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
금연한지 2주일 가까이 되어 갑니다. 흡연기간이 25년인데 최근에는 담배가 무척 짐처럼 느껴졌어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생하는 날이 많았고 기침이 터질까봐 발언하기가 겁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몸에 남는 냄새때문에 사람들이 곁에 오는 게 꺼려졌죠. 담배를 피면서 되려 예민해지고 그런데도 끊지를 못해서 짜증이 쌓이는 악순환이 꽤 오래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민생소비지원금으로 액상담배를 질렀어요. 전자담배에 실패했던 전적이 있던지라 반신반의하면서도 뭐라도 시도해야할 것 같았어요. 그게 유효했네요. 2년 전의 금연실패 경험을 떠올리면서 한 번에 끊기보단 액상을 금연보조제처럼 쓰면서 습관적인 흡연타임을 줄이려고 노력중입니다. 연초도 한 갑 서랍에 넣어두고 언제든 필 수 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라는 마음으로 한 시간 또 한 시간씩 피지 않는 시간을 늘려 가고 있어요. 그렇게 한 시간이 하루가 되고 하루가 이틀, 일주일이 되더니 10일이 넘고 곧 2주째가 됩니다.
더불어 날이 선선해지고부터 일주일에 하루이틀씩 아침달리기를 하고 있어요. 달리기는 정말 힘들지만 성취감이 끝내줘요. 처음엔 이걸 왜하는 걸까 싶었는데 어느새 집에 러닝용품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꾸준히 해서 내년 여성마라톤대회에는 10킬로미터에 참가하고 싶어요. 그때까지 금연도 이어지고 있으면 좋겠어요. 안 된대도 너무 속상해하진 않으려고요. 결연하기 보다는, 지금 나의 상태를 이해하고 바꿔보려 이것저것 시도하는 중인 정도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오소리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지 1년하고도 2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판결 직후에는 들뜬 채로 지냈는데요. 사실 이걸로 일상에 큰 변화가 있진 않았죠. 그렇게 한동안은 잊고 지내다가 최근 건보공단으로부터 피부양자 자격 유지 적정성 점검을 위한 자료 제출 안내를 받았습니다. 무슨 일인고 알아보니… 건보공단에서는 매년 11월 전후로 소득요건, 부양요건 등 피부양자 자격 변동 여부를 확인하는데, 저희 부부의 경우 소득요건은 확인 가능하지만 부양관계 변동 여부를 ‘공적자료’로 확인하기 어려우니 인정요건 충족 여부 증빙을 위한 서류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는데요. 쉽게 말해, 저희 둘이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증명하라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요구하는 자료는 보증인 2명의 인우보증서와 함께 결혼식 증빙 자료(결혼식 사진, 청첩장 등) 또는 경제적 공동생활 증빙자료(공동명의 부동산, 계좌 등) 등이었습니다.
너희 둘의 관계를 입증해보라는 것이 불쾌하고 차별적이라고 느껴지긴 하면서도, 사실 이성 사실혼 관계의 부양-피부양 관계에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걸로 보여 차별적 행정이라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며칠 전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동성혼이 법제화된다면 혼인신고 하나로 끝날 일을, 저희는 4년에 걸쳐 대법원까지 가서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받았음에도 관계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현실에 화가 치밉니다. (심지어 이걸 앞으로 매년 제출해야 하더라구요) 속은 끊지만서도, 그래도 덕분에(?) 혼인평등 운동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투지를 다지며, 부부로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오늘도 투쟁을 외쳐봅니다.
#모두의결혼 #LoveWins #사랑이이길때까지
덧, 자료 제출을 팩스로 했는데, 전송하면서 사진이 깨졌는지 결혼식 사진 식별이 잘 안된다며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다시 보내달라는 전화가 왔다. 정말이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렇게 우리의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일도 ‘그땐 그랬지’ 하며, 이제 곧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리라 생각하며, 넓은 아량으로 친절하게 응답하며 다시 보내드렸다. 실컷 보시라. 동성부부의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

이안
9월 초 행성인 노동권팀에서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동지를 비롯해 세종호텔 해고복직 투쟁중인 동지들과 연대하기 위한 문화제를 열었어요. 저는 몸짓패 일원으로서 공연하러 갔습니다. 처음으로 맨 앞 가운데에서 ‘민중의 노래’ 곡에 맞춰 몸짓을 했어요! 너무 떨리고 긴장돼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는데, 그 표정이 보는 이들에게는 근엄하게 보였다니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행성인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현장에서 만나는 회원동지들은 언제나 조금 더 반갑고, 투쟁 뿐 아니라 그들의 일상까지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누군가의 일과 삶이 행복하길 바라는 건 참 멋진 일이에요. 그 마음만으로도 다시 스스로에게 또 한 번 행복해지고 큰 힘이 되거든요. 곁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얻는 에너지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귀한 자원이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9월 6일 뿅뿅! 행성인 오락실은 정말 엄청난 행사였어요. 여러 일에 머리가 복잡하고 바빠서 지칠 때가 있지만 그럴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재밌게 노는 것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한 번 시원하게 놀고 나면 오히려 일에 집중이 잘 된달까요? 행성인 소모임 중 보드게임 하고 싶어서 모이는 큐플레이가 이래서 인기가 많구나, 싶었어요.
행성인에 오면서 무지개텃밭 주변 동네를 열심히 돌아다녀보고 있어요. 이제 하늘이 파랗고 바람이 시원한 계절이 되니 걷기만 해도 기분이 정말 좋은 거 있죠? 여러분은 어떤 날씨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새파란 하늘을 사랑해요. 완전 고기압.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날씨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맑은 날엔 활기찬데 흐린 날엔 한없이 무거워져요. 이럴 때일수록 운동도 하고, 잠도 많이 자면서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웅
발치일기: 5년 전쯤 금니를 씌운 곳이 썩어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심는다. 집앞 치과는 원장 의사가 진천 선수촌 주치의 출신이라는걸 강조하면서, 강남에 처음으로 한옥 치과를 만들었다는 스크랩 기사를 전시하면서, 당신이 다니는 교회 산하 학교와 부설 종합병원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있다.
건물 신축과 함께 문을 연 치과는 CT촬영도 서비스로 해주는데 덕분에 생전 처음 내 해골을 마주봤다. 염증이 커져서 잇몸뼈가 많이 패인 모습의 얼굴뼈가 이빨 좀 잘쓰라고 면전에 항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준비도 망설임도 없이 당일 방문하자마자 발치를 했고, 뽑은 자리를 꼬맨 채 일주일을 기다렸다. 마취가 풀리지 않은 몽롱한 상황에서도 두고온 이빨이 아른거렸는데, 뽑힌 이빨은 어딘지 피로가 많이 쌓인 모습이었다. 뽑혀 쓰러진 이빨에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잠시나마 마음으로 전했다. 어금니가 박혀있던 자리는 생각보다 면적이 넓어 놀랐다.
그사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빨 안부부터 알렸다. 생각보다 내 동료들 중에는 임플란트 동지들이 많았고, 그들과 얼마 간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위안이 되기도 했다. 활동가 의료서비스 지원사업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나름 쏠쏠한 정보가 고마웠다. 그와중에도 금주를 언제까지 해야하는가가 궁금해서 일주일 동안은 그것만 찾았다.
다음 방문에서 의사는 환자의 감정을 먼저 살폈다. 오랫동안 몸 안에 사용해오던 게 없어서 우울감이 있지 않느냐고. CT촬영을 한번 더 했다. 이번엔 여유가 조금 생겨 씨티 이미지를 사진으로 남겨도 되느냐 물었다. 실밥을 뽑고 의사는 밀봉포장된 이빨을 건넸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떠나보낸 무언가라는 지난주의 생각보다는 유니크한 굿즈를 선물받은 느낌이 들었다. 금시세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면서 기왕에 팔거면 망치로 이빨을 부수면 된다고 해서 집에 가져가서 돐반지 옆에 두었다. (뭘 쉽게 버리거나 처분하지 못하는 편)
호림

927 기후정의 행진, 오랜만에 행성인 회원들과 함께 큰 집회에 참여한 날이었습니다. 9월 정기 회원모임을 겸한 날이라 현장에서 피켓 만들기도 함께 했어요. 저는 여러 회원들 사이에서 함께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새삼스럽게 설레고 즐거웠는데요. 그 순간이 한겨레의 사진 기사로도 남았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올 봄까지 수많은 집회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을 비상행동 의장으로 참여하다보니 회원들과 뒤섞여서 잡담도 나누고,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과 안부도 나누며 보내는 집회에서의 시간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 시간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여러 분들과 다시 만나 안부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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