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 (행성인 트랜스퀴어인권팀)
얼마 전, 영화 <3670>을 보았다. 게이들의 유흥문화를 사실적으로 그려서 많은 화제가 됐던 작품이었다. 그걸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게이들은 저렇게 신나게 노는 문화가 있단 말이야? 그럼 트랜스젠더인 우리는? 우리는 왜 저런 문화가 없을까? 어디 보자. 게이들은 게이바에 간다. 레즈비언들은 레즈바에 간다. 그럼 트랜스젠더는 트젠바에 가나? 안타깝게도 트젠바는 트랜스여성에게 성적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가는 유흥업소다. 그럼 트랜스젠더는 어디서 모여 노나? 사실 이 질문에는 함정이 하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성 정체성이지, 성적 지향이 아니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끼리 모아봐야 신세 한탄이야 열심히 할진 몰라도, 서로 성적 매력을 탐색하며 신나게 노는 일은 일어나진 않는다. 트랜스젠더 안에서도 다양한 성적 지향이 있다. 동성애, 범성애, 이성애 등등등. 성 정체성만 가지고도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데, 성적 지향으로 한 번 더 나누면 더 소수자 중의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신나게 놀아보려면 자신과 상대의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신체의 형태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가 이를 맞춘다는 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파트너를 탐색하는 데 어려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혐오가 크게 한몫한다. 예를 들어 트랜스 여성 동성애자가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들어가기란 매우 어렵다. 많은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선 대체로 트랜스 여성을 반기지 않는다. 낯선 존재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지만 트랜스젠더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트랜스 여성 이성애자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시스젠더 남성은 트랜스젠더의 존재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트랜스 여성임을 숨기다가 도중에 트랜스젠더임을 고백하면 깜짝 놀라며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헤어지기만 하면 다행이지, 드물게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범성애자들에게로 눈을 돌려보자. 범성애자들은 트랜스젠더를 좋아할 수 있을까?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범성애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범성애자 세 명이 모였다고 치자.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 명은 남성기를 가진 여성에게 끌리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여성기를 가진 남성에게 끌리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중성적인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미세한 차이는 성적 지향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범성애 커뮤니티가 있다고 해도 동성애 커뮤니티와는 다르게 불꽃이 튀는 일은 비교적 적을 것이다.
그러면 트랜스젠더에게는 정말 커뮤니티가 없느냐? 하나 정도는 있다. 트랜스 여성과 러버간 만남을 위한 커뮤니티다. 러버는 트랜스 여성 또는 크로스드레서에게 성적 목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총칭한다. 이들을 위한 학문적 용어도 있다. 'gynemimetophilia' 라고 하는 데 어려우니까 그냥 '러버'라고 부른다. 이들 또한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러버 중에는 남성기를 가진 여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학술적인 용어로는 'gynandromorphophilia'라고 한다. 이 용어 또한 어려우니까 러버로 퉁친다.
이 커뮤니티는 어째서 활성되어 있느냐? 여기에는 트랜스 여성의 욕구와 러버의 욕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많은 트랜스 여성은 자신의 여성성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을 성적으로라도, 여성적으로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러버는 성적 욕구로 여성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중에서 트랜스 여성은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트랜스 여성을 대상으로 성적 욕구를 풀고자 한다. 트랜스 여성과 러버간의 만남은 대체로 일회성에 그친다. 러버들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트랜스 여성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트랜스 여성에게 이 커뮤니티는 비추천할 수밖에 없다.
결국, 트랜스젠더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성적매력을 탐색하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커뮤니티가 없다는 결론이다. 트랜스젠더도 성적 지향에 따라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트랜스젠더 혐오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혐오가 없어진다면 트랜스젠더들도 자연스럽게 게이,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성 정체성, 성적 지향을 가진 자들도 안전하게 유흥을 즐길 수 있는 퀴어 커뮤니티 조성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갈 길이 많이 멀다. 트랜스젠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올 때까지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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