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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LGBT 운동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

by 행성인 2010. 5. 26.


지난해부터 한국에서도 낙태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낙태 근절을 내놓았고 이에 힘입은 반낙태운동은 공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낙태에 반대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등장해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 명단을 공개하고 급기야 낙태 시술을 한 의사와 병원을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런 공격 때문에 낙태 비용은 치솟았고, 시술을 하는 병원을 찾기도 힘들어졌다. 낙태를 하러 해외로 원정을 가는 현상도 생겼다. 며칠 전에는 낙태 비용을 마련하려고 돈을 훔친 여성이 붙잡혔다는 기사가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낙태 불법화는 위험한 무면허 낙태 시술과 자가 낙태를 늘린다. 이것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지사가 아니다. 낙태 합법화 이후 낙태권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는 미국에서는 (아직 낙태 합법화가 뒤집히진 않았지만) 낙태권이 상당히 제한되었고, 이런 상황 때문에 최근 자가 낙태가 늘고 있다고 한다.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 여성들은 뜨개바늘이나 옷걸이로 자궁을 찔러 자가 낙태를 시도했다. 낙태권을 공격하는 자들은 여성의 삶을 그 시절로 되돌리려 한다.(사진출처: www.worldchanging.com/archives/007799.html)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낙태가 불법이었지만 여성들이 낙태 시술을 받기는 비교적 수월했다. 국가가 오랫동안 출산 억제 정책을 펴면서 낙태를 묵인하고 때로는 권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이 시작되면서 국가 정책이 출산 장려로 돌아섰고, 이제 우파와 국가는 낙태권 공격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 낙태권과 LGBT 권리가 어떤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어쨌든 낙태는 임신․출산처럼 이성애자 여성들, 기껏해야 이성애자나 양성애자 남녀의 문제 아닌가?

그러나 사실 낙태권과 LGBT 권리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공격하는 세력의 구성부터가 그렇다. 무엇보다 낙태권을 공격하는 맥락과 그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LGBT 권리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낙태를 선택할 권리 =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


우선, 낙태권 논쟁이 매우 뒤틀려 있기 때문에 낙태를 선택할 권리가 왜 중요한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흔히 반낙태론자들은 ‘현대의 생명경시 풍조’가 낙태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낙태는 고대부터 존재했다. 서구에서는 산업혁명기 전까지는 태아가 자궁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점인 16~18주까지는 낙태를 관습법상 범죄로 여기지 않았다(조선이나 에도시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낙태가 불법이 된 시기는 국가가 결혼을 규제하고, 모든 출생을 등록하고, 가족생활을 조정하는 등 새롭게 탄생한 산업 노동계급의 삶에 규율을 부과하는 조치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랫동안 여성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 할머니 세대만 해도 인생에서 수년에 이르는 시간을 임신과 출산에 바쳐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는 커다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남녀평등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피임법이 보급되고 안전한 낙태가 가능해지면서 비로소 여성의 삶이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게 됐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자. 오늘 무엇을 할지, 내일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없다면? 그보다 비인간적인 일이 또 있을까?


사진출처: http://notanothertermplease.blogspot.com/2004_12_01_archive.html



낙태를 선택하는 상황과 이유는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신체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여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출산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국가도 남성도 아닌 여성 자신이 선택할 문제다. 이것은 여성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다. 그런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서 낙태 합법화는 현대 여성해방운동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승리다.

단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회적인 상황이 낙태를 조장한다는 소극적인 주장을 넘어서, 낙태를 선택할 권리가 여성의 기본적 권리임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것은 LGBT 인권운동의 정당성과도 연결된다. 흔히 반동성애 운동은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들이 자녀를 낳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고 비윤리적(이기적)이라고 공격한다. 많은 성소수자들도 가정을 이루고 자녀 양육도 하길 원한다는 사실은 제쳐두더라도, 생식이 가능한 성(sexuality)만을 사회적으로 정당하다고 바라보는 시각에 맞서야 한다.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은 인류의 보편적 특징이다. 생식 가능한 성적 관계만을 ‘정상’이라고 규정하고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것은 자연 또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맥락을 가진 정치적 견해이다.


위선


반낙태운동이 내세우는 대의는 ‘생명 존중’ 또는 ‘생명권’이다. 배아나 태아도 인간과 똑같은 생명이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아나 태아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생명체이긴 하지만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태아는 임신한 여성에게 생존을 의존한다. 여성이 살지 않으면 태아도 살 수 없다. 그런데 생명권 논리는 태아의 권리가 살아 있는 여성의 권리와 같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이 주장은 여성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간단한 사실들만 봐도 반낙태운동의 생명 존중 주장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드러난다. 낙태가 불법인 상황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매년 8만 명의 여성들이 불안전한 낙태 시술을 받다가 목숨을 잃는다. 이 여성들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은가? 합법적으로 안전한 낙태시술이 가능하다면 이 여성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전 세계 반낙태운동의 교본인 미국에서 극단적인 반낙태주의자들은 낙태시술을 하는 병원에 폭탄테러를 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반낙태운동 진영은 아프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등에 찬성한 경우도 많다. 이라크 전쟁으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죽인 조지 W. 부시가 생명 운운하며 낙태에 반대하는 것처럼 역겨운 일은 없을 것이다.

반낙태운동진영의 일부는 강간을 당해서 임신한 경우에도 낙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여성의 고통에는 아랑곳 않는 자들이다. 게다가 낙태를 줄이려면 효과적인 피임이 우선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인데도 반낙태주의자들의 많은 수가 피임에 반대한다.

최근에는 저출산을 낙태 단속의 근거로 삼는 경향이 있다. 물론 아이를 낳아 키우기 힘든 여건은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를 낳을지 말지 결정할 권리는 여성에게 있다.


낙태권 공격은 가족 제도 강화 시도


낙태권 공격은 가족 제도를 강화하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고 이 점에서 LGBT 권리와 만난다.

반낙태운동과 반동성애운동의 인적 구성이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얼마 전에 교황은 “동성결혼과 낙태는 공익에 대한 음흉하고도 치명적인 위협”이고 “가족은 서로 떼놓을 수 없는 남녀 간 결혼에 토대를 둬야 하고 낙태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반동성애 인사인 부산대 교수 길원평은 “사회의 생명윤리와 성윤리를 지키기 위해”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한다. 더불어 혼절순결을 지지하고 간통에도 반대한다.

미국에서 낙태권 공격은 80년대 ‘가족 가치’ 운동의 일환으로 성장했다. 가족 가치 운동은 60년대 후반 공민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동성애자해방운동에 대한 반격이었다. 전통적 가족 가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낙태, 복지, HIV 감염인을 공격하며 60년대 운동의 성과들을 되돌리려 했다. 이런 공격에서 우파 정치인, 주류 종교계, 우파 언론들이 한목소리를 냈고 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권력과 부를 지닌 지배자들이 가족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에서 가족 제도가 하는 구실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가족 제도를 이용해 양육, 노인 부양 같은 일들과 집안일을 개별 가족, 특히 여성에게 떠넘긴다. 여성들이 그런 일들을 하지 않으면 지배계급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여성의 기본적인 역할은 가정주부라는 가정은 여성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가족 제도는 보수적 성 관념과 성차별적 남녀상을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는 가족 제도의 구실이 더욱 중요해진다. 지배자들은 임금과 복지를 삭감하거나 해고를 통해 경제 위기의 책임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한다. 가족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어쨌거나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최후의 안전판 노릇을 한다. 저출산을 걱정한다면서도 정부가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지는 않고 여성의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더 열심인 이유다.

이렇듯 자본주의 가족 제도는 여성 억압의 뿌리이자 핵심이다. LGBT들은 체제가 강요하는 남녀의 정형화된 구실과 전통적 가족상을 깨트리기 때문에 억압받는다. 보수적 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면 LGBT에 대한 편견과 천대도 강화된다.

현실의 변화 때문에 가족 제도가 약화되고 있지만 지배자들은 가족 제도의 구실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남녀평등이나 LGBT 인권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다수의 사람들이 평등을 지지하는 사회에서조차 성차별과 호모포비아 등이 사라지지 않고 거듭해서 운동의 성과가 공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LGBT 운동이 진정한 해방을 성취하는 길은, 여성 해방의 길 그리고 자본주의 가족 제도를 변화시킬 근본적인 사회 변화의 길과 떨어져 있지 않다. 이것이 LGBT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낙태권을 옹호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다.


나라 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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