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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회원에세이] 젠더퀴어라도 괜찮잖아?

by 행성인 2025. 10. 23.

애옹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팀)

 

 

퀴어 모임에 나가서 들었던 질문이 있다.

 

“논바이너리라는 걸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내 성별이 내 몸과 다르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지금 생각하면 몹시 무례한 질문이라 생각하지만, 그때는 웃으면서도 한편으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

 

성 지향성은 내가 타인에게 갖는 어떠한 감정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성 정체성의 경우 자신의 법적 성별과 자신이 느끼는 성별과 다르다는 어떤 “자기 자신”의 경험이기 때문이라서 그런 걸까.

 

수많은 퀴어들의 수많은 정체성과 지향성의 여정이 있고, 내가 쓰는 정체성의 여정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 읽게 될 정체성의 여정은 어떠한 젠더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내 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법정 성별은 여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여성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그러다가 정체화를 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그냥 여성이라니까 여성인 거겠지.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30대로 접어드는 순간, “여성”이라고 말하는 게 꺼려졌다. 화장도 하고 원피스도 입고 하이힐도 신고 다녔지만, 어쩐지 그건 사회생활에서의 여성성을 수행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오늘은 여자 해야지~”하면서 꾸미던 기억이 난다. (여기에서 “여자”는 관념적인 여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젠더퀴어에 대한 내용을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다. 이제서야 뭔가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수많은 젠더퀴어 정체성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에 대한 고찰이 적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성 정체성에 대해서 탐구중이거나 확립되지 않은 “퀘스쳐너”라는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일단 그것을 선택하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다른 젠더퀴어들이 궁금해졌고 만나고 싶었다. 친한 퀴어 친구가 자신이 운영하는 커뮤니티를 소개해 줬다. 당장 그곳에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해방감에 젖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퀘스처너”라고 말하는 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젠더에 대한 감각을 알고 싶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정체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현재 느끼고 있는 젠더에 대한 감각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나와 같은 사람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던 중 성소수자들을 위한 심리 상담 모임인 다다름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 소속된 상담사분께 찾아가서 정체성을 함께 찾아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선생님께 추천받은 책과 검색을 통해서 젠더퀴어의 많은 정체성을 알게 되었다. 그 여정이란 꽤 지난했다. 얼핏 보면 비슷한 개념으로 보이는 개념들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이것도 맞는 거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은 아리송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래서 일단 정리를 해보았다.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가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찾아보면서 나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논바이너리, 젠더가 없는 에이젠더, 젠더 자체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없는 젠더리스, 두 개의 젠더가 있는 바이젠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립적인 뉴트로이스 였다.

 

  1.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논바이너리, 뉴트로이스)
  2. 남자/여자, 혹은 두 개의 다른 젠더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이젠더 아님)
  3. 젠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젠더, 젠더리스 아님)

 

결과적으론 논바이너리와 뉴트로이스가 남았다. 이 막바지쯤에 가장 크게 고민했다. 논바이너리가 젠더퀴어를 포괄하는 개념인데 여기서 더 명확해야 하는 걸까? 한편으론 이렇게 늦은 나이에 갑자기 탐구한다고? 젠더가 중요할까? 굳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스스로를 정체성에 가두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목적은 명확했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분법적 성별로 나를 설명할 수 없다면,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기에 한 친구가 현답을 주었는데, 두 개중에 가장 간지나는 것으로 선택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 떠올랐다. 간지가 난다면 그건 이름도 멋지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립적인 정체성인 “뉴트로이스”가 아닐까!

 

일단 뉴트로이스로 정하게 된 건, 단순히 간지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뉴트로이스들이 디스포리아(젠더 불일치 때문에 겪게 되는 성 불쾌감)를 겪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술이나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뉴트로이스가 디스포리아를 겪는 것은 아니다)

 

그 글을 읽고 몸에 대한 불편감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내 몸에 대한 여성성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 부분이 가장 나와 맞는다고 생각해서 뉴트로이스를 선택했다.

 

어쨌든 정체성에 대해 이름을 붙인 순간, 긴 여정 끝에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알게 되어서 기뻤던 것 같다. 정체화를 통해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느끼는 감각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정체성 자체에 나를 가두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젠더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뉴트로이스라는 이름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체성과 지향성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서 좀 더 넓은 퀴어 커뮤니티를 찾기 시작했다. 친구의 제안으로 행성인에 들어오게 되었다. 정체성과 지향성,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과거 벽장 시절에 느낀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퀴어로서의 나를 긍정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체성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퀴어 커뮤니티에서는 성 정체성을 밝혀야 했다. 뉴트로이스라고 이야기할 때, “그게 뭐예요?”라고 물어볼 것은 당연했다. 젠더퀴어에 속한 많은 정체성과 비슷한 듯, 아닌 듯한 정체성이 많았고, 이를 설명하기까지 한다는 건 상대나 나에게 꽤 피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부분 많이 알고 있는 단어인 논바이너리라고 소개를 했다. (뉴트로이스는 논바이너리에 포함되는 정체성이다) 그리고 정체화 과정을 함부로 물어보는 이들이 있어서 더 이상 정체성에 대한 설명을 피하려고 했다. 뉴트로이스라고 정체화를 했지만, 여전히 다른 언어로 소개하거나 숨겨야 하는 불편감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정체화를 했는데! 나를 설명하는 언어를 찾았는데!

 

하지만, 젠더퀴어의 모든 정체성을 모두가 이해하길 바라는 건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젠더퀴어의 수많은 정체성은 굉장히 낯선 언어들일 것이다. 에이젠더, 젠더리스, 뉴트로이스같은 경우, 혼동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많이 정체성을 구분해야 하는지 의문을 겪는 사람도 보았다. “왜 그렇게까지 정체성이 많아?”, “어디까지 나누고 정의할 거야?”라는 질문들을 수없이 들어왔다. 젠더 이분법에 대항하고 생물학적 성의 젠더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시스젠더 규범성에 저항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분법적 젠더로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 젠더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불편과 피해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때가 아니라면 더 많은 정체성이 생겨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속에서 나는 “뉴트로이스”로 정의했다. 이제는 누군가 이 정체성에 대해 알아봐주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조금의 도움이 되고 있다. 월경을 겪고, 가슴이 달린(?) 그 느낌이 디스포리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매달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월경이 가장 힘들었는데, 중단을 위한 시술을 받기도 했다. 매우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여성도, 남성도 아닌 나”를 위해 한걸음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장롱에서 원피스를 꺼내입기도 하고, 보이쉬한 옷을 입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여성도, 남성도 아닌 나”로 살아가려고 한다. 나에게 정체화는 세상에 대항하는 삶의 태도와 언어를 정의하는 일이었다.

 

 

뉴트로이스 플래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