 축제에 함께 참여할 있다오!

그대들의 건물에 떡하니 걸린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을

내가 죽기 전에 눈으로 보는 것이 소원이라오.

 

광장 앞에서

우리 남편과 딸내미와 함께

사진 찍고 싶은

우리 가족의 소박한 꿈과 희망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