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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퀴어 팔레스타인] 점령은 사랑이 될 수 없다

by 행성인 2025. 10. 23.

 

남웅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사람들에게 퀴어로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건 당위만큼 쉽지 않다. 팔레스타인 퀴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핑크워싱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왜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과 이를 지지하는 일이 퀴어한 행동인지 살펴야 한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사회는 여성과 성소수자 혐오가 강하지 않느냐는 질문과 더불어 한국에 도처한 문제도 많은데 팔레스타인까지 챙겨야 하는가까지 물어오면 조금 피곤해지기도 한다. 설명의 시작점을 잡는 것부터 어렵거니와, 잘 이야기하다가도 팔레스타인 퀴어가 그저 불행하고 불쌍한 희생자로만 그려놓는 함정에 빠지기도 쉽다. 물론 그건 이스라엘의 극악함에 책임이 큰데, 그들이 해온 행적이 다분히 상황을 피해와 가해로, 문명과 야만으로 양분해서 보기 쉽게 만드는 거다.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 QK48은 최근 FAQ를 만든다. 위의 질문들 말고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더러 삐딱하게 생각하기 쉬운 것들을 정리하고 설명해보자는게 취지였다.

 

활동가들이 저마다 질문을 뽑았고, 취합해서 정리한 질문을 각자 분담했다. 나도 특정 카테고리를 담당했는데, 평소에 궁금했지만 특별히 찾아보지는 않았던 질문들이었고 모두가 자원과 담당을 하고 제일 마지막 남은 꼭지를 맡았다. 팔레스타인 퀴어의 일상이라는 걸 상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깊게 파고 들지 않으니까. 그저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강의와 세미나를 통해서, 소개받은 링크를 통해서, 몇몇 영상클립과 문장조각들을 통해서 가늠해온 게 전부다.   

 

어떻게 알아봐야할지 막막했다. 아니, 답하기에 앞서 그곳이 지금 인터넷은 터지나? 지금 모든 것이 파괴되는 상황에 성적 지향과 정체성이 문제일까 하는 허튼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고맙게도 QK48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강의하고 리서치한 자료들을 공유해오고 있었다. 한번씩 훑고 참고하면서도 급한 마음에 어둠의 AI 에게 도움을 청했다. AI는 친절하고 유려하게 질문마다 답을 줬다. 너무 유창해도 의심스러워서 어떤 것들은 다시 묻고 자료를 다시 체크하지만, 일단 스토리텔링부터 해보자 싶어 이것저것 찾은 정보를 편집해 출처와 흐름을 다듬었다.

 

미처 참여하지 못한 회의에서 QK48 동료들은 사려깊지만 날카로운 피드백을 줬다. 문장마다 근거를 물었고, 보충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사이에 사람들은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에 닿고자 했고, 해초활동가는 억류되었다 풀려나는 일도 생겼다. 10월 7일 알 아크사 홍수작전이 일어난지 만 2년을 채웠고, 추석 즈음에는 비가 오는 동안에도 매일같이 사람들이 집회를 기획하고 나갔다. 난 이런 저런 사정으로 실무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고 주지 못했다. 받은 피드백만 기술적으로 답을 남기다가 추석 다음 주 주말에 집회를 나갔다. 집중집회인 만큼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활동가들이 집회에 나와달라는 연락을 두세차례 거듭할만큼 조직에 열심이었다. 집단학살 너머 가자 전체를 고립시켜 가사상태의 총체적 불구화로 몰고가다가 극적으로 휴전이 되었지만, 말이 무색하게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을 공격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인간방패로 죽고 폭격에 살해당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중이다. 

 

 

 

현장에서 QK48 동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도움을 주지 못함을 미안해하고 부스 이벤트에 참여했다. 제비뽑기처럼 쪽지를 골라 퀴어링더맵에서 발췌한 문구를 읽고 포스트잇에 메모를 남기는 작업이었다. 페이지로만 보다가 누가 쓴지 모를 문장을 고르는 이벤트는 감각적인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내가 첫사랑에게 입맞춘 장소다. 가자에서 게이로 살기란 어렵지만 어째선지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우리 동네 남자애들 여럿과 서로 만지고 놀았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는 다 게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연히 뽑아든 작은 쪽지의 물성이 가져온 기분탓일지 모르지만 문장에 깃든 숨이 손바닥에 닿은 것 같았다. 앞서 AI를 켜놓고 급하게 정리한 내용이 번뜩 스쳤는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이 휘감았다. 그곳에서 당신이 종이쪽지를 건네며 손을 더듬고 한마디 속삭이는 느낌에 잠깐 얼어붙은 것도 같다. 팔레스타인 퀴어는 그저 차별받고 억압받는다고 생각한 동정을 가장한 냉담에 다른 체온이 얹어졌다. 그간 활동하면서 언론과 방송에서 성소수자를 다룬다고 자문을 구하거나 인터뷰요청을 할때, 성소수자 그렇게 다루시면 안된다고 날세워서 얘기했던 시간들이 왜 내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집회가 끝나고 돌아와 퀴어링더맵을 다시 찾았다. 어떤 메세지들이 있는지 더 읽고싶은 마음도 있지만, 내게 찾아온 메세지는 어디서 신호를 보낸 건지 좌표를 찾고 싶었다. 메세지를 살피며 한참을 들여보다가 드디어 찾아냈다. 그리고 다른 창을 띄워 FAQ에 정리한 답을 들여다봤다. 약간의 의심 정도는 묵인하고 넘어갔던 출처들을 다시 살폈고, 그것이 상당수 이스라엘 또는 그와 연결된 미디어라는 걸 확인했다. AI는 데이터 통계에 기반해서 정보와 문장을 구성했을 것이므로, 서구와 이스라엘 언론들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그곳을 살아내는 퀴어를 제일 먼저 그린다. 수려한 답변들의 상당수 출처들은 겉으로 점령의 참상을 지적하고 이스라엘의 침략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팔레스타인에서 차별받는 퀴어를 구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선한 지배자의 위치를 상기한다. 때론 이스라엘을 비판적으로 두지만 서구의 인권의식이 낫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사려깊은 만큼 타인을 내려다보는 태도는 쉽게 분별하기 어렵다. 이게 서구와 이스라엘이 여론을 선동해온 방식이었을 테지. 관점은 사실이 되고, 의심은 흐려진다. 하나하나 닥달하면서 이를 반박하고 다른 관점의 답변도 찾을 수 있었는데, AI가 흔쾌히 사과하며 보여주는 팔레스타인 단체 계정과 미디어는 예전의 빈도로 업로드되지 않고, 어떤 페이지는 열리지 않는다. 

 

하루에 수십 수백명씩 죽임을 당하는 중에도 하마스도 잘못하지 않았냐, 그들이 여성혐오의 구조 위에 호모포비아적인건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꼭 바깥에서만 듣는 건 아니다. 내게도 줄곧 떠오르는 하찮은 의심을, 현지 사람들은 지겹도록 마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과 단정은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무장한 이들과 뜻을 함께하는 팔레스타인 퀴어와 여성을 배제하는 말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 조직의 성격을 무릅쓰고, 그들이 자신의 생사를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지지하고 연결되어 있음을 공표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보기로 한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는 팔레스타인 퀴어가 남긴 문구 중에는 자신들을 불쌍한 피해자로만 다루는데 그치며 양비론으로 모두가 잘못했다는 식의 말꼬리잡기는 그만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애석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났다. 어쩌면 그의 날카로운 문장은 철저한 고립 속에 기아상태에 놓이며 글쓰기의 무력함을 토로하며 숨을 놓지 않으려 했던 다른 문장들로 이어졌거나, 이미 학살당한 이의 문장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절망을 내려놓을 수 없다.

 

문장은 어떻게 쓰여야 할까. 나는 당신의 언어로 쓸 수 없고 온전히 읽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이렇게 정리한 내용은 너무 편협하다. 당신이 살아내거나 살아내는데 실패하고 절멸당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쓰고 같이 읽어야 할까. 집회에는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니까 추억들이 다 부서졌다는 현지 주민(어린이로 기억한다)의 영상이 나왔다. 그는 다시 집을 짓고 영상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나오는 얼굴들마다 부디 살아있으라는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 행진을 하고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잠시 다이-인을 하는 동안,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리에서 부당하게 죽임당한 이들의 이미지들이 겹쳤다. 행진하는 동안도 손에 쥔 문구가 계속 떠올랐다.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나누던 거리가 지금은 없다. 사랑을 나누던 이도 없고 어쩌면 이 문구를 남긴 당신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당신의 즐겁고 애틋하고 슬픈 사소한 일상들을 그저 혐오와 피해로 점철하는 바깥의 태도는 어떤 답답함으로 다가왔을까. 지금 전해온 기록들이 어쩌면 문장들만 남아 나한테 전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본다면 여느 게이들처럼 별걸 다 인용한다고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르지만(부디 살아서 꼭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여전히 하마스에 삐딱하고 팔레스타인은 멀다. 하지만 그것이 하마스의 무장과 이스라엘의 폭력을 동등하게 놓고,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민중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성립시킬 수는 없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닿을 수 없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져버리지 못할 거지만, 그것이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수박색 구호를 계속 외치게 할 것 같다. 사람들은 뭘 해야할지 몰라 집회에 나와 상황을 듣고 쿠피예를 두르며 우리가 팔레스타인이 되자고 구호를 외치며 그들의 이야기를 찾고 이제는 그들을 찾아 목숨을 걸고 배를 탔을 것이다. 그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이 글은 피할 수 없는 반성이고 해소할 수 없는 수치의 고백임을 남긴다. 몇몇 굿즈에 시선을 두고, 문장을 입으로 읽으며, 시선집을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