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


좀 예스러운 표현이지만 퀴어 씬에 처음 나오게 되는 걸(주로 게이들 사이의 표현이지만) 데뷔한다고 표현했던 걸 생각하면, 지난 9월 4일 저는 농성장에 처음 데뷔했습니다. 정확히는 자유발언, 연대 발언, 아무튼 어떤 발언이든 간에 발언의 데뷔를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발언을 하겠거니 하는 와중에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메시지의 완급조절은 해야 하는지, 투쟁의 언어는 어떻게 골라서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입장에서 긴 시간 이어져 온 탄핵 광장 동안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결국 미뤄온 그 발언이었습니다. 저의 삶의 태도가 매번 그래왔듯이 그래도 누군가가 나에게 공을 던져주면, 나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하는 편이라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행성인 노동권팀에서 공동주최하기로 한 세종호텔 고공농성 투쟁승리 문화제였고, 섭외와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할지는 이미 회의를 통해 확정되었기에 당일 문화제 참석만을 염두하고 미리 일정을 비워두었습니다. 그리고 3일을 남겨 둔 9월 1일, 노동권팀 텔레그램 방에 발언해주실 분을 찾는 사루 님의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메시지를 어쩌다보니 바로 보게 되었는데 그때의 느낌이 아, 어쩐지 내가 쓰게 될 것 같다는 계시(?)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바로 제가 하겠다고 하진 않았으나, 저의 기분이 화면 너머로 사루 님께 닿았는지, 개인 텔레그램으로 따로 부탁을 남겨주셨습니다.

부르면 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길 바란다는 건 내가 그만큼 용기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 얘기는 곧 나를 불러주는 누군가는 나에게 용기를 내 손을 내민 것이니까요. 다소 수동적이지만, 겁쟁이 내향인인 사람은 소명을 다하고자 휴대폰 메모장을 켰습니다.
사실, 문장을 쓰기까지 한 번도 자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준비한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저 멀리 기억을 불러오다 보니 그냥 주루룩 글이 쏟아져나오더라고요. 세종호텔은 저에게 그런 의미였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은 이미 오래되었지만 개인적인 관계가 아닌 타인, 집단에게서 처음으로 환대를 받고 연대를 경험했던 것이 세종호텔 농성장이었습니다. 퀴퍼 트럭을 따라가며 눈앞에 물결치는 무지개가 생경하면서 너무 고맙고, 나는 문제를 알면서도 여태 고작 트위터에서 리트윗 한 번 한 것으로 가볍게 연대를 한 것(혹은 연대한 기분만 낸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발언문을 쓰면서 많이 부끄러웠던 것이 한 번도 농성장에서 동지들을 만난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핑계야 많이 댈 수 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같은 서울에 있으면서 가지 않은 것은 나의 나태함 때문이었으니까요. 반성문을 쓰고 속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치열하게 투쟁하고 그 와중에 다른 투쟁사업장에 연대하는 분들에게 제가 너무 늦게 간 것은 맞았으니까요. 그 마음을 담아 쓰고 나니 글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쓰고 나서 든 생각은 내가 너무 나이브한 말만 적은 것은 아닌가, 내가 하나 마나 한 말로 동지들을 조롱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일, 연대 발언을 시작하기 전부터 많이 떨리고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보고, 발표 등은 닳고 닳을 정도로 했는데 처음으로 그렇게 떨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말하는 문장에 대한 확신도 없고, 다른 동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은 나고, 발언 중에 이미 벅차오른 감정 때문에 울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그래도 시간과 프로그램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때가 되어 발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울면서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강단 있게 말하고 싶었지만,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고요. 축사를 읽는 신부 친구들처럼 우느라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발언문은 글 마지막에 살짝 붙여 놓았습니다.)
다 마무리하고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낸 기분이라 뒤풀이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 쓰러졌는데요. 침대에 누워서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구나. 내 마음을 다 전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발언을 준비하면서 퀴어 노동자로서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사실 상호 교차성이라는 개념처럼 우리는 퀴어이자 노동자이고 두 정체성이 만나는 지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두 정체성의 접점 위에 놓인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했어요. 그 위에서 내가 각각 느낀 바를, 내가 연대하고자 하는 동지에게 서로 마음에 맞닿은 이야기를 하면 되겠구나 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애매한가.. 그치만 제가 애매한 사람인데 어쩌겠어요. 애매하고 흐릿한 사람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발언문 준비도, 발언도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활동에 있어서도 많은 동기부여를 얻은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이끌어주어 기회를 얻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동지들을 만나고, 어떤 마음으로 투쟁하는지를 느끼는 과정은 다 제가 온전히 느끼고 함께 싸운 것이어서 큰 에너지를 얻는 느낌이었달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리고 그것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걷어내지 말고, 하나라도 더 함께하자’라는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노동권팀에서는 평소에 퀴어 노동자로서의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어떤 사연에는 퀴어의 비중이, 어떤 때에는 노동자의 비중이 더 크기도 하지요. 상반기에는 우리 안의 퀴어 그리고 노동자로서 서로의 의견 나누기, 그리고 하반기에는 노동자로서 우리와 함께 나아가야 하는 이들과 연대했습니다. 통일감이 없어 보이지만 노동권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하려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함께 프로그램 준비한 팀원들, 당일에 같이 문화제에서 만났던 행성인 회원들, 그리고 사회와 프로그램 마무리까지 하느라 고생한 사루 님께 아주 아주 많이 정말 많이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보드게임을 하다보면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불리는 걸 자주 겪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처음 해보는 게임을 룰을 다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승리해 나가는 행운을 의미하는데요. 발언 초심자의 행운이 세종호텔에,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투쟁사업장에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행운이 없더라도, 저는 앞으로 함께 싸울 용기를 얻었습니다. 함께 나아갑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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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투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투쟁!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펠릭스라고 합니다.
제가 사실 진보 의제, 노동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10년도 더 되었는데 투쟁 현장에서 함께 나와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감회가 새로운데요. 세종호텔에서 첫 경험을 하게 되어서 특히 감회가 새롭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면서 다른 사회의 구성원에게 처음으로 “환대”, 혹은 “연대”의 경험을 느껴본 것이 서울퀴퍼에서 세종호텔을 지나며 받았던 환호여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게 어언 3년 전인데 그 당시에도 어떻게 이렇게 부당한 일이 벌어졌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되고 있나, 마음이 답답하고 울컥했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습니다. 그 사이 고진수 동지는 고공으로 올랐고 긴 시간을 힘차게 싸우고 있습니다.
슬픕니다. 그리고 화가 납니다. 지난 탄핵 시국에서는 매주, 매일 집회에 나오며 세종호텔 앞을 지날 때에는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서명도 하고 후원도 하고 소식도 알리고 해봤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만나서 함께 싸우기, 함께 마음 나누기를 하지 않았더라고요. 동지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얼마 전 로비 농성 소식을 들었습니다. 입구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농성을 할 때에는 꿈쩍도 안하더니 로비로 들이닥치고 나서야 교섭 테이블에 나오겠다는 태도가 화가 납니다. 오늘 와서 보니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을 모른 척 해올 수 있었는지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종호텔은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멈추고 복직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바라보고 있고,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형수 동지가 고공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박정혜 동지가 얼마 전 고공에서 내려왔습니다. 또 많이 울었습니다. 주책맞기 짝이 없지만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눈을 맞춘 동지들의 눈을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납니다. 그치만 울며 앉아있기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고진수 동지가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같은 노동자인 동지들을 위해서, 퀴어 노동자인 나의 노동을 존엄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연대하는 시민으로서 우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같이 해나가겠습니다.
저는 그리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노동자가 죽지 않고, 해고당하지 않으며, 안전할 수 있는 세상, 성소수자가 온/오프라인에서 테러를 당하지 않고 여성이 죽임당하지 않으며,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이주노동자가 다치지 않고 자신의 문화를 그대로 안고 살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이 올 때까지 함께 연대하고 싸우겠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함께 나아갑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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