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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회원에세이] 바다 건너 트랜스

by 행성인 2025. 7. 25.

애벌레(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아시아어문화과에서 한국문학 전공으로 퀴어와 트랜스 이론을 병행하여 공부 중이다. 트랜스/젠더/퀴어의 문학 속 재현, 트랜지션의 서사화, (트랜스)젠더의 번역 (불)가능성 등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연구 주제를 잡고 싶다. (자꾸만 많은 말과 생각을 괄호 속에 넣게 되지만.)

 

일 년 동안 가장 자주 한 일은 바로 연구 주제를 요약해서 짧고 굵게 소개하기가 아닐까. 그 사이에서 자주 갈팡질팡한다. 수업을 계속 듣는 2년차까지는 들어올 때 작성한 연구 계획서 내용을 진득하게 실행해볼 시간이 여의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거다! 싶다가도 아니네… 싶은 순간은 수없이 지나갔다. 이제 1년차가 끝났으니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또 이렇게 훅 흘러가버려서 뒤돌아보면 곧 박사과정 자격시험을 보게 될 것 같다. 

 

왜 미국까지 가서 한국문학을 공부하는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자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이었다. (학계나 퀴어 쪽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그냥 비교문학 공부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가장 명쾌한 답변은 퀴어-트랜스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는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지원을 해줘서. 가볍게는 한국에서 석사부터 할 생각도 있었지만 박사과정에 붙어버려서. 진지하게 돌아보자면 한국에 환멸나는 것들이 있어 떠나버리고 싶었는데 내가 바꾸고 싶은 세상과 하고 싶은 활동은 한국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 자리가 이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어디에서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나의 고질적인 문제라서 내가 이곳에 있다면 자리는 이미 생겼다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젠더학 쪽 수업을 열심히 들었고 틈을 내어 트랜스 이론을 독학해보려고 했고 퀴어 문학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한국을 떠나온 김에 한국에 대해서 최대한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자 싶어서 한국 현대사 강의도 아주 인상 깊게 들었다. 미묘하게 불쾌하고 나를 인상 찌뿌리게 하던 일들을 먼저 고민해오던 학자들의 연구로 마주했을 때 가슴이 뻥 뚫리는 순간들이 있다. 

 

글 쓰는 일을 좋아한다. 흐릿한 생각을 언어로 명료하게 정리하고 구조를 잡아 글을 깎아가는 일은 즐겁지만, 여전히 어렵고 무섭기도 하다. 뭐가 두려운 걸까? 글이 좋지 못할까봐, 주장이 명확하지 않을까봐, 내용이 올바르지 않을까봐, 별 것도 아닌 글일까봐…이유를 매기자면 추상적인 불안함은 커지기만 해서 그럴 때는 역시 쓰기 시작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많이 읽다 보니 쓰고 싶은 글이 계속 생기고 쓰다 보면 버리고 싶은 글도, 엎고 싶은 글도, 꼭꼭 간직해두고 싶은 글도 생긴다. 

 

그럼에도 막막하고 벅찬 때가 많았다. 한국과 퀴어와 트랜스와 소설… 뭐이리 공부할 게 많은지 모르겠다. 백 년 동안 동굴에 갇혀 이론서만 읽어야 한 발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트랜스 연구를 하겠다고 바다 건너 왔는데, 혼자 올라갈 수 없는 거대한 절벽 앞에 서있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북미 중심의 트랜스 연구는 퀴어 연구와 불화하고 배제되어 떨어져나온 만큼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많이 담겨 있지만 꽤나 자주 백인 중심적이고 지정학적으로 자꾸만 어긋난다. 

 

이에 대항하는 남미계 트랜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 흑인 페미니스트/트랜스 이론가들의 연구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다. 하지만 한국의 맥락과 자꾸만 어긋난다. 한국, 그리고 한국 문학에서 인종, 민족, 국적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가져다 쓸 수 없는 논의들이다. 아시아 계열 학자들의 트랜스 연구도 지난 10년간 조금씩 쌓여오고 있지만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연구는 굉장히 산발적이고 연구자들의 위치성이 상이하다. 

 

그래서 자주 막막하다. 90년대부터 이어진 일련의 주요한 퀴어 이론의 갈래를 공부하고, 거기서 뻗어져 나온 트랜스 이론의 논의를 흡수하고, (그래도 퀴어 페미인데 굵직한 페미니즘의 갈래들도 새기고) 한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탈식민, 탈냉전, 탈제국의 이론을 소화하고,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 문학의 계보를 따라가고 여성/페미니스트 문학의 계보도 익히고 주요 평론가들의 논의도 공부한다. 또는 해야 한다. 

 

공부해서 세상이 바뀌나? 이런 둥둥 뜨는 질문을 자주 습관적으로 던지는데 활자의 물결에 던져져서 읽다 보면 당연히 바뀐다는 생각이 또 자주 든다. 세상을 멋지게 바꾼 퀴어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무한히 동경하게 된다. 내가 뭐라고, 자격 따지는 질문을 던지지만 나를 울리는 글과 활동과 마음에 계속 가보고 싶게 된다. (그래서 최은영 작가의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몫〉을 사랑한다.) 

 

프로그램 자체는 정말 자유롭다. 졸업요건을 지키는 한에서 원하는 수업을 모두 들을 수 있고 학기 페이퍼 주제도 대부분 자유다.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점도 많다. 물론 대학원이 그렇게 쉬울 리 없다. 학기 중에는 시간에 쫓기며 읽고 또 읽고 쓰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 못읽어서 불안해하며 다 안읽고 다 읽은 것마냥 토론하는 스킬을 익혔다. 무엇보다 첫 해부터 지도 교수와 문제가 생겨서 몇 달간 마음고생을 꽤나 했다. 이제는 거의 마무리된 일이니 말을 줄이겠다. 첫 해에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많이 받아서 정말 감사하다. 

 

이르게 떠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단연 커뮤니티이다. 이 학교와 이 도시는 무척이나 퀴어 친화적이고 트랜스 친화적이라 일상 속 긴장이 적지만 그만큼 한국 퀴어 커뮤니티는 흩어져 있어서 연결되기가 어렵다. 언어와 문화권의 장벽이 아직 높은지 아쉽게도 학내 트랜스 커뮤니티에서는 조금 어긋나는 기분이었다. 한국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어서 연구 주제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논의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자주 든다. 생각과 마음과 말을 언제나 번역해내야만 한다. 

 

항상 득과 실은 같이 온다. 대신 다양한 배경의 퀴어 페미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중국학을 공부하는 동기들과 아시아학 속 젠더 관련 이론과 틀에 대해 논의하며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론은 현실에서 붕 떠버릴 때도 많고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아 챗지피티와 씨름하는 날이 길었다. 그래도 가끔은 이론이 나를 데리고 더 멀리, 모르는 곳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긴다. 

 

 

 

연구자도 활동가도 아닌 그 틈 사이에서 부유하는 기분을 자꾸 버릴 수가 없는 한 해였다. 적어도 아직은 둘다 아니니 당연한 기분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제일 힘들었을 때 우울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고 여기까지 와서 왜이러고 있나 싶기도 하고 또 운이 좋고 편하게 살아와서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왜그렇게 혼자 세상 짐을 짊어진 것마냥 진지해지고 무거워지는지 우습기도 했다.

 

이 수많은 논의를 소화하기가 벅차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유 같은 소리에 환멸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끊임없는 대화의 시도가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미국과 영어권과 서구가 더 깨어 있고 열려 있어서가 아니라 제도적인 발판이 마련되었을 때 가능한 사유와 통찰에서 배울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섹슈얼(성전환자),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로 직접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를 언어화하고 혐오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든 논의와 담론을 배워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지만 트랜스 학계와는 별개로 미국에 있기가 참 불안하고 지치는 한해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지 고작 반 년이 조금 넘었다는 게 거짓말 같을 만큼 그가 일으킨 피해는 너무 크다. 유학생들도 일 년 내내 마음을 졸였을 거고 한 나라와 한 인간이 이렇게까지 전쟁과 학살과 죽음과 가난과 추방과 멸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여러 번 무너졌다. 

 

학교 경찰은 지역 경찰과 연루하여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체포하고 행사를 철거하는 일 정도는 당연시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지만 그럼에도 자꾸 망설이고 자주 스스로 위선적이라 느꼈다. 국제 학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안전을 위해 포기하는 경우가 잦았다. 줄어든 펀딩은 분야를 막론하고 대학사회 내 모두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세상은 점점 무너지는 것 같고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지만 일상은 계속된다. 안온한 일상은 누군가의 절망을 묵인하는 데서 올 때도 있지만 빈 말일지언정 모두가 평온한 일상을 꿈꾸며 나의 자리를 계속 살폈다. 일 년을 힘겹게 끝마치고 사주 동안 한국에 잠시 돌아오면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위치성을 기억하자는 마음이 작지만 중요하게 남았다. 

 

한국에서 보낸 사 주는 더욱더 빠르게 흘러갔다. 친구가 행복해서가 아닐까 하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들을 만나고 익숙한 애정을 가진 곳으로 돌아가면서 기쁨이 가득 묻어났다. 많은 일을 하지 못했는데 금방 끝나버리더라. 보고 싶었던 페미니즘 연극과 퀴어 영화제, 트랜스젠더 퍼포먼스 등을 찾아보고 그리웠던 행성인에도 돌아와 트랜스팀 회의와 T&F에도 한 번씩 나갈 수 있었다. 낯선 얼굴도 많았는데 팀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듯해서 뿌듯하고 힘을 보태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다. 

 

친구들도 거의 한 번씩 얼굴을 볼 수 있었고 퀴어 학회와 친구 발표를 보러 인류학 학회도 한 번씩 다녀왔다. 체력이 절반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던 한 해라 도장을 한 달 등록해서 태권도를 계속하고 간간이 헬스장에 출석했다. 차도 싫고 운전을 무서워하던 사람이었는데  미국에서는 차없이 제한이 걸리는 활동이 너무 많아서 운전을 하기로 했다. 연수를 여러 번 받고 동해까지 한 번 다녀왔는데 운전은 여전히 무섭긴 하다. 

 

이제는 돌아와서 친구 고양이 두 마리를 봐주며 늘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이 채 안돼서 아직 시차적응 중이지만 방학이 두 달이나 남았다. 이번 방학 때는 운 좋게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연구는 없어서 부족한 공부도 좀 따라잡고 사랑하는 소설도 잔뜩 읽고 계속 운동을 하며 보낼 생각이다. (도파민을 위해 여기서 처음으로 어플을 돌려볼까 생각중인데.. 투비 컨티뉴드) 비염인으로서 고양이 털과의 싸움 중이라 이만 청소를 하러 간다. 

 

학술적인 글이 아니면 자주 가볍고 경쾌하게 쓰고 싶은데 혼자 있으면 늘어지고 무거워지는 사람이라 글도 잔뜩 진지함을 머금게 된다. 괄호 안에는 이따금 진지함을 덜어줄 웃음 한 모금을 담으려고 한다. 제가 애정하는 사람들은 저를 경쾌하고 산뜻하게 만드니 다음에 만나면 우리 또 환하게 인사해요! 얼굴도 글로도 오래오래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