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을 (행성인 트랜스퀴어인권팀)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나고 가족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 어느 날, 엄마와 같이 걷고 있을 때 엄마는 “너 가방에 무지개뱃지 떼라. 엄마 창피해”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가 내가 퀴어인 걸 알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엄마는 나를 위한다는 이유로 내 퀴어 정체성을 유린했고, 그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제야 그것이 ‘위선’이었음을 안다. 원가족에게 기대하면 할수록 나만 힘들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 기분은 참 비참하다.
그래서 그날 밤, 창문에 의자를 놓고 떨어짐을 시도했다. 상체를 숙이고 발을 떼기 직전, 용기가 나지 않아 의자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내가 왜 이런 것,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내 소중하고 창창한 삶을 포기해야 하나. 그때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일단 버텼다. 가족들은 그때의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모든 일이 나의 우발적인 화에 의한 잘못이라고 치부하며 자신들이 받은 상처만 생각한다.
그 후, 삶의 이유를 모른 채 그저 죽기가 무서워 살아있었다. 그 즈음 연수가 떠났고, 그 일을 계기로 행성인에 가입했다. 행성인에서 만난 사람들 중 몇몇 이들과는 가깝게 지내며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고르고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들을 나의 새로운 가족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상처뿐인 원가족이 아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체성을 존중하며 서로 살아있음에 김사하는 그런 사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행성인 사람들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나와 원가족과의 관계는 미워하면서도 정서적 의지 때문에 떠날 수 없던 복잡한 관계였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가족이 생긴 이후, 원가족에게 감정적,정서적 의지를 덜 하게 되었고 그만큼 원가족에게서 한 걸음 독립할 수 있었다.
살아있기와 살아있지 않기의 기로에서 살아있기로 선택을 했다. 오늘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이를 축북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살아간다. 아무리 원가족이 내가 퀴어인 걸 부정해도,나는 내가 속한 나의 삶인 퀴어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이제 나는 이 이야기가 단지 개인적 극복담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내가 겪었던 폭력과 혐오, 자살 충동은 단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퀴어를 ‘숨겨야 하는 존재’로 만드는 사회 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한국에는 퀴어 청소년을 위한 안전망이 거의 없고, 법적·제도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선택가족은 의료·주거·복지 영역에서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 결과 많은 퀴어들이 고립과 자살 위기에 놓인다.그래서 나는 살아있기로 선택한 이후, 퀴어 인권의 언어를 더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혐오와 배제를 만드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창문 위의 의자’에 올라서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드는 안전망과 공동체는 단지 개인의 회복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내가 살아있기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존재를 지우려는 구조에 맞서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내 사람들 덕분에 살아남았다. 살아있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더 많은 퀴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